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36화(36/218)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오랜만에 보는군, 세이안.”
세이안.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서로 인사를 건넨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며 아버지와는 무슨 관계인지.
왜인지 에일런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에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응접실에 있겠다고 할 걸 그랬나.’
내가 영 이상한 분위기에 눈동자만 굴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색소 옅은 밀색 머리의 남자와 눈이 마주친 건.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깊디깊었다. 누군가를 그리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저는 에리타 크로바하츠라 합니다.”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생긋 웃으며 명치께에 한 손을 얹고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누구든지 간에 아버지가 초대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인사를 받은 남자는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잘못한 건가 싶어 슬쩍 에일런을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덤덤한 표정을 하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치겠네. 이 분위기 뭐냐, 진짜.’
여기서 어색한 건 나뿐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네가 에리타구나.”
입술을 벙긋거리던 남자가 이내 입을 열었다.
잔뜩 갈라지고 가라앉은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저를 아세요?”
나는 그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울 것 같은 목소리.
쉽게 이해가 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그러니까 나는…….”
내 말에 움찔거린 남자가 천천히 말을 이으려는 것 같다가 결국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얼핏 보이는 볼이 느리게 젖어 가는 걸 보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우는 거야? 진짜로?’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누가 봐도 내가 울린 모양새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사람을!
내가 한 말은 자기소개랑 나를 아냐는 것뿐인데. 도대체 왜 우는 거야.
“저, 저기, 제가 무슨 실례되는 말이라도…….”
도저히 당황을 감출 길이 없어 나는 울상을 지었다.
이유를 알면 사과라도 할 텐데.
그때 다행히도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눈물이 많은 건 여전하구나. 에리타가 당황하질 않느냐.”
어색하다고 느낀 아까와는 달리 무뚝뚝하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그런 아버지의 말에도 남자는 눈물을 멈출 줄을 몰랐다.
아니, 멈추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은데. 눈물샘이 고장 난 건가…….
“에리타, 미안하구나. 우선 응접실로 가자. 거기서 설명해 주마.”
“네에.”
결국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만 안고 다시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조금 걷는 사이에 진정한 건지 남자는 눈물을 멈춘 채였다.
나는 티 나지 않게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얼굴이 조금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익숙한 건지는 잘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혼자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세이안, 네 소개는 직접 하거라. 그러려고 온 것 같으니.”
나는 아버지를 한 번 바라보았다가 세이안이라 불린 남자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는 발갛게 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겨우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 에리타. 추태를 보였구나.”
“괜찮아요.”
나는 남자의 사과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내 반응에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남자가 이내 제 풀 네임을 꺼내 놓았다.
“내 이름은 세이안 비센테란다.”
세이안 비센테.
비센테 후작가.
나는 그 말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네 어머니가 내 누님 되시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남자는, 내 삼촌이었다.
***
통성명을 한 후 잠시 앉아 있던 세이안, 그러니까 내 삼촌은 금세 저택을 떠났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이라 당황한 우리에게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말을 꺼냈다.
이전까지 다른 지역에 있다가 초대장을 받고 급하게 도착한 탓에 후줄근한 외관이 부끄럽다고.
‘이틀 후에 다시 올게. 그래도 될까?’
그 말에 아버지는 내 의사를 물었고, 나는 개의치 않는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후에 정식으로 방문하겠다던 그는 저택을 나서기 전 나를 보며 머뭇거리더니 이내 아무런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그가 훨씬 더 긴장을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단 말이지.
‘뭐,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내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구 년이다.
아버지와 에일런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인 지도 벌써 구 년.
그런데 이제 와서 새로운 가족이라니.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일단 세이안이 원작에 나오지 않은 건 확실해.
“에리타.”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 건 아버지의 부름이었다.
“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아버지는 어쩐지 조금 미안한 듯한 얼굴이었다.
“네게 미리 말하지 않아서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구나.”
“…….”
