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86화(86/218)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거리며 손에 통신구를 쥐고 진지한 표정을 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시계가 흑마법사를 구분해 내는 아티팩트라는 것을 말하자마자 아버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 통신구가 있냐고 묻는 말에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잠시 빌려도 되겠느냐고 하시더니…….
‘갑자기 연락해야 할 사람이 도대체 누구람.’
영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낯설었다.
아버지가 창가에 서서 통신구에 마력을 불어넣길 잠시.
상대방이 연락을 수락한 듯 통신구에 누군가의 인영이 비쳤다.
“황자 전하, 잠시 저택으로 오셔야겠습니다.”
……잠시만.
나는 닥쳐든 혼란스러움에 바보처럼 눈을 끔뻑였다.
“어차피 오늘 연회에 가지 않으실 것 다 압니다. 급한 일이니 서둘러 주시지요.”
‘……뭐?!’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말에 내 눈은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아버지가 저렇게 친근하게 황자 전하라고 부를 사람이 칼리온을 제외하고 또 있을 리 없다.
고로 아버지의 저 말은 칼리온이 오늘 우리 집에 온다는 뜻임이 틀림없었다.
휙-
차마 아버지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소리칠 수 없어서 나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에일런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라는 심정을 듬뿍 담은 채였다.
물론 칼리온이 조만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빨리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고!’
예전부터 종종 느꼈던 거지만 아버지의 실행력은 내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나는 이제야 내가 돌발 행동을 벌일 때마다 속으로 경악을 내질렀을 메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메리, 미안해. 다음부터는 꼭 예고하고…… 아니, 이게 아니지.
“오라버니, 대체 아버지가 왜 저러시는 거예요? 지금 황자 전하께 집에 오시라고 하신 거 맞아요? 그것도 오늘요?”
물음표가 덕지덕지 묻은 말이 내 입에서 연쇄적으로 튀어나왔다.
“으음…….”
당혹스러워하는 얼굴로 묻자 에일런이 아버지를 서늘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짜증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이런 건 좀 상의를 하고 하시라니까…….”
읊조리는 중얼거림이 아주 살벌했다.
잠시 후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뗀 에일런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칼을 흩뜨렸다.
“오라버니이- 저 지금 엄청 당황스럽단 말이에요.”
“아, 그렇지. 미안해. 네가 제일 당황스러울 텐데.”
다급함이 묻은 내 눈빛을 본 에일런이 그제야 아차 한 듯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께서는 흑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황자 전하께서도 함께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야.”
그러니까 저렇게 급하게 연락을 했겠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리송했다.
“으음, 이해는 되는데 이렇게 급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 저희끼리 얘기도 다 못 끝냈는데…….”
내 말은 사실이었다.
십육 년 전부터 팔 년 전까지의 과거를 듣긴 했으나, 정작 칼리온과 손을 잡게 된 때의 이야기는 하나도 못 들었단 말이지.
“……아직 네게 말해 주지 못한 것들도 있는데 그건 이 황자 전하와 깊게 연관된 거라서.”
“아…….”
에일런의 조곤조곤한 말에 나는 작게 수긍했다.
팔 년 전의 이야기도 그렇고 흑마법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고 칼리온 역시 당사자니까.
‘칼리온도 선황비의 죽음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리고 아버지가 세르비아가 죽게 된 배후에 흑마법이 있다는 것을 칼리온에게 알려 주었을 확률이 높다.
두 사람은 손을 잡았고, 그 이유는 이들의 소중한 사람을 앗아 간 배후가 같기 때문이니까.
그러니 칼리온이 선황비의 죽음의 원인이 흑마법이라고 예상하고 있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만든 아티팩트로 후보를 추려 내실 생각인가 보네.’
그제야 아버지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누군가 흑마법을 썼다고 하더라도 물증을 잡지 않는 이상은 밝혀낼 방법이 없었으니 내 아티팩트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겠지.
‘그럼 황후 얘기는 이따가 칼리온이