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5)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27화(215/218)
살면서 너무 긴장이 되어 토할 것 같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으나 직접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긴장이 되는 날이야 있었지만 그냥 심장이 좀 뛰고 손에 땀이 나는 정도에 그쳤는데…….
“……메리.”
“네? 아, 잠시만요! 장갑 그거 아니고 다른 거예요!”
내 힘없는 부름에 고개를 들었던 메리가 잠시만요! 를 외치더니 저 뒤의 하녀들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들고 있던 장갑을 내려놓고 다른 장갑을 집어드는 하녀가 보였다.
내 눈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대단한 메리.’
나를 신경 쓰면서 저 뒤쪽까지 열린 시야를 가지고 있다니.
하녀들과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메리가 드디어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아가씨, 얼굴이 새하얘요……!”
“하하…….”
새된 메리의 외침에 나는 힘없이 웃었다.
조금 전까지는 너무 긴장이 되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평온해졌다.
긴장이 풀렸다는 소리가 아니라 과도한 긴장 탓에 오히려 평온해진……. 하,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나는 메리의 허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메리이……. 나 진짜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아마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메리에게 기대어 투정을 부리고 있자니 위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휴, 우리 아가씨 이제 곧 황후 폐하가 되실 텐데 뭐가 그렇게 긴장되셔요. 응?”
“그게 긴장되는 거야…….”
내 말에 앗, 하는 얼굴을 한 메리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박수를 짝 치며 물었다.
“그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어때요? 어제두 폐하랑 데이트하고 오셨잖아요.”
“으응, 그건 그런데……. 아우, 나도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어.”
어제 칼리온과 키스를 나누고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오늘 내가 이렇게 떨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내가 강심장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강심장은 개뿔. 아주 새가슴이 따로 없었다.
“정 긴장되시면 진정 효과가 있는 차라도 가져다드릴까요? 크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그거라도 부탁할게.”
“네에.”
다른 하녀에게 내가 부탁한 차를 가져다 달라고 말한 메리는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시간 뒤면 황궁에서 보낸 마차가 도착할 테니 그 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기 위해서였다.
제국의 국혼, 그러니까 황제와 황후의 결혼식은 절차가 조금 특이했다.
두 사람은 국혼을 치르기 전날부터 서로 얼굴을 봐서는 안 된다.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게 내가 지금 국혼이 치러질 황궁이 아니라 대공저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이유였다.
‘……칼리온 보고 싶다.’
어제부터 얼굴을 보지 못한 탓에 혈중 칼리온 농도가 부족……. 이게 아니고.
국혼이 치러지는 날, 황제는 커다란 창이 달린 마차를 타고 직접 황후 될 이를 데리러 간다.
당연하게도 그 행차는 제국민들에게 공개된다. 이때 마차의 화려함과 행차의 규모가 황후 될 이를 향한 황제의 애정도를 나타낸다고도 한다.
‘……좀 구린 전통이긴 한데.’
어쨌든 그렇게 황후 될 이를 데리러 가서 같은 마차에 탄 후 왔던 길 그대로 다시 황궁으로 돌아간다.
그 뒤는 뭐,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일반 결혼식이랑 비슷하고.
“하아…….”
결혼식의 순서를 상기했더니 또 심장이 마구 뛰어 댔다.
내가 황후가 된다니.
칼리온이 황제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황후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대단했다.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으응, 천천히 해…….”
나는 종종거리는 메리의 목소리에 힘없이 대꾸했다.
목욕을 끝내고 화장과 머리 손질까지 어느 정도 마친 상태였기에 시간은 넉넉했다.
그럼에도 하녀들은 긴장을 풀지 않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나야 가만히 앉아서 화장을 받거나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됐으나 다른 이들은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은 탓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게 활약하는 건 마릴린이었다.
“그건 이쪽으로 가져와! 아, 구두는 마지막 순서야. 미리 신으면 아가씨 발목 아프시니까. 잠깐만! 거기 먼지 한 번만 더 털어 내자!”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어쩐지 긴장이 조금 가시는 것도 같고…….
그때, 어린 하녀 베티가 조심조심 다가와 쟁반을 내밀었다.
“아가씨, 여기 부탁하신 차예요!”
“고마워, 베티.”
“헤헤, 뭘요! 드시기 좋게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도로 맞춰 왔으니까 바로 드셔도 돼요.”
