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4)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26화(214/218)
우리가 약혼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나와 칼리온의 약혼은 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연애 사실을 먼저 알린 후라 다들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어쨌든 황태자와 공녀의 약혼은 큰 이슈거리였다.
거기에 우리의 약혼을 기념하는 의미로 라그라스 상단에서 출시한 회복 포션까지 있었으니, 그 영향이 얼마나 컸을지는 두말하면 입 아팠다.
그 포션 재료 대부분을 칼리온이 지원한다는 것과 제조 과정에 칼리온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잘 버무린 유르젠의 홍보가 아주 기가 막혔다.
약혼 후 나는 이전보다 더 자주 황궁에 들렀다.
이유는 여럿이었다.
초반에는 우리의 약혼 직후 칼리온에게 황위를 양도하고 황궁의 한적한 곳으로 물러난 선황제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이었고, 선황이 숨을 거둔 현재는 황궁 마법사들의 초대를 받아 그들과 같이 연구를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바쁘디바쁜 내 연인을 보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통계상으로 봤을 때 일주일에 서너 번은 황궁에 간다는 소리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황궁에서 자고 가는 날도 생겼다. ……사실 자연히는 아니고, 핑계를 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처음 황궁에서 하룻밤을 보낸 건 간만에 달빛 아래의 황궁 정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불이 붙어 짙은 키스를 나눈 날이었다.
잔뜩 물고 빨았던 탓에 엉망이 된 입술로 집에 가기는 조금 그렇다는 핑계를 댄 첫 외박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같은 방에서 잔 건 아니지만 밤늦게까지 함께 있다가 칼리온의 옆방에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조심스레 내 볼을 쓰다듬는 칼리온의 손길에 눈을 떴다.
전날 칼리온에게 소심히 부탁한 아침 인사였다.
비록 흉흉한 얼굴로 황궁을 찾아온 아버지와 에일런에 의해 평화로운 아침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 후 겨우겨우 설득한 아버지와 에일런의 묵인 아래 나는 종종 황궁에서 밤을 보냈다.
우리의 약혼이 견고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기에 정치적으로도 괜찮았고.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하으…….”
칼리온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에게 매달리던 나는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숨을 들이켰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짙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칼리온이 보였다.
“……숨 다 쉬었어요?”
칼리온의 나직한 물음에 눈을 깜빡인 나는 대답 대신 떨어뜨렸던 입술을 다시금 맞붙였다.
부드럽고 말랑한 칼리온의 아랫입술을 이로 잘근거리자 그의 입술이 옅게 호선을 그리는 게 느껴졌다.
깊게 숨이 얽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내 몸이 저돌적인 키스에 점점 뒤로 넘어갔다.
그러나 우리 둘 중 누구도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가쁘게 얽히는 숨과 온기가 황홀했고, 내 허리와 등을 단단히 감싼 칼리온의 팔은 심장이 저릿하리만치 좋았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어느새 나는 침대와 칼리온 사이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언제 끼워 넣은 건지 내 머리 뒤를 받친 칼리온의 손이 단단했다.
“흣…….”
그러나 그걸 신경 쓸 새는 없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더 깊게 파고드는 칼리온을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흐읏, 으…….
물기 젖은 소리는 미처 새어 나가지 못하고 내 입술을 덮은 이에게 먹혔다.
잡아먹히는 기분이 드는 키스는 저돌적이지만 순간순간 부드러웠다.
칼리온은 나를 배려해 몰아치다가도 느릿하게 입술을 잘근거리고 핥았다. 그러다가 내가 숨을 다 고른 것 같으면 다시금 숨을 얽어 왔다.
배려와 욕망이 공존하는 키스에 나는 속절없이 휩쓸렸다.
어쩌다 이렇게 불이 붙었더라.
아, 내가 바빠서 나흘간 못 만났었지.
나흘 만에 본 여파가 이렇게 닥쳐왔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를 두고 애달아 하는 칼리온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키스를 받아 내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물론 나흘간 칼리온을 못 보면서 힘들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그건 생각으로만 그쳤지만.
그때였다. 입술을 떼어 낸 칼리온이 갑자기 내 목덜미를 잘근 물었다.
“흐앗……!”
간지러움을 많이 타는 나는 나도 모르게 새된 목소리를 뱉었고,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아니.
순식간에 묘해진 분위기에 절로 침이 꼴딱 넘어갔다.
‘그, 지금 분위기 뭔가…… 그건가?’
짙은 키스는 이제 어색하지 않았지만 이런 분위기까지 온 건 처음이었다.
어쩐지 묘하게 긴장되는 이 분위기가 좋아 조금 더 키스를 이어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재촉하는 의미로 슬쩍 칼리온의 등을 문질러 보았으나, 그는 더 이상 나를 건드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후…….”
