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2)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82화(82/218)
느닷없는 황제의 발표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짐은 차기 황제를 정하는 데 있어서 두 황자를 똑같은 출발선에 세울 것이네.
그 말의 뜻은 확고했다.
장자 계승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이자 두 황자 간의 세력 다툼을 암묵적으로 허용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황제가 제 의지를 거스르는 이에게 단호하게 일갈하고 연회장을 떠난 뒤.
“폐하께서 정녕 그리 결정 내리셨단 말씀입니까?”
“자네도 아까 보지 않았는가. 폐하께서는 두 황자 전하를 똑같이 대하기로 생각을 굳히신 듯하네.”
“그런……. 이 황자 전하께서는 전장에서 돌아오신 지도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일 황자 전하와 대적할 세력이 있겠습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
사태를 관망하며 저들끼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입니까!”
“낸들 알겠습니까? 건국 기념일도 멀었거늘! 황제 폐하께서는 어찌 우리에게 일언반구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갑작스러운 황제의 발언에 분노와 황당함을 표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특히나 1황자의 편에 선 이들의 경우 당황한 낯을 숨기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황제 폐하께서 이 황자 전하를 밀어주시겠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예끼,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한 어리바리한 귀족이 작게 속삭이자 그 옆에 있던 이가 기겁하며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당황한 귀족들의 시선 끝에는 구겨진 표정을 애써 갈무리한 레노센 노공작이 있었다.
“감히…….”
형형한 눈으로 황제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레노센 공작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황후 폐하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네. 후에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그러고는 아직 정정한 몸을 움직여 황후가 앉은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걸음이 멈춘 곳에는 화려한 얼굴을 서늘하게 굳힌 황후가 자리하고 있었다.
***
황제의 발언으로 인해 소란스럽던 연회장마저 조용히 비워진 새벽.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쨍그랑! 쾅!
“아아악! 율리스으으-!”
황후궁에서는 째지는 듯한 여인의 악다구니와 값비싼 가구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중간중간 지엄하신 황제의 이름과 욕설이 함께 들려오기도 했으나 황후궁을 지키는 이들에게서는 놀란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여운 우리 황후 폐하…….”
굳게 닫힌 문 안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에 황후궁의 시녀장이 안타까움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하고 중얼거렸다.
그 혼잣말은 어딘가 기이한 구석이 있었으나, 다른 이들은 알지 못했다.
“아실라! 너는 죽어서까지 나를 방해하는구나!”
여전히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는 쉬이 멈출 생각을 않았다.
아마 내부는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있을 터.
“너는 은밀히 신관을…….”
시녀장이 옆에 있던 시녀에게 지시를 내리려던 때였다.
“시녀장님!”
“무슨 일이지?”
급히 다가온 하녀가 소식을 전했다.
“일 황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뭐? 어디까지 오신 게냐.”
“조금 전에 황후궁 안으로 드셨…….”
하녀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대답하던 찰나, 화려한 금빛 머리칼이 복도를 돌아 나타났다.
연회가 끝난 직후라 그는 새하얀 제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일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일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들거라.”
제게 고개를 숙이는 이들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일 황자는 성큼성큼 걸어 닫힌 황후의 방 문 앞에 당도했다.
시녀들은 그의 도착을 황후에게 알리지 않았다.
지금 황후에게 말을 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황후궁의 사용인들은 전부 알았다.
일 황자 역시 그런 사실을 알기에 그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방에 계신가?”
“전하, 지금은 만나지 않으시는 편이 좋으실 듯합니다.”
시녀장이 일 황자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와장창-!
때마침 방 안에서 그치지 않은 파열음이 들려왔다.
“……언제부터 저리하셨는가.”
일 황자는 그 소리가 익숙한 것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문 너머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아니, 괜한 걸 물었군. 궁으로 돌아오신 직후부터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일 황자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와 체념이 담겨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켜 줬으면 좋겠는데.”
“하오나 전하…….”
“괜찮네.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어 그런 것이니 물러나 있게.”
시녀장이 작게 만류했지만 일 황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답했다.
그녀가 일 황자에게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다른 이들에게 손짓하자 금세 황후의 처소 앞에는 테시스 홀로 남게 되었다.
“어머니…….”
테시스는 가라앉은 진한 벽안으로 닫힌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아주 먼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는 다정하진 않더라도 우아하고 존경스러운 황후였다.
황제가 황비를 들였을 때도 그녀는 평정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가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칼리온.’
기억 속 어머니가 변한 것은 그의 이복동생이 태어나고, 그 아이가 말을 떼고 뛰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녀의 처소에 검은 로브의 이들이 드나든 것도, 그녀가 기이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테시스 그 역시 네 살쯤이었기에 전부 기억하진 못하나 거북한 느낌의 검은 로브의 사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보지 못했지만.’
