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7)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29화(217/218)
일 년 후, 여름.
이제 막 동이 터 올 무렵.
고풍스럽고 우아한 침대 위에는 하나의 이불을 덮은 두 사람이 잠들어 있었다.
제국의 중심부인 수도에서도 가장 중앙에 위치한 황궁.
그 황궁의 중앙에 지어진, 허가받지 않은 이에게는 머리카락 한 올도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고귀한 궁.
황제 부부의 침실은 고요한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휘이잉-
그때, 조금은 서늘한 새벽의 바람이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살랑이며 들어왔다.
그 바람은 널찍한 방을 탐색하듯 훑고는 방 크기에 어울릴 만큼 커다란 침대에 닿았다.
여름이라고는 해도 새벽의 공기는 제법 차가웠기에 고풍스러운 침대의 안쪽,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잠든 에리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으…….”
평소 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무방비하게 잠든 틈을 탄 새벽의 바람에는 이길 수 없었다.
작게 앓는 소리를 낸 에리타가 찌푸린 얼굴로 몸을 웅크렸다.
그 반응에 에리타를 품에 안고 자던 칼리온이 빠르게 반응했다.
“…….”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방 안을 감싼 서늘한 공기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었다.
스르륵- 하는 천이 마찰하는 소리와 얇은 줄이 당겨지는 미미한 소리가 난 후 탁- 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창문이 닫혔지만 이미 들어온 찬 바람은 여전했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마정석을 짧게 두어 번 두드린 칼리온은 단추가 두엇 풀린 셔츠를 정돈했다.
“으응…….”
그러곤 다시 자리를 잡고 누워, 이불을 조금 끌어 올리고 웅크린 걸로는 모자랐는지 계속해서 뒤척거리는 에리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러자 따끈한 온기를 느낀 에리타가 잠결에 몸을 돌렸다.
온기를 좇아 고목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제 가슴팍에 매달린 에리타를 칼리온이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은 순간, 추위에 잠기운을 빼앗긴 에리타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눈을 뜨긴 했어도 여전히 도롱도롱 잠을 단 보라색 눈동자가 칼리온과 마주치더니 어여쁘게 휘었다.
“칼리온…….”
“창문이 열려 있어서 찬 바람이 들어왔어요. 난방을 켰으니 금방 따뜻해질 거예요.”
칼리온은 웅얼거리듯이 제 이름을 부른 에리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곤 다정히 속삭였다.
그 다감한 속삭임에 에리타는 배시시 웃고 잠에서 깨기 전처럼 다시 칼리온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잠시 멈칫했다.
가벼운 침의를 걸친 몸을 꾸물거리는 모양새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잠이 안 와요?”
“잠은 오는데…….”
느릿하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잠이 여실히 묻어 있었다.
몽롱한 눈빛만 봐도 아직 잠결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시금 몸을 뒤척거리던 에리타가 말을 이으며 앓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허리 아파요…….”
그 말에 칼리온은 그제야 이유를 알겠다는 듯 한숨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잠들기 전에 조금 무리를 시키긴 했지.
“미안해요. 이따 날이 밝으면 안마사를 들이라 하겠습니다.”
약간의 미안함을 느낀 칼리온은 아프다고 칭얼거리더니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 듯 눈을 감은 에리타의 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그리 속삭였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사람을 들이거나 몸을 일으켜 일전에 안마사에게서 배운 대로 허리를 주물러 주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리하면 다시 잠이 든 에리타가 깨고 말 것이었다.
“사랑해요.”
“으응…….”
아주 나직한 속삭임에 돌아온 답은 투정 같은 앓음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품에서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답이 되었다.
품에 안은 배우자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칼리온은 그제야 다시 눈을 감았다.
***
“으…….”
커다란 창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내 눈을 괴롭혔다.
왜인지 모르게 오늘따라 더 피곤한 게 영 몸이 무거웠다.
겨우겨우 눈을 뜬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포근한 이불을 조금 더 끌어 올렸다.
“일어나기 싫다…….”
줄었던 아침잠이 다시 많아진 건 칼리온과 결혼한 후부터였다.
사실 오늘 내가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건 어젯밤을 조금…… 격하게 보낸 탓이 컸다. 다행인 건 이리저리 뒤척여 보아도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것 정도.
“하암…….”
작게 하품하며 적당히 폭신한 침대 위에서 고개만 쏙 돌려 옆을 보자 주인을 일찍 내보낸 베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손으로 더듬어 보았을 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칼리온은 아침 수련을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강철 체력이야, 강철 체력…….”
