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01)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13화(201/218)
“에리타.”
칼리온이 부르는 내 이름은 어딘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부르는 이름과는 조금 다른 특별함이었다.
“네, 칼리온.”
나는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대답했다. 그의 푸른 눈이 나를 곧게 응시했다. 열리는 칼리온의 입술로 시선이 향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제 모든 마음을 다 바쳐서 그대를 사랑해요.”
칼리온의 나직한 고백이 귓가를 간질이며 내려앉았다.
간질거리는 그 고백에 내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밀려 올라갔다.
“저도 사랑해요. 진심으로요.”
그 말을 마치고는 마찬가지로 살짝 올라간 칼리온의 입꼬리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맞물리는 건 곧이었다.
가만히 입술을 맞대고만 있던 것도 잠시, 칼리온이 고개를 틀어 조금 더 깊게 입을 맞춰 왔다.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그의 숨이 들어왔다.
“……읏.”
가해지는 무게에 내 몸은 천천히 뒤로 기울었고, 내가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은 칼리온이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애매하게 기운 자세에 몸을 뒤틀려던 순간, 짙게 가라앉은 칼리온의 시선이 닿아 왔다.
“……목, 감아요.”
그렇게 말한 칼리온은 내가 무어라 답할 새도 없이 다시 입을 맞춰 왔다.
그를 밀어내기에는 그 감각이 너무도 황홀했다. 나는 손을 들어 칼리온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내 허리를 감싼 칼리온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나를 받친 그 힘은 단단했고, 나는 더 애타게 그에게 매달렸다.
치열을 훑는 간지러우면서도 질척한 온기를 얽으며 서툴게 호응하자 칼리온이 한숨 같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나는 괜히 짜릿한 기분이 들어 입꼬리를 들썩였다. 그게 상대에게 불을 붙이는 행동인지도 모르고.
“……흐.”
한층 더 농밀해진 입맞춤이 내 호흡을 앗아 갔다. 칼리온은 헐떡이는 내 숨소리마저도 삼켰다. 그러다 아쉽다는 듯이 느릿하게 떨어져 숨 쉴 틈을 주었다.
나는 그가 내어 준 시간에 단 숨을 삼켰다. 칼리온은 내가 숨을 고르는 동안 내 이마와 눈꺼풀에 입을 맞추며 나를 기다려 주었다.
야속하게도 그에게서는 헐떡이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저만 숨차는 거 불공평해요.”
칼리온의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대며 칭얼거리듯 말하자 그가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기댄 몸이 듣기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잔잔히 떨렸다.
나는 웃지 말라는 의미로 고개를 들고 그를 흘겼지만, 이어진 말에 내 얼굴만 붉어졌다.
“……그럼 자주 할까요? 원래 하면 할수록 느는 법인데.”
칼리온은 여전히 갈증이 난다는 듯한 짙은 눈을 하고는 무해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를 핥듯이 내려앉았다.
……이, 이, 여우 같으니!
보지 않아도 지금 내 얼굴이 아주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때요. 좋은 방법 같은데…….”
어버버하는 나를 퍽 사랑스럽다는 듯이 보던 칼리온이 다시금 물어 왔고.
“……해 봐야 알 것 같아요.”
그의 여우짓에 홀라당 넘어간 나는 웅얼거리곤 그의 모양새 좋은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붙였다.
***
이런저런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 우리는 짧아진 해가 슬슬 저물어 가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큰일이군요.”
바로 가기가 아쉬워 커다란 호수 주위를 한 바퀴도 아닌 세 바퀴나 돈 후, 이동 마법을 사용하려 멈춰 선 나를 보더니 칼리온이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 그리 말했다.
큰일이라니, 뭐가?
“왜요?”
나는 의아함을 담아 되물었다.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칼리온이 민망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입술이 부었습니다.”
“입술이요? 왜……, 아.”
갑자기 입술이 왜 부었지 생각하던 나는 아까 전의 열렬하던 키스를 떠올리곤 홍당무가 되었다.
그렇게 물고 빨았으니 부을 법도 하지…….
슬쩍 입술을 더듬어 보자 약간 부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많이 부었어요?”
“음…… 그렇게 많이는 아닙니다. 조금 티가 나는 정도라서.”
그 정도면 괜찮겠지, 뭐.
물론 조금 티가 나는 정도라도 눈썰미가 사람급을 넘어선 우리 가족은 알아챌 게 뻔했으므로 오늘은 방에서 나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가볍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조금 새초롬해진 눈으로 몹시 잘생긴 칼리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은 변함없이 보기 좋은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붓기는커녕 냅다 뽀뽀를 갈기고 싶을 정도로 예쁘기만 했다.
“에리타?”
