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3화(3/218)
로브 속에 감춰진 얼굴이지만 어쩐지 섬뜩한 느낌에 원장은 흠칫 몸을 떨었다.
“데리고 오게.”
“예, 예?”
멍청하게 되묻는 원장에 아슬란이 성가시단 표정을 지었다.
“원한다면 데리고 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렇습니다.”
“그래. 다행히 귀가 먹은 건 아닌 모양이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장은 얼른 옆에 있던 아이를 다락으로 올려 보냈다.
그러자 다락 창문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던 아이가 급하게 모습을 감췄다.
“얼른 집으로 가자꾸나.”
에리타가 있을 다락을 향한, 로브 안에 감춰진 아슬란의 눈이 다정히 휘었다.
***
“데리고 오게.”
로브를 입은 남자를 바라보던 나는 멀리서 들려온 말에 멍청하게 눈을 깜빡였다.
멍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한 아이가 건물 안으로 뛰어오는 것을 보고 후다닥 창문에서 떨어졌다.
“……데리고 오라고 했어.”
남자의 말을 곱씹어 보았지만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왜 데리고 오라고 했을까.
분명히 남자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말했다.
……내 머리를 보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어.
이 세계에 떨어진 뒤 나를 보고 표정을 찌푸리지 않는 사람은 저 남자가 처음이었다.
느릿하게 생각을 마치자 미약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쿵쿵 뛰어 대기 시작했다.
지금껏 다락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저를 발견한 사람들은 모두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나도 조금만 더 멀쩡한 옷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을 텐데.”
모두 낡고 허름한 옷들뿐인 것이 오늘따라 유독 아쉬웠다.
똑똑
나는 기다리던 소리에 후다닥 뛰어가 문을 열었다.
“원장님이 너 데리고 오래.”
“응, 알았어.”
찡그린 표정의 아이의 뒤를 따라 원장실로 향하는 길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너 혼자 들어오랬어.”
원장실 앞에 도착하자 나를 데리고 왔던 아이는 친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떠났다.
들어가기 전, 아쉬운 대로 구겨진 치마를 쭉쭉 잡아당기고 혹시 청소를 하다 먼지가 묻었을까 싶어 머리를 톡톡 털어 냈다.
똑똑, 문을 두드린 나는 작게 이름을 말했다.
“원장님, 저 리타예요.”
“얼른 들어오렴.”
평소라면 호통부터 들려왔을 텐데, 오늘은 손님이 있어서 그런지 상냥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파에 앉은 원장과 맞은편에 앉은 남자들이 보였다.
귀족에게 갖추는 예는 알지 못해 그냥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리타, 얼른 이리 와서 앉으렴.”
내가 눈을 뜨고 나서 처음으로 원장에게 불린 내 이름.
귀족 손님 앞이라고 달라진 호칭이 우스웠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소파를 향해 다가갔다.
낮은 테이블 앞에 서서 조심스레 남자들을 바라보던 나는 푸른 머리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꼬마 아가씨. 저는 페른이랍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내게 파란 머리의 남자가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아, 그, 저는 리타예요…….”
서글서글한 눈꼬리가 휘어진 모습이 상당한 미남이라 나도 모르게 잠시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머리 위에서 들려온 낮은 웃음소리 때문이었다.
슬그머니 위를 바라보자 로브 아래로 유일하게 드러난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하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의 얼굴이 상당히 미형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내 머리 위로 부드러운 질문이 떨어졌다.
“아가씨, 평소에 뭘 하고 지내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 보통 식사 준비나 청소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그냥 다락방에 올라가 있어요.”
저를 페른이라 소개한 남자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나는 원장의 눈치를 힐끗 보고 대답했다.
거짓으로 말할 수도 있었지만, 구태여 좋게 말해 원장의 편을 들고 싶지 않았다.
“식사 준비는 혼자 하나요?”
음, 몇 달 전에는 가끔 도와주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입양된 후로는 쭉 혼자 준비했다.
“……네.”
“……모자라서 준비까지 시킨다고.”
그런 내 말에 로브 쓴 남자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다.
“그럼 그때 다른 아이들은…….”
“아침에는 자고 있고, 점심이랑 저녁에는 그냥 놀아요.”
