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8화(8/218)
작별 인사를 마친 나는 저택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라 점심을 먹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아버지의 뜻이었다.
하긴. 여기는 수도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니까.
수도에서 멀지 않은 대공령에 가려면 며칠 동안 마차를 타게 될 수도 있겠다.
“따로 챙기고 싶은 건 없느냐.”
“……옷?”
고아원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온 게 하나도 없었던 나는 지금도 딱히 내 소지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건 이미 다 챙기라고 했다.”
그럼 내가 챙길 건 없는 거 아닌가?
“그럼 따로 챙길 건 없어요.”
“그래. 필요한 건 이미 다 준비해 두었으니 너는 가기만 하면 돼.”
다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그 말과 함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자꾸나.”
커다란 손 위에 작은 손을 얹자 아버지는 내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게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아버지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저택 뒷마당에서 바로 출발할 거란다.”
저택 뒷마당에 마차를 준비해 두셨나?
이제 떠난다는 생각에 들뜬 나머지 절로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너도 아는 사람과 함께 가는 거니 걱정은 말고.”
그런 내 반응을 긴장했다고 생각한 건지 잠시 멈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굳이 따지자면 기대감에 아주 조금의 두려움이 섞인 정도였지만 그 위로가 좋았던 나는 그냥 헤헤 웃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 다정한 아버지가 악역이라니. 뭔가 사정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나는 속으로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머릿속으로 곰곰이 원작을 되짚어 보던 내 눈에 익숙한 파란 머리가 보였다.
“어?”
그 역시 우리를 발견했는지 시선이 마주쳤다.
사르르 접히는 눈웃음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그는 어느새 우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주군, 이건 저라서 가능한 일정이었습니다. 다른 마법사는 택도 없는 거 아시죠?”
“그래서 네가 내 보좌관이 된 거 아닌가.”
아버지에게 뜻 모를 이야기를 한 남자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내 눈높이에 맞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제야 아가씨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군요. 저는 페른 아일리시라 합니다. 부족하지만 대공 전하의 보좌관을 맡고 있지요.”
갑자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놀란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버지를 힐끔 올려다보기도 했지만, 눈이 마주치자 아버지는 그저 내 머리만 한 번 쓰다듬어 주셨다.
“네에. 근데 그, 여기는 바닥인데…….”
아버지도 페른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여 하는 수 없이 소심하게 말을 건넸다.
이런 깍듯한 대우가 너무 어색했다.
“하하, 역시 아가씨는 다정하시네요. 하지만 아가씨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니까요. 저번에 뵀을 때는 미처 인사도 드리지 못했잖아요.”
그런 나를 본 페른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때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처음 고아원에 나를 데리러 왔던 아버지의 옆에 있던,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이 예뻤던 사람.
“그, 저번에 고아원에서…….”
괜히 부끄러워져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페른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네. 그때 대공 전하와 함께 있었지요. 그리고 오늘은 아가씨를 모시러 왔답니다. 그럼 가실까요?”
무릎을 툭툭 털어 낸 후 걸음을 옮기는 페른의 뒤를 따르며 저 앞을 쭉 내다보았지만 첫날 우리가 타고 왔던 마차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왜 그러니.”
“그, 저희가 타고 갈 마차가 없어서요…….”
“마차?”
“처음에 여기 올 때 타고 왔던 마차로 가는 거 아닌가요?”
내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묘해지더니 이내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내가 미처 설명을 해 주지 못했구나.”
무슨 설명?
가만히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손쉽게 안아 든 아버지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이동 마법을 통해서 갈 거란다.”
“이동 마법요?”
“그래. 여기서 대공령까지 마차로 가면 한 달은 걸리거든.”
한 달. 기껏해야 이삼 일을 예상했었던 나는 그 터무니없는 기간에 입을 쩍 벌렸다.
그런 나를 본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그리 먼 줄은 몰랐던 모양이구나.”
“네……. 메리가 멀다고는 했는데 그렇게 먼 줄은…….”
“가 본 적이 없으니 모를 법도 하지. 마차로 이동하는 게 보통이기도 하고.”
나는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렇게 먼 거리를 마법으로 가는 게 가능한가요?”
마차로 한 달이나 걸리는 거리를 마법 한 번이면 간다니.
“음. 보통은 불가능하지.”
“그러면 어떻게……?”
“그건 제가 아주 뛰어난 마법사이기 때문이죠.”
그때 앞에서 조용히 걸어가고 있던 페른이 뒤로 돌아 씩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슬쩍 올려다보니 맞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마법사는 이렇게 긴 거리의 이동 마법은 쓰지 못하지만 저는 조금의 도움만 있다면 가능하답니다!”
페른의 쾌활한 자랑에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페른이 왔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조금 어지러우실 수도 있으니 눈은 감고 계세요.”
