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3)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53화(53/218)
“뭐, 내 위에 있는 그쪽이 진짜 신사라면 남의 물건을 뺏는 짓은 하지 않겠지.”
순간 토끼 가면의 움직임이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미동 없이 멈추었다.
내 앞에 있는 토끼 사내는 이곳의 주인이 다루는 수많은 인형 중 하나다.
그를 조종하는 건 천장 위의 틈에 있는 진짜 사람. 다른 말로는 본체라고 해도 되겠지.
그렇게 이상한 공기가 흐르기를 잠시.
“하, 하하! 하하하!”
토끼 가면이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웃기 시작했다.
그 괴상한 장면에 뒤에 선 유르젠이 잠시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같지 않은 각도로 몸을 뒤틀며 웃어 대는 토끼 가면의 모습은 꿈에 나올까 봐 무서운 모양새였으니까.
나는 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감으며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지치려고 하는데. 얼른 용건이나 해치우자고. 네 진짜 모습은 나도 별로 궁금하지 않아.”
“하하하! 그래, 그러도록 할까요?”
그제야 웃음을 그친 토끼 가면이 가죽 주머니의 겉을 두어 번 살폈다.
그러고는 천천히 주머니 입구를 당겨 열기 시작했다.
‘후. 오기 전에 진정 효과가 있는 차를 왕창 마시고 와서 다행이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떨리려는 손을 팔짱을 껴 숨겼다.
지금은 저렇게 만만해 보이는 토끼 가면이지만, 저자의 실력은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미친 격투장을 운영하는 놈이었으니 제정신일 가능성도 없고.
“이건…….”
주머니 안을 본 토끼 가면이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두운 주머니 안에서도 영롱하게 빛나는 구체는 일단 겉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귀한 물건처럼 보이니까.
‘저 인간도 슬슬 물건의 정체를 알아차리겠지.’
아니나 다를까, 마물의 핵을 조심스레 집어 들고 꺼낸 토끼 가면이 그대로 몸을 굳혔다.
보석처럼 보이는 것에서 기이한 마력을 느낀 탓일 것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달빛 아래에 한 번 비추어 보든가.”
내가 건넨 말에도 그는 홀린 듯한 눈으로 제 손에 든 물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도 이 물건이 제가 애타게 찾던 것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었다.
저 마물의 핵을 구분해 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달빛에 비추어 보는 거지만 특별한 아티팩트를 이용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반응을 보니 아마 그런 아티팩트를 지금 지니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쪽한테 보여 준 내 패는 마음에 들어?”
“……어디서 구하셨는지요?”
내 질문을 들은 토끼 가면은 도리어 내게 되물었다.
‘지금부터는 절대 밀리면 안 돼.’
나는 자연스럽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우선 내 질문에 답부터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거면 내가 지불할 대가로는 충분할 것 같거든.”
아까부터 계속해서 취해 온 고압적이고 오만한 태도였다.
이런 곳에서 만만하게 보인다는 것은 좋지 않았으니까.
일부러라도 싸가지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게 더 나았다.
“이것과 교환하길 원하는 게 늑대 수인인가요?”
“맞아. 그쪽은 그걸 가지고 나는 늑대를 가지고. 꽤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당연하게도 내게 백배는 유리한 거래다.
저자가 애타게 찾던 저 마물의 핵은 알려진 것과 달리 주인을 잡아먹는 징글징글한 놈이었으니까.
아마도 반년 안에 미쳐 버릴 테지.
하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고, 알려 줄 생각도 없었다.
내 말에 토끼 가면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희귀한 늑대 수인의 가치도 높은 만큼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삼 년간 애타게 찾아온 물건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지.’
입속이 바짝바짝 말라 가는 기분에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침을 삼켰다.
그럴 확률은 낮지만, 만약 저놈이 먼저 공격을 가한다면 평화롭게는 해결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토끼 가면의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다 식은 홍차를 한 모금 더 머금었다.
“……좋습니다.”
그 순간 튀어나온 대답에 나는 허물어지려는 표정을 다잡아야 했다.
‘생각보다 쉽게 수락하네?’
***
“그럼 우선 늑대 수인에게 가 보도록 할까요.”
토끼 가면이 옆에 놓아두었던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아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눈앞이 흐려졌다.
이곳에도 테인이 있는 곳과 연결된 마법진이 설치된 모양이지.
“자, 도착했습니다.”
마법진의 도움을 받아 이동한 곳은 답답한 지하였다.
빛이라고는 몇 있는 조명석이 전부인 길쭉한 지하 공간.
작은 창문이 달린 문으로 분리된, 방으로 보이는 공간 안에는 아까 보았던 수인들이 하나 혹은 둘씩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개X끼들.’
나는 치미는 욕을 삼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다.
조금만 신경을 놓는다면 곧장 얼굴이 왈칵 일그러질 게 뻔했으니까.
‘그랬다가는 이 망할 놈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테인을 아는 티를 내거나 조금이라도 소중히 여긴다 싶으면 금세 돌변할 게 뻔했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토끼 가면 뒤를 따라 걸었다.
길다고 생각했던 지하 공간은 생각보다 더 넓었다.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인들은 몸을 작게 웅크리고 최대한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두려운 것을 피해 숨는 것과 같아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수십 명은 가뿐히 넘는 수인 중 내가 구해 낼 수 있는 건, 테인뿐이었다.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죄스러웠다.
“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잠시를 더 걸었을까.
토끼 가면이 어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
그곳에는 아까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 보이는 테인이 웅크려 있었다.