“참석 여부가 확실하지 않아 미리 말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나긋한 목소리는 나를 달래는 투였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느라 말이 없었던 걸 기분이 좋지 않다고 받아들이신 것 같았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그런 거예요.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요.”
손님이 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내 삼촌인 건 몰랐으니까 말이다.
“오라버니는 알고 계셨어요?”
“응. 미리 말 안 해 줘서 미안해.”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일런에게 묻자 그가 흐려진 낯으로 난처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 저한테만 안 알려 주신 거네요.”
“미안해.”
나는 부러 장난스레 눈을 흘겼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짐작이 갔다.
나에게는 세이안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미리 말해 주면 내가 괜히 이것저것 복잡한 생각을 할까 봐 그랬겠지, 뭐.
아버지와 에일런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내가 생각해도 미리 알았더라면 굉장히 신경이 쓰였을 것 같거든.
“음, 아버지.”
“그래.”
“아버지는 그분이랑…….”
말을 이으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왜 십사 년 동안이나 안 봤냐고 물으면 너무 꼬치꼬치 묻는 건가?’
날짜로 보아 그 사고와도 관련이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 사고에 대한 건 내게도 그리 편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분이랑 친해 보이시던데. 어떤 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결국 나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다른 주제를 꺼냈다.
“세이안에 대해서 말이냐?”
아버지의 되물음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후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분을 잘 모르니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아예 관계가 없는 사람이면 괜찮은데, 세이안은 어쨌든 나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아주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아까 누구냐고 물은 뒤에 울었던 것 같단 말이지.
어쨌든 마음이 여린 사람인 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첫인상은 조금 그럴지 몰라도 착한 녀석이야.”
“그렇게 보이긴 했어요.”
눈매가 온순한 강아지처럼 처져 있어서 그런지 누가 봐도 나 착해요, 하는 얼굴이랄까.
“흐음. 예전과 성격이 똑같다면 너를 아주 좋아할 거다. 그러니 네가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노력해 볼게요.”
“그래. 그걸로 충분할 게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그런데 그분은 나이가, 조금 적어 보이시던데.”
많게 봐도 에일런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이는 정도?
“네 엄마와 나이 터울이 조금 있는 남매였거든. 에일런이 태어났을 때 세이안이 열 살이었나.”
아, 어쩐지.
내 삼촌인 것치고는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더니만.
“그래서 에일런과 너를 아주 좋아했다. 대공령에도 자주 찾아오곤 했지.”
그 말에 아까보다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구나……. 아, 오라버니.”
“응?”
“그럼 오라버니는 그분에 대해서 기억하세요?”
내 질문에 에일런의 눈꼬리가 살짝 움찔거렸다.
그러다 이내 슬며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릴 때 자주 오셨던 기억은 있어.”
반응으로만 봐서는 에일런이랑 사이가 그다지 안 좋았던 거 같은데.
그런 내 의문을 풀어 준 건 아버지의 웃음 어린 목소리였다.
“에일런은 세이안을 귀찮아했거든. 누구를 닮았는지 어릴 때부터 매사에 심드렁해서는.”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꺼낸 말에 에일런이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제가 누구를 닮았는지는 아버지가 제일 잘 아실 텐데요.”
에일런의 떨떠름한 말에 나는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와 에일런은 유전자 검사도 필요 없을 만큼 똑 닮은 부자였으니까.
마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부자 사이임을 알아볼 수 있을걸.
하지만 아버지는 에일런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고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니를 찾아가서는 세이안이 자꾸 귀찮게 하니 가라고 해 주시면 안 되냐 또박또박 청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고작 네 살이었으면서.”
“정말요?”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렸던 에일런도 장난 없구나.
“그래. 그래서 세이안이 저택이 떠나가라 울었었지.”
나는 잠시 상상을 해 보았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세이안이 귀찮다고 말하는 어린 에일런을 말이다.
‘음, 상당히 현실성 있네.’
눈앞에 선한 그 장면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 에일런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렇게 올해 아버지의 생신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