자신을 빤히 보는 내 시선이 어색한지 칼리온이 헛기침을 하며 나를 불렀다.
그쯤에서 나는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키스는 같이 했는데 제 입술만 붓는 건 불공평해요.”
분명히 나도 그의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는데, 조금의 부기도 보이지 않았다.
“……큽.”
내 말을 들은 칼리온은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로서는 아주 보기 좋으면서도 조금 얄미운 웃음이었다.
같이 키스한 나는 티가 날 정도로 입술이 부었는데 혼자만 멀쩡하고.
그렇다고 투정을 부릴 정도의 일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결국 같이 웃고 칼리온의 허리를 감싸며 그의 품에 안겼다.
탄탄한 팔이 내 등을 감싸는 건 이제 어색하지 않은 순서였다.
“……지금 가기 싫다고 하면 좀 그렇죠?”
“네.”
칼리온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럼 제가 더 보내기 싫어지니 참아 주세요.”
그러자 시선이 마주친 그가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그리 속삭인 후 내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뭐야, 놀랐잖아요…….”
“귀엽게 노려보더라고요.”
“……으, 또 선수 멘트.”
나는 좋으면서 괜히 타박했다. 당연하게도 칼리온에게는 단 1그램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 무 먼데.”
다시 조금 전처럼 칼리온의 가슴팍에 안겨 실실 웃고 있자, 위에서 한숨 섞인 웃음과 함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네? 못 들었어요.”
“아닙니다. 혼잣말이었어요.”
눈을 깜빡이며 되묻자 그는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만 갈까요? 저야 계속 이러고 있어도 좋지만 더 늦으면 내일 스승님이 저를 없애려 드실 것 같아서.”
그러더니 칼리온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슬프게도 그 너스레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과보호가 너무 심하시다니까요. 전 이미 성인인데.”
“스승님이 좀 그러시긴 하죠.”
내 말에 동조한 칼리온은 나를 보며 갑자기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로 씩 웃었다.
이어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제가 아직 그대의 남편이 아니니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연인의 위치라는 게 아쉽네요.”
……뭐, 뭐라고?
무슨…….
정말이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칼리온의 화술은 내가 적응하고 싶어도 적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저번에는 프러포즈 얘기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오늘은 남편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지를 않나.
“……흠흠. 출발할게요.”
물론 부끄러워하는 칼리온도, 지금처럼 능글맞은 칼리온도 모두 취향인 나는 조용히 뺨을 물들이며 수식을 읊었다.
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온 건 설렘 과다로 살짝 무시했다.
***
칼리온과의 달콤했던 데이트가 있었던 다음 날 아침, 기쁜 소식과 함께 그립던 사람이 돌아왔다.
“밑에 외숙부가 오셨다고?”
“네! 연락도 없이 오셔서 주인님도 놀라신 모양이더라구요.”
메리의 긍정에 나는 편지에 대한 답신을 쓰다 말고 벌떡 일어섰다.
타국의 거처를 정리하기 위해 두어 달 전 제국을 떠난 세이안의 귀국은 내 걸음을 재촉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가씨! 카디건이라도 걸치고 가셔야죠!”
“아차차…….”
아직 아침 식사 전이라 편안한 차림이라는 걸 잊고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던 나는 기겁한 메리의 외침에 멈춰 서 카디건을 받아 입었다.
“아가씨도 참……. 후작님이 보고 싶으신 건 알지만 그렇게 급하게 나가시면 어째요.”
“에이, 메리가 챙겨 줄 거라고 생각했지이.”
말끝을 늘이며 능청을 떨자 메리가 못 말린다는 듯이 나를 살짝 흘겼다.
“계단에서는 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럼요, 메리 선생님!”
장난스레 답하자 그제야 메리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좋아요. 전 정리하고 내려갈게요.”
“응, 알았어. 저 편지는 아직 덜 썼으니까 그대로 두면 돼!”
메리에게 손을 흔든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조금 전 메리와 약속했으니 뛰는 대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중앙 계단으로 향했다.
지나가며 마주친 사용인들에게 급하게 인사를 하며 계단을 내려가자 활짝 열린 현관문이 보였다.
바깥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열린 현관을 지나자 내가 좋아하는 밀색 머리칼을 단정히 늘어뜨린 뒷모습이 보였다.
맞은편에 선 사람은 이 겨울에 바지 위에 흰 셔츠 하나만 달랑 걸친 아버지였다.
“외숙부!”
일찍이 내 기척을 알아차리고 웃고 있던 아버지와 달리 세이안은 내 부름에 깜짝 놀라 뒤로 돌았다.
변함없이 유순한 세이안의 얼굴을 보니 절로 헤실헤실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