하얀색의 복잡한 마법진 위에 올라선 아버지는 나를 조금 더 안정감 있게 고쳐 안았다.
“무서우면 끌어안거라. 그러면 금방 도착해 있을 테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커다란 푸른 보석을 손에 쥔 페른이 눈을 감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닥에 그려져 있던 문양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이건 눈을 감을 수밖에 없잖아……!’
나는 눈을 꾹 감고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
“에리타.”
쥐구멍에 고개를 파묻듯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던 나는 머리 위에서 불린 내 이름에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선을 조금 위로 올리자 웃음을 머금은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도착했다.”
“놀라셨나 보네요. 이동 마법을 처음 겪으셨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옆에서 들려온 페른의 말에 민망해하기도 잠시,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떠나온 곳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커다란 저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같았다.
상상으로만 그렸던 성의 모습이 이럴까.
아버지의 품에서 내려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의 뒤쪽 멀리로 정문이 보였다.
‘정문까지 가는 것도 한참이겠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저택을 바라보았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조금 삭막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거대한 건물은 고대의 고성처럼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놀람과 어색함. ……그리고 불안감.
감히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아도 되는 걸까.
덜컥 밀려온 생각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주는 사랑에 그저 행복할 수 있었지만, 글쎄. 내가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없어졌다고 생각한 불안감이 발밑에서 다시금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여기가 대공령이란다. 앞으로 네가 살 곳이기도 하고.”
과거의 에리타가 살았던 곳이자, 앞으로 내가 살아갈 곳.
“다시 돌아와 주어 고맙구나.”
아버지의 말에도 나는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줄곧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죄책감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에리타의 몸을 빼앗았다는 죄책감. 그건 이곳에 온 뒤로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한 그 생각은 들떴던 기분을 가라앉히기 충분했다.
……아냐. 지금은 다른 생각 말고 그저 기뻐하기만 하자.
그렇게 원했던 가족도 생겼고 사랑도 받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기뻐하자.
안 좋은 생각들을 저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은 나는 괜히 실없이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꼭 씩씩하게 잘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
‘……이게 뭐야.’
다잡은 마음과 달리 저택 안으로 들어선 나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커다란 외부에 걸맞게 웅장한 내부보다도 나를 바라보는 수십의 시선에 주눅이 든 탓이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다행히도 지금 아버지의 앞에서 인사를 건넨 사람은 나도 알고 있는 집사님이었지만, 그 뒤로 늘어선 사람들은 못해도 스무 명이 넘어 보였다.
사람들의 호기심 섞인 눈빛은 분명 악의로 가득 찬 시선과 달랐지만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슬쩍 발을 옮겨 아버지의 다리 뒤로 몸을 숨긴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아이가 불편해하니 다들 일자리로 돌아가도록.”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가 내린 명에 일렬로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로 흩어졌다.
나는 그제야 꾸물대며 아버지의 옆으로 나와 섰다.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지만, 멀리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다시 뵙습니다, 아가씨.”
“네! 아까 아침에는 그, 다른 저택에서 뵀는데 여기 먼저 오셨네요!”
“모시는 이가 주인보다 늦어서는 아니 되니까요. 메리도 같이 와 아가씨의 방을 정돈했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기도 했고, 인자하게 웃는 집사님을 보자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준비는 끝냈나?”
“예. 지금 바로 가셔도 됩니다.”
집사님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에리타, 네 방 준비가 끝났다고 하는구나. 먼저 그쪽으로 가 보겠니?”
앞으로 내가 지내게 될 공간이 궁금하기도 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와 함께 걸어 도착한 방은 정교하게 조각된 문으로 닫혀 있었다.
“들어가 보렴. 예전에 네가 쓰던 방이란다. 둘러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방도 많으니 편하게 말하거라.”
아버지는 내가 직접 문을 열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문고리에 손을 얹고 돌리자 무거워 보였던 커다란 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자 넓지만 아기자기한 내부가 한눈에 보였다.
어릴 적 쓰던 방이라는 말이 사실인지 포근하게 꾸며진 방은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7년 동안 매일같이 청소를 한 것처럼 깨끗한 방에서 에리타를 향한 대공가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왜인지 모를 울컥함이 밀려들었다. 아마도 에리타의 몸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아가, 왜 그러느냐. 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무 말 없이 입술만 꾹 깨물고 있자 그런 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아버지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싫다면 다른 방도 많다. 꼭 여기를 쓰라는 말이 아니었어.”
나를 달래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나는 부러 활짝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그냥 조금 놀라서……. 저 여기가 좋아요. 여기 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시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아비에게 말하렴. 알았지?”
“네! 꼭 그럴게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확실하게 답을 하자 안심이 된 건지 그제야 아버지가 작게 웃었다.
똑똑
그때 문밖에서 조금은 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에일런입니다.”
에리타의 하나뿐인 오라버니, 에일런 크로바하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