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50화(50/218)
“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꽤 크게 울린 탓에 바깥에서 놀란 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스트레칭을 좀 하다가.”
“아가씨도 참.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조심해서 하셔요.”
잠시 당황했던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태연한 어투로 대꾸했다.
그러자 바깥에서 못 말린다는 듯한 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럴게. 하하.”
마지막까지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마친 나는 메리의 기척이 멀어짐과 동시에 발코니를 향해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물론 걸어가면서 내 방 전체에 사일런스 마법을 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나 목소리가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테니까.
달칵-
서둘러 발코니 문을 연 나는 커다란 인영의 팔을 잡고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
전체적으로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그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내게 딸려 왔다.
“잠시만 편하게 앉아 있어.”
그를 소파에 앉혀 둔 나는 밖에서 이곳을 볼 수 없도록 꼼꼼히 커튼을 쳤다.
거기다 문의 잠금장치까지 걸어 잠근 후에야 나는 여전히 후드를 쓰고 있는 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휴.”
그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얌전히 내가 앉혀 준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보지 못했던 석 달 사이에 테인은 조금 더 자란 듯했다.
“뭐야, 편하게 앉으라니까. 왜 그렇게 앉아 있어.”
나는 그 뻣뻣한 자세에 웃음을 터뜨리며, 맞은편이 아닌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내가 평소와 달리 맞은편이 아닌 그의 옆에 앉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후드는 벗어도 돼. 아무도 못 봐.”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이내 느릿하게 후드를 뒤로 젖혔다.
몸을 살짝 틀자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차분히 내려앉은 잿빛 머리칼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이마의 흉터.
조금 처진 눈매와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 눈동자, 그리고 굳게 다물린 입술.
커다랗고 단단한 몸과 달리, 전부 여문 지금도 어딘가 앳되고 순한 기색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잿빛 머리칼 위에서 얌전히 누워 쫑긋거리고 있는 짙은 회색의 귀 한 쌍이다.
사람의 것과는 다른 귀는 보드라워 보이는 털로 덮여 있었다.
내가 오늘 유르젠과 함께 만나려고 했던 사람이자, 온전히 내게 속한 이.
그는 수인(獸人)이었으므로.
***
내가 처음 테인을 만났던 것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4년 전 겨울이었다.
유르젠을 만난 지는 반년이 지났던 시간. 본격적으로 내 계획을 실행하고 있던 때였다.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함박눈에 길거리는 사람들이 터뜨리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깊은 지하에서 오늘이 어떤 날인지, 바깥의 풍경은 어떠한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이곳에 가시는 겁니까? ……여기는 아가씨가 가실 만한 곳이 아닌데요.”
우리가 가는 곳의 이름을 들은 유르젠의 떨떠름한 말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가려는 곳은 격투장으로 사람의 목숨이 파리보다 가벼운 곳이었다.
물론 나 역시 이런 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공개적으로 처벌을 내릴 힘을 갖지 못한 지금은 더더욱.
“아가씨가 보시기에는 잔인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라고요.”
“나도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야. 거기서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오늘이 아니면 데려오지 못하니까.
뒷말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결국 나와 유르젠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평범해 보이는 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열넷에 불과해 작은 내 몸은 일회용 아티팩트를 이용해 일시적으로 키운 채였다.
물론 내 얼굴을 그대로 비칠 수는 없어 유르젠과 내 얼굴 모두에 환영 마법을 걸어 두었다.
아마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나와 전혀 다른, 평범한 성인의 모습으로 비칠 테지.
“어서 옵쇼! 두 분이십니까?”
우리가 들어온 가게는 평범한 식당처럼 보였다.
여느 곳과 다름없이 연말 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런 곳.
주인의 물음에 내 옆에 있던 유르젠이 아무 말 없이 새까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흐음. 잠시 보겠습니다.”
그 종이를 받아 든 주인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위에 종이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까만 카드 위에 하얀 글씨가 떠올랐다.
“어이쿠, 귀한 손님이셨군요!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다시 우리에게 카드를 내밀고는 능청을 떠는 남자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중간중간 횃불이 자리하고 있는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했다.
“이리로 쭉 내려가시면 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깍듯이 고개를 숙인 남자가 문을 닫았다.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군요.”
계단을 스무 개쯤 내려왔을까, 유르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새까만 카드를 확인한 것 외에 다른 확인 작업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 카드에는 마법이 새겨져 있으니까. 매번 다른 문구를 새겨서 조작도 불가능할뿐더러, 저 반지가 아니면 마법으로 새겨진 글자를 볼 수도 없지.”
