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1)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41화(41/218)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저택 앞에 선 세 대의 마차를 보는 중이었다.
달칵-
그중에 가장 화려한 마차의 문이 열리고, 눈에 익은 밀짚색 머리의 남자가 내렸다.
세르비아의 남동생이자 내 외숙부인 세이안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세이안은 제 시종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는 아버지와 에일런,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대공 전하.”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인 그는 나와 에일런에게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에일런, 에리타.”
저번과 달리 세이안은 제대로 정복을 갖춘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이는 건 여전했다.
정확히는 눈치를 보는 거라고 해야 할까.
“안녕하세요, 후작님.”
나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작 인사를 나눈 것뿐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근데 저건 다 뭐야.’
어색하게 하하 웃던 나는 슬쩍 세이안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를 따라온 마차에서 꺼낸 상자들이 계속해서 쌓이는 중이었다.
흘끗 보기에도 커다란 상자가 스무 개는 거뜬히 넘어 보였다. 작은 상자까지 따지면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상자를 나르는 시종들이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세이안, 저 상자들은 다 무어냐.”
마침 아버지가 내 궁금증을 대변하듯 세이안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세이안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버지의 질문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선물입니다.”
“선물?”
“네. 외국에서 들여온 것도 있고 이것저것 있습니다.”
말을 늘어놓던 세이안은 잠시 몸을 돌리더니 뒤편에서 선물을 나르는 걸 총괄하던 시종을 불렀다.
세이안의 손짓에 다가온 건 많아 봐야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예의 바른 몸짓으로 아버지와 우리를 향해 몸을 숙였다.
“제이슨, 가져온 선물들의 종류가 어떻게 되더라.”
“우선 드레스가 열두 벌, 여성 구두 일곱 켤레, 보석 종류가 스무 가지 조금 넘습니다.”
……집 털어 온 거 아니야?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게다가 그가 읊은 선물들은 누가 보아도 죄다 여성을 위한 것들이 아닌가.
드레스에 여성 구두, 그리고 보석.
듣지 않아도 절로 예상되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있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시종에 나는 질린 듯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내 대답에 제이슨이라는 시종은 공손히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고는 또다시 선물의 종류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손수건과 장신구, 부채와 가방…….”
이어지는 말에 이제는 골이 당겨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피까지. 이상입니다.”
내 두통을 유발한 시종은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났다.
나는 황망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끝까지 읊은 품목 중 아버지와 에일런을 위한 건 체면치레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선물이 구십 프로, 그 외가 십 프로.
그리고 이 집에 사는 여자는 나밖에 없다.
‘이게 다 뭐야…….’
누가 보아도 내 선물이 아닌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쌓여 가는 상자들을 혼이 나간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내 옆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에일런이었다.
고개를 슬쩍 돌려 흘기자 에일런이 저는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테르반.”
뒤이어 낮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집사를 불렀다. 나는 덜그럭거리는 고개를 아버지에게로 돌렸다.
“예, 주인님.”
단정한 구두 소리와 함께 뒤에 서 있던 테르반이 걸어왔다.
묘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마치 이 부담스러운 선물들이 저택으로 줄줄 들어갈 것 같은 그런 불안감 말이다.
나는 모양새 좋은 아버지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그대로 받으시겠어?
척 봐도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선물이다.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
“시종들을 불러 선물을 저택 안으로 옮기게. 조심하라 이르고.”
……지 않네.
아버지는 산뜻한 어투로 테르반에게 상자들을 들이라 지시했다.
나는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라도 거절을 하셔야죠!’
내 앞에 눈을 반짝이는 세이안만 없었더라면 그렇게 말을 했을 텐데.
아버지의 허락에 세이안은 확 밝아진 얼굴로 제 시종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래도 직접 뭔가를 지시하려는 모양인데…….
나는 슬며시 옆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아버지, 이건 너무 과하지 않아요?”
“뭐가 말이냐.”
내 물음에 아버지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나는 답답함에 가슴을 내리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 누르고 살며시 손을 들어 번다한 저 앞쪽을 가리켰다.
“저 선물 더미 말이에요……! 아무리 봐도 너무 과하다구요. 엄청 비싼 거 같은데 이렇게 덥석 받으면 어떡해요.”
어디 과하다 뿐인가. 아주 집 기둥까지 뽑아 먹은 모양새다.
세이안이 아버지와 친한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인 듯했다.
“걱정 말거라. 저 정도는 편하게 받아도 된다. 저 녀석이 저래 보여도 부자거든.”
