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7)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67화(67/218)
커다란 마차 옆에 서 있는 인영을 발견한 나는 조금 더 걸음을 서둘렀다.
평소보다 조금 높은 구두가 거슬리긴 했지만, 옆에서 단단히 지탱해 주는 에일런의 팔이 든든했다.
“아버지!”
어쩐지 들뜬 목소리의 내 부름에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에리타.”
그리고 나는 다시금 아버지의 유전자의 우월함을 체감했다.
‘……오라버니가 나이 들면 이런 느낌이려나.’
차가운 듯 수려한 얼굴은 에일런과 닮았지만, 아버지에게서는 그보다 더 어른스럽고 농염한 분위기가 흘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오라버니가 서늘한 인상의 미남이라면 아버지는 나른한 느낌의 미남이랄까.
내 눈으로 본 것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사실은 살포시 무시했다.
괜스레 내 마음이 충만해지는 게, 꼭 겨울이 되기 전 도토리를 가득가득 채워 둔 은신처를 보는 다람쥐가 된 기분이었다.
‘어딜 봐도 우리 집 미남들만큼 잘생긴 사람은 없을 거야.’
나는 차오르는 뿌듯함을 꾹꾹 눌러 담고 밝게 웃으며 마차 옆으로 다가섰다.
“나오셨군요, 아가씨, 도련님.”
그런 우리에게 아버지의 옆에 서 있던 테르반이 인사를 건넸다.
“좋은 저녁이에요, 테르반!”
“후후. 저택을 전부 물바다로 만드시던 아가씨께서 언제 이리 크셨는지.”
“그건 이제 잊어 준다고 했잖아요…….”
테르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꺼낸 말에, 나는 괜히 아버지와 에일런을 흘끗거리며 볼을 붉혔다.
물론 내가 마력 조절을 제대로 못 해서 테르반을 고생시키긴 했지만…….
“그게 도대체 언제 적 얘긴데…….”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그런 내 모습에 아버지가 낮게 웃었다.
그 후로 테르반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마차에 올라탔다.
화려함과 크기가 비례한 마차는 나와 아버지, 에일런이 전부 탔음에도 널찍했다.
“출발하겠습니다.”
느릿하던 말굽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저택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
‘흐음, 십오 분 정도면 황궁에 도착하려나?’
창문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바깥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돌린 나는 내 쪽을 향하고 있는 시선에 눈을 깜빡였다.
아버지가 옅게 미간을 좁힌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표정은 왠지 나를 보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슬쩍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훑어보았다.
‘……너무 꾸몄나?’
확실히 평소보다 훨씬 화려하게 꾸미긴 했는데.
이것도 하녀들이 더 더! 외치는 것을 자제시킨 결과였다.
‘아니면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라서 그런가?’
아버지는 내 옷차림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지만 오프숄더 느낌의 드레스를 입으면 말없이 재킷을 걸쳐 주고는 했다.
한여름에도 일부러 마법을 쓰시고는 서늘하지 않냐며 겉옷을 얹어 줬을 정도니 말 다 했지.
내가 혼자 이유를 찾으며 의아해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테르반의 말대로 많이 컸구나.”
흘러나온 말은 내 예상과 다른 말이었다.
“잠시 네가 어렸을 때가 생각나서. ……처음에는 그리 작았는데.”
회상하듯이 말한 아버지가 언제 미간을 좁혔냐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픽 웃었다.
그제야 아버지가 나를 왜 그렇게 지긋이 바라보았는지를 알게 된 내 잇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간을 찌푸리고 보시길래 제가 너무 많이 꾸며서 이상한가 생각했잖아요. 그쵸, 오라버니.”
“그래. 아버지 표정이 이상하긴 했지.”
나는 샐쭉 웃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아버지를 타박했다.
내 옆에 앉은 에일런에게 동의를 구하듯 묻자 그가 낮게 웃으며 내게 동조해 주었다.
이럴 때는 내게 잘 맞춰 주는 에일런이 정말 좋았다.
“그럴 리가.”
그런 우리의 합공에 아버지가 단번에 표정을 펴며 부정했다.
누가 본다면 아주 몹쓸 말이라도 한 줄 알 만큼 빠른 대답이었다.
“아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그 단호한 부정에 나는 맑게 웃으며 눈매를 접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다정했다.
“그 누구보다도 네가 제일 사랑스럽단다.”
“……아버지도 세상에서 제일 멋지세요!”
아버지의 온기 가득한 말에 절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
워워-
황궁에 들어선 이후부터 서서히 속력을 줄여 가던 마차가 이내 완전히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바라지 않던 황궁에 도착했지만, 의외로 지금은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막상 닥치면 침착해지는 성격은 이럴 때 참 좋았다.
