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5)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35화(35/218)
하얀 바탕에 짙푸른 색의 리본으로 포장한 내 선물.
내가 상자를 살짝 움직이자 아버지와 에일런의 시선이 함께 내 손을 따라 움직였다.
상당히 뻘쭘한데 나름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빨간 루비 같은 시선을 보자 내 선물을 받을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기대되었다.
“아버지.”
“어, 어. 그래.”
내가 아버지를 부르자 답지 않게 말을 더듬은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금세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생신 축하드려요.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
나는 살풋 웃으며 커다란 상자와 작은 상자를 아버지에게 건넸다.
“……고맙구나. 매년 번거롭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거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내 선물을 받으시면 몇 년이고 애지중지하는 아버지를 알고 있다.
‘아버지도 참 츤데레 같은 구석이 있으시다니까.’
속으로 후후 웃은 나는 커다란 상자를 가리켰다.
작은 건 메인이니까.
“일단 커다란 거부터 열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러마.”
사락사락-
아버지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리본을 풀어냈다.
“……셔츠구나.”
뚜껑을 열자 드러난 건 하얀 셔츠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의 셔츠였다.
저번에 에일런과 함께 가서 산 선물.
“네. 원래는 정복을 선물드리고 싶었는데 잘 안 입으실 것 같아서요. 셔츠는 자주 입으시니까 예쁜 걸로 골라 봤어요. 마음에는 드세요?”
“그래. 마음에 쏙 드는구나. 잘 입으마.”
내 물음에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셔츠를 잠시 만져 보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답했다.
“다행이에요! 짙은 녹색이랑 이 색 중에 고민하다가 이걸로 골랐거든요.”
아버지의 대답에 절로 뿌듯한 마음이 차올랐다.
워낙 옷걸이가 좋아서 옷이란 옷은 전부 소화해 버리시는 아버지 덕에 제일 어울리는 걸 찾으려고 머리를 쥐어짰었지.
이제 남은 건 작은 상자뿐이었다.
“그, 작은 상자 있잖아요. 대단한 건 아니라 실망하실 수도 있거든요.”
나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내 선물보다 더 좋은 것도 이미 많이 가지고 있으실 테니까.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네가 주는 건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래. 아버지는 에리타 네가 돌멩이를 드려도 기쁘게 받으실 텐데. 나도 그렇고.”
아버지와 에일런의 격려에 괜히 부끄러워져 멋쩍게 웃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은 상자도 열어 보세요!”
셔츠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열 때보다 심장이 더 세게 뛰었다.
이내 조그만 뚜껑이 열리고 내가 준비한 선물이 드러났다.
붉은 루비 브로치였다.
“이건…… 브로치구나.”
아버지의 기다란 손가락이 엄지손가락의 반보다 조금 더 큰 브로치를 집어 들었다.
내가 준비한 메인 선물이자 내가 만든 아티팩트.
“네. 제가 직접 세공하고 마법을 새긴 건데,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겠어요.”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실망하셨나?
나는 애꿎은 손가락을 꿈질거렸다.
내가 얼마나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을까. 이내 아버지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고맙구나, 에리타. 여지껏 내가 받은 것 중에 가장 귀한 선물이야.”
나는 그제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티팩트를 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지고 싶어 세공을 배운 보람이 있었다.
본래는 보석에 마법을 새기는 것만 하고 세공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으니까.
그래서 파는 것보다는 조금 투박할지도 모르나 정성이 담겨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무슨 마법을 새겼는지는 안 물어보세요?”
아버지의 반응에 신이 난 나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마법을 새겼는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그럼요! 우선 실드 마법을 새겼어요. 세 번 정도는 웬만한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실드를?”
“네. 사실은 영구적인 걸로 새기고 싶었는데 다른 마법이랑 같이 새기려니까 그건 조금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조금 아쉽긴 했지.
중요한 순간에 실드 마법은 목숨을 한 번 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마법 하나 역시 포기할 수가 없어서 결국 실드 마법은 횟수 제한이 걸리고 말았다.
내가 속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때였다.
“……다른 마법은 뭔데?”
들려온 에일런의 물음에 나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다른 건 텔레포트요. 이건 마력만 주입하시면 언제든지 쓸 수 있어요! 물론 너무 먼 거리는 안 되긴 하는데…….”
아마 저택에서 광장까지 정도는 될 거예요.
