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58화(58/218)
“릴리가 자기가 직접 만든 걸 보냈으니 되돌려 보낼 생각 말래.”
내가 간략히 읊어 준 편지 내용에 메리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릴리 아가씨는 장신구 만드는 솜씨가 꽤 좋으셨죠.”
“맞아. 레미안 백작가는 대대로 보석 광산을 여러 개 가진 가문이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보석 세공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했었지.”
그래서 내가 북부에 있을 때도 생일이 되면 일주일 동안 공방에 틀어박혀 만든 거라며 제가 만든 장신구를 주곤 했다.
그런 릴리의 장신구는 다른 장인의 장신구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귀걸이는 유난히 더 화려하네요? 평소에 착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겠어요.”
“으음. 메리가 봐도 그렇지?”
“네에. 팔찌는 괜찮은 것 같지만 유난히 귀걸이가 화려해서…….”
메리의 말마따나 릴리가 보낸 귀걸이는 평소에 착용하기에는 과한 감이 있었다.
마치 파티나 무도회에 하고 가면 적당할 듯한 모양새였다.
“음, 메리, 혹시 릴리가 수도로 올 일이 있을까?”
“네? 으음. 레미안 백작 부인께서 결사반대하실 것 같은데요…….”
메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
“역시 그렇지? 릴리가 온다고 하면 레미안 부인이 뜯어말리겠지.”
나는 메리의 답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릴리가 저도 나를 따라 수도에 가고 싶다고 했다가 일주일간 백작 부인과 냉전을 치렀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아가씨?”
“으응, 아냐. 편지에 좀 모호한 말이 적혀 있어서. 그보다 혹시 이틀 후에 아무 일정도 없지?”
“이틀 후면 별다른 일 없어요. 케이론 백작 부인의 수업은 끝났으니까요.”
내 물음에 메리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엠마가 돌아간다고 했던 게 나흘 뒤였지?”
엠마는 내 데뷔탕트 무도회 준비를 돕기 위해 함께 왔고, 지금은 수도에 있는 친정에서 머물고 있었다.
“네. 케이론 백작님께서 밤마다 통신구로 연락해서 우셔서 이제는 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메리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묻어났다.
내 선생님으로 온 엠마는 메리를 퍽 귀여워하는 편이었고, 메리도 유쾌한 엠마를 좋아했다.
가끔 엠마가 메리와 키득거리고 있더라니. 그런 얘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아하하. 정말? 그럼 그 전에 엠마도 한번 보러 가야겠네.”
“그럼 엠마 님께 기별을 넣어 둘까요?”
“응, 부탁할게. 사흘 뒤에 시간이 되는지 물어봐 줘.”
엠마에게 기별을 보내기 위해 메리가 나간 후, 나는 편지지 두 장과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일단 후작님께 먼저 편지를 보내야겠다.”
평범한 인사말로 편지를 시작한 나는 금세 한 장의 답장을 완성했다.
당연하게도 수락의 답이었다.
세이안은 의외로 단것을 좋아했는데, 그건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그래서 비센테 저택에 갔을 때 디저트가 엄청 맛있었지.
“흐음. 그럼 점심 먹고는 오라버니가 알려 준 그 가게에 가야겠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세이안에게 보낼 편지를 옆으로 밀어 두고 노란 편지지를 내 앞으로 당겨 왔다.
이건 노란색을 좋아하는 릴리에게 보낼 편지였다.
고맙다는 인사와 북부는 아직 추우니 따듯하게 입고 다니라는 걱정, 그리고 나도 보고 싶다는 말로 편지를 끝맺었다.
이어서 촛불을 켜고 색이 들어간 양초를 녹인 다음 편지 봉투 위로 두세 방울을 떨어뜨렸다.
촛농이 굳기 전에 스탬프로 꾹 누르자 동그랗고 예쁜 모양이 완성되었다.
“이따가 보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으으. 팔을 쭉쭉 펴 스트레칭을 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골칫덩이 아티팩트를 만들러 가 볼까.”
내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 흑마법 구분용 아티팩트는 데뷔탕트까지 이 주가 조금 안 되게 남은 지금 마지막 단계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완성했는데 효과가 없으면 진짜 화날 것 같은데.
그 아티팩트에 들인 시간만 해도 벌써 이 주가 넘었다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착실히 작업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이틀 후 아침.
“아가씨, 밖에 비센테 후작님이 도착하셨어요!”
문밖에서 메리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응! 금방 나갈게!”
외출할 준비를 마친 후 책상에 앉아 있던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겉옷은 필요 없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오늘따라 유난히 봄 날씨에 가깝게 화창한 바깥을 한번 바라본 나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런데 벌써 열한 시가 다 된 거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아가씨는 책 읽고 계시면 해가 지는 것도 모르시잖아요.”
“아하하. 미안, 마릴린.”
그런 습관 탓에 북부에서 마릴린이 나를 찾아다니느라 고생을 좀 했었지.
마릴린의 솔직한 말에 나는 짧은 웃음을 흘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어, 아버지랑 오라버니잖아.”
