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60화(60/218)
마주친 건 아침에 일이 있다며 나갔던 아버지였다.
“아버지, 오늘 늦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선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에일런과 같이 나가면서 밤쯤에나 돌아올 것 같다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서 말이다. ……그보다 볼이 차구나.”
여상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 아버지가 내 볼에 손등을 가져다 대더니, 살짝 서늘한 온도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 잠깐 밖에 서 있었더니 그런가 봐요.”
나는 배시시 웃으며 내 볼을 두어 번 문질렀다.
차가울 정도는 아니지만 냉기가 어느 정도 묻어 있긴 했다.
팔을 움직이자 내 품에 안겨 있던 꽃다발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시선도 그 꽃으로 향했다.
“그 꽃다발은 세이안 녀석이 준 건가?”
“아, 이거요? 아까 아침에 마차에서 주셨는데, 예쁘지 않아요? 이따가 방에 장식해 두려구요.”
나는 꽃다발을 살짝 흔들어 보이며 눈꼬리를 접었다.
깨끗한 물에 꽂아 두면 일주일 정도는 살아 있을 거라고 했으니 방에 장식해 두기에도 적당했다.
“네게 주기 위해 열심히 가꾸고 있는 게 있다더니. 어찌 꽃을 잘 틔운 모양이군.”
“후작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 선물 대신에 줄 꽃을 기르고 있다고 하던데. 녀석도 참 지극정성이야.”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미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내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나는 그 말에 괜히 실없이 웃었다.
부스럭거리며 수줍은 얼굴로 꽃다발을 내밀던 세이안이 생각난 탓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세이안은 여러모로 다정한 것 같단 말이야.’
물론 아버지나 에일런도 다정하지만…… 세이안은 기본적으로 더 섬세한 성격이랄까.
‘아무리 내 가족이지만 두 사람이 섬세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갑자기 허구한 날 아버지가 너무 무심하다며 하소연을 해 대는 페른이 떠올라 속으로 잠시 웃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함께 나갔던 에일런이 없네.
나는 내 옆에서 걷고 있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래.”
“오라버니는 아직 집에 안 오신 것 같은데. 같이 오신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일런은 할 일이 조금 남아서 늦게 들어올 것 같구나.”
“그렇구나…….”
나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근래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따라 에일런이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많이 바쁘냐고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하고.’
아침이나 점심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보통 저녁 식사는 다 함께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저녁 식사 때도 에일런을 보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이틀에 한 번꼴로 얼굴을 보곤 했으니까.
물론 에일런도 바쁘다는 사실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이 년간 떨어져 있던 오라버니를 자주 보지 못하는 건 꽤 서운한 일이었다.
“이런. 에일런이 바빠서 서운한 모양이로구나.”
그런 섭섭한 기분이 얼굴에 드러난 건지, 아버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조금만 있으면 다시 한가해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의 팔 위에 얹어진 내 손을 살살 두드려 주었다.
“꼭 그런 건 아닌데…….”
왜인지 투정을 부리는 아이가 된 기분에 그제야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 보았지만, 아버지는 전혀 그 말을 믿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며칠 전에 릴리에게서 장신구를 하나 받았어요. 보답을 보내고 싶은데, 아무래도 제가 만든 아티팩트가 좋겠죠?”
릴리도 직접 만든 장신구를 보내 줬거든요.
해서 내가 선택한 건 화제를 돌리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잠시 웃더니 그런 내 의도에 맞추어 주었다.
“릴리라면…… 레미안 백작의 외동딸 말이군.”
“맞아요. 화려한 귀걸이 한 쌍이랑 팔찌를 선물받았거든요.”
그 후로 잠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내 방 앞에 도착했다.
“이따 에일런 대신 아비와 오붓하게 밥이나 먹자꾸나.”
“아하하. 그거 좋은데요?”
문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는 금세 몸을 돌렸다.
나는 아버지의 단단한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가씨! 잘 다녀오셨어요?”
“응. 그보다 이 꽃들을 꽂을 만한 화병이 있을까?”
“어머, 예쁜 꽃이네요. 아가씨 옷 갈아입으신 후에 한번 찾아볼게요!”
“그래 주면 고맙지.”
우선 꽃을 테이블에 놓아둔 나는 메리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었다.
간소한 실내용 드레스로 갈아입자 순식간에 몸이 나른해졌다.
