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3)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63화(63/218)
갑자기 어깨에서 느껴진 타인의 손길에 나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혹시 내가 마력 날리는 거 봤나?’
뒤로 돌며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당히 곤란한데.
“좋은 밤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돌아서자마자 보인,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진 얼굴에 금세 사라졌다.
“……리안 경?”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이름에 눈앞 남자의 눈꼬리가 접혔다.
나는 이곳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등장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공존하는 내 얼굴에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리안의 목소리는 귓가를 울리며 터져 대는 불꽃 탓에 아주 희미하게 들렸다.
그도 그걸 알아챈 모양인지 멋쩍게 웃으며 슬쩍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요.”
그 목소리 역시 간신히 귓가에 발을 걸칠 만큼 작았다.
“그래야겠네요.”
나는 리안의 말에 들릴지 모를 대답을 한 후 다시 시선을 돌렸다.
하늘에 감도는 내 마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애초에 날려 보낸 마력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아마 일이 분 내로 불꽃놀이의 연장전이 끝날 테지.
나와 리안은 아무런 말 없이 하늘을 수놓던 색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오늘은 진짜 예쁘더라.”
“그러니까. 특히 마지막이 최고였지!”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역시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색해.’
나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에 꿋꿋이 시선을 까만 하늘에 두었다.
물론 어색한 이유는 알고 있다.
불꽃놀이를 보는 사이 그 일이 떠오른 탓이었다.
며칠 전 거리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런 말 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리안의 모습이.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일이 다시금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 내 옆으로 리안의 시선이 와 닿는 게 느껴졌다.
‘뭐라고 말하지?’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에리타 양.”
리안이 먼저 내게 말을 걸었으니까.
***
나와 리안은 북적거리는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리안은 별다른 말 없이 잠시 걷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겠다 대답했고.
불꽃놀이가 오늘의 메인인 건 맞지만 야시장은 새벽까지 열리는 탓에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한두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걷는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역시 저번에 그 사람은 리안 경이 맞았구나.’
나는 나대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한 자락의 설마 하는 마음도 리안의 얼굴을 본 순간 확신으로 변했다.
하지만 구태여 리안에게 그것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저번에도 생각했다시피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테고, 그 이유를 캐묻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에리타 양.”
“네, 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탓인지, 갑작스레 불린 내 이름에 나는 당황한 티를 고스란히 내비쳤다.
바보처럼 튀어나온 대답에 리안이 낮게 웃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에리타 양은 제가 부를 때마다 놀라네요.”
“아…….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민망해진 나는 작게 하하 웃으며 말을 흐렸다.
보지 않았지만 내 얼굴이 붉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멋쩍은 손길로 문지른 내 볼이 살짝 따끈했다.
“그보다 저는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제가 있던 데는 눈에 잘 안 띄는 곳이었는데.”
“음…….”
그런 내 물음에 리안이 목을 울리며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푸른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담겨 있었다.
“그냥 감으로?”
리안이 능청스럽게 씩 웃으며 대답했다.
유들유들한 웃음 한 번에 지금껏 어색하던 공기가 날아갔다.
“나 참. 그게 뭐예요.”
어이없다는 듯 흘러나온 내 목소리의 톤도 평소와 같았다.
그 후로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광장을 벗어났다.
신기하게도 겨울바람이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밤은 전혀 시리지 않았다.
거리의 소음이 잔잔한 배경음처럼 귓가에 감겼다.
그렇게 십 분쯤 더 걸었을까.
리안의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싶더니, 이내 아예 멈춰 섰다.
오늘을 포함해 삼 일간 이어질 축제에 대한 얘기가 끝을 맺은 참이었다.
나는 나보다 두세 걸음 뒤에 멈춰 선 리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왜 그래요?”
곧게 나를 바라보는 리안의 얼굴에는 미미한 미소와 함께 이유 모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표정이 왜 저러지? 무슨 일 있나?’
그렇게 생각될 만한 표정이었다.
의아한 기분에 그를 부르려던 찰나, 리안이 듣기 좋은 저음으로 말했다.
“……오늘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의 목소리보다 조금 더 낮았다.
정확히는 목소리에 묻어 있던 가벼움이 사라졌다고 해야겠지.
왜인지 모르게 진지한 리안의 태도에 나는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해야 할 말요?”
“예.”
고개를 끄덕이는 리안의 표정이 고요했다.
“음, 그럼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갈까요?”
여기는 조금 시끄러우니까요.