“그래도요…….”
아버지는 그게 될지 몰라도 저는 아니란 말이에요.
게다가 기억에도 없는 외삼촌이 주는 산더미 같은 선물이라니.
홀랑 받아먹으면 배탈이 날 것 같았다.
풀릴 줄을 모르는 내 미간에 아버지는 잔잔한 웃음을 띠고는 세이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봐주려무나. 세이안이 나름대로 네게 잘 보이려 애를 쓰는 모양이니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옮겼다.
“제이슨, 작은 상자들은 보석류이니 조심해서 옮기게. 섬세한 세공이 들어간 것들은 더 조심하고.”
“도대체 몇 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나?”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입니다.”
“그럼 몇 번만 더 들어. 자꾸 투덜거리지 말고.”
그곳에서는 깔끔하게 묶은 머리를 한 세이안이 손수 상자를 골라내고 있었다.
오가는 이야기가 편안한 걸로 봐서 제이슨이라는 시종과는 꽤 편한 사이인 것 같고.
세이안의 표정은 지금껏 본 얼굴 중에 가장 행복해 보였다.
“세이안이 솔직하긴 해도 서투른 면이 많아서 그렇단다. 네가 조금만 이해해 주련?”
아버지의 말까지 들은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다음에는 그냥 오시라고 말씀드려야겠어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좋아하겠구나.”
내 말에 답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
나는 느릿하게 집게로 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그런 내 손길에 따라붙는 시선이 자그마치 세 쌍이었다.
평소와 같은 루비 두 쌍, 그리고 오늘 새롭게 추가된 짙은 자수정 한 쌍.
내 손끝을 따라 향하는 시선이 무려 세 쌍이란 말이다.
‘……부담스러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 시선들은 푸릇푸릇한 샐러드가 내 접시에 닿고 나서야 제각각 흩어졌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맨날 그랬으니까 익숙하다지만…….’
나는 흘깃 눈동자를 굴려 내 대각선에 앉은 세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버지와 간단한 얘기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러다가도 내가 팔을 뻗으면…….
‘……무슨 주인 손 따라 움직이는 강아지도 아니고.’
아니나 다를까 세이안이 슬그머니 내 쪽으로 신경을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는 얼굴부터 몸짓까지 모조리 무언가를 숨기는 데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표정 관리에는 더 소질이 없는 듯했다.
‘진짜 감수성이 풍부한 건 저분이네.’
내 머릿속에 어제 만났던 리안이 스쳐 갔다.
갑자기 능청스러운 얼굴로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말하던 그가 떠오른 건 왜인지.
아무래도 그에게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는 거라곤 이름밖에 없는데도 이렇게 기억에 남는 걸 보니.
“에리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기분이 좋아 보이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린 모양인지 내 옆에 있던 에일런이 물어 왔다.
“네? 아, 갑자기 어떤 사람 생각이 나서요.”
내가 옅게 웃으며 말을 끝냈을 때였다.
고개를 든 나는 노골적인 세 쌍의 시선과 마주했다. 몸이 흠칫 떨렸다.
아버지와 에일런의 눈빛은 살벌하다는 서술이 어울리기까지 했다.
‘나 뭐 잘못 말했나?’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왜 그렇게 보세요?”
나는 그중에서 가장 이글이글한 눈빛의 아버지를 흘끗 바라보며 소심하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그렇게 대답한 아버지는 여전히 어딘가 못마땅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에리타.”
“네?”
“……누굴 생각했기에 그리 웃느냐.”
아니나 다를까 아무것도 아니라던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은근히 물어 왔다.
그제야 왜 세 사람의 표정이 저랬는지 알아챈 나는 어색한 웃음만 하하 흘렸다.
“그냥 웃긴 사람이 있어서…….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그러니?”
“네. 하하, 얼른 드세요. 에반이 식으면 별로라고 했잖아요.”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내 옆으로 꽂히는 시선은 여전했다.
에일런의 것이었다.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했던 게 에일런이었지.’
나는 애써 그 노골적인 시선을 모르는 척하며 고기를 냠냠 씹었다.
“맛있게 먹어, 에리타.”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에일런이 결국은 져 준다는 듯 옅은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살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에 내가 기분이 좋아 보였던 게 변장하고 나갔던 광장에서 만난 리안 때문임을 가족들이 알게 된다?
‘……적어도 좋은 일이 생기진 않을 것 같은데.’
물론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괜히 조여드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다시 한번 우리 가족의 진면목을 가슴에 새기자고 다짐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