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07)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19화(207/218)
명석하기로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로 뽑히는 유르젠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땀 흘리는 일을 싫어한다는 것. 유르젠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걸 넘어서 아주 혐오했다.
“건강식품에는 한계가 있다니까? 솔직히 말해 봐. 운동은 둘째 치고 이번 주에 며칠 나갔어?”
“……제가 에리타 님한테 잔소리 들을 나이는 아닌데요.”
“어허, 우리 사이에 나이 따지기야?”
내 이어지는 걱정에 유르젠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자기 걱정을 얼마나 하는지도 모르고!
“유르제엔……. 나 진짜 유르젠 아픈 거 다시는 보기 싫다구. 맨날 나보고 아프지 말라면서 자기는 몸살 걸려서 열이 펄펄 날 때까지 일이나 하고 말이야…….”
“그때는…….”
“게다가 나한테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해 줬잖아. 맨날 그렇지, 맨날.”
나는 툴툴거리며 아공간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경량화 마법을 걸지 않아 묵직한 상자를 테이블 위에 살포시 올려 두자 찰그랑- 하는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그건 뭡니까?”
유르젠의 의아하는 시선이 상자를 향했다. 그 물음에 단순하게도 기분이 풀린 나는 의기양양하게 상자 뚜껑을 열며 답해 주었다.
“이거 영양제.”
그런 내 대답에 유르젠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 뚜껑을 옆에 잘 놓아둔 후 상자를 유르젠 앞으로 밀어 주었다.
“내가 유르젠 걱정해서 특별히 정성을 열 배나 들여서 만들었어. 이건 이틀에 하나 마시구, 이건 하루에 하나씩 먹어.”
상자 안에는 짙다 못해 검은 갈색 액체가 찰랑이는 작은 유리병이 어림잡아 서른 병, 그리고 검은 알갱이가 잔뜩 든 유리 자기가 두 개 들어 있었다.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을 본 유르젠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구겨졌다.
“이거 먹고 죽는 거 아닙니까? 색이 영…….”
“……아니거든!”
내 걸작을 두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물론 색이 지옥에서 올라온 사약 같은 시꺼먼 갈색이긴 하지만……. 본래 뭐든 겉보다는 속을 봐야 하는 법이다.
뭐든지 겉이 번지르르한 것보다는 속이 꽉 찬 게 좋다는 뜻이었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왜 있겠어?
나는 열심히 내 걸작의 외양을 변호하며 미심쩍어하는 기색을 지우지 못하는 유르젠에게 유리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색은 좀 구려도 효과는 엄청 좋다구. 아버지도 인정하셨단 말이야.”
“효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듣도 보도 못한 색이라서요.”
체력 증진용 포션이나 기력 회복용 포션은 성수가 들어가는 탓에 대부분 하얀빛을 띠었다.
“뭐가 들어갔는지는 일단 마시면 말해 줄게. 부작용 전혀 없고 이상한 효과도 없으니까 나 믿고.”
다행스럽게도 나를 오래 봐 온 유르젠은 여전히 껄끄럽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유리병의 뚜껑을 따 짙은 색의 액체를 들이켰다.
나는 기대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유르젠은 기꺼이 내가 기다리던 반응을 내어 주었다. 그의 놀람 가득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뭡니까? 사흘째 안 자서 몸이 무거웠는데 바로 괜찮아졌습니다.”
“……뭐? 사흘?! 내가 잠 줄여서 일하지 말랬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건 시중에 나온 포션은 상대도 안 되겠군요. 제조법은 직접 발견하신 겁니까? 하, 이런 건 또 어떻게 만드신 건지…….”
중간에 유르젠의 사흘 밤샘 고백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몹시도 만족스러운 반응에 나는 실실 웃으며 소파에 편하게 기댔다.
“괜찮지? 지금 상용화된 기력 회복 포션보다 효과가 대략 다섯 배 정도 좋아. 이런저런 실험 다 해 봤는데 부작용도 없고. 대신 마시는 주기는 이틀 정도 간격을 둬야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효과에 그 정도 제약이면 단점도 못 되었다.
“그럼 이건 뭡니까?”
유르젠의 시선이 두 개의 유리 자기로 향했다.
액체와 비슷한 색깔의 사탕 같은 알갱이.
“음, 이것도 영양제.”
“똑같은 겁니까?”
“아니. 성분은 똑같은데 얘는 효과가 좀 더 약해. 그리고 맛도 좀 달라. 어린이나 쓴 거 싫어하는 사람용으로 만든 거라 좀 더 달거든.”
저 액체 포션은 조금 쓴맛이 났다. 아주 쓰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어린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쓰면 뱉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재료가 뭔데요.”
본론이 나왔다.
나는 씰룩이려는 입꼬리를 단단히 단속하고는 비밀을 말해 주듯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바사 열매, 누디나무의 진액, 편백나무 이파리, 고란의 알곡, 파피룹이랑 에포라.”
내가 읊은 재료 중 파피룹을 제외하면 전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파피룹은 신기하게도 땅속에서 자라는 약초인데, 서식 조건이 알려진 바가 없어 찾으려면 무작정 땅을 죄 갈아엎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료의 나열을 들은 유르젠의 얼굴에는 곤란이 없었다. 그 이유인즉슨.
“파피룹이면…… 얼마 전에 매입한 땅에서 무더기로 자란다는 그 약초군요.”
“정답!”