말을 마친 나는 원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야차 같은 표정에 흠칫 몸을 떨었다.
‘어차피 사실인데.’
원장의 표정은 마치 네가 감히 나를 모함해?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험악한 원장의 얼굴을 외면하며 고개를 푹 숙이자 로브 쓴 남자가 내 이름을 부드럽게 불러 왔다.
“리타.”
“네?”
낮은 저음으로 불리는 내 이름이 어딘가 애틋했다.
고아원에서는 거의 불릴 일이 없는 이름이라 그런지 뭔가 간지러운 느낌도 들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하자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켜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당황한 내 동공이 이리저리 떨렸다.
그런 나를 보고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띤 남자가 내게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가겠느냐?”
어쩌면 불린 순간부터 가졌던 기대감.
매일같이 신께 빌었던, 아주 오래전부터 바라 왔던 내 소원.
이곳에서 다시 아이가 된 걸 알았을 때부터 더 간절히 바라 왔던 가족의 존재.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요?”
“그래.”
“저는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고…… 저주받은, 검은 머리인데도요?”
“리타, 그런 건 아무런 상관 없다. 내게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말이다.”
남자의 말은 내가 이곳에서 받아 본 말 중에 가장 따뜻했다.
그런 남자가 내민 커다란 손을,
“리타, 나와 함께 가 주겠느냐?”
“……네.”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
한편, 그런 에리타와 남자를 바라보는 원장의 눈에 당황이 서렸다.
저 모자란 것을 데려오라는 말에 설마 했건만. 정말 데리고 갈 요량인가?
멍청한 것이 쪼르르 일러바치는 통에 제 이미지가 나빠진 것으로도 모자라 입양까지 한다고?
왜 하필 저 애를!
원장은 끓어오르는 속을 꾹 누르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어, 백작님?”
꼭 붙든 에리타의 손을 따뜻하게 내려다보던 남자가 원장의 말에 고개를 슥 돌렸다.
“그 아이를 진정 데려가실 생각이신지…….”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으앗! 당황한 듯 소리를 지르는 에리타의 작은 몸을 가볍게 안아 든 남자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런 와중에도 놀란 에리타의 등을 토닥여 주는 행동은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남자의 반응에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한 원장은 영업용 미소를 띠었다
골칫덩이를 치워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귀족가에 입양되는 것이 원장으로서는 더 바라는 일이었다.
‘딴에 손재주 좋은 저게 없어지면 좀 아쉽기도 하고…….’
고약한 속내를 숨긴 원장이 호호,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빠른 결정이 아니신가 싶어서요. 다른 예쁜 아이들도 많은데…….”
저를 바라보는 뾰족한 시선에 흠칫, 에리타가 몸을 떨었다.
“쉬이, 괜찮다.”
남자는 에리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다정하게 달랬다.
그 모습에 입술을 짓씹은 원장이 다시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백작님, 그러지 마시고 유난히 사랑스러운 아이가 하나 있는데, 한번 보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으실 거예요.”
속이 뻔하게 보이는 원장의 말에 페른의 미간이 살풋 구겨졌다.
‘어디든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머저리들이 많군.’
서글서글한 외모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페른의 성격은 그다지 좋은 편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특히나 원장 같은 부류를, 페른은 몹시 싫어했다.
오늘 고아원에 오기 전 제 주군에게서 들은 말을 떠올린 페른이 상냥한 미소를 띠었다.
“하하, 그렇죠. 다른 예쁜 아이들도 많더라구요.”
제 말에 동의하는 페른을 본 원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데 원장님.”
“네?”
“다른 아이들의 옷은 새 옷이던데…… 왜 꼬마 아가씨의 옷은 이런 누더긴가요?”
하지만 뒤이어 웃으며 던진 말에 원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배척당한다고는 하나 신전에서 보살피는 고아원의 아이들이 차별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그건……! 지금 저희 고아원 사정이 어려워서……. 아이들 전부에게 새 옷을 사 줄 형편이 되지 못한답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원장의 차림새부터 원장실에 있는 가구까지 뭐 하나 싸구려인 것이 없었다.
그 같잖은 말에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형편이 어렵다…….”
“정, 정말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게 얼마나 슬픈지…….”
