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6화(6/218)
내가 식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빠르게 정돈된 테이블 위에는 달콤한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색색의 마카롱, 꾸덕꾸덕한 치즈케이크, 거기다 새하얀 생크림 위에 새빨간 딸기가 놓인 케이크도 있고 시원한 파르페도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고운 색의 디저트들에 나는 애써 신난 기색을 감추었다.
하지만 얼굴이 풀리는 것은 막지 못했는지, 아버지가 픽 웃었다.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네?”
“배슬배슬 웃으며 보기에 한 말이다.”
……그렇게 티가 났나?
나는 슬며시 벌려졌던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이곳에 오고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라 나도 모르게 들떴나 보다.
전생에서도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나는 달콤한 것을 꽤 좋아했다.
특히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서 가끔 생일 파티에 케이크를 보내 주셨을 때는 내 생일보다 더 행복했었다.
달콤한 걸 먹으면 내 인생도 그처럼 달고 행복해질 것 같아서 그랬을까.
민망함에 일부러 뒤쪽에 걸린 그림만 빤히 바라보고 있자 낮게 웃은 아버지가 접시들을 죄다 내 앞으로 밀어 주었다.
“전부 네 것이니 마음껏 먹거라.”
그 말에 어색하게 웃은 나는 조심스레 포크를 집어 들었다.
‘민망하긴 하지만 굳이 안 먹을 필요는 없잖아.’
고기를 잔뜩 먹어 부른 배였지만 디저트를 넣을 공간은 충분히 있었다.
‘원래 밥 배랑 디저트 배는 따로라고 했으니까.’
나는 부드러운 생크림케이크를 작게 조각냈다.
“……!”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 케이크는 여태껏 내가 먹어 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생각보다 더 맛있는 케이크에 어느새 반절 이상을 먹어 치웠을까.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건 세르비아를 똑 닮았구나.”
어딘가 그리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뱉어진 말에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세르비아 크로바하츠.
아슬란과 결혼하기 전의 이름은 세르비아 비센테.
그녀는 비센테 후작가의 차녀로, 아슬란의 아내이자 에리타의 엄마였던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포악한 대공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이.
세르비아에 대한 건 원작에서도 간단한 서술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상할 정도로 악역에 대한 서사가 없다시피 했었으니까.
“세르비아, 그러니까 네 엄마는 단것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좋아했거든.”
“……엄마.”
평생 입 밖으로 내어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단어를 입 안에서 한 번 굴려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그 단어가 내게는 너무도 어색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이 싫지는 않았다. 익숙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르비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말해 줘도 되겠느냐. ……세르비아에 대해서.”
내 궁금함을 알았는지 들려온 질문에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멈칫한 게 내겐 기억도 없을 엄마이기 때문이라면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었다.
비록 진짜 엄마는 아닐지라도 알고 싶었다.
느릿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아버지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어졌다.
“세르비아는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환하게 웃을 때 둥글게 휘어지는 눈매가 어여뻤지.”
“…….”
“나와는 다르게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말을 잇던 아버지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양.
마치 세르비아를 사랑했던 그의 모습을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후작가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사용인들까지 챙기는 착한 사람이었어.”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머릿속으로 천천히 세르비아의 모습을 그려 냈다.
다정하게 웃는 얼굴이, 둥글게 휘어지는 눈꼬리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을 사람.
“그런데 너를 가졌을 때, 세르비아가 자다 말고 자꾸 뒤척이더구나. 왜 그러냐 물었더니 후작가 주방장이 만든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더군.”
“…….”
“하지만 새벽에 움직이는 건 세르비아에게 무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날이 밝으면 가자고 했었지.”
말을 잇던 그는 그때가 생각난 것인지 낮게 웃었다. 꼭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듯 흐릿한 미소였다.
“하여튼 세르비아가 원한 답은 그게 아니었는지, 그 후로 사흘 동안 아는 척도 하지 않더구나.”
“……엄마, 가요?”
“그래. 나는 세르비아가 그리 심통이 난 걸 처음 봤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었거든.”
처음?
순간 의문이 들었으나 굳이 말을 끊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그 후로 디저트를 먹을 때마다 꼭 내게도 먹이더구나. 원래는 주지 않았는데 말이야.”
“아…….”
“그때의 장난스러웠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
추억을 되짚는 아버지의 얼굴에 서린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천천히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나는 세르비아의 모습을 완성해 갔다.
다정하고 어여쁜 얼굴에 장난기가 서려 있는, 에리타를 사랑했을 세르비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따뜻하고 다정했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안에 선명히 자리 잡은 세르비아의 모습은 아버지의 말대로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웠고, 그 누구보다 에리타를 사랑했으니까.
***
“푹 자거라.”
내 머리를 가볍게 쓸어 준 아버지가 조용히 방을 나섰다.
탁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완전히 닫히자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나긋한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는 눈이 가물가물 감겼는데 아버지가 나가고 나니 다시금 정신이 말똥해졌다.
“아까 낮잠을 자서 그런가?”
