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7)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47화(47/218)
나는 작은 보석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손이 삐끗하거나 어긋난다면 그대로 끝이다.
‘내 나흘간의 노력을 헛되게 할 수는 없지.’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히 손을 놀렸다.
이내 바늘처럼 작은 칼에 마력이 담기고, 날카로운 끄트머리가 보석 위에 닿았다.
‘다이아몬드는 단단하니까 더 조심히 움직여야 해.’
나는 눈꺼풀도 깜빡이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보석 위를 미세하게 긁는 느낌이 나고, 나는 떨리려는 손에 힘을 꾹 주어 재빨리 칼을 떼어 냈다.
그러자 보석에서 희미한 빛이 발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나는 튀어나오려는 소리를 죽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작업대에 올려진 게 흔들리지 않도록 몸을 멀리 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네 번째도 성공이다!”
작업대에서 멀찍하게 떨어진 이후에야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쁨을 표현할 수 있었다.
흑마법사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아티팩트를 만드는 순서 중 네 번째를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이제 한 번만 더 중첩시키면 돼.”
물론 아직 대망의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었으나 그건 내일의 내가 알아서 잘하겠지.
“오늘은 끝이다, 끝. 더는 못 해.”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에 하나씩 하는 게 제일 낫다.
마법진 하나를 새기는 데에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리니까.
나는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며 소파로 걸어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근데 제대로 된 거 맞겠지?’
성공한 줄 알았는데 다음 날 보니까 미세한 차이로 실패했던 적이 있었던 탓에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에휴. 확인 한 번만 더 해 보고 눕지, 뭐.”
분명히 지금 앉으면 다시 일어나기 싫어질 테니까.
다시금 작업대로 다가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석 구석구석을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아주 미약한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미약한 빛이 반짝였다 사라졌다.
마법진이 제대로 새겨졌다는 증거였다.
“하……. 진짜 힘드네.”
그제야 나는 비척거리며 푹신한 소파로 다가가 눕듯이 걸터앉았다.
과장 조금 보태어 침대로 써도 될 만큼 넓은 소파는 내 몸을 안정적으로 받쳤다.
조그만 보석을 몇 시간씩이나 바라보고 있었던 눈이 피로를 호소했다.
나는 손을 대충 휘저어 연구실 창문에 쳐져 있던 커튼을 걷어 냈다.
그러자 밝은 아침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벌써 아침이잖아.”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어두컴컴했는데.
어제 에일런과 밤을 새우지 않기로 약속했던 사실이 떠오른 나는 조용히 다시 커튼을 쳤다.
양심이 살짝 찔려 온 탓이다.
‘……아예 안 잔 게 아니라 새벽에 깬 거니까.’
애써 그렇게 합리화를 한 나는 우선 무거워진 눈꺼풀을 잠시 감기로 했다.
‘이따가 일어나서 상단에 가 봐야지…….’
오늘 일정을 생각하던 나는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
하암-
부드럽게 내 머리를 매만지는 메리의 손길에 절로 하품이 터져 나왔다.
아직 뻑뻑한 눈가를 문지르던 나는 거울 속의 메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가씨, 새벽에 또 작업하러 가셨었죠.”
눈을 가늘게 뜬 메리의 타박에 내 몸이 티 나게 흠칫 떨렸다.
‘작업 마치고 방에 들어와서 잘걸.’
방까지 오는 게 귀찮아서 연구실에서 잠들었던 대가는 메리의 잔소리와 못마땅해하는 눈빛이었다.
“……잠이 안 와서 그랬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작게 항의하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잠이 안 오셔도 그렇죠. 어제도 밤까지 연구실에 계셨으면서.”
물론 거울에 비친 나를 뚱하게 바라보는 메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메리는 가늘게 뜬 눈으로 거울에 비친 나를 빤히 응시했다.
‘……메리가 저렇게 보면 괜히 눈치가 보인단 말이야.’
정말이지 살이 떨리는 눈빛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 그래도 아까 조금 더 잤는데…….”
“아가씨 낮에 주무시면 얕게밖에 못 주무시잖아요. 보나 마나 금방 깨셨을 거면서.”
소심하게 덧붙여 봤지만 메리의 논리정연한 말에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귀신인가. 어떻게 알았지.’
이상하게도 해가 떠 있을 때 자는 건 길어 봐야 한두 시간이 최대였다.
오늘도 삼십 분밖에 못 잤고.
“오늘은 진짜 푹 잘게. 응? 메리이.”
“……정말이죠?”
“응, 진짜로.”
메리의 미심쩍어하는 눈빛에 나는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 정말 아가씨도 일중독이시라니까요.”
‘그건 내가 아니라 아버지랑 오라버니한테나 어울리는 소린데.’
불퉁한 소리가 차올랐지만 열심히 삼켰다. 지금 저 소리를 하면 아마 십 분 동안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디뻔했다.
다행히도 메리는 아무런 말 없이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단장을 마무리했다.
거울에는 부탁한 대로 하나로 묶어 틀어 올린 머리가 보였다.
“자, 다 됐어요.”
“오늘도 고마워, 메리.”
“아녜요. ……그런데 오늘은 어디 가시려구요?”
“으음. 살 물건이 좀 있어서 광장에 다녀오려고.”
나는 메리의 물음에 태연히 대답했다.
‘상단에 가는 건 사실이니까 아주 거짓말도 아니지.’
그런 내 대답에 겉옷을 가져온 메리가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상인을 집으로 부르시는 게 더 낫지 않으세요? 삼월이라고는 해도 아직 날이 쌀쌀한걸요.”