“그럼 저희가 가져온 이 초대장은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그거? 당연히 가짜지. 내가 만든 거야.”
“……예? 방금까진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나는 돼. 그러니까 들킬 걱정은 말고 화나도 참을 걱정이나 해.”
그 후로 얼마나 더 계단을 내려갔을까.
우리는 드디어 도착한 계단의 끝에 자리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지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어느 지하 공간.
천박하리만치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와 관객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우리를 안내한 것은 단정한 웨이터복을 입은 남자였다.
“여기 팻말입니다. 그리고 이 종은 필요하신 게 있으실 때 흔들어 주십시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직원은 이곳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빛이 한군데로 집중됐다.
그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관중석과 비슷한 눈높이의 공중에 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 남자는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팔을 펼쳤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올해의 마지막 날에도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오늘도 화끈하게 해 달라고!”
“어이쿠! 언제 저희 가게에서 실망하신 적이 있습니까? 늘 그렇듯이 오늘도 즐겁게 모시지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회자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림잡아 일이백쯤 되는 관중들은 사회자와 같이 저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그런 이들의 옷차림은 모두 고급스러웠다. 한눈에 보아도 돈과 지위가 꽤 있을 법한 차림.
절대 평민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그런 이들이 가면무도회도 아닌 이곳에서 얼굴을 가린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자, 그럼 격투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정체가 드러나면 곤란한 곳이니까.
범죄자가 제 얼굴을 가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박할 정도로 환하게 무대를 비추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크르르-
곧이어 무언가가 낮게 목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굶주린 짐승의 그것과 흡사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바로 밝은 빛이 무대를 비추었다.
“하하! 오늘은 시작부터 화끈한데!”
한 사람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빛이 비추어진 무대에는 성인 남성만 한 몸집의 늑대 한 마리가 족쇄에 묶인 채로 날뛰고 있었다.
초점이 반쯤 사라진 눈동자와 침이 질질 흐르는 주둥이는, 현재 그 늑대가 심히 굶주린 상태라는 것을 나타냈다.
하루 이틀 정도가 아니라 굶주림에 정신이 나가 버릴 만큼 오래 굶긴 게 틀림없었다.
“이 포악한 놈을 잡느라 저희도 꽤나 고생했답니다. 오늘의 포문을 열기로는 적합하지 않습니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회자의 말에 관중들이 동조했다.
“그럼 포식자가 나왔으니 이를 상대할 전사도 있어야 재미가 있지요.”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맞은편 무대에 빛이 비추어졌다.
그곳에는 자루에 얼굴이 가려진, 앳된 실루엣의 사람이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하고 서 있었다.
눈이 가려져 있어도 이 살벌한 소리는 그대로 들리는 탓일 테지.
잠시 후,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자루가 벗겨졌다.
‘……미친놈들.’
그리고 드러난 얼굴에 나는 욕을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삼각형 모양의 동물 귀가 달려 있는 머리와 꼬리가 달려 있는 엉덩이 부근.
자루 속에서 드러난 이의 정체는 고양이 수인이었다.
토기가 치밀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고양이 수인은 맞은편에서 으르렁대는 늑대를 바라보고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무리 인간보다 신체 조건이 좋은 수인이라고 해도 저렇게 커다란 늑대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어진 장면은 일방적이었다. 애써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지만, 들려오는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역겨운 새끼들.”
나는 나직하게 욕을 짓씹었다.
오늘만 몇 번을 느끼는지 모를 무력감이 다시 몰려왔다.
이런 장면을 보고자 이곳에 모인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역겨운지, 그들 자신은 모르겠지.
저들 중 단 하나라도 자신이 저 상황에 던져졌을 때 지금처럼 웃을 수 있는 놈이 있을까.
“어이쿠, 죽이는 건 안 되지.”
사회자가 가볍게 딱, 소리를 내자 늑대의 목에 걸려 있던 족쇄가 팽팽해지며 강한 힘으로 늑대를 끌어당겼다.
늑대가 발버둥을 치면서 저항했지만 늑대는 이내 열린 무대의 벽 안쪽으로 사라졌다.
사회자는 기절한 수인을 짐짝 치우듯 안쪽으로 치우라 명한 뒤 유쾌한 목소리로 다음 진행을 알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