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21화(21/218)
어느덧 마차가 황도 안으로 들어섰다.
점차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 바깥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살짝 걷었다.
그러자 활기차 보이지만 어딘가 어수선해 보이는 거리가 보였다.
‘황비가 죽은 사실이 알려져서 그런가.’
나는 심란한 마음을 가지고 밖을 바라보다 이내 손에 쥐었던 커튼 자락을 놓았다.
자꾸 보고 있으면 더 심란해지기만 하겠지.
마침 들려온 아버지의 목소리는 내 시선을 돌리게 하기 충분했다.
“우선 우리는 수도에 있는 저택으로 간다. 장례식은 내일이니 오늘은 푹 쉬거라.”
“네…….”
나는 그 말에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황궁으로 가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황비의 장례식은 내일 황궁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대신관이 직접 진행한다고 했었지.’
황비이며 황자의 모친이기에 예우를 갖추는 것이었다.
지금껏 내가 만난 이들 중 원작에 나온 사람은 아버지와 오라버니 딱 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은 대부분 수도에서 진행되었으니까.
비록 이야기가 시작되기 9년 전이지만 소설의 무대인 곳으로 들어섰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그런 내가 2황자, 칼리온을 떠올린 건 당연한 순서였다.
‘내일이면 남주를 보겠구나.’
지금은 열한 살일 남자 주인공, 칼리온 루인 엘베르.
다른 때였다면 충분히 설렐 수도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금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에휴. 심란하다, 심란해.’
어지러운 내 속과 달리 착실히 달린 마차는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페른의 말에 의하면 수도에 기반을 둔 귀족들이 아닌 지방에 뿌리를 둔 귀족들은 수도에 입성했을 때 사용하는 저택을 따로 둔다고 한다.
직위가 아주 낮거나 수도와 연이 일절 없지 않은 이상 수도 입성은 지방 귀족들의 목표라던가.
아버지도 수도에 적당한 저택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지.
“주인님, 도착했습니다.”
마침 도착을 알리는 테르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마차 밖으로 나서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내민 손을 붙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보인 모습에 내 눈이 절로 동그랗게 떠졌다.
적당한 저택을 하나 가지고 있다더니.
대공쯤 되면 원래 이런 대저택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이 퐁퐁 솟아나게 하는 저택을 앞에 둔 나는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에리타, 얼른 들어가자.”
오라버니가 내민 손을 붙잡고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라 들어선 저택 내부는 단정하게 꾸며져 있었다.
오래 머물 예정은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일주일은 넘게 있을 거라고 하셨지.
“이따 뵐게요!”
“그래. 저녁에 보자꾸나.”
“이따 보자.”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바쁜 일이 있는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내게 손을 흔들었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꽤 남은 터라,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나는 일단 내가 머물 방에 가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도 하고.
“메리, 방으로 안내 좀 해 줄래?”
“그럼요!”
이리저리 분주한 테르반 대신 메리의 안내를 따라 방에 도착한 나는 잠시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 뒤 문을 닫았다.
생소한 방 안을 한번 둘러보자 대공령의 내 방과 크게 다른 바가 없었다.
마련된 책상에는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건지 펜과 종이도 준비되어 있었다.
자, 이제 생각을 정리해 보자.
나는 책상에 앉아 펜을 쥐고 제일 먼저 등장인물을 쭉쭉 써 내려갔다.
들키면 곤란하니까 한글로.
그 후에는 굵직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했다.
사실 원작인 ‘아일라는 사랑스러워’는 그다지 머리 아픈 내용이 아니었다.
사랑받는 여주인공을 그려 내는 게 목표인 것처럼 아일라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힐링 스토리였지.
여주인공인 아일라는 어느 지방의 남작 영애였다.
다정한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귀족임에도 귀엽고 순수한 아가씨.
그래서 그런지 원작은 갈등 부분에 해당하는 권력 다툼에 대해 세세하게 서술하지 않았다.
“솔직히 1황자랑 대립한 것도 둘이 연애하게 하려고 넣은 거나 다름없었지.”
이야기의 중후반에 등장해 남주와 싸우다 폭주한 아슬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결한 에일런.
모든 게 아일라를 위해 존재하는 그런 세계에서 주인공들을 위해 소모용으로 그려진 악역.
그게 내 가족의 역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허술하고 단순한 소설이었다.
“내 취향도 아니었던 소설을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었지?”
알바비를 모아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들른 게 원인이었다.
문제집 코너로 가기 전, 할인 서적들을 모아 놓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표지에 그대로 홀려 사 버렸었지.
참고서를 사는 것도 몇 번을 고민한 후에야 샀었던 나답지 않게,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나는 종이 위에 펜을 올려 두고 팔에 머리를 기댔다.
내가 믿고 있던 구석은 원작밖에 없는데. 하나뿐인 보험이 알고 봤더니 썩은 동아줄인 기분이다.
이런 망할 세상.
“아마 황비를 죽인 건 황후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2황자의 모친인 황비를 죽일 사람이 황후밖에 더 있겠어.
황후와 황비의 불화는 유명했다.
본래 후궁의 존재는 용납되지 않았으니까. 황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거였다.
그러니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황후는 황제와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종이 위에 황후와 1황자를 쓴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1황자가 도대체 어떻게 아버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그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원작에 나온 것만 아는 내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무슨 수로 알겠어.