방금 자기가 깨문 내 목을 조심스럽게 문지르던 칼리온은 이내 짙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내민 손을 잡자 그가 부드러이 나를 일으켰다.
……더 안 해? 여기서 끝이야?
아니, 끝까지야 안 가도 그냥 좀 만지는 것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칼리온은 얼이 빠진 나를 아주 살뜰하게도 추슬렀다.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나는 도톰한 이불에 포근하게 감싸인 채 칼리온의 무릎에 앉혀져 있었다.
“나 참……. 이렇게 꽁꽁 안 싸매도 되는데요.”
단단한 가슴팍에 편하게 기대어 뚱하게 중얼거리자 칼리온이 낮게 웃었다.
“저를 위해서라도 잠시만 이렇게 있어 주세요.”
그러더니 내 어깨에 턱을 가볍게 얹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무언가를 꾹꾹 눌러 참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게 조금만 더 하자니까…….
그러나 등을 문지르는 한 번의 유혹을 부드러이 거절당했기에 다시 하자는 소리를 하기는 조금 그랬다.
“좀 만진다고 안 닳는데…….”
대신 꿍얼거리기나 했다.
내 꿍얼거림에 칼리온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나를 조금 더 힘주어 끌어안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제 인내심이 그리 좋지가 않아서요. ……조금만 봐주세요.”
짙은 한숨에 섞인 연한 웃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결혼을 한 달여 앞두고 칼리온의 인내심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걸 알기에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나도 성인이고 칼리온도 성인인데 뭐가 어떤가 싶기도 했지만 사실 첫날밤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건 내가 더 그랬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몸에서 힘을 완전히 빼고 칼리온에게 기댔다.
어스름한 등을 켜 둔 채 몸을 맞대고 있는 것만 해도 좋긴 했다.
그것도 잠시,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불쑥 고개를 치켜들었다.
“……있죠, 칼리온.”
“네.”
“그, 우리…… 결혼하면요.”
내 입에서 조금 더듬거리면서 나온 결혼이라는 단어에 칼리온이 작게 웃었다.
“네, 결혼하면요?”
“……웃지 마요.”
“큼. 안 웃을게요.”
민망함에 눈을 흘기자 칼리온이 명이라도 받은 듯 애써 웃음을 참아 냈다.
하여튼 웃음 포인트 이상해…….
나는 나와 잘 맞다고 생각했던 칼리온의 웃음 코드에 불만을 표하며 꾸물꾸물 말을 이어 갔다.
“황제궁이랑 황후궁이랑 따로 있잖아요. ……그럼 우리도 따로 자요?”
내 질문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잔한 웃음을 흘리고 있던 칼리온이 즉답했다.
“싫습니다.”
……아니, 따로 자자는 게 아니라…….
칼리온의 굳은 얼굴만 보면 누가 보면 내가 그에게 따로 자자고 했다고 착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즉답이 마음에 쏙 들었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칼리온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저도 따로 자기 싫어요. 근데 궁이 따로 있으니까 잠은 어떡하나 싶어서 물어본 거예요.”
그제야 칼리온은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을 하더니 다정하게 입맞춤을 돌려준 후 내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보통 부부 사이가 좋으면 같이 자고, 아닌 경우에는 각자 궁에서 잡니다. 함께 자는 궁은 황제궁도 황후궁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사이가 좋으면 같이 자고 사이가 나쁘면 각방을 쓴다는 말이로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를 더 물었다.
“아하……. 그럼 어떤 궁에서 같이 자는데요?”
“황제궁과 황후궁 사이에 별궁처럼 지어진 궁이 하나 있습니다. 에메랄드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거기에서 생활하게 될 겁니다.”
에메랄드궁.
그러고 보니 선선대 황제 부부가 사용하던 궁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정략결혼으로 맺어져 서로에게 감정이 없는 황제 부부는 보통 각자에게 주어진 궁을 사용한다.
그리고 후사를 위해서 날을 잡아 황제궁이나 황후궁 중 한 곳을 정해 동침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니 따로 궁을 쓸 필요가 없지.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아 지금은 보수 공사를 하는 중인데, 아마 다음 주면 끝날 겁니다. 궁금하면 보러 갈래요?”
“네! ……근데 미리 가 봐도 되는 거예요?”
냅다 대답한 후에 슬그머니 묻는 내 웃긴 작태에 칼리온이 픽 웃으며 내 머리칼에 입을 맞추었다.
“어차피 곧 있으면 우리가 살 곳인데 뭐 어때요. 실내 장식도 그대 마음에 들게 바꿔도 괜찮아요.”
“으음……. 그럼 같이 가 보고 결정해요.”
***
봄과 여름의 중간쯤에 위치한 어느 맑고 화창한 날. 나와 칼리온의 결혼식이 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