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30화(完)(218/218)
그동안 틈틈이 데이트를 하고 둘만의 시간도 즐기긴 했지만 아예 휴가라고 이름 붙은 휴식은 없었는데.
“갑자기 웬 휴가예요?”
“원래 잡아 두었던 시찰 일정보다 시찰이 하루 빠르게 끝나서요. 나머지 하루는 제 재량으로 빼냈고요.”
아, 어제 칼리온이 돌아온 걸 보고는 일정보다 더 빨리 왔다며 좋아했었지.
“……그럼 이틀 동안 아예 일이 없으신 거예요?”
“저는 그렇죠. 그대는 시간 괜찮아요?”
어우, 당연한 말씀을.
나 역시 황후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신경 쓸 게 생겼다지만 칼리온에 비하면 약과였다.
“저는 연락 하나만 하면 돼요.”
나는 실실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칼리온의 어깨에 폭 기댔다.
“……히.”
그러나 참으려 한 게 무색하게도 결국 잇새로 웃음이 샜다.
“올해가 지나면 조금 더 한가해질 겁니다. 시간을 잘 내지 못해 미안해요.”
칼리온은 좋아서 실실 웃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건 정말이지 칼리온이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쏙 치켜들고 새침하게 말했다.
“자기 잘못 아닌 거에 미안해요 금지.”
“……에리타.”
“흐음, 오늘 데이트 가려면 저도 이제 슬슬 일어나서 준비해야겠어요.”
단호하게 사과를 거절하고 꿈질꿈질 이불을 밀어내는 나를 보는 칼리온의 얼굴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했다.
그도 잠시, 내 이마에 입을 맞춘 칼리온이 상체를 살짝 기울였다. 안기라는 뜻이었다.
“욕실까지 데려다줄게요. 침대랑 땅은 다르니까 허리가 아플 수도 있어요.”
“……그 정도는 아닌데.”
나는 잠시 튕겼으나 금세 실없이 웃으며 팔을 뻗어 칼리온의 어깨를 감쌌다.
그러자 그는 마치 가벼운 인형을 들어 올리듯이 나를 품에 안고 몸을 일으켰다.
이런저런 의미로 함께 밤을 보내고 난 아침이면 칼리온은 종종 나를 안아 들고 수발을 들었다.
처음에는 민망하기 짝이 없어 한사코 거절했으나 부득불 혼자 일어서다가 다리에서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은 후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안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 다리가 이 모양이 된 데에는 칼리온의 절륜함이 한몫했으니 말이다.
평균보다 월등한 데다가 체력까지 끝내주는 바람에 우리의 긴긴밤은 대개 내 울먹임으로 끝나고는 했다.
물론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과하게 좋아서였다.
욕실 문을 열기 위해 칼리온이 손을 들자 셔츠에 감싸인 그의 어깨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지금은 천 아래에 숨어 있는 어깨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고 있었다.
“……아침부터 유혹하는 겁니까?”
괜히 장난기가 솟아 칼리온의 어깨를 앙, 물었다가 혹시나 아플까 싶어 그 위로 쪽쪽 입을 맞추자 살짝 낮아진 칼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과 밤의 경계선에 있지만 아직은 낮에 조금 더 가까운 목소리였다.
“으응, 그냥 장난? 지금 하면 데이트 못 한다구요.”
그 반응에 나는 샐쭉하게 웃으며 칼리온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내려 달라는 뜻이었다.
나를 단단히 안은 칼리온은 짙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조심스레 나를 내려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뻐근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고마워요, 칼리온.”
나는 발꿈치를 들어 칼리온의 볼에 쪽 입을 맞추고 후다닥 떨어져 손을 흔들었다.
“……하아.”
갑작스러운 뽀뽀에 눈을 깜빡이던 칼리온이 다시금 짙은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러더니 이내 픽 웃으며 고개를 숙여 내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말캉하고 뜨거운 입술은 그저 가만히 대어져만 있었다. 그럼에도 어젯밤 뜨거웠던 감각이 되살아나 절로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숨이 섞이지 않는 키스는 금세 끝이 났다. 묘한 아쉬움이 남았다.