“오늘은 입욕제를 푼 물에 담가져야겠어…….”
머리카락을 살살 정돈해 주는 메리의 손길은 온몸을 아주 슬라임처럼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었다.
소파에 흐물흐물하게 늘어져 그렇게 말하는 내 모습에 메리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도 페른 님이랑 같이 체력 단련을 하시는 건 어때요? 주인님이 들으시면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그 말에 잔뜩 풀려 있던 내 표정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가 직접 지도하는 페른의 체력 훈련은 아주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이 들 정도면 말 다 했지.
“메리, 마법사는 체력 훈련보다 마법 훈련을 선호한다구. 게다가 페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죽어 가는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온단 말이야?”
내가 조잘조잘 부정의 말을 늘어놓자 메리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조금은 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마법 연습이나 아티팩트 만드는 것도 힘든데, 그건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그거랑 이건 달라. 난 차라리 마법 연습을 백 번 더 할래.”
조금 더 체력 훈련을 권하던 메리는 꾸준히 절대 싫어를 외치는 내 모습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좋아도 그 체력 훈련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
황궁의 한 유리온실.
그곳에는 화려한 적발을 곱게 틀어 올린 여인과 한낮의 태양만큼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을 가진 청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티 테이블을 중간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황후와 1황자였다.
“테시스.”
황후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예, 어머니.”
그에 대답하는 테시스의 표정은 긴장감이 서려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아들의 태도에도 황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찻잔을 매만지며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기이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폐하께서 이번 데뷔탕트 무도회에서 차기 황태자에 대해 발표하실 것 같구나.”
“하지만 제국 역사대로라면 건국 기념일에…….”
“황자.”
황후는 부드럽지만 냉정하리만치 단호하게 테시스의 말을 잘랐다.
그녀의 기이하고도 서늘한 시선이 테시스에게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당황하여.”
그런 어머니의 시선에 테시스는 곧바로 저의 성급함을 질책했다.
그 모습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화목한 모자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들을 대하는 황후의 태도는 어딘가 냉정한 듯하면서도 불안정했고, 테시스는 그런 제 어머니에게 순순한 태도를 보였다.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평소 1황자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테시스, 사랑하는 내 아들. 황제는 그대에게 황태자 자리를 쉽게 주지 않을 겁니다.”
조금 전까지 하대를 하던 황후가 금세 제 아들에게 존대를 하며 눈을 번뜩였다.
그런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씐 듯 소름 끼칠 정도로 기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황후의 모습이 익숙한 듯 테시스는 아무런 동요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대가 황태자 자리에 오르게 될 거예요. 내가, 이 어미가 그리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니 황자는 아무런 걱정 마세요. 알아들었나요?”
그리 말하며 테시스를 향하고 있던 황후의 초점이, 점점 그에게서 빗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아, 테시스. 하나뿐인 내 아들.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렴. 고작 아실라의 아들 따위가 네 자리를 뺏어 가는 일은 없을 거란다.”
테시스가 낮은 목소리로 황후를 불렀지만 그녀는 혼자 허공에다 대고 말하느라 테시스를 향해 한 자락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바라보던 테시스는 결국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런 상태의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광증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제 어머니를 좀먹어 갔다.
“어머니,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결국 테시스가 몸을 돌려 유리온실을 나설 때까지, 황후는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는, 테시스가 보지 못했던 사특한 검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달칵-
화원 문을 닫고 나선 테시스는 그 앞을 지키던 기사와 황후궁 시녀들에게 당부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 더 있겠다 하셨으니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수고하게.”
그려 낸 듯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남긴 테시스는 몸을 돌려 화원에서 멀어져 갔다.
‘……칼리온.’
그는 속으로 얼마 전 돌아온 제 이복동생의 이름을 읊조렸다.
어렸을 적부터 줄기차게 비교당해 왔던, 아버지의 다른 자식.
‘무슨 일이 있어도 황태자 자리만큼은 네게 넘겨줄 수 없다. 절대로.’
그 이유가 오래전부터 가져 온 열등감이든, 제 황위에 목숨이라도 걸 것 같은 제 어머니를 위해서든.
그 어떤 이유로도 그에게만은 황위를 빼앗길 수 없었다.
그런 테시스의 손바닥에는 잘 깎인 손톱의 반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