테인이 들어가 있는 문에서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도망치지 못하게 마법을 새긴 것 같았다.
‘……테인.’
나는 느릿하게 시선을 옮겨 테인을 바라보았다.
‘아직 상처를 치료도 하지 않았잖아…….’
이쪽에서 몸을 돌린 상태로 웅크린 테인의 등은 얼룩져있었다.
나는 치미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짜증이 스민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여기는 치료도 안 하나? 저러다 내가 데리고 가기도 전에 죽으면 어떡할 거야. 써먹기도 전에 죽으면 그쪽이 책임질 건가?”
내가 뭐 때문에 그런 귀한 걸 주면서 늑대를 사 가는데.
나는 초조한 속내를 감추고 일부러 그저 테인의 종에만 관심이 있다는 듯 굴었다.
“이런 이런. 아직 치료를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하, 저희 직원들이 영 꼼꼼하지가 못해서요.”
몇 번 주의를 줬는데도 그러네요.
그런 내 태도에 토끼 가면은 양손을 들어 보이며 유들거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아직 치료를 하지 않기는 개뿔.’
처음부터 할 생각 자체가 없었겠지.
치료 포션은 중급만 되어도 그 가격이 제법 나갔고, 저런 중상을 치료하려면 적어도 중급 포션 대여섯은 필요했다.
‘포션값이 아까워서 치료도 안 했겠지.’
예상은 했다지만 더 화가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수인들은 워낙 회복력이 좋아 금세 낫는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뭐, 그건 알고 있어. 그럼 여기서 거래는 끝낼까? 그쪽이나 나나 한가하진 않잖아, 안 그래?”
“그러도록 하지요.”
내 말에 킬킬거리며 웃은 토끼 가면이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열었다.
기절한 모양인지 테인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상태가 심각하네. 얼른 가야겠어.’
좋지 않은 상태의 테인을 보자 점점 더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천천히 회복하고 있겠지만 흘린 피가 너무 많아 보여서 걱정이 되었다.
“네가 챙겨.”
아까부터 묵묵히 내 뒤에 서 있던 유르젠에게 고개를 까닥인 나는 품 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어 토끼 가면에게 건넸다.
“그럼 이걸로 거래는 끝이군.”
“가실 때는 어떻게 가실는지요?”
“이동 마법은 그쪽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말을 마친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나와 유르젠,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테인의 몸이 밝게 빛나더니 이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하하. 제 생각보다 더 실력이…….”
미처 다 끝내지 못한 토끼 가면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눈을 뜨자 그 불쾌했던 공간과 달리 깔끔한 방 안이 보였다.
“……집무실이군요.”
“응, 마법이 아니라 아티팩트로 온 거라서……. 그보다 얼른 치료 포션부터 꺼내 봐.”
나는 유지하고 있던 고압적인 태도를 저 멀리 버린 채 서둘러 테인의 상태를 살폈다.
소파가 피로 젖어 들어 갔지만 그것을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소파에 누운 채로 밭은 숨을 색색 내쉬는 테인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로 유약해 보였다.
“상급 포션을 쓰는 게 낫겠습니다.”
“응, 그러자.”
유르젠이 품 안에서 상급 치료 포션을 꺼내어 내밀었다.
“미안, 조금 아플 수도 있어.”
나는 의식이 없어 보이는 테인에게 작게 속삭였다.
퐁-
그러고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포션 뚜껑을 열어 곧바로 테인의 등에 쏟아부었다.
포션과 상처가 만나자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가는 게 육안으로도 보였다.
아물어 가던 상처는 어느 정도 살이 붙자 회복을 멈추었다.
“지금 있는 포션으로 다 되려나.”
나는 빈 병을 바닥에 내려 두고 새로운 포션을 또 뜯었다.
그 후로 상급 포션 하나, 중급 포션 세 개를 더 썼다.
그러고 나서야 테인의 전신에 난 상처를 전부 치료할 수 있었다.
“휴……. 이제 숨 좀 돌릴 수 있겠네.”
치료를 마친 테인을 바라보자 어쩐지 아까보다 얼굴이 조금 더 편하게 풀어진 것도 같았다.
“미안, 유르젠. 소파는 내가 꼭 새로 사 줄게.”
그제야 더러워진 소파가 눈에 들어온 나는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깔끔한 걸 좋아하는 유르젠에게 지금 이 상황은 별로 달갑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됐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유르젠은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제 미간을 문지르며 대꾸했다.
“헤헤. 미안하다는 건 진심이야.”
“압니다. 그보다 이 아이는 제가 씻겨서 침대에 눕혀 둘 테니 아가씨는 얼른 돌아가 보십시오.”
“응? 나 조금 더 있다 가도 되는데.”
가족들과 사용인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나오기도 했고, 나와 똑같이 생긴 환영도 만들어 두고 왔으니까.
“어린이는 잘 시간입니다.”
“참나. 어린애로 보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만 어린이래.”
유르젠의 대답에 퉁명스레 중얼거리기는 했으나, 내가 이곳에서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테인도 치료를 해 두었으니 쌓인 피로를 풀고 나면 자연스럽게 눈을 뜰 테고.
“알았어. 그럼 나 내일 다시 올게.”
“그게 좋겠군요.”
유르젠에게 인사를 건넨 나는 다시 한번 테인의 상태를 확인한 후 텔레포트를 사용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나와 테인이 처음 만났던 날의, 유르젠과 나만 기억하는 과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