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5화(5/218)
고른 숨을 내쉬는 에리타를 지켜보던 아슬란은 잠든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을 나섰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문을 닫은 아슬란의 뒤로 복도에 서 있던 카일이 따라붙었다.
“주군, 페른이 지하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뒤처리는.”
“신변 정리와 서류 처리 전부 끝냈답니다.”
“바로 가지.”
만족스러운 보고에 고개를 끄덕인 아슬란은 커다란 저택의 지하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에리타의 앞에서와는 극명하게 다른 서늘한 표정이었다.
제 소중한 딸에게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짓을 한 것에게서 들어야 할 사실이 있었다.
에리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끝낼 생각이었으므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
아슬란을 본 기사들이 정중히 예를 갖춘 후 옆으로 비켜섰다.
발소리가 커다란 공간을 채웠다.
어두운 지하실은 그 공간 자체만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
“페른.”
“오셨습니까, 주군.”
아슬란의 부름에 페른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앞에는 땅바닥에 이리저리 구른 듯 형편없는 몰골을 한 리센 고아원의 원장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에 씌워진 자루 탓에 시야가 막힌 원장은 이 상황이 두려운 것인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시작했나?”
“아직입니다.”
가벼운 손짓으로 페른과 카일을 제외한 이들을 내보낸 아슬란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원장의 앞으로 다가섰다.
어디 하나 베거나 때린 곳이 없음에도 벌벌 떠는 꼴이 웃겼다.
고작 이 정도로 무서워하면서 아이에게는 잘도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에 억누르던 살심이 꿈틀거렸다.
“뭘 했다고 그리 떨지?”
싸늘한 목소리가 원장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고아원에서 내쳐진 뒤 이를 득득 갈다가 정체 모를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끌려온 원장의 공포심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습하고 어두운 공간에 울리는 발소리가 원장에게는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들려왔다.
정신없이 벌벌 떨던 원장은 제 머리 위에서 떨어진 소리에 휙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까 들은 주군이라는 소리를 보았을 때, 이 사람이 우두머리임이 틀림없었다.
“누, 누구신데 제게 이러십니까!”
“네까짓 게 감히 뵐 수 없는 분이시다.”
“그, 그런 분께서 왜 저같이 하찮은 것에게……!”
“그래, 하찮지.”
페른의 말에 대답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끊은 아슬란이 차게 웃었다.
“너무도 하찮아 목부터 잘라 버리고 싶은 것을 참고 있으니 말이야.”
그 말에 바닥에 꿇려진 원장의 몸이 굳었다.
낮게 울린 목소리는 거짓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서늘하고 위협적이었다.
“7년 전, 두 살 난 여자아이를 고아원에 들였을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리타.”
아슬란의 목소리에 드디어 짐작만 하던 그의 정체를 확신한 원장의 손끝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까 그 저주받은 것을 데려간 백작!
그런 원장의 마음을 안 것인지 시야를 가리던 까만 천이 벗겨져 나갔다.
덜덜 떨리는 고개를 들자 형형한 적안이 보였다.
당장에라도 제 몸을 난도질할 것 같은 그 시선에 절로 고개가 바닥으로 처박혔다.
“사, 살려 주십시오, 백작님! 제가, 제가 눈이 멀었습니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빌겠습니다……!”
금방이라도 목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원장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살려 달라는 애원뿐이었다.
한 아이를 그토록 학대했으면서도 제 목숨은 소중한 것인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비는 그 모습에 아슬란은 흉포하게 날뛰려는 마력을 굳이 갈무리하지 않았다.
“네 진심 없는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지?”
“허억, 사, 살려…….”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뱉는 사과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지, 진심으로, 허윽, 리타에게 사죄를……. 커억!”
“감히, 다시는 역겨운 입에 그 이름을 담지 마라.”
강대한 마력이 주인의 감정을 따라 흉흉하게 날뛰었다.
“큿.”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짓누를 듯 무거워진 공기에 페른과 카일마저 무릎을 꿇었다.
아슬란은 제 딸아이가 7년간 겪은 고통을 그저 백 번, 천 번 비는 것으로 갚으려는 원장의 작태가 역겨웠다.
목을 백 번 자르고 사지를 천 번 갈라도 이 화를 다 풀어낼 수 없건만.
원장의 몸이 숫제 발작하듯 떨려 왔다. 숨이 모자란 탓이다.
이대로 숨을 앗아 버리고 싶은 유혹이 치솟았지만 아슬란은 이내 날뛰는 마력을 갈무리했다.
들어야 할 사실이 있었다.
“허억, 헉…….”
그제야 숨통이 트인 것인지 쿨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7년 전, 아이를 놓고 간 사람을 기억하나.”
“무, 무슨 말씀이신지…….”
“리타를 고아원에 데려다 놓은 사람. 기억하느냐 물었다.”
대답 없이 멍청한 표정을 한 원장에 아슬란이 제 옆에 선 카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카일이 자연스러운 손길로 정중하게 제 검을 건넸다.
“그 하찮은 목숨이 아직 붙어 있는 이유이니 잘 생각해서 대답해야 할 것이다.”
덜덜 떨리는 시선이 유려한 검신으로 향했다.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날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그 날이 금방이라도 제 목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마, 말하겠습니다! 알고 있는 것 전부……!”
이내 비명을 지르듯 터져 나온 말에 검날을 웅웅 울리던 살기가 자취를 감췄다.
“겨울, 겨울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온 자는…….”
