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66화(66/218)
복잡한 내 심정을 모르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내가 오기를 바라지 않았던 날이 왔다.
“아가씨, 얼른 일어나셔요. 황궁에 가실 준비 하셔야죠.”
다정한 메리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였다.
“메리이……. 나 그냥 안 가면 안 되겠지?”
나는 푹신한 내 베개를 끌어안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작이고 나발이고 내 사람들만 다 챙겨서 다른 나라로 튀고 싶다. 기왕이면 제국에서 제일 먼 곳으로.’
그러면 황후를 견제할 필요도, 흑마법에 대해 파헤쳐야 할 이유도 없을 텐데.
‘돈이야 뭐…… 평생 놀고먹어도 남을 정도로 벌었으니까 괜찮을 테고.’
지금껏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준비해 오긴 했지만, 막상 원작의 프롤로그가 다가오니 전부 다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잠기운이 남아 몽롱한 머리는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행복 회로를 마구 돌려 댔다.
“어머, 우리 아가씨 긴장되시나 보네요.”
메리는 그런 내 말을 잠꼬대 비슷한 걸로 받아들인 건지 귀엽다는 듯 작게 웃으며 나를 일으켰다.
축 늘어지는 몸을 일으키는 손길은 부드럽지만 단호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 긴장되지. 내 가족의 목숨이 달려 있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 받겠지.
속으로만 투덜거린 나는 밍기적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땅에 발을 디디자 남아 있던 잠기운이 서서히 멀어졌다.
“근데 무도회 시작은 여섯 시잖아. 벌써부터 준비해야 해? 아직 아침 일곱 신데.”
“그럼요!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시계를 힐끗 보며 묻자 메리는 무슨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그래?”
“오늘 황궁에서 아가씨보다 더 아름다운 분은 없으실 거예요! 저희만 믿고 맡겨 주세요!”
평소와 달리 조금 톤이 높은 목소리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그 기세에 밀린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메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결론적으로 그런 메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준비할 게 많다는 그 말 말이다.
원작이 시작되는 이벤트라는 것 외에 별 감흥이 없었던 나와 달리, 하녀들은 데뷔탕트 무도회 준비에 열을 올렸다.
메리의 말대로 나를 최고로 만들겠다는 다짐이 엿보였다.
“아가씨,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얘! 여기 향유 좀 더 가져와!”
시작은 메리의 손에 이끌려 간 욕실에서부터였다.
“앗, 가만히 계셔야 해요! 눈 뜨시면 망가져요!”
그다음은 얼굴에 무슨 팩 같은 걸 붙였고.
“아가씨, 이번에는 마사지할게요. 편하게 엎드려 계세요!”
또 다음 순서는 전신 오일 마사지였다.
뭉친 근육을 풀어 주고 옷태를 더 예쁘게 만든다나.
‘부잣집 사모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나는 하녀의 말대로 얌전히 엎드려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자 섬세한 손길이 내 어깨와 팔, 다리를 주물렀다.
황궁에서의 두어 시간을 위해 들이는 준비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건지.
뭐가 되었든 뭉친 근육을 풀어 준다는 명목의 마사지는 시원했다.
‘……내가 지금까지 데뷔탕트 무도회를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통 파티나 연회보다 조금 더 큰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 처음 사교계 데뷔를 하는 자리라는 건 조금 특별하긴 하지만…….’
지금까지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바빴던 나는, 제국의 정세와 동향에 빠삭한 것과는 달리 사교계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정보에서 뒤처지면 안 되기에 사교계 측 정보도 전부 받아 보고는 있었다.
라그라스 상단 산하에는 정보 조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그곳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다.
‘……보기만 해도 피곤했지.’
서면으로 된 정보만 봐도 머리가 핑글핑글 돌 지경인데, 내가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했다.
오늘 데뷔탕트 연회를 치르고 나면 나도 어느 정도는 그에 동참해야겠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법 연습도 좀 더 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아티팩트도 더 만들어 둬야 하고.’
애초에 원작이 시작되는 장소가 황궁의 데뷔탕트 무도회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거추장스러운 연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뒷말이 좀 돌더라도 어차피 아버지나 에일런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할 테니까.
‘진짜 가기 싫다.’
게다가 며칠 전에 가기 싫은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오늘 칼리온도 마주치게 될 텐데…….’
차라리 오늘까지 몰랐다면 이따 직접 마주칠 때 놀랄지언정 지금 이렇게 심란하지는 않을 텐데.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모르는 척하자고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걸로 마음이 전부 편해지지는 않았다.
뭐, 남주와 안면을 트는 건 내 예상에 전혀 없던 일이니 당연한가.
“에휴…….”
