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2)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24화(212/218)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제 눈 뜨셔도 돼요!”
눈을 뜨자 머리단장과 화장을 끝마친 내 모습이 보였다.
평소 워낙 단출한 치장을 좋아하는 탓인지 힘을 주어 꾸민 오늘의 내가 영 어색했다.
마치 내가 아닌 나를 보는 느낌이랄까.
“……너무 꾸민 거 아냐?”
내 물음에 메리와 마릴린을 포함한 하녀들이 펄쩍 뛰었다.
“에이, 무슨 소리세요! 황자, 아니, 황태자 전하 즉위식에 바로 연달아서 연회가 있잖아요. 게다가 거기서 약혼 소식을 알릴 거라고 하셨으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죠!”
아니, 그건 그런데……. 어차피 이따 즉위식 끝나고 연회 시작하기 전에 옷도 갈아입고 치장도 새로 해야 하잖아.
그 말은 내 모습이 매우 마음에 드는 듯 만족스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하녀들 탓에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으응, 어쨌든 오늘도 고마워. ……예쁘다.”
내 입으로 예쁘다는 말을 하기는 조금…… 아니, 아주 민망했으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결국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했다.
잠시의 민망함을 감수하면 돌아오는 기뻐하는 반응을 보는 게 더 좋은 탓이었다.
“아버지랑 오라버니는?”
“잠시만요!”
내 물음에 하녀 하나가 살짝 문을 열고 바깥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러곤 바깥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두 분도 방금 준비 끝내셨대요!”
다행스럽게도 내 준비가 늦지 않은 모양이었다.
“응, 고마워. 그럼 이제 나가야겠다.”
나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한 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오간자 실크 재질의 초록색 드레스 자락이 겹겹이 차르르 떨어졌다.
우아한 화려함을 뽐내는 격식 있는 이 드레스는 세이안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아 즉위식에서 입기에 딱이었다. 이따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다른 드레스로 갈아입을 거지만.
“아가씨, 잘 다녀오셔요!”
“다녀오셔서 어땠는지 알려 주시기예요!”
집에 남아 있을 하녀들의 즐거워하는 말투에 나는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려 줄게.”
“헤헤. 약혼 축하드려요, 아가씨!”
“저두요!”
진심 어린 축하의 말에 내 입꼬리가 절로 호선을 그렸다.
그렇게 열심히 나를 꾸며 준 하녀들을 뒤로하고 방을 나서자.
“오라버니?”
벽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에일런이 보였다.
그는 문을 열고 나온 나를 보더니 내가 좋아하는 다감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좋은 오후.”
“흐흥, 에스코트해 주려고 온 거야?”
“그럼. 오늘도 예쁘네, 내 동생.”
내 스스로 예쁘다 소리를 하기가 민망한 거지, 다른 이에게서 듣는 예쁘단 소리가 싫은 건 아니었기에 나는 히히 웃으며 에일런이 내민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매끈한 가죽 장갑을 낀 에일런의 손의 감촉이 조금 어색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누구 오라버닌지 당장 화보를 찍어도 될 것 같은 에일런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정복 입은 거 오랜만에 보네.”
깔끔하게 올린 머리칼과 평소 잘 입지 않는 화려한 정복, 그리고 검은 장갑.
“괜찮아?”
내 말에 푸스스 웃은 에일런이 답정너 같은 질문을 해 왔다.
정작 본인은 답을 정해 두지 않았겠지만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니 답정너 같은 질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그걸 말이라고 해? 완전 잘생겼지.”
나는 내 잘난 오라버니를 추켜세우며 팔을 툭 쳤다.
잔잔히 떠들며 계단을 내려가니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
“에리타, 에일런.”
괜히 반가워 걸음을 재촉하자 아버지가 옅게 웃으며 나와 에일런을 반겨 주었다.
과장 조금 보태어 오늘 아버지와 에일런은 마치 눈에 띄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았다.
무슨 말이냐면, 아주 힘껏 잘생김을 뽐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정복 입으신 거 오랜만에 보네요. 진짜 멋져요. ……물론 평소에도 멋지시지만요!”
에일런이야 평상시에도 제복 재킷까지 다 챙겨 입고 다녀 놀라움이 조금 덜했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워낙 불편한 것을 싫어해 셔츠 단추도 늘 두어 개씩 풀고 다니는 아버지는 당연히 이런 화려한 정복 차림을 싫어했다.
완전히 예장한 차림은 작년 내 데뷔탕트 때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후다닥 덧붙인 내 뒷말에 낮게 웃은 아버지가 내 머리를 살짝 넘겨 주었다.
“오늘은 네 약혼 소식을 알리는 날이니 모자람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니.”
칼리온과 내 약혼.
우리는 이틀 전 약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걸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게 오늘이었고.
