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9)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69화(69/218)
연회가 시작하기 조금 전의 2황자궁.
서걱-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정말 무정하기도 하시지.”
무표정한 얼굴의 칼리온이 낮게 중얼거리며 손에 쥔 칼을 한 번 털어 냈다.
그러자 날카로운 칼날에 맺혀 있던 핏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런 칼리온의 발치에는 두 구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칼리온의 단장을 돕던 하녀였다.
만약 칼리온이 긴장을 풀고 있었다면 지금쯤 어디 한 군데는 다쳤으리라.
물론 고작 이 정도 수작에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오늘 움직이기 힘들 정도는 되었을 테지.
이들을 보낸 이의 목표도 그것이었으리라.
“참석하지 말라는 소리를 아주 과격하게도 하시는군.”
칼리온은 손에 든 독침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여상스러운 목소리로 실소했다.
“전하, 이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바론의 목소리가 문을 넘어 들어왔다.
시간을 확인한 칼리온은 제 옷을 내려다보았다.
주위에는 칼에서 털어낸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지만 새까만 제복에는 한 방울의 피도 튀어 있지 않았다.
“바론, 잠시 들어와.”
“예? 이제 가셔야 한다니까요.”
“됐고, 일단 들어오면 알아.”
칼리온의 단호한 대답에 무어라 구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말이지 왜 항상 제 말을 한 번에…… 허억!”
잔뜩 투덜거리며 들어서던 바론이 참사를 확인하고는 펄쩍 튀었다.
숨이 끊어진 것으로 보이는 하녀 둘과 제 주군.
누가 보아도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황후 폐하십니까?”
놀란 것도 잠시, 금세 상황을 파악한 바론이 마력을 둘러 소리를 차단하고 물었다.
“아마. 내 형님에게는 황궁 안에서 일을 벌일 정도의 배짱이 없으니까 말이야.”
“……도대체.”
무덤덤한 칼리온의 긍정에 바론이 입술을 짓씹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독을 바른 칼을 맞아 온 제 주인의 상처가 아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가장 안전해야 할 자신의 궁에서, 그것도 제 궁의 하녀에게 공격을 받다니.
게다가 오늘은 칼리온이 전장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궁의 사용인을 전부 걸러 내야겠습니다.”
바론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수상한 구석이 있는 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내보낼 것이다.
사용인을 전부 갈아엎는 일이 있더라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
“됐어. 쓸데없는 곳에 힘 빼지 마.”
“아뇨, 해야겠습니다. 저번에 제 충고 무시하고 나가셨다가 칼 맞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겁니다.”
칼리온은 습격을 당한 저보다 몇 배는 더 침울한 낯을 한 바론을 잠시 바라보다, 결국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도 더는 필요 이상으로 웅크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아, 그리고 이거 보관해 뒀다가 케이든에게 넘겨줘. 뭐라도 알아내면 보고하라고 하고.”
검집을 책상에 올려 둔 칼리온이 작은 천에 감싼 독침을 내밀었다.
“이건…….”
“이들이 아까 내 머리에 꽂으려던 거야. 독은 기화돼서 날아갔고.”
살상용 독 중에는 공기 중에 노출이 되면 몇 분 내로 사라지는 종류도 꽤 있었다.
“독은 내가 아는 종류니까 조사할 필요 없고. 마법사나 신관 측에 맡기라고 해 봐.”
“마법사나 신관요?”
그 말에 바론은 꼼꼼히 바늘을 살펴보았다. 저 역시 중상급 마법사였으니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어딜 보아도 평범한 바늘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바늘 같은데요. 느껴지는 것도 없고요.”
그의 말에 칼리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살펴보았을 때도 저 바늘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바늘이었으니까.
“네 말대로 바늘 자체는 평범할 거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암살자의 손에서 바늘을 빼앗았을 때,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마치 늘 제 머리를 두드리는 두통의 기운과 흡사했다.
“감이 안 좋아.”
그 느낌을 칼리온은 짧게 설명했다.
만약 자세히 말한다면 바론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 조사에 매달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바론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바늘을 천에 잘 감싸 품에 갈무리했다.
“그럼 연회는 어찌하실 겁니까. 다른 이에게 옷을 가져오라 이를까요?”
그렇게 말하며 바론이 칼리온의 차림새를 점검하듯 훑었다.
새까만 제복이라 그런지 피가 튄 자국이나 구겨진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지. 이러라고 늘 검은 옷을 입는 건데.”
칼리온이 픽 웃으며 내뱉은 말에 바론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럼 피가 튄 옷으로 그 많은 귀족들 앞에 나서겠다는 뜻이란 말인가?
제가 죽어도 그런 꼴은 볼 수 없었다.
“안 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절대 안 됩니다. 오늘은 전하께서 성인이 되신 후에 공식적으로 나서는 첫 자리란 말입니다! 하여튼 그 꼴로는 절 죽이고도 못 가십니다.”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은 바론의 표정이 엄했다.
“농담인데.”
“예?”
하지만 그를 지긋이 바라보던 칼리온이 던진 말에 바론은 그만 주먹을 쥐고 말았다.