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다른 마법 하나가 이거였다.
실드와 달리 마력만 주입하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거든.
아버지도 마검사시니까 내가 마력을 충전해 줄 필요도 없고.
“마음에 드세요?”
나는 기대가 조금 담긴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열심히 만든 거니만큼 아버지가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마음에 들다마다. ……너무 귀한 걸 받았구나. 만드느라 힘들지는 않았고?”
낮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아버지한테 드릴 거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도 안 힘들던걸요.”
물론 세공 부분에서 몇 번을 틀려서 좀 열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성공해서 뿌듯한 마음이 더 컸다.
내 대답에 느릿하게 브로치를 쓸어 보던 아버지의 눈매가 수려하게 휘어졌다.
“정말 고맙구나. 소중히 간직하마.”
아버지의 그 반응을 보자 괜히 뿌듯해지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고 있던 에일런과 시선이 마주쳤다.
“내 동생, 대단하네.”
귀에 감기는 에일런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사실 아버지의 생일 선물이라고는 했지만 에일런이 서운해하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에일런을 보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물론 말은 안 했지만 그의 것도 있었다.
아직 완성은 덜 됐지만.
“오라버니도 기대하셔도 좋아요!”
나는 그를 향해 장난기 가득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그런 내 반응에 에일런이 잠시 멈칫했다가 내가 다 부끄러워질 만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자, 그럼 이제 음식을 내어 가도 되겠습니까?”
주방에서 몸을 슬쩍 내밀고 묻는 에반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자신만만하던 에반의 말대로 아버지의 생일 만찬은 평소보다 더 휘황찬란했다.
차례차례 나온 음식들도 하나같이 전부 맛있었고.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온 듯한 느낌이랄까.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내가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릇을 치우러 온 에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맛있었어요. 그 새콤한 소스를 바른 고기가 최고였어요.”
“하하, 그렇습니까? 제가 얼마 전에 개발해 낸 특제 소스랍니다.”
“맛있었네, 에반.”
내 뒤를 이어 아버지 역시 짤막하게 말을 건넸다.
“주인님께 이런 말씀을 들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족하셨다니 준비한 보람이 있군요! 이 늙은이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잠시 눈을 크게 뜬 에반이 이내 하얀 콧수염을 들썩이며 껄껄 웃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에반이 이제 뒷정리를 하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럼 저희도 응접실로 갈까요? 오늘은 제가 차를 우려 드릴게요!”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밝게 말했다.
평소에는 시녀들이 차를 우려 주었으나 오늘은 아버지 생일이니까.
“그러려무나.”
우리는 빈 접시를 뒤로하고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정성껏 우린 차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똑똑-
육중한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테르반입니다.”
“들어오게.”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선 건 테르반이었다.
“담소를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단정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테르반의 표정이 어쩐지 조금 난처한 것도 같아 보였다.
“무슨 일 있나?”
“저택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허름한 로브를 쓰고 계셨는데 만찬 초대장을 가지고 계셔서…….”
“초대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예. 늦었음을 알지만, 말이라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나는 어째서 테르반이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만찬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조금도 아닌 두 시간 가까이를 늦은 상황. 본래라면 아주 무례한 일이겠지.
아버지로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애매하네.’
나는 슬며시 눈동자를 굴려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의외로 아버지의 얼굴에서 불쾌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따지자면 조금의 놀람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무던한 편이긴 하지만…….
“그럼 가도록 하지.”
흔쾌히 대답한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야 하나?’
아버지와 그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를 몰라 함부로 따라나서기도 좀 그렇고.
“너희들도 같이 가겠느냐?”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나는 에일런과 나란히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응접실은 현관과 같은 1층에 있는 터라 응접실을 나서자 곧바로 저택 입구에 서 있는 갈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보였다.
커다란 키와 덩치로 보아 남자인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봐도 귀족으로 보이지는 않는 외관이었다.
그에 대한 궁금함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주인님, 이분이십니다.”
테르반이 우리와 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후 몇 걸음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이가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느릿하게 로브를 젖히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슬란 님.”
젖혀지는 로브 사이로 옅은 밀색 머리가 사락이며 떨어졌다.
이윽고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예상외로 곱상한 미남이었다.
페른의 또래처럼 보이는 얼굴.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의 눈동자였다.
내 것과 조금 닮은 것도 같으면서도 다른.
……푸른 듯한 보라색 눈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