기억을 되새기는 듯 떨리는 목소리가 뱉어 내는 사실에 아슬란은 차오르는 화를 애써 억눌러야 했다.
***
언제나처럼 꿈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들을 그려 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내 위에서 날 선 소리들이 쏟아졌다.
‘네가 못나서 그래. 너처럼 볼품없는 애를 입양하는 사람은 평생 없을걸?’
‘애가 애교도 없고 성격도 너무 조용해서 저희랑은 안 맞는 것 같네요.’
꿈인 것을 알아도 깰 수 없었다.
무력하게 아무 말 없이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어머, 부모님이 없다고? 어쩌다 돌아가셨니……. 뭐? 고아원 출신이야? 으휴, 그럼 그렇지!’
처음에는 반항도 해 보고 당신들이 뭘 아느냐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악다구니를 써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임을 안 순간부터는 그저 조용히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흐…….”
하지만 들을 때마다 비참하고 서글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리타. 에리타.”
얼마나 오랜 시간 애써 눈물을 꾹꾹 참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생 잠든 나를 지켜 줄 사람도, 괴로워하는 나를 깨워 줄 사람도 없었는데.
내 악몽에 처음으로 스며든 목소리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목소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
그와 동시에 짓눌린 듯 감겨 있던 눈이 절로 떠졌다.
“잘 잤느냐.”
잠에서 깬 내가 가장 처음으로 본 것은 낡은 천장도, 흉악한 원장의 얼굴도 아닌 수려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아직 꿈의 여운에서 전부 벗어나지 못한 나는, 멍한 정신에 나도 모르게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런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구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낮게 웃은 남자가 나를 안아 들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의 손길을 잠시 느끼고 있자니 잠들기 전의 기억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힉!”
그제야 나는 지금 내 상태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었다.
엉엉 울다 잠든 거로도 모자라서, 깨어나서는 이런 어리광이라니.
아무리 끔찍한 꿈에서 깨어난 탓에 정신이 흐릿한 상태여도 그렇지!
쪽팔림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역시 나를 안아 든 이 사람은…….
“백작님?”
내 부름에 남자는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미세하게 찌푸려진 미간이 보였다.
손가락을 꿈지럭대며 고민하던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작게 입을 열었다.
“……아버, 지?”
자신 없는 내 부름이었지만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나른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다가와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래, 내 딸.”
조금은 불안했던 마음이, 그 말에 눈 녹듯 사라졌다.
***
“에리타.”
“…….”
사라진 불안감과 달리 여전한 창피함에 얌전히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던 내 위로 웃음기 섞인 부름이 떨어졌다.
하지만 어리광을 있는 대로 부려 놓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대답하기에는 내 얼굴이 그리 두껍지 못했다.
가슴팍에 묻은 얼굴을 들지 못하는 내 모습에 아버지가 낮게 웃더니 다시금 나를 불렀다.
“에리타. 아가.”
“……네에.”
그 다정한 부름을 또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작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곁에 있으마. 그러니 너는 걱정할 것 하나 없다.”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한없이 다정한 뜻을 담은 말에 가슴 한쪽이 몽글몽글하게 차올랐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아버지였지만 처음으로 가족의 사랑을 보여 준 사람.
나는 작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작게 중얼거린 아버지가 이내 나를 안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높아진 시야에 놀라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자 단단한 상체가 기분 좋게 울렸다.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식당으로 가는 중이다. 울다 잠들었으니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다정하다가 짓궂어진 말에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그, 그건……!”
미약하게 변명을 해 보려 했으나 엉엉 울며 눈물을 잔뜩 묻힌 것이 아버지의 옷이었던 터라 발뺌을 할 수도 없었다.
“으으…….”
결국 입술을 꾹 깨물고 웃느라 들썩이는 너른 어깨 위로 얼굴을 묻었다.
내가 그렇게 쪽팔린 시간을 보내는 새에 나를 옮기는 길쭉한 다리는 어느덧 식당에 들어섰다.
느릿하게 나를 의자에 내려 준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고 자세를 바로 해 앉은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더구나. 그래서 최대한 많이 준비하라 일렀다.”
남겨도 되니 좋아하는 것들로 먹거라.
그 담담한 말에도 시선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건 그냥 남겨도 되는 정도가 아니잖아요……!’
열 명은 앉을 수 있는 식탁 위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윤기가 흐르는 스테이크, 반질반질하게 구워진 훈제 오리, 먹기 좋게 조리된 생선구이 등.
손가락 발가락을 전부 써도 세지 못할 만큼 다양한 요리들의 향연에 기가 질렸다.
“이건 너무 많은데…….”
“평소에도 이리 먹는 것은 아니야.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 위주로 전부 차리라 일러 그런 것이다.”
웅얼거리는 내 말에 아버지가 조금은 급하게 나를 달랬다.
남은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용인들이 먹을 거라는 말까지 꺼내고 나서야 나는 작게 웃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소설 속에서는 가장 강한 악당일지라도 되찾은 딸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그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구나 싶었다.
“……아버지도 드세요.”
아직은 어색한 호칭이지만 부를 때마다 수려하게 웃는 얼굴이 좋았다.
천천히 고기가 놓인 접시를 내 앞으로 끌어오며 수줍게 말을 건네자 너털웃음을 터뜨린 그 역시 식사를 시작했다.
“너도 많이 먹거라.”
조금은 어수선하게 시작된 우리의 첫 식사는 간간이 터져 나온 내 감탄사와 낮은 웃음소리 속에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