슬픈 척 눈물을 찍어 내는 모습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겠지. 후원금을 죄다 빼돌리니 아이들에게 밥이나 제대로 먹일 수 있겠나.”
아무런 말이 없는 백작과 페른의 모습에 안심하려던 원장은 귓가에 박힌 말에 뻣뻣하게 굳었다.
“신전에서 나온 보조금을 횡령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귀족들에게 들어온 후원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웠다고 나와 있네요.”
품 안에서 꺼낸 종이를 툭툭 친 페른이 짙게 웃었다.
그 종이에는 지금껏 원장이 빼돌렸던 보조금과 후원금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페른, 이런 경우에 처벌이 어떻게 되지?”
낮게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원장의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이게, 이게 무슨…….
“흐음, 신전의 보조금과 아이들을 위한 후원금을 빼돌렸으니…….”
말을 잠시 멈춘 페른이 덜덜 떨고 있는 원장을 흘깃 쳐다보았다.
“뭐, 적어도 원장 자격 박탈에 재산 몰수 후 추방 정도가 되겠네요.”
“그, 그런……!”
“물론 최소로 잡았을 때 말입니다.”
귓가에 선명히 들려온 페른의 말에 다리에서 힘이 풀린 원장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다고 하는군.”
“아, 아무리 백작님이라고 해도 그럴 수는……!”
애써 부질없는 말을 외쳤으나 이제 끝이라는 사실은 원장 역시 알 수 있었다.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는 백작님께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을 일그러뜨린 원장이 소리쳤다.
물론 횡령이 법에 어긋나긴 하지만 이 정도는 눈감아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도대체 제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꼴을 당한단 말인가!
“그럼 이 아이는 무슨 잘못이 있었나?”
품에 안은 에리타를 내려다본 남자가 원장을 향해 물었다.
그 말에 에리타를 노려보듯 쳐다본 원장이 발악하듯 답했다.
“고작 저년 때문에……!”
챙
그 순간, 페른이 눈 깜빡일 새에 검을 뽑아 들어 원장의 목을 겨누었다.
“말, 조심하시죠. 그쪽보다 고귀한 신분이 되실 분이니.”
새파랗게 번뜩이는 칼날 앞에서 입만 벙긋거리는 원장을 두고 남자가 등을 돌렸다.
“페른.”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에리타의 귀를 감싸고 원장실을 나섰다.
그런 주군의 뒷모습을 바라본 페른이 원장의 목에 겨누었던 칼을 꾹 눌렀다가 거뒀다.
“다행인 줄 아십시오. 아가씨의 앞이 아니었다면 주군께서 나서셨을 것입니다.”
“…….”
“당신은 감옥에 가는 게 나은 인생을 살게 될 겁니다.”
아까의 유했던 태도는 없었던 양 싸늘하게 변한 페른이 낮게 읊조렸다.
저주와도 같은 말에 멍해진 원장을 뒤로하고 방을 나선 그가 대기하던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금세 팔이 포박된 원장이 질질 끌려 나왔다.
“끌고 가게.”
“아아악! 이거 놔! 이거……!”
무감한 눈빛으로 명령한 페른은 제 주군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뒤에서 들려오던 비명은 금세 사라졌다.
***
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원장실을 나섰다.
따뜻한 품이 어색해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있자 남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챙겨 올 것이 있니?”
그 말에 잠시 고민을 해 보았지만 다락방에 있던 것들이 떠올라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갈래요.”
다락에는 낡은 옷과 다 해진 담요밖에 없었다.
내 대답에 남자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꾸나. 집에 가면 필요한 건 다 있을 테니 괜찮다.”
뒤이어 나온 말은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집…….”
나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단조로운 고아원 건물이 보였다.
기억하는 것은 1년이지만 본래는 6년을 넘게 살았을 곳.
단순히 사는 곳을 집이라 한다면 지금껏 이곳이 내 집이었을 테지.
하지만 눈을 뜬 순간부터 받아 온 멸시와 괴롭힘이 몸과 마음에 선명했다.
집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끔찍했던 공간이었다.
“집으로…….”
그런 제게도 드디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그래. 집으로 가는 거란다.”
귓가에 내려앉은 그 온기를 담은 목소리에, 꼭꼭 눌러 두었던 눈물이 소리 없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