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30화(30/218)
“에리타는 푸른색이 잘 어울린다.”
“아버지, 뭘 모르시는군요. 보라색입니다.”
“두 분 다 진정하시지요. 아가씨께는 분홍색이 최곱니다.”
나는 흐린 눈으로 세 남자의 열띤 토론을 바라보았다.
‘고작 옷 색이 뭐라고 이렇게 진지한 건데…….’
게다가 그 주제는 내 드레스였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같이 이야기를 했었다.
아무래도 내 데뷔탕트 무도회에 관련된 부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저 세 명이 나보다 더 진지해진 뒤로는 얌전히 차나 마시면서 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중이었다.
아까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건졌거든.
그래도 한 번 더 말해 볼까?
“저기, 저는 적당한 걸로 골라도…….”
나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안 된다.”
“안 돼.”
“안 됩니다.”
내 말은 물론 단칼에 잘려 나갔다. 이쯤 되자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내 건데? 내 드레슨데!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로 하려고 그러세요.”
나는 불퉁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가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내 동생이야 뭘 입어도 예쁘겠지만…… 욕심이 나서.”
옆에서 페른도 아버지와 에일런의 말에 동조했다.
아까는 서로가 틀렸다더니. 이번에는 아주 일심동체가 따로 없다.
“……저는 그런 거창한 거 필요 없는데요.”
나를 위해서라는 건 알지만 왜인지 불퉁해지는 기분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튀고 싶은 마음도 없단 말이야.’
애초에 수도까지 온 이유도 원작 때문인데.
한 번뿐인 데뷔탕트 연회라지만 내 계획보다 중요하진 않다고.
결국 나는 세 사람이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재단사와 보석상이 오는 건 내일이니까.
“아가씨! 얘기는 잘 끝내고 오셨어요?”
내 방으로 들어서자 마침 메리가 침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메리이…….”
나는 비척비척 걸어가 소파에 늘어지듯 앉았다.
그러자 메리가 보들보들한 담요를 척 둘러 주었다.
“신나서 가시더니 왜 녹초가 돼서 오셨어요.”
“아니, 메리, 내 말 좀 들어 봐.”
나는 메리에게 아까의 일을 고자질하듯 털어놓았다.
“세 분이 아가씨를 너무 아끼셔서 그런가 봐요.”
내 투정에 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토닥였다.
“뭐, 그렇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할 일도 없는 김에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네? 어디를요!”
“광장에 다녀올래. 마법으로 변장하고 가면 돼.”
잠시 말끝을 흐리던 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차피 점심도 먹었고, 오늘은 수업도 없어서 온종일 자유란 말이지.
에일런과 나갔다 온 것도 벌써 사흘 전이니까.
“메리! 나 옷 좀 찾아 줄래?”
내 옷장에는 화려한 드레스 말고도 가끔 있는 외출을 위한 수수한 원피스가 여럿 있었다.
몰래 나가는데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나가는 건 말도 안 되지.
“정말 나가시려구요? 주인님이 찾으실지도 모르는데…….”
메리가 걱정스레 말했다.
“괜찮아. 저녁 먹기 전까지는 들어올게!”
“아가씨이…….”
“에이, 괜찮다니까. 혹시 나 찾으면 연구실에 갔다고 해 줘.”
메리가 울상이 된 얼굴로 나를 말려 보았지만 내 마음은 변함없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돈주머니를 챙겼다.
“정말……. 저녁 식사 전까지는 꼭 들어오셔야 해요. 모르는 사람은 조심하시구요.”
결국 메리는 이런저런 걱정을 늘어놓으면서도 내 옷을 가져왔다.
말려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탓이다.
사실 내가 몰래 외출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북부에서도 종종 나가곤 했으니까.
‘마법으로 머리색만 바꾸면 감쪽같거든.’
역시 마법은 최고야.
“오늘은 이걸로 입으실래요?”
“응. 머리는 적당히 묶고 갈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그 위에 로브까지 뒤집어썼다.
수도의 겨울은 적당히 서늘한 날씨라 이것저것 껴입을 필요가 없어서 좋다니까.
북부였다면 적어도 삼월까지는 계속 눈이 올걸.
손가락을 튕기자 머리 윗부분부터 차근히 밀짚색으로 물들어 갔다.
“메리,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오셔야 해요.”
“응!”
메리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나는 곧바로 순간 이동 마법을 썼다.
‘쓸 줄 아는 건 써 줘야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자, 앞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자 저택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저택 자체가 황궁에서 가까운 터라 번화가와도 그리 멀지 않았다.
“안 걸리고 나오기 성공.”
만족스럽게 후후 웃은 나는 신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큰길을 따라 얼마쯤 부지런히 걸었을까.
“정말 얼마 안 걸리네.”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번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몰래 나와서 그런가 묘하게 더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돈도 챙겼고…… 어디부터 가 보지?”
일단 군것질부터 하러 갈까.