“앗, 너무 센가요? 조금 더 살살 할까요, 아가씨?”
갑갑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자 내 어깨를 문지르던 하녀가 물었다.
“으응, 아냐. 지금 정도면 적당해.”
묻는 목소리가 걱정스러워 나는 급하게 부정했다.
그러자 하녀 아이가 안심한 듯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금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전부 끝냈으니 이제 남은 건 다가올 시작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나는 뽀송뽀송한 몸으로 준비해 둔 상앗빛이 도는 드레스를 입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온갖 호사를 전부 누린 내 모습은 과장 조금 보태어 아주 광이 났다.
‘이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마사지 숍을 다니는구나.’
평소에도 과분할 정도로 대접을 받긴 했지만, 오늘처럼 과한 건 처음이었다.
“아가씨, 머리는 올릴까요, 아니면 내릴까요?”
“으음.”
나는 마릴린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평소에는 메리나 마릴린이 알아서 해 줬던 탓에 뭐라고 고르기가 어려웠다.
이런 쪽으로는 흥미가 없기도 했고.
“마릴린은 어떤 쪽이 더 좋을 것 같아?”
“저는 늘어뜨리는 쪽이 더 좋을 것 같아요.”
내 물음에 마릴린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도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오늘 드레스는 어깨가 드러나는 디자인이라서, 머리는 내리시는 게 더 예쁘실 것 같아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하녀들도 마릴린에게 동조했다.
조잘조잘 떠드는 얼굴들이 나보다 몇 배는 더 신나 보였다.
“하하……. 그럼 그렇게 부탁할게. 알아서 해 줘.”
“저희만 믿으세요!”
나는 머리나 화장을 전부 하녀들에게 일임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분주하게 시간이 흐르고.
부드럽게 내 얼굴과 머리를 매만지던 손길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아가씨, 다 됐어요.”
“세상에서 아가씨가 제일 아름다우실 거예요!”
목걸이가 내 목을 감싸는 것을 마지막으로 치장이 모두 끝났다.
“……아버지랑 오라버니가 못 알아보는 거 아냐?”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내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그런 내 말에 하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이건 뭐 그냥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전생에서 같은 반 아이들이 아이돌 무대 영상을 볼 때 화장에 따라서 휙휙 바뀌는 인상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 얼굴을 보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마음에 드세요?”
신기한 마음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내게 옆에 있던 마릴린이 슬쩍 물었다.
그 물음에 고개를 돌리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녀들이 보였다.
그 시선에 잔뜩 어려 있는 건 기대감과 뿌듯함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꾸며 준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
그 귀여운 모습들에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얼마나 하녀들과 떠들고 있었을까, 단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에리타, 준비는 다 했어?”
그와 같이 문을 넘어온 목소리는 에일런의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바라보자 어느덧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금방 나갈게요!”
나는 크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아가씨, 다녀오세요!”
“내일 저희한테도 무도회 이야기 들려주시기예요!”
하녀들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응, 다녀올게.”
그 모습을 보자 괜스레 웃음이 나와, 나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투명한 하얀색 장갑을 낀 손으로 문고리를 열자 붉은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익숙한 얼굴에 내 눈매가 저절로 활짝 휘었다.
“오라버니, 좋은 저녁이에요.”
내 모습에 잠시 멈칫했던 에일런이 수려하게 웃으며 내게 팔을 내밀었다.
단단한 팔에 손을 얹자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한 말을 했다.
“내 동생, 오늘따라 더 예쁘네.”
막상 그렇게 말하는 에일런은 동화 속 왕자님보다 더 잘난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겨 이마를 드러낸 탓에 인상이 한층 더 뚜렷해 보였고, 흑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남색 제복은 완벽하게 그의 몸을 감쌌다.
평소에도 종종 제복을 입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격식을 갖춰 입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얼굴은 미소를 띠어 그런지 그린 듯이 수려했다.
“오라버니도 오늘따라 더 멋져요!”
내 칭찬에 에일런이 낮게 웃었다.
세상에, 저 웃는 얼굴 좀 봐.
장담하건대 오늘 에일런에게 반하는 사람을 세 보려면 손가락 발가락을 전부 써도 모자랄 거다.
“휴. 이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다 오라버니에게 반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오라버니는 죄 많은 남자예요.
계단을 내려가며 장난스레 툭 내뱉자 위에서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내 오라버니가 어이없을 때 뱉는 웃음소리였다.
“그건 내가 할 말인 것 같은데.”
잠시 웃던 에일런이 뱉은 말에 나 역시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냥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어쨌든 예쁘다는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
계단을 내려온 우리는 이미 열려 있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저택 문 앞에는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