이대로 누워서 눈을 감고 있어 봤자 금세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디저트를 먹으며 세르비아에 대해 들은 후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나는 흐물흐물해진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아까 잠들었던 탓에 시간이 조금 애매했으나 폭신폭신한 침대의 유혹은 아주 강했다.
“침대 완전 비싸겠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지금도 잠은 오지 않지만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뽀송한 시트에 기분이 좋아져 괜히 팔다리를 휘적휘적해 본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아까 들은 말을 떠올렸다.
포근한 솜이불 위를 토닥여 주던 아버지가 조심스레 꺼낸 말이었다.
‘네게 알려 줘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는 곧 대공령, 그러니까 진짜 집으로 갈 거란다.’
‘대공령요?’
‘그래. 아까는 미처 사실대로 알려 주지 못했지만 백작은 너를 데려오기 위해 잠시 빌렸던 지위다. 본래는 대공이란다.’
‘대공…….’
물론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나는 처음 들은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속이는 기분이 들어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작을 읽어서 애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놀랐다면 미안하구나. 하지만 그리 다른 것은 없어.’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에 난처해하는 얼굴을 하더니 어색한 사과를 건넸다.
백작이랑 대공의 다른 점을 서술하라면 수백 가지도 나올 듯싶었지만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는 그의 신분보다도 집으로 간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으니까.
‘근데 아무리 봐도 원작 속의 그 잔인한 대공이랑은 엄청 다르단 말이야…….’
피 냄새가 떠나질 않는다던 소설 속의 묘사와는 달리 아버지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만 났었지.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잔혹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빠라는 말에 그저 너무 좋게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내 직감은 그게 아니라고 외쳤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들은 다른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음, 그리고 말이다. 대공령으로 돌아가면 내 아들이 있을 거란다. 이름은 에일런 크로바하츠. ……네 오빠도 널 많이 좋아했어.’
에일런 크로바하츠.
대공의 후계자이자 에리타의 오라버니였다.
그리고 아슬란과 함께 죽은 원작의 악역.
‘모를 리가 없지.’
나는 아슬란을 똑 닮아 새까만 머리칼에 피처럼 붉은 적안을 가졌다는 에일런의 서술을 떠올렸다.
사실 아직까지도 얼떨떨했다.
원작에 나오지 않아 그저 엑스트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슬란 크로바하츠의 잃어버렸던 딸이라니. 거기다 에일런의 동생이고.
고아인 줄 알았던 내가 제국에 유일한 대공가의 막내딸이었다는 사실은 단시간에 받아들이고 실감하기에는 너무 큰 사실인 게 맞았다.
‘완전 한국에서 유행했던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잖아.’
고아로 자랐는데 결국 재벌가의 딸인 게 밝혀지는 그런 스토리.
그 생각을 떠올리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빙의하게 된 이유는 아무리 내가 머리를 쥐어짜 내어 봤자 알 수 없겠지.’
어쩌다 이 이야기 속에 빙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존재로 인해 원작이 비틀린 건 확실했다.
리타로 살고 있던 에리타 크로바하츠의 존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아니, 어릴 때 잃어버린 딸이 있다고 딱 한 줄 있던가?
이건 내 짐작이지만 에리타가 원작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내가 이 몸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죽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1년 전, 에리타의 몸에 빙의한 당시에 나는 아주 호되게 앓았다.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닌 병이었을지도 모른다. 치료를 받지 못해서 그렇게 아팠을 수도 있으니까.
상황 파악을 할 새도 없이 온몸을 뒤덮는 열병에 울면서 닫힌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적막뿐이었다.
‘정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지…….’
하루에 한 번 열리는 문 사이로 놓이는 물과 오래되어 다 말라 버린 빵만이 유일하게 내게 주어지는 음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일주일을 꼬박 앓고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에리타는 그때 죽어 가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본 아이의 마른 몸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나는 가만히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는 몸은 내 것이 아니다.
“……1년만 더 버티지.”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널 이렇게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너는 버림받은 게 아니었어.
넌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아이였어, 에리타.
나는 작고 여렸을 아이의 영혼이 편히 쉬고 있기를,
그리고 그곳에서는 꼭 세르비아와 만났기를 빌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미안하니까.’
내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이기적인 바람일 수도 있었다.
에리타의 자리를 가로챈 내가 하기에는 위선적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정말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아슬란에게서 느낀 온기를 그 아이 역시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가족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던 아이의 마음을 알아서.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에리타가 겪었을 슬픔을 이해하고 있는 나였기에.
“네 행복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빌릴게.”
그랬기에 매일 그리도 빌고 빌었던 따뜻한 손길을, 한없는 사랑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기적이게도 에리타의 몫을 가로챘다는 부채감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조금 더 컸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나는 다짐했다.
네가 사랑했을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미래를 꼭 바꾸겠다고.
악역으로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 결말만큼은 꼭 막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죄책감과 행복감을 번갈아 느끼던 나는 어느새 감기는 눈을 따라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