테시스가 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검은 로브의 사람들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가 네 살이 된 이후로 제 어머니, 아이샤 레노센은 종종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어깨에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세게 그를 붙잡고 강하게 다그치기도 했으며, 검술이든 공부든 칼리온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독방에 가두어 반성시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누구보다도 귀하다는 듯 안아 주며 사랑한다 속삭였다.
어릴 때는 그런 어머니가 마냥 무서웠지만, 지금은 안쓰러웠다.
잠시 과거를 떠올리던 테시스는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듯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테시스입니다.”
분명 조용한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전해졌을 테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답도 없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서 기다리기를 몇 분.
“……들어오렴.”
안에서 쉰 듯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허락에 테시스는 옅게 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묵직한 듯 가벼운 문이 열리고, 드러난 장면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대로 난장판이었다.
바다를 건너온 귀한 커튼은 찢어져 바닥을 나뒹굴고, 그 위에는 도자기 조각들이 즐비했다.
황후는 그런 방 한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시스는 부러 아까보다도 더욱 덤덤한 표정을 얼굴에 덧씌우고 황후에게로 다가갔다.
유리 조각이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바닥임에도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황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익숙한 몸짓이었다.
황후는 냉담한 눈으로 그런 테시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잠시 검은빛이 일렁였다.
십 초나 흘렀을까.
짜악-!
황후가 순식간에 손을 들어 제 앞에 무릎을 꿇은 아들의 뺨을 내리쳤다.
거센 소리가 울려 퍼지고, 황후의 손가락에 끼워진 굵은 반지가 테시스의 뺨에 얇은 상처를 냈다.
“테시스, 사랑하는 내 아들.”
“……예.”
“그대가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이 어미가 이리 힘들지 않았을 텐데요.”
그 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황후는 끔찍이도 다정한 목소리로 제 아들을 부르며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은 방금 그의 얼굴에 상처를 낸 이답지 않게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정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테시스는 그런 여인의 말에 그저 주먹만 세게 말아 쥐었다.
고통은 익숙해졌으나 어머니의 독한 말에는 여전히 숨이 막힐 듯 목이 조여 왔다.
짜악-!
그때, 황후가 방금 때렸던 아들의 뺨을 다시금 내리쳤다.
“아아, 내 아들. 어찌 이리도 폐하를 쏙 빼닮은 얼굴일까.”
그러고는 또다시 다정한 손길로 부어오른 아들의 뺨을 매만졌다.
절대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황후의 행동에도 테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당황도, 부당한 폭력에 대한 반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런 상황이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그건 사실이었고.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맞은 것은 그일진대 테시스는 도리어 황후에게 그리 물었다.
“그럼요, 황자. 이 어미는 괜찮답니다.”
황후는 아들의 말에 다정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소파에 묻었던 몸을 일으켰다.
“피곤하니 이만 누워야겠구나.”
그녀의 눈은 초점이 흐릿했으며 말투는 존대와 반말을 오갔다.
“부축하겠습니다.”
황후가 몸을 세우자 테시스는 꿇었던 한쪽 무릎을 일으켜 비틀거리는 제 어머니를 지탱했다.
그런 그의 하얀 제복 바지 무릎 부근에서 붉은빛이 배어났으나 그를 걱정해 줄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바스락- 파삭-
이 방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침대로 향하는 걸음마다 잘게 조각난 유리가 밟혀 소음을 냈다.
“황자, 내 아들. 이 어미가 걱정되어 찾아온 게지요?”
테시스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누운 황후가 창백한 얼굴로 그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방금 자신이 그 아들의 뺨을 모질게 내리친 것은, 그리해서 상처가 나고 붉어진 테시스의 뺨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예, 어머니.”
“황자, 이 어미는 오로지 황자 생각뿐이랍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그대를 위한 거예요.”
황후는 무서울 정도로 눈을 번뜩이며 테시스의 손을 거세게 붙잡았다.
“황자는 절대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아셨지요?”
우아하게 다듬어진 손톱이 단단한 손에 상처를 낼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주무세요, 어머니.”
테시스는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무시하며 제 어머니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했다.
황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듯 잠에 빠졌다.
색색 내쉬는 숨은 그녀가 깊게 잠들었음을 나타냈다.
테시스의 입술이 작게 달싹이다, 이내 한 단어를 아주 작게 읊었다.
“어머니…….”
황후에게 대답할 때의 목소리보다 더 젖어있으며 여린 목소리.
당연하게도 잠든 이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잠시 평온하게 잠든 황후의 모습을 고통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테시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된 방을 조용히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