“피 안 묻었다고. 애초에 저런 것들 상대하면서 피를 묻히면 너무 쪽팔리지 않나.”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이 대꾸하는 칼리온의 모습에 바론은 속으로 인내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을 되뇌었다.
물론 덤벼 봤자 한주먹에 날아가는 건 제가 될 테지만, 어쨌든.
“어쨌든 더 늦으면 곤란하겠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망가진 황후 폐하의 얼굴을 뵈어야겠거든.”
그 말을 남긴 칼리온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망설임 없는 뒷모습에 열을 내던 바론은 허둥지둥 칼리온의 뒤를 따랐다.
“조금 더 서두르지.”
바론의 앞에서 가벼운 말을 던졌던 것과 달리, 등을 돌려 걸어가는 칼리온의 표정은 서늘했다.
만약 황후의 뜻대로 제가 다쳤더라도 칼리온 그는 오늘 있는 연회에 참석했을 것이었다.
그에게는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
분명 신경질적으로 눈가를 찌푸렸던 황후는 어느새 자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자,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늦었구나.”
하지만 부드러운 어조의 말은 칼리온을 타박하는 내용이었다.
둘의 대치에 귀족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8년 전 황비의 장례식에서는 그렇게 다정하고 착한 연기를 하더니.
‘이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모양이지.’
그때와 달리, 지금은 1황자와 칼리온의 대립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있으니까.
“아, 제 궁에서 귀여운 쥐가 몇 마리 나오는 바람에.”
그런 황후의 모습에도 표정 하나 변치 않은 칼리온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 어조에는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원하시면 황후 폐하께도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가 눈꼬리를 휘며 덧붙인 말에 황후의 표정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좋은 날에 분위기 흐리지 말거라.”
황후 대신 나선 것은 1황자였다.
칼리온은 그런 1황자를 힐끗 보더니 의미 모를 웃음을 지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잠시 실례했군요.”
언제 칼리온과 기 싸움을 했냐는 듯, 다시 우아한 자세로 돌아온 황후가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 후로는 내가 알고 있는 데뷔탕트 파티의 순서가 진행되었다.
신전의 사제가 축복 기도문을 읊었고, 올해 데뷔하는 귀족 영애들이 한 명씩 나와 황후의 손등에 키스했다.
백작가 이하의 영애들은 그들이 황후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고, 후작가 이상의 영애들은 황후가 입을 맞춘 손수건을 받는다.
그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관례였다.
‘……저 정도 거리면 완벽할 텐데.’
신분이 제일 높은 탓에 내 순서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나는 손수건을 받은 뒤 황후와 손을 잡고 데뷔탕트 연회의 진정한 시작을 알려야 했다.
그것 역시 오래전부터 그해에 데뷔하는 이들 중 가장 신분이 높은 여성이 맡아서 해 왔다.
황궁에서 주최하는 데뷔탕트 무도회는 삼 년에서 오 년의 간격을 두고 열리니 보통은 후작가나 공작가의 영애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에는 내 참여로 인해 내가 그 일을 맡게 된 거고.
나는 먼저 황후에게로 향하는 다른 영애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매만졌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면 어떡하지.’
손가락을 매만지는 건, 고민이 있을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명백히 지금 상황은 황후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보는 눈 역시도 너무 많았다.
수백의 귀족들의 눈이 나와 황후에게로 집중될 테니까.
총 서른여 명이 넘는 영애들이 그들의 차례를 마치고, 내 앞에 남은 건 두 명이었다.
그중 먼저 나선 건 하늘색 머리칼을 가진 후작가의 장녀였다.
‘엄청 예쁘구나. 서술이 전부 표현을 못 했네.’
고혹적인 고양이 상의 미인인 그녀는 도도한 모습으로 제 차례를 마쳤다.
그 후에 나선 건, 공작가의 차녀였다.
‘……쟤구나. 밀라이아 레노센.’
그녀는 현 레노센 공작의 손녀이자, 황후의 조카였다.
황후와 닮은 화려한 적발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뽐내는 밀라이아는 전형적인 악녀 포지션이었다.
‘겉보기에는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데.’
어딘가 들떠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철없는 철부지처럼 보였다.
물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마지막입니다. 크로바하츠 대공가의 장녀, 에리타 크로바하츠.”
내 앞의 모든 차례가 끝나고, 어느덧 내 순서가 도착했다.
호명된 이름에 나는 단정한 걸음으로 단상을 올랐다.
그런 내 뒤에서는 아버지와 에일런, 세이안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들이 내 뒷모습만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태연하게 보일 겉모습과 달리 내 속은 꽤 초조했으니까.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높은 계단을 오르는 사이, 나는 내 품속에 있는 회중시계를 떠올렸다.
정확하게는 흑마법사를 구분해 내는 아티팩트를.
하지만 마음을 정하기도 전에 황후의 앞에 도착했다.
그녀의 뒤에서 푸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나는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치겠네.’
예법에 맞추어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인사를 하고, 황후의 키스가 묻은 손수건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마음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