커다란 저택답게 긴 계단을 반쯤 내려왔을까, 현관 앞에 서 있는 아버지와 에일런이 보였다.
“아버지, 오라버니!”
후다닥 마저 계단을 내려와 그쪽으로 걸어가자 두 사람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버지와 에일런 둘 다 외출복 차림인 걸 보니 어딘가 나가는 모양이었다.
“두 분도 어디 가세요?”
“그래. 잠시 황궁에 가려던 참이다.”
“에리타 너는 외숙부님과 점심 먹으러 간다고 했지?”
아버지의 답과 에일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후작님이 도착했다고 하셔서요.”
“그래. 가서 재미있게 놀다 오려무나.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세이안에게 편히 말하고.”
“아하하. 그럴게요!”
나는 아버지의 말에 작게 웃었다.
‘물론 진짜 사 달라고 할 마음은 없지만.’
나도 돈이라면 어디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많기도 했고, 그리고 세이안에게서는 워낙 뭔가를 많이 받은 터라 더 받고 싶지도 않았다.
‘저번 같은 산더미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단 말이지.’
“그럼 다녀올게요!”
“어차피 우리도 나가야 하니 같이 가자꾸나.”
“그럴까요?”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테르반도 쉬고 있어요.”
테르반의 인사에 손을 살랑살랑 흔든 나는 아버지와 에일런의 팔짱을 끼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 바로 앞에는 마차 두 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는 우리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마차였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문양도 없는 화려한 마차였다.
그리고 화려한 마차 앞에는 밀짚색 머리를 하나로 묶고 멋지게 차려입은 세이안이 서 있었다.
“에리타!”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세이안이 나를 발견하고는 특유의 순진하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후작님.”
나는 잡고 있던 아버지와 에일런의 팔을 살포시 놓고 세이안의 앞으로 종종 걸어갔다.
“잠은 잘 잤니? 오늘 같이 가겠다고 해 줘서 고마워.”
“저도 후작님이랑 만나는 거 좋아하는걸요.”
수줍은 듯 하하 웃는 세이안의 모습에 나도 살풋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우리의 옆으로 아버지와 에일런이 다가왔다.
“세이안,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구나.”
“죄송합니다, 아슬란 님. 제가 조금 들뜬 바람에…….”
어색하게 제 볼을 긁적이며 세이안이 실없이 웃자 아버지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되었으니 얼른 가 보거라.”
“그럼 오늘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에일런 너도 나중에 보자꾸나.”
아버지가 손을 내젓자 세이안이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마부에게 손짓을 하고 직접 마차 문을 여는 세이안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말 속이 훤하다니까.’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두 분도 조심히 다녀오세요!”
“이따 집에서 봐.”
아버지와 에일런을 향해 손을 흔든 나는 세이안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해 주게.”
세이안의 말과 함께 두 마리의 말이 다각다각,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하자 창문 너머로 보이던 두 사람의 모습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때, 맞은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세이안을 바라보자 그는 어디에 숨겨 놨었는지 꽤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 꽃다발은…….”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리자 세이안이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내게 내밀었다.
“제게 주시는 거예요?”
내 물음에 세이안이 시선을 슬쩍 꽃다발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선물은 싫다고 해서……. 꽃이라면 괜찮을까 싶어서 준비했어.”
저번 만남에서 더 이상 선물은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던 내 말에 오늘은 꽃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멋지게 차려입고는 꽃을 선물하는 미남이라니.
“꽃이 정말 예뻐요! 감사히 받을게요.”
나는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조심스레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비싼 선물도 아니고, 나를 생각해서 준비한 꽃다발이 싫을 리 없었다.
퍼져 나오기 시작한 향긋한 꽃 냄새가 마차 내부를 살며시 감쌌다.
“와아. 이건 처음 보는 꽃인데.”
꽃다발은 파스텔 톤 하늘색, 분홍색, 그리고 보라색의 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외국에 갔을 때 들여온 꽃이야. 저택에서 기르던 건데, 에리타 네가 왔을 때는 아직 활짝 피지 않았었거든.”
“그렇구나. 후작님은 다른 나라를 많이 다니셨다고 했죠?”
“응.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남쪽에 있는 작은 제도에 있었어.”
“남쪽은 지금도 여름 날씨라고 하던데.”
내가 잠시 책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리자 세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제국 남부만 해도 늘 여름 날씨니까.”
“저도 다음에 한번 가 보고 싶네요. 북부는 너무 추웠거든요.”
나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꽃다발을 매만졌다.
“그럼…….”
세이안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때였다.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춰 섬과 동시에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내리자.”
세이안에게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그는 순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음. 뭔가 중요한 말 같기도 했는데.’
하지만 세이안은 다시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중요한 말이면 나중에 얘기해 주겠지.’
가볍게 넘기기로 한 나는 꽃을 마차 좌석에 잘 놓아두고 세이안을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거리의 풍경이 보였다.
세이안이 내민 팔을 자연스럽게 붙잡은 나는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은 예약해 뒀는데 지금 가도 괜찮겠니?”
“그럼요. 그런데 어떤 식당이에요? 아버지도 어딘지 아시는 눈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