왜인지 가볍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물었다.
“그게 좋겠군요.”
내 말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리안이 긍정했다.
확실히 꼭 해야 할 말을 전하기에, 사람이 많은 넓은 거리는 적합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광장 근처에서 조금 벗어난 터라 한적한 곳을 찾기는 쉬웠다.
넓은 대로에서 조금만 골목 안으로 들어서도 시끄럽던 소음이 한결 희미해졌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방법도 있긴 했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주변 상황으로 봐서는 거기도 매한가지일 게 뻔했다.
오늘은 축제였으니까.
“아직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여기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예, 그렇네요.”
내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자 리안이 잔잔하게 웃었다.
나는 꼭 해야 할 말이라는 게 무어냐고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재촉하지 않아도 어련히 말하겠지 싶었다.
“……에리타 양.”
이윽고 잠시 망설이던 리안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네, 리안 경.”
그의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며 대답하자 리안은 모양새 좋은 입술을 열었다.
그때였다.
“어이쿠……!”
내 뒤에서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튀어나왔다.
“잠깐.”
그와 동시에 리안이 조금 급하게 팔을 뻗어 나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가 당기지 않았다면 분명히 남자와 부딪혔을 거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갑작스러웠던 탓에 나는 그의 검을 건드리고 말았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스벤 이 개자아식! 다음에느은 안 봐준다!”
간발의 차로 나와 부딪히지 않은 남자는 무어라 소리치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사라졌다.
“고마워요, 리안 경.”
나는 그로부터 살짝 떨어져 나오며 고마움을 표했다.
리안의 답이 없었지만 나는 아래를 바라보느라 몰랐다.
바닥을 살피는 건 조금 전에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 찾았다!”
내 발치에 작은 물건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제가 줍겠습니다.”
리안의 목소리는 얼핏 당황한 것도 같았다.
“에이, 뭘요. 제가 주우면 되죠.”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무릎을 굽혀 작은 물체를 주워 들었다.
그건 꽤 오래되어 보이는 고리였다.
‘이렇게 낡았는데도 계속 지니고 다니는 걸 보니 꽤 중요한 물건인가?’
나는 바닥을 뒹군 탓에 고리에 묻은 먼지를 살살 털어 냈다.
다행히도 육안으로 보기에 흠집이 난 곳은 없어 보였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떨어졌…….”
미안함을 담아 말하던 내 입이 멈춘 건, 어쩐지 익숙한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리안에게 고리를 건네주려던 내 손도 덩달아 멈추었다.
나는 내 손안에 쥐어진 자그만 고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생각날 듯도 싶었다.
“이 고리는…….”
그 말이 튀어나온 건 나도 모르는 새였다.
그와 동시에 오래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찰나는 내가 얼어붙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고리…….”
나는 다시 한번 그 말을 중얼거렸다.
꼭 서툰 어린이의 솜씨로 만든 것 같은, 투박한 모양새의 고리.
거기에 직접 새겨 넣은 것처럼 보이는 룬 문자 하나. 그리고 그 아래 낙서처럼 휘갈기듯 새겨 놓은 이름.
그건 익숙한 글자였고, 익숙한 이름이었다.
‘……내 이름.’
이 상황을 추론해 내는 건 금방이었으나, 머리로 제대로 이해하는 덴 그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멍한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고리는 내가 팔 년 전…… 그러니까 황비의 장례식에서 남주에게 주었던 거니까.
– 이 고리를 가지고 있으면 행운을 가져다준대요.
그런 내 말에 조금 당황한 것도 같던 어린 칼리온의 얼굴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리에서 시선을 떼어 냈다.
이쪽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작게 일렁였다.
“…….”
“…….”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리안의 푸른 눈동자에는 당혹감과 난처함이 깃들어 있었다.
무언의 말보다 짙은 낭패감이 서린 그의 수려한 얼굴이, 내가 떠올린 가설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어떻게……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지.’
저 호수를 담은 푸른 눈동자를 보고도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떠 있던 기분은 아득해졌고, 수다를 떠느라 따끈하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직시하게 된 상황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뒷걸음질을 친 상태로 고개를 숙였다.
“……황자 전하.”
내 입에서 흘러나온 한숨 같은 부름은 작았으나 선명했다.
그 부름에 꾹 다물려 있던 리안의 입이 열렸다.
“……내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내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마주하게 된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그의 말을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더는 푸른 눈동자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었고.
“……지금껏 저질렀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