“칼리온…….”
“장난의 대가는 이걸로 받을게요. 조심히 씻고 나와요.”
마지막으로 내 이마에 입을 맞춘 칼리온이 나른하게 속삭이고는 욕실을 빠져나갔다.
부그르르-
나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칼리온이 내 머리를 조심히 빗겨 주며 물었다.
이틀간의 휴가. 다른 말로는 이틀 동안 할 수 있는 칼리온과의 데이트.
한나절도 하루도 아닌 이틀이라는 기간이 제법 길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으음……. 아예 황궁 밖으로 나가도 괜찮은 거예요?”
“휴가니까요. 통신만 되면 어딜 가도 괜찮습니다.”
그는 집중한 얼굴로 내 머리를 살살 빗어 내리다가 거울을 통해 나와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너무 고민돼요! 어디 가지?”
조금 더 고민을 하던 내가 울상을 짓자 칼리온이 작게 웃었다. 나를 귀여워하는 듯한 눈빛은 덤이었다.
“천천히 생각해요.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아니, 평소에는 가고 싶은 곳이 그렇게 많았는데 막상 생각하려니까 떠오르는 곳이 없어요…….”
“그럼 특정한 장소 말고 보고 싶거나 즐기고 싶은 환경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즐기고 싶은 환경?
“흠…….”
나는 부드러운 칼리온의 손길을 만끽하며 휴가 장소를 물색했다.
‘어디가 좋을까…….’
어차피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면 되니 바다가 있는 제국 남부나 아예 다른 나라로 가도 문제없었다.
내가 열심히 고민하는 동안 칼리온은 정성이 담뿍 담긴 손길로 내 머리를 빗어 내렸다.
그는 다른 건 전부 시녀들에게 맡겨도 내 머리를 말리고 빗겨 주는 것만은 양보하지 않았다.
처음 내 머리 손질에 도전했을 당시 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희생해야 했던 서투른 손길은 시녀들에게 몇 번 배우는가 싶더니 금세 수준급으로 변했다.
이제는 얼추 모양을 잡아 땋거나 묶을 줄도 알았다.
이런 데에도 재능이 있을 건 뭐람.
“에리타.”
“으응?”
“머리 제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네에, 그럼요. ……대신 이상한 건 금지.”
휘적휘적 대답하다가 며칠 전 그가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를 시도하려 했던 것을 기억해 내 급히 덧붙였다.
그러자 칼리온도 같은 날을 떠올린 모양인지 낮게 웃었다.
“그대는 뭘 해도 예뻐요.”
그 달콤한 말은 매우 듣기 좋았지만 내게는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존재했다.
“객관적으로 부탁할게요.”
새침하게 대꾸하자 감미로운 웃음이 다시금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잠시 새치름히 있던 나 역시 칼리온과 거울을 통해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솜씨 좋은 반묶음 머리가 완성되었을 때, 우리의 휴가이자 데이트 장소는 제국 남부의 한적한 바닷가로 정해졌다.
“바다가 보고 싶어요?”
“네. 여름의 상징은 바다잖아요!”
“음, 그렇죠. 여름에는 바다에 가야지.”
내 장단 맞추기 선수권 대회 우승자 칼리온의 맞장구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긴 뭘 그래. 땅덩어리 넓은 여기에는 그런 말 없는데.
그러나 내 말이면 우선 맞다는 소리부터 하고 보는 칼리온이 매우 사랑스러웠기에 나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날렸다.
그러자 칼리온의 얼굴에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 서렸다.
“방금 제가 잘한 모양이군요.”
“흐흥, 폐하는 늘 잘하시죠.”
“오늘따라 칭찬이 후한데요?”
그야 기분이 좋으니까 그렇지.
아침부터 정성스레 마사지를 해 주고 ― 원인이 그이긴 했지만 ― 떡하니 휴가까지 가져온 남편이 예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싫어요?”
“그럴 리가요.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는데.”