“에이, 괜찮아. 나 나가는 거 좋아하잖아. 바람도 쐴 겸 나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가 만나러 가는 사람을 집으로 부르면 큰일 난다고.
만약 유르젠이 나와 접점이 있다는 걸 누가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내가 라그라스 상단과 관계가 있다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는 꼴이다.
‘절대 안 될 말이지.’
나는 머리를 붕붕 저어 끔찍한 가설을 털어 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안 들킬 방법이 있는데 뭐 하러 위험을 감수하겠냐고.
“그럼 메리, 다녀올게! 만약에 아버지나 오라버니가 나 찾으면 살 게 있어서 광장에 갔다고 전해 줘.”
내 발랄한 인사에 메리는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내 겉옷을 꼭꼭 여며 주었다.
“대신 너무 늦게 들어오시면 안 돼요. 바깥은 위험하니까요.”
나는 메리의 따뜻한 걱정에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올게.”
사실 아버지나 오라버니 수준의 실력자가 아닌 이상 내가 위험할 일은 없을 테지만, 구태여 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메리도 알면서 걱정하는 거니까.’
나는 메리에게 손을 흔들고는 손가락을 퉁겼다.
순식간에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와 내 몸을 감싸고, 메리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자 내 방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장소가 나타났다.
‘여기는 언제 와도 똑같다니까.’
한 톨의 먼지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깨끗한 방.
창가 바로 앞에 위치한 책상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새파란 머리카락이 보였다.
“유르젠, 결벽증은 여전하구나?”
살금살금 그 앞으로 다가간 나는 열심히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파란 머리의 남자에게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내 목소리에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허공에서 나타난 나를 보고도 유르젠은 조금의 놀란 기색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 굴할 내가 아니지.
“짜잔. 서프라이즈!”
내가 밝은 목소리로 외치자 유르젠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오실 때는 기별이라도 하고 오시라니까요. 그리고 결벽증이 아니라 정리를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뒤이어 나온 그의 목소리에는 한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 유르젠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푹신한 소파에 앉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 온다고 편지 보냈는데.”
“언제요.”
“방금. 텔레포트 하기 전에 날려 보냈으니까 아마 곧 도착할걸?”
태연한 대꾸에 유르젠의 미간이 다시 와그작 구겨졌다.
참 나. 언제든지 편할 때 오라던 옛날의 유르젠은 어디로 간 건지.
‘어린 유르젠은 귀여웠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가느다란 눈초리로 그를 응시했다.
“미간 좀 그만 찌푸려. 나중에 주름 생겨도 난 모른다. 뭐, 물론 유르젠은 주름이 좀 생겨도 여전히 잘생겼을 테지만.”
“……아직 주름 걱정을 들을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장난스러운 말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파를 지나쳐 문으로 다가간 유르젠이 살며시 문을 연 틈으로 바깥에 있는 직원에게 다과상을 차려 오라고 지시했다.
“카트째로 앞에 두면 알아서 가져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유르젠 님. 그 외에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신가요?”
“아, 그리고 부를 때까지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일러두세요.”
유르젠은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들어올 가능성을 봉쇄했다.
어차피 상단주실 바로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면 다 믿을 만한 이들로 꾸려 놨을 거면서.
나는 몇 년을 봐도 놀라운 그의 철두철미함에 혀를 내둘렀다.
‘뭐, 유르젠의 인간 불신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가 저런 성격으로 변하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저 모습이 그리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내 맞은편에 앉은 유르젠이 눈가를 문지르며 내게 물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오나.”
그 물음에 튀어나온 내 대꾸는 퉁명스러웠다.
‘……분명히 예민하게 굴다 보니 신경질적인 인상이 된 게 틀림없어. 어릴 때는 귀여웠는데.’
나는 누가 보아도 불만이 그득 묻어 있는 얼굴로 유르젠을 빤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지금 얼마 만에 보는 건지는 알아? 자그마치 석 달 만이라구.”
“편지는 계속 주고받았지 않습니까. 수정구로 통신도 자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퉁명스러운 내 말에 유르젠이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리도 그렇고, 유르젠도 그렇고.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사실로 때리는 사람이 많담.
“옛날에는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라며. 사람이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되지.”
내 트집에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유르젠이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을 상단주님께서 하시니까 상당히 이상하네요.”
나는 그의 말에 가느다란 눈으로 유르젠을 응시했다.
“상단주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옛날에는 이름으로 잘만 불러 놓고 요즘에는 왜 자꾸 그렇게 불러?”
유르젠은 내가 가장 편하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숨기는 게 가장 적은 사람이기도 했고.
나는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게 많았으니까.
그런데 요즘따라 자꾸 서먹하게 군단 말이야. 섭섭하게.
내 불퉁한 물음에 유르젠은 결국 옅은 한숨을 내쉬며 내 이름을 뱉었다.
“……에리타 님.”
그제야 나는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생글생글 웃었다.
“응, 그게 훨씬 낫다. 상단주는 뭔가 부담스러운 기분이 팍팍 든단 말이야. 그리고 왠지 사이가 멀어 보여서 별로야.”
“나 참. 상단주님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하시는 분은 에리타 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는 소모적인 말을 그만두기로 했는지 헛웃음을 흘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뻣뻣하던 몸을 늘어뜨린 유르젠의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더 유하게 풀렸다.
딱딱하게 굳히고 있던 표정이 풀리자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그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하여간 요령 없는 유르젠 같으니.’
그런 그의 얼굴을 훑은 나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안 잔 거야.”
“……하루요.”
유르젠의 대답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하고 있네. 책상 위에 커피 잔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거 봤거든. 적어도 사흘은 됐겠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