“……설마 그래서 이렇게 차려입으신 거예요? 아버지랑 오라버니 둘 다?”
“그 이유가 제일 크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에일런의 답에 나는 배시시 웃었다.
“제가 두 사람 사랑하는 거 알죠?”
“그럼.”
아버지의 다정한 대답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리 준비된 마차에 올라탔다.
새해가 되어 한겨울에 들어섰지만 날은 화창했고 춥지도 않았다.
완벽한 날이었다.
***
하늘은 청명하고 날씨는 온화한 날.
제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 황자, 칼리온 루인 엘베르의 황태자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즉위식이 치러지는 곳은 황궁에서 가장 넓은 홀이었다.
나는 느릿하게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너른 홀을 둘러보았다.
평소 황궁 연회가 열릴 때도 사용하지 않는, 대대로 황제의 즉위식 때만 개방되는 홀.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수십의 황제를 배출한 제국 역사상 이 홀에서 황태자 즉위식이 치러진 건 고작해야 두 번뿐이었다.
황자의 신분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고 그 누구보다 제국민들에게 사랑받은 황자의 즉위식.
‘……내가 다 떨리네.’
그런 곳에서 칼리온의 즉위식이 거행된다는 게 뿌듯하고 기쁘면서도 떨렸다.
그게 또 웃겨 입술에 막힌 웃음이 아주 작게 새어 나왔다.
‘왜 내가 떨고 있담.’
누가 보면 내가 오늘 이 행사의 당사자인 줄 알 정도로 심장이 쿵쿵 뛰어 댔다.
정작 오늘의 주인공인 칼리온은 이런 일에 크게 긴장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 우스운 심장 박동을 달래며 커다란 홀에 걸맞게 널찍한 단상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일 황자, 테시스가 우두커니 마련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이전에 보았던 모습과 달리 수척하고 까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야 당연하게도 최근에 있었던 모든 일일 테고.
‘……테시스도 힘들겠네.’
폐황후의 난이 일단락된 후, 테시스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칼리온을 도왔다.
몇몇 귀족들이 테시스를 함께 처벌해야 한다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 의견은 모든 일이 끝나면 스스로 황족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테시스의 선언에 쏙 들어갔다.
스스로 제가 관련된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무어라 하겠는가.
어떻게 보면 테시스 역시 황후에게 휘둘린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칼리온이 테시스를 포용한 데에 별 유감은 없었다.
당사자인 칼리온이 포용한 일에 제3자가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의외로 일적인 부분에서 두 사람이 잘 맞는 게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그때였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고 단상과 이어진, 작지만 화려한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걸어 나온 건 강건해 보이는 금발의 중년, 황제였다.
화려하고 위엄 있는 정복을 갖춘 황제는 진중한 얼굴로 단상에 마련된 황금 옥좌 앞에 섰다.
“다들 이리 와 주어 고맙군.”
다 죽어 가던 황제가 저렇게 강건한 모습을 하고 앞에 나설 수 있는 건 나와 페른, 그리고 소수의 입 무거운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황제의 강한 의지도 있긴 했으나 황제에게 좋은 감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기에 그건 굳이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이어진 황제의 짧은 연설이 끝나고.
“이 황자, 칼리온 루인 엘베르는 들라.”
그 말과 동시에 저 먼 곳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거리는 멀었지만 내 눈에는 황태자 정복을 갖추고 덤덤한 얼굴로 걸어오는 칼리온의 모습이 선명하게 맺혔다.
칼리온이 걸어오는 걸음마다 귀족들이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단정하지만 당당한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나 역시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황제의 앞에 선 칼리온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짐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될 이는 칼리온 루인 엘베르가 될 것이다.”
그는 이제 이 황자가 아닌 황태자였다.
***
황태자 즉위식 이후 곧바로 연회가 시작되었다. 지금쯤이면 황궁 바깥도 축제 분위기일 터였다.
오랫동안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기 힘든 황제는 일찍이 자리를 비웠다.
황제가 일찍 자리를 비웠다고 아쉬워하는 이는 없었다. 황제의 권력이 전부 칼리온에게로 넘어갔다는 걸 귀족들도 아는 탓이었다.
그 결과 칼리온과 대화 한 번, 시선 한 번 주고받고자 하는 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나 참…….
“에리타.”
가늘게 뜬 눈으로 여유롭게 귀족들을 상대하는 애인을 바라보던 내 옆으로 에일런이 다가왔다.
아까 출발하기 전 감탄했던 모습의 에일런이 내 옆에 서자 내 몸에 두르고 있던 존재감을 흐리게 하는 마법의 효과가 반토막이 나다 못해 사라졌다.
에일런을 좇아온 시선과 깨진 마법의 효과로 나를 인지한 이들의 시선이 아주 따가웠다.
‘내 휴식도 끝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