***
“와……!”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온 곳은 제국 남부에 위치한 리델 지방에 있는 황실 소유의 별장이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내 말에 바다가 맑고 예쁘다며 칼리온이 추천했는데, 도착하고 보니 말로 설명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제국 최남단의 한적한 바닷가 지방에는 간혹 보이는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름을 맞아 푸르른 잔디와 나무, 그리고 고운 색의 모래가 가득 펼쳐진 모래사장. 저 멀리서 넘실대는 에메랄드빛 바다.
“진짜 너무 예뻐요…….”
“마음에 들어요?”
“엄청요!”
마음 같아서는 이틀이 아니라 한 달은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너른 해변을 보다가 슬그머니 해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흐음?”
칼리온은 내가 살살 잡아끄는 대로 걸어오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애써 피하며 걸음을 강행하다가 칼리온이 맞잡은 손으로 내 손등을 톡톡 두드린 후에야 멈춰 서 조르듯 말했다.
“발 한 번만 담그고 들어가면 안 돼요?”
“한 번이라고 약속할 수 있어요?”
“……그럼 십 분만.”
한 번이라는 명확한 숫자에서 십 분이라는 시간으로 말을 바꾼 나는 그의 팔을 흔들었다.
원래 계획은 식사부터 하고 바다에 나가는 거였지만, 저 예쁜 바다를 어떻게 그냥 지나쳐?
“진짜 한 번…… 아니, 십 분만 놀다 가면 식사도 더 맛있게 느껴질 것 같아요. 응? 칼리오온.”
제 식사보다도 내 식사를 더 챙기는 칼리온의 얼굴이 강경해 냅다 어리광을 부렸다.
어른스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지만 어차피 보는 사람이라고는 칼리온이 전부인데 뭐 어떠랴.
결국 칼리온은 내 어리광에 작게 웃으며 져 주었다.
“그럼 딱 십 분만 있다가 가요.”
“그럴게요!”
칼리온의 대답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바다에 들어가기에는 옷차림도 부적절했으니 가볍게 발만 담그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맞잡은 손을 흔들며 바다에 가까워졌을 때, 칼리온이 물어 왔다.
“샌들 벗고 걸을래요?”
샌들을 벗고……?
아주 솔깃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돼요?”
“이 해변에는 위험한 게 없으니 벗어도 괜찮습니다.”
칼리온의 말에 새하얀 모래사장을 잠시 바라본 나는 두말하지 않고 샌들을 벗어 손에 쥐었다.
보기만 해도 사르르 소리가 날 것 같은 모래의 유혹은 거부하기 어려웠고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맞잡은 손 반대 손에 각자 샌들을 들고는 천천히 새하얀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느낌이 뭔가 요상해요.”
“이 부근의 모래는 유난히 더 곱다고 하더군요.”
발을 디딜 때마다 발등을 덮었다가 사르르 떨어지는 모래는 확실히 칼리온의 말대로 입자가 고왔다.
조금 더 그 모래의 감촉을 만끽하던 나는 슬그머니 칼리온을 바다 쪽으로 이끌었다.
쏴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가 물러나는 파도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본래 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모습을 보자 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때 칼리온이 잡은 내 손을 살짝 흔들며 점잖게 조금 전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발만 담그기로 약속했어요.”
“……내가 애도 아니구.”
말은 투덜거렸지만 내심 찔린 나는 이내 헤헤 웃으며 칼리온의 팔에 기대었다.
발목 부근에서 찰랑이는 바닷물은 깨끗하고 차가웠다.
태양 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바다와 아무도 우리를 의식하지 않는 한적하고 자유로운 공간.
“칼리온.”
“예, 에리타.”
“우리 다음에도 같이 여기 와요.”
“그럴까요.”
그의 귓가에 속삭이자 간지러운 모양인지 낮게 웃은 칼리온이 덩달아 속삭이듯 대답해 왔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그대의 사랑이 제 삶의 가장 큰 선물인데 모를 리가요.”
달콤하디달콤한 사랑의 언어였다.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