제국에서 가장 번창한 황도인데, 아무렴 북부보다는 볼 게 많지 않겠어?
***
나는 본격적으로 수도 탐방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배를 채우기로 했다.
점심을 먹긴 했지만 군것질은 또 다른 얘기지.
마침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노점들이 여럿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이건 뭐예요?”
그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새빨간 꼬치였다.
“어머, 예쁜 아가씨네. 이건 양고기에 매콤한 양념을 바른 건데, 한번 먹어 볼래요? 매운 거 좋아하면 후회 안 할 거예요.”
아주머니의 말마따나 매콤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럼 이 꼬치 하나랑 오렌지주스 하나 주세요.”
“그래요. 둘이 합쳐서 30페니만 줘요.”
“여기요!”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건넸다.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아주 맛깔나게 구워 줄게.”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평민들이었지만 간간이 귀족 같은 행색을 한 이들도 보였다.
“자, 다 됐다. 아가씨, 맛있게 먹어요.”
“감사합니다!”
옆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한 입 먹자 매운맛이 훅 올라왔다.
“와. 엄청 맛있네?”
순식간에 꼬치 하나가 사라졌다.
하나 더 시킬까?
……이따 저녁에 운동하면 되겠지.
‘맛있게 먹으면 영 칼로리야.’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추가로 하나를 더 주문했다.
‘어차피 연회 일주일 전부터는 디저트도 못 먹을 테니까.’
꼬치 하나를 더 먹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꼬치로 배를 채운 나는 우선 서점에 먼저 가기로 했다.
흑마법에 대한 단서는 모아도 모아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니까 단서는 최대한 많은 게 좋겠지.’
북부에서 가지고 온 고서에서는 결국 건진 게 없었다. 전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뿐이었다.
나는 일부러 큰 서점을 지나쳐 허름해 보이는 헌책방에 들어섰다.
주인인 것 같은 노인은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러면 도둑이 들어도 모르겠네. 훔쳐 갈 게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잠시 둘러보겠습니다…….”
책장 사이로 걸음을 옮기자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 먼지.”
가느다란 햇빛 몇 줄기가 뿌옇게 올라온 먼지를 비추었다.
나는 눈을 찡그리고 책을 살펴보는 데에 집중했다.
“나름대로 정리는 돼 있네.”
먼지가 잔뜩 쌓인 공간과 달리 책들은 의외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여기서 무언가를 건질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는 없었다.
본디 흑마법은 삼백 년 전 제국에서 금지한 학문이었으니까.
그때 흑마법에 대한 정보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저택에서도 내가 흑마법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은 페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다.
아버지와 에일런조차도 말이다.
“……여기는 없나.”
마법책이 모인 곳을 꼼꼼히 훑어보던 나는 뻐근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안타깝게도 여기서는 건질 게 없는 듯했다.
“으앗!”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서점을 나서려던 내 발에 책 더미가 채였다.
마찬가지로 마법에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보고 가기로 마음먹은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았다.
“이론서인가 보네.”
한 권 한 권 펼쳐 보자 이론에 관련된 말들이 가득했다.
“……찾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집어 든 책에서 나는 원하던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고어로 적힌 책.
앞뒤 표지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글씨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담담하게 시작된 서두.
[흑마법의 대가는 술자 자신의 영혼이다. 하지만 망할 흑마법사들은 기어코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고 말았다. 끔찍하고도 악랄한 방법을 말이다.]“방법…….”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나는 그 방법이 뭔지 알고 있었다.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기자 역시나 내가 알고 있던 그 방법이 서술되어 있었다.
[어린아이의 영혼을 대신 제물로 바치는 것. 그중 가장 효과가 좋은 건 태어난 지 백 일이 넘지 않은 아이를 산 채로 바치는 것이다. 그리하면 영혼의 계약을 맺지 않고도 힘을 얻을 수 있다.]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들은 무슨 죄야.’
게다가 여기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제물을 바치는 건 술자의 영혼을 담보로 계약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힘을 잃어버리고 말지.’
결과적으로 흑마법이 금지 학문이 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힘에 미친 흑마법사들이 아이들을 납치하여 제물로 바쳤던 일.
그로 인해 희생당한 아이들의 수가 자그마치 십만 명에 달했다. 공식적인 숫자가 그랬으니 암암리에 희생된 아이들은 더 많았겠지.
하지만 대대적인 색출 끝에도 흑마법사들을 전부 없앨 수는 없었다.
‘이 방법으로 힘을 얻은 자들은 평범한 사람과 구분이 안 되니까.’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만약 황후가 정말 흑마법을 이용한 거라면 분명히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이리라.
나는 책을 한 장 더 넘겼다.
사락 하는 소리와 함께 페이지가 넘어가고.
“……!”
나는 터져 나오는 환호를 참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야 했다.
혹시나 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기도 했지만 책에 써진 글귀는 여전했다.
[내가 오늘 남기고자 하는 기록은 이것이다. 이렇게 힘을 얻은 자들을 구분하는 방법.]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