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4)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44화(44/218)
“다음에 또 봬요, 후작님.”
나는 마차 앞에 선 세이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 배웅을 나온 것이었다.
그런 내 인사에 세이안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혹시 서신을 보내도 될까?”
“그럼요! 언제든지 괜찮아요.”
그 물음에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안심한 듯 세이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럼 다음에 보자, 에리타.”
“네, 다음에 봬요.”
그는 살며시 손을 들어 내게 흔든 후, 가벼운 몸놀림으로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하자.”
“예, 후작님.”
이윽고 세이안을 태운 마차의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말굽이 다각이는 소리와 함께 멀어진 마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나는 그제야 몸을 돌려 현관 계단으로 걸어갔다.
“세이안과 친해졌구나.”
그곳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와 에일런이 있었다.
“으음, 두 분이 보기에도 그래 보이세요?”
“알면서 뭘.”
“알아도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나는 픽 웃으며 대답한 에일런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아버지, 오라버니.”
“뭐가 고맙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날이 춥다. 얼른 들어가자.”
퉁명스레 대답한 아버지가 먼저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를 향해 에일런이 속삭이듯 물었다.
“아버지가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그래. 그것도 알지?”
“그럼요.”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저희도 같이 가요!”
그러고는 에일런의 팔을 잡아 이끌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
며칠 후 아침.
나는 통통 튀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내 방보다 한 층 더 위에 있는 에일런의 방으로 가는 중이었다.
흐흥. 가볍게 허밍을 하던 나는 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똑똑-
“오라버니, 저 에리타예요.”
“응, 들어와.”
노크를 하며 신원을 밝히자 곧바로 에일런의 허락이 들려왔다.
달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는 우선 상체만 빼꼼 내밀어 방 안을 살폈다.
그러자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던 건지 편한 셔츠 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에일런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에일런의 얼굴이 순식간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 확연한 변화에 나는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바쁘세요? 바쁘면 조금 이따 와도 괜찮은데.”
“아니야. 마침 쉬려고 했어. 들어와도 돼.”
그렇게 대답하는 에일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럼 잠깐 들어갈게요!”
그의 대답에 배시시 웃은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단출했다. 꼭 필요한 가구만 들여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침대마저 깔끔하게 정돈된 채였기에 생활감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오라버니는 2년 동안 여기서 지냈을 텐데.’
방만 보면 마치 어제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다.
잠시 의아해하던 나는 에일런 역시 아버지만큼이나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생각해 내고는 금세 수긍했다.
‘보나 마나 온종일 서재나 집무실에 있었을 게 뻔하지. 가만 보면 오라버니나 아버지나 둘 다 일중독 같다니까.’
같은 맥락으로 아버지의 방도 단출하기 짝이 없었다.
제국에 하나뿐인 대공가임에도 우리 집은 그다지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그런 데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내 생각을 끊은 것은 에일런의 목소리였다.
“차라도 마실래?”
“으음, 오라버니가 괜찮으시면요.”
자연스레 소파에 앉은 나는 에일런의 물음에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대답에 에일런이 픽 웃더니 바깥에 있던 시종을 불러 다과상을 가져오라 말했다.
시종은 열두어 살쯤 된 듯, 어려 보이는 얼굴이 낯설었다.
아직 저택에 있는 사용인들을 전부 만나 보지 않아 모르는 얼굴이 종종 있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잠시 하고 있었을까,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다가온 시종이 차와 간단한 간식을 테이블 위에 세팅했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도 소리 없이 세팅하는 손길이 능숙한 걸 보니 실력이 굉장하구나.
“고마워.”
“아, 아닙니다!”
싱긋 웃으며 인사를 하자 시종이 어버버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후다닥 방을 나섰다.
그 모습이 귀여워 푸흐흐 웃자 에일런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제가요?”
나는 에일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어린아이를 좋아한다든가 그렇지는 않은데.
“어린 하녀들이나 시종들만 보면 눈을 반짝이면서 이것저것 쥐여 주길래 말이다.”
하지만 내 반문에 부드러이 대답하는 에일런을 보자 정말 그런가 싶기도 했다.
어린아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귀여운 생물을 좋아하는 거긴 했지만.
“뭐, 애들은 귀여우니까요.”
어깨를 으쓱이며 새침하게 대답하자 에일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에리타 너도 아직 어린데.”
“저는 다 컸어요. 벌써 성인이라구요.”
나는 에일런의 말에 눈을 흘기며 불퉁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는 내 대꾸에도 여전히 흐뭇해하는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제국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열여덟 살이 되는 해, 성인식을 치른다.
성인식이라고 해 봐야 가족들과 만찬을 즐기고 선물을 받는 것뿐이긴 하지만.
가끔 성인식 기념 파티를 여는 귀족들도 있기는 했다.
‘아, 맞다. 파티라고 하니까 생각났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나는 내가 에일런을 찾아온 이유를 상기해 냈다.
“오라버니.”
“응, 에리타.”
“이따가 시간 괜찮으세요? 세 시쯤에요.”