고맙다는 짧은 말에도 기분이 좋은지 헤헤 웃으며 조잘거리는 베티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베티가 고개를 숙이고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사실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요…….”
“응, 뭔데?”
“아가씨 오늘 최고로 어여쁘세요! 지금까지 제가 봤던 사람 중에 제일요! 웨딩드레스가 너무 잘 어울리셔서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으…….”
“베티! 차 가져다드렸으면 얼른 와서 좀 도와줘!”
민망하리만치 거창한 찬사를 늘어놓던 베티는 저쪽에서 크게 불린 제 이름에 이크, 하더니 시무룩해졌다.
“해 드리고 싶은 말 되게 많은데…….”
“베티!”
칭찬은 고마웠지만 더 듣고 있기에는 심히 부끄러웠으므로 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베티를 보냈다.
울상을 지은 베티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풋.”
나도 모르게 잇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베티의 칭찬은 내게 부끄러움을 주었으나 동시에 내 긴장을 거두어 가기도 했다.
긴장이 가시자, 그제야 앞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나 진짜 결혼하는구나.’
곧 있으면 칼리온과 같이 고른 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의 손을 잡은 채 결혼 서약을 하겠지.
그 생각을 하자 급격히 칼리온이 보고 싶어졌다.
칼리온도 한창 준비 중이려나? 잠깐 통신해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아가씨, 머리단장 마무리할게요.”
“…….”
“아가씨?”
“……어?”
칼리온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내 뒤에 서 있던 마릴린이 덩달아 움찔거렸다.
“아, 잠깐 다른 생각 좀 한다고……. 뭐라고 했어?”
“머리단장 마무리하려고요. ……괜찮으세요?”
잠시 놀란 얼굴을 했다가 금세 평정을 찾은 마릴린이 선선히 대답한 후 슬그머니 물었다.
“으응, 괜찮아. 마저 부탁할게.”
칼리온 생각을 하느라 멍을 때렸다고 하기에는 내 사회적 체면이 걱정되었으므로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릴린의 눈빛이 조금 미심쩍다는 듯한 기색을 품고 있었지만 나는 꿋꿋하게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곧 남편 될 이를 생각하는 게 뭐 어떻냐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내 입으로 직접 그런 말을 하기에는 상당히 부끄러웠다.
결국 어찌저찌 시간은 흘렀다.
중간에 모른 척 칼리온에게 통신이라도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규칙을 깰 수는 없었기에 그저 생각만 하며 얌전히 자중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황궁에서 올 마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
“에리타. 황궁에서 마차 출발했대.”
노크 소리와 함께 에일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아, 금방 나갈게!”
에일런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잠시 당황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다가온 하녀들이 앉아 있느라 살짝 주름이 진 드레스 자락을 정돈했다.
원래의 자태를 찾은 드레스를 내려다본 나는 제 일을 마치고 내 뒤에 도열해 선 하녀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앞에 선 건 메리와 마릴린이었다.
“고마워, 얘들아. ……나 갈게.”
이제는 다녀올게가 아니라 갈게라고 말해야 했다.
약혼을 발표한 후 황궁에서 하루 이틀 자고 오는 날도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가는 것이었다.
내 말의 차이를 알아챈 아이들이 웃는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아가씨이…….”
“결혼 축하드려요!”
“허어엉, 저희 잊으시면 안 돼요……!”
너 나 할 것 없이 말을 쏟아 내는 하녀들 사이에서 의연한 건 나와 함께 황궁으로 갈 메리와 마릴린뿐이었다.
그 두 사람도 감정의 술렁임이 있는지 이내 울컥한 얼굴을 했지만.
“너희도 참……. 황궁 여기서 오 분 거리인 거 알지? 자주 올게.”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당연히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결혼을 해 황궁으로 간다고 해도 이곳은 언제까지나 내 집이었다. 아버지와 에일런, 테르반과 에반, 그리고 수많은 사용인들까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여기 있는데 당연히 자주 와야지.
“허엉, 아가씨이……!”
“야아, 아가씨 이제 가셔야 한다구…….”
“너무 울지 말고. 좋은 날이잖아. 그렇지?”
“……당연하죠!”
하녀들은 잔뜩 젖은 얼굴을 하고도 내 행복을 빌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