한결 차분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게다가 옆에는 든든한 내 편이 둘이나 있었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걸 아는 내 가족 두 사람이.
마차 문이 열리기 전,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내게 당부했다.
“에리타, 혹여나 네가 싫다고 하는데도 집적거리는 놈이 있다면 당장 뺨을 갈기거라. 알았지?”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하하…….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
“있지.”
아버지와 에일런이 동시에 대답했다. 짧고 굵은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그런 둘의 표정은 똑같이 구겨져 있었다.
내가 아니라고 해 봤자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흉흉한 얼굴에 나는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과한 걱정이라는 말을 삼키고 어색하게 웃으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됐다.”
그 말과 동시에 마차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아버지가 내리고, 에일런이 뒤를 따랐다.
그러자 누군가 헉! 하고 놀라 숨을 삼키는 소리가 마차 안까지 들려왔다.
“조심히.”
한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향해 내민 에일런의 손을 붙잡았다.
옅게 숨을 들이쉰 나는 천천히 바깥으로 다리를 뻗었다.
내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마차 문이 달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감사해요, 오라버니.”
“별말씀을.”
내가 작게 인사하자 에일런이 다정하게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아직 서늘한 공기와 몇몇 시선이 아주 잠깐씩 나를 스쳐 지나갔다.
시선들의 주인 대다수는 성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이었다.
‘귀족들은 대부분 이미 도착했을 시간이구나.’
신분이 높다면 일찍 파티장에 얼굴을 비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오늘은 참 달가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본격적으로 연회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잔뜩 받았을 테니까.
나도 내 존재가 그들에게 흥미로울 거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구경거리가 되는 게 썩 달갑다는 뜻은 아니었다.
“자, 이제 그만 가야지.”
그때, 내 옆에 있던 에일런이 내 앞으로 팔을 내밀었다.
마차에서 내릴 때의 에스코트가 아닌, 연회장에 들어가기 위한 에스코트였다.
“레이디를 에스코트할 영광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묻는 모습이 근사했다.
“잘 부탁드려요, 에일런 경.”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팔에 내 팔을 끼워 넣었다.
“에리타.”
그런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뒤이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감쌌다.
“잊지 말거라. 나와 네 오라비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것을.”
조금 전 내가 주위를 둘러보던 것에 대한 아버지만의 위로였다.
다정한 그 말과 에일런의 든든한 지탱은 지금 내게 가장 큰 힘이었다.
“이제 가자꾸나.”
잠시 따스하게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먼저 걸음을 뗐다.
그 걸음은 내 보폭에 맞춘 듯 느렸다.
“감사해요, 아버지, 오라버니.”
에일런의 에스코트를 받아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한 나는, 두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두 분이 있어서 저는 정말 행복해요.”
나를 사랑하는 두 사람만큼이나 그들을 사랑하는 내 진심을 담은 감사였다.
‘그러니 두 사람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꼭 지켜 줄게요.’
절대 원작에서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두지 않을게요.
지금껏 쌓아 온 모든 것이 그러기 위한 발판이고, 밑거름이었다.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무도회장으로 향하는 새하얀 계단을 올랐다.
우리는 이내 연회장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
우리를 발견한 시종의 눈이 크게 뜨였다.
다행히도 시종은 무례라고 여길 만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표정을 갈무리했다.
귀족의 입장을 알리는 시종이니, 우리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뭐, 그게 아니어도 여기 오는 귀족 중에 검은 머리를 가진 건 우리 가문이 유일하니까.’
여기서 우리를 몰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머리카락이 검지 않았더라도 내 옆에 선 두 남자의 외모 때문에 한눈에 알아봤을 테지만.
‘너무 팔불출인가.’
나는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살짝 웃었다.
그와 동시에 우렁찬 소리가 옆에서 터져 나왔다.
“크로바하츠 대공가의 아슬란 크로바하츠 대공님과 에일런 크로바하츠 소대공님, 에리타 크로바하츠 대공녀님 드십니다!”
시종이 커다란 목소리로 우리의 이름을 차례차례 외쳤다.
연회가 끝나면 목이 다 쉬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 정도였다.
끼이익-
시종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무도회장의 육중한 문이 느릿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후우.’
나는 옅게 숨을 내뱉었다.
이 문 너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원작의 프롤로그에 발을 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칼리온과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곳에 온 이상 원작의 흐름에서 아예 벗어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거대한 문이 느리고도 빠르게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더 지난 후.
‘……가자.’
나는 완전히 열린 문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