“세 시?”
에일런의 되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면 에리타 네가 수업하고 있을 때 아닌가?”
에일런은 시계를 힐끗 보더니 내게 물었다.
……나도 가끔 헷갈리는 내 일정을 어째 에일런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네.
“으음, 사실 춤 연습 좀 도와주셨으면 해서요.”
춤 연습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춰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단 말이지.
엠마도 그편이 더 좋을 거라고 하기도 했고.
“춤 연습을?”
“네. 데뷔탕트 파티가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 전에 직접 춰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안 될까요?
나는 부러 배시시 웃으며 에일런을 졸랐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에일런이라면 거절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 이따가 세 시에 내려갈게.”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내 애교에 픽 웃은 에일런은 흔쾌히 그러마 대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시원한 대답이었다.
“와! 정말이죠?”
나는 에일런의 수락에 반색하며 눈매를 활짝 휘었다.
“춤 상대라면 별로 어렵지도 않으니까.”
그런 내 모습에 에일런은 다정한 목소리로 감동스러운 말을 꺼냈다.
역시 우리 오라버니는 다정하다니까.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지금의 반 정도만 한다면 인기가 하늘을 찌를 텐데.
‘뭐, 다른 사람들은 차가운 게 매력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오라버니의 다정한 모습을 몰라서 그렇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금세 고개를 내저으며 관두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 봐야 부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오라버니가 절대 그럴 리 없지.’
게다가 에일런이 내게만 다정한 것이 의외로 좋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좀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뭐 어쩔 거야. 에일런은 내 가족인걸.
그 후로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이따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에일런의 방을 나섰다.
복도를 딛는 걸음이 가벼웠다.
***
나는 한 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한 번 힐끔거렸다.
“엠마, 이따 춤 연습은 오라버니가 도와주신대요.”
내 말에 엠마가 잠시 멈칫했다.
“어머, 소대공님이요?”
“네에.”
“호호, 소대공님이라면 충분히 좋은 상대가 되어 주시겠네요.”
엠마의 표정에 동요가 인 것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으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내게는 선명히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생각했던 건데, 엠마는 에일런을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틀림없이 불편해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교계에 잔뼈가 굵은 엠마가 저런 감정을 드러내겠어?
‘오라버니랑 엠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마음 같아서는 직접 묻고 싶었지만, 혹시나 정말 안 좋은 기억일까 싶어 나는 애써 차오르는 호기심을 꾹꾹 눌렀다.
두 사람의 성격상 그렇게 큰 트러블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근데 두 사람이 딱히 아는 사이 같지는 않던데. 오라버니도 케이론 백작이랑 안면이 있으면 있었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의문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런 내 모습에 부채로 입가를 가린 엠마가 후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소대공님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아, 아니에요!”
화들짝 놀란 나는 습관적으로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역시나 엠마는 내 대답을 믿는 얼굴이 아니었다.
‘……사실 궁금하긴 한데.’
내가 먼저 꺼내기에는 적절치 않은 주제인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억지로 듣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대답을 골라냈다.
궁금하긴 했으나 엠마가 원치 않는다면 듣고 싶지 않다고.
“우리 아가씨께서 언제 이렇게 크셨담.”
그런 내 대답에 엠마는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엠마, 전 벌써 열여덟 살이라구요.”
“……그렇죠. 벌써 성인이시네요. 열여섯이던 아가씨가 눈에 선한데 말이에요.”
내 새초롬한 대꾸에 엠마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엠마를 만난 건 북부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사실 소대공님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저랑 소대공님은 그다지 접점이 없거든요.”
그러던 엠마가 순식간에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와 장난스레 눈을 반짝였다.
당황할 새도 없이 나는 엠마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 사이에 접점이 없긴 하지.
엠마는 북부 귀족이었고, 에일런이 북부에 머무른 건 길디긴 겨울 중 한두 달뿐이니까.
근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엠마의 반응은 왜 그런 거지?
“엠마는 오라버니를 조금 꺼리는 것 같던데…….”
끝말을 흐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엠마가 부채를 살랑이며 조금 민망하다는 얼굴을 했다.
“으음, 그렇게 티가 났나요? 제가 이래 봬도 사교계에 잔뼈가 굵었는데. 감이 죽었나 보네요.”
내 말에 엠마가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말투로 호호 웃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요. 근데 걱정하지 말아요. 오라버니는 모를 거예요.”
정확히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그런 내 위로에 엠마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소대공님께서는 제게 관심이 없으시니까요. 그렇죠?”
나는 정확한 엠마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내가 에일런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의 본래 성격이 무심하디무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내게 더 무뚝뚝한 아버지조차 에일런의 무신경함을 지적하겠는가.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저는 소대공님이 무섭거든요.”
“네? 오라버니가요?”
그리고 뒤이어 나온 대답에 내 눈이 절로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없었던 건 다행이지만, 에일런이 무섭다니.
뒤이어 나온 엠마의 이야기는 내가 모르던 에일런에 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