같은 걸 하고도 나는 이 모양인데 누구는 아침부터 검을 휘두르러 나갔다니.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미묘하게 서운한 기분이 불쑥 솟아올랐다.
일주일 동안 못 봤던 남편과 함께 잠들었는데 깨고 보니 혼자인 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거 아침 수련은 조금 미뤄도 되는 거 아닌가…….
아직 잠이 덜 깨 서운함이 잘 감춰지지 않아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였다.
달칵-
침실과 연결된 욕실의 문이 열리고, 아침부터 아주 성이 난 상체를 자랑하는 칼리온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슬그머니 떴다.
그는 아직 내가 깼다는 걸 모르는 모양인지 내게 등을 보이고 준비된 셔츠에 팔을 꿰었다.
그와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이런저런 짓까지 다 했으면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칼리온의 맨살을 보는 게 부끄러웠다.
게다가 내가 남긴 흔적이 가득한 등을 보는 건 더더욱.
지금은 셔츠에 가린, 크고 작은 흉터가 자리 잡은 칼리온의 등에는 죽죽 그어진 붉은 자국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따갑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한편으로 칼리온에게 내 흔적이 남아 있다는 데에서 오는 부끄러우면서도 묘한 만족감도 들었다.
‘……욕실 방음 효과가 너무 좋네.’
연결된 공간에 있었음에도 칼리온이 욕실에 있다는 걸 모를 정도니 말 다 했지.
“후…….”
그때, 칼리온이 나른한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실눈을 뜨고 ― 그건 오로지 내 생각이었다 ― 칼리온을 바라보던 나와 그의 시선이 맞닿은 건 당연한 순서였다.
“……에리타.”
잠시 멈칫했던 칼리온이 옅은 웃음을 머금고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그를 야속하다고 생각하던 나였지만 침대에 걸터앉아 내 이마에 짧게 키스를 남기는 칼리온을 보니 속절없이 웃음이 샜다.
“잘 잤어요?”
“네……. 처음에 일어났을 때는 조금 피곤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말과는 달리 몸은 여전히 포근한 침대에 파묻혀 있었지만.
그런 내 말에 나직하게 웃은 칼리온이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허리는 좀 어때요.”
“음, 허리도 괜찮아요.”
분명히 새벽에는 허리가 조금 뻐근해서 깼던 것도 같은데 자고 일어나니 그 뻐근함은 사라진 상태였다.
역시 잠은 만병통치약…….
“다행이네요. 마사지가 효과가 있나었나 봅니다.”
……마사지?
나는 의아함에 눈을 깜빡였다.
자는 동안 아무런 느낌도 안 들었는데…….
이제 칼리온이 움직이는 걸로는 깨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드나드는데도 깨지 않을 정도로 무딘 건 아니었다.
어제 좀 무리를 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정신없이 자진 않았을 텐데…….
곰곰이 생각하느라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도 모르던 내 코를 칼리온이 톡 건드렸다.
“제가 했습니다. 다른 이가 들어오면 그대가 깰 것 같아서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픽 웃은 칼리온이 내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언제……. 그럼, 설마?
“오늘은 아침 수련 안 했어요?”
“네. 그대를 두고 혼자 나가기는 싫어서요. 음, 결국 혼자 눈을 뜨게 만들었지만요.”
내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칼리온이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곤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히려 미안한 건 난데.
나는 이토록 다정한 남편을 두고 야속하다고 툴툴거렸던 몇 분 전의 나를 질책하며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칼리온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저는 폐하께서 아침 수련 하러 나가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조금 서운하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해요. 그의 단단한 배에 얼굴을 묻고 꿍얼거리듯 사과했다.
그런 내 사과에 칼리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끌어안은 허리가 잔잔하게 떨렸다.
조금 더 웃던 칼리온은 느릿하게 내 머리칼을 매만지며 물었다.
“우리 오늘 데이트할까요? 날이 좋아서 호숫가에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좋아요!”
칼리온의 제안은 포근함에 잠겨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만큼 좋았다.
그러나 힘차게 대답한 직후 칼리온이 어제까지 일주일간 황궁을 비웠던 이유가 생각났다.
“오늘 자리 비워도 괜찮으신 거예요? 어제 막 시찰 끝나서 바쁘실 텐데…….”
솔직히 말하면 칼리온과 데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우세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제국의 황제였다.
한마디로 아주 바쁘다는 뜻이었다.
조금쯤 침울해진 내가 울상을 짓자 옅게 웃은 칼리온이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오늘부터 이틀간 휴가거든요.”
……휴가?
나는 생각도 못 했던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