몇 달 전 왠지 감이 좋아 냅다 매입한 땅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고, 또 지금도 자라고 있는 게 파피룹이었으니까.
현재 매물로 있는 파피룹의 사분지 삼은 라그라스 상단 소유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허……. 이윤이 엄청나겠군요.”
이 정도 효과면 지금 신전과 마탑에서 나오는 포션보다 훨씬 고품질이었다.
그런데 값비싼 성수가 들어가는 그 포션과 달리 내가 만든 건 성수가 들어가지 않았다.
단가 절감이 훨씬 많이 된다는 소리였다.
“근데 재료가 하나 더 있긴 하거든.”
“뭡니까?”
유르젠이 여간해서는 잘 보여 주지 않는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으휴. 내가 선물로 줄 때는 심드렁하더니 상품 가치가 있어 보이니까 눈이 초롱거리는 것 좀 봐.
물론 그런 유르젠이 지금까지 내가 주었던 선물을 전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트란 열매 껍데기.”
“……트란 열매 껍데기요?”
“응. 왜, 우리 트란 열매 알맹이만 쓰지, 껍데기는 버리잖아. 그게 주재료야.”
주재료는 트란 열매의 껍데기와 이런저런 약초들이었다.
황제의 건강 회복을 위해 이런저런 약을 만들던 도중 발견한 사실인데 트란 열매의 껍데기는 산삼보다 더 좋은 원기 회복제였다.
만약 이 사실이 이미 알려졌다면 돈독 오른 마탑에서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으니 이건 내가 최초로 발견했다는 뜻도 되었다.
내 말을 들은 유르젠이 잠시 침묵했다.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재 보는 듯하던 그가 조금 초조하게 물어 왔다.
“트란 열매 하나 분량 껍데기로 제작 가능한 분량이 얼마입니까?”
트란 열매는 자라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유르젠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은 건 그 탓이겠지.
그러나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었다.
나는 씩 웃고는 상자를 턱짓하며 말했다.
“이거 백 배 분량.”
서른 개의 백 배는 삼천.
“……삼천 병이요.”
“응, 삼천 병. 크기나 공정 과정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내 계산으로는 대략 삼천 병 정도 가능해.”
“허…….”
친절하게 덧붙인 내 설명에 유르젠이 헛웃음을 흘렸다.
“……출시되면 난리가 나겠군요.”
그걸 말이라고.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애정 어린 눈으로 새까만 영양제를 바라보았다.
현재 마탑과 신전에서 판매 중인 회복 포션은 부유하지 못한 평민들은 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고가였다.
그에 반해 내가 만든 포션은 하나당 1실버만 받고 팔아도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뭐, 1실버도 받을 생각 없지만.
“이건 귀족들이 아니라 평민들을 위한 거야.”
“예?”
나는 유르젠에게 내가 생각한 바를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포션이 필요한 건 귀족보다는 평민들이야. 매일같이 고된 일을 하니까.”
“……그건 그렇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야말로 회복 포션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소량이라도 성수가 들어간 회복 포션은 그들이 일주일 치 봉급을 다 털어야 겨우 살 수 있는 고가 제품이었다.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비싼 가격 탓에 포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단 말이지.’
게다가 일주일 치 봉급을 죄 털어 사 봤자 효과는 그저 피로가 가시는 정도.
당연하게도 회복 포션은 돈 많고 여유로운 이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대체재를 찾지 못해 라그라스 상단에서 유통하는 회복 포션의 가격을 최소한으로 낮춰 거의 이윤 없는 원가에 파는 정도로 그쳤는데…….
“나는 이게 회복 포션의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보거든. 유르젠 생각은 어때?”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유르젠은 눈썹을 찡그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팔아서 평민들도 쉬이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군요.”
“정답!”
찰떡같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유르젠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어차피 소량의 재료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니까 원가도 별로 안 들어. 마법사들이 조금 고생하긴 하겠지만 평소 하던 일이랑 크게 다를 바도 없을 거구.”
상단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대부분 발명가 기질이 있고 연구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상단에서 하는 일들은 아티팩트나 마법 물품 등을 만드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우선 제조법을 알려 주시면 믿을 만한 애들로 몇 추려서 시제품을 먼저 제작해 보도록 하죠.”
곧바로 다음 일을 생각해 내는 유르젠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일을 더 얹어 주고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조금 전에 무리하지 말고 밤새우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 놓고 일거리를 하나 더 주자니 양심이 콕콕 쑤셔 왔다.
내가 아니어도 일중독 유르젠은 알아서 일거리를 찾아냈겠지만.
“흠흠. 그리고 부탁할 게 하나 더 있는데…….”
슬그머니 꺼낸 말에 유르젠의 시선이 내게로 와 닿았다.
다행스럽게도 초반에 피로 회복제를 먹인 덕분에 평소처럼 어디 아픈 사람 같은 눈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부탁하실 게 뭐기에 그렇게 눈치를 보십니까?”
“음, 그렇게 큰 건 아닌데…… 이 포션 출시할 때 이 황자 전하 앞으로 공을 좀 돌리고 싶거든. 이거 만들 때 전하의 말에서 큰 힌트를 얻기도 했구.”
“……황태자 즉위식 때문입니까?”
유르젠의 되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뭐, 크게 보자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딱 맞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몇 번을 말해도 기분 좋은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말을 꺼냈다.
“전하한테 드리는 약혼 선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