지난 1년간 둘에 대해 알아보긴 했지만 어린 몸으로 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세운 계획은 내가 조금 더 큰 후에야 실현 가능한 것들이기도 했고.
지금 당장에는 얌전히 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시간은 내가 원한다고 빨리 가는 게 아니니까.
내 고민은 식사를 마치고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까지 계속됐다.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일단 열심히 밑밥을 깔고 있긴 한데…….”
아무리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우선 말로써 열심히 어필할 것.
그간 나는 열심히 둘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랑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게 꿈이에요!’
‘오라버니, 절대 다치시면 안 돼요!’
부터 시작해서…….
‘생일 선물요? 음, 아버지랑 오라버니가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물었을 때도 그렇게 대답해 놓았다.
그때 둘의 표정이 굉장히 묘하긴 했지만……. 말이라도 해 놔야 안심이 될 것 같았거든.
별거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내 말을 떠올리고 멈칫해 주지 않을까.
내가 노리는 건 그거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생각보다 의외의 것이다.
마법.
신기하게도 나는 마법에 꽤 재능이 있었다.
페른이 놀랄 정도였으니 적어도 상급 마법사는 되지 않을까?
아버지와 처음 만났을 때 마력이 어쩌고 말하긴 했는데 그게 마법에 재능에 있다는 뜻일 줄은 전혀 몰랐지.
물론 마법은 내 계획에 큰 도움이 될 예정이었다. 특히나 무력과 금전적인 부분으로.
여차하면 아버지랑 오라버니를 구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좋을 텐데.
나는 이불 위로 뻗은 손을 작게 휘저어 작은 빛 무리를 만들어 냈다.
이제는 마력을 다루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해 문제가 없지만, 반년 전만 해도 사고란 사고는 다 쳤다.
처음에는 작은 불꽃을 만들어 내려다가 연무장 한구석을 홀랑 태워 먹었지.
그다음으로는 조그만 물방울을 떠올렸다가 해일을 불러와 한바탕 물난리를 일으키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미안하네.”
아버지와 페른의 말로는 타고난 마력 자체가 워낙 많아서 그렇다는데…….
물론 재능이 있다는 말이 싫을 리가 없었다.
잠재 마나가 너무 많은 탓에 마력 방출량을 조절하는 데에 거의 한 달이 넘게 걸린 게 문제였지.
그사이 저지른 사고를 꼽으려면 두 손을 모두 써도 모자랐다.
내가 망가뜨린 물건들만 해도 창고 하나를 꽉 채울걸.
내가 빛 무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을 때였다.
똑똑-
“에리타. 자니?”
단정한 노크 소리와 함께 오라버니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아직 안 자요!”
“잠시 들어가도 될까?”
“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선 오라버니는 가벼운 셔츠 차림이었다.
“자려는데 왔구나.”
“잠이 안 와서 그냥 누워 있었어요.”
나는 침대 헤드에 기대앉으려다 오라버니의 만류와 함께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다시 눕혀졌다.
“누워 있어. 그냥 잠깐 얼굴 보고 가려고 들렀거든.”
“으응. 아까 바쁘던 일은 끝난 거예요?”
저택에 오자마자 바쁘던 둘은 식사를 마친 후에도 바빴다.
“응. 혼자 심심했지? 빨리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그 시간 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던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오라버니.”
“응?”
내 부름에 에일런의 시선이 다정히 내려앉았다.
“……내일 황궁에 가서 조심해야 하는 게 있나요?”
예법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으음. 에리타가 걱정하는 게 어떤 부분인데?”
“다른 귀족들이 말을 건다거나, 하는 그런……?”
“하하.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어…… 왜요?”
“내일은 장례식이잖아. 연회도 아니고 하니 다들 금방 돌아갈 거야.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닌 이상 장례식에서 친교를 나누는 건 예의에 어긋나거든.”
그렇게 말한 오라버니는 씩 웃으며 조금 내려간 이불을 다시 올려 주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하암.”
폭신한 베개 위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던 도중 참지 못한 하품이 튀어나왔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집 나갔던 잠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잘 시간이네.”
“오라버니 목소리 들으니까 노곤해져서…….”
나는 몰려드는 잠기운에 배시시 웃으며 웅얼거렸다.
아직 어린 몸은 수면욕에 유달리 약했다.
에일런이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이미 수마에 항복한 내 귀에는 흐릿하게 들렸다.
“좋은 …… 꿈 …… 예쁜, …… 생.”
점점 깜빡이는 속도가 느릿해지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던 부드러이 웃는 얼굴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복잡한 고민도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이었으면 성우 해도 되겠다…….’
희미한 정신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
드디어 황궁으로 갈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준비 끝났어요.”
“오늘도 고마워, 메리.”
내 인사에 메리가 수줍게 웃었다.
생각보다 얌전한 성격의 메리는 칭찬에 약했다. 특히 내가 하는 칭
찬에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거울 위로 어두운색의 원피스를 입은 내 모습이 비쳤다.
장식은 최소한으로 해서 반은 땋아 올리고 반은 늘어뜨린 단정한 머리는 메리의 작품이었다.
“다녀올게, 메리.”
“다녀오세요!”
사실 내가 간다고 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작이 시작된 것도 아니고, 지금 황궁에서 열리는 건 장례식일 뿐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모든 일의 배후인 이의 얼굴은 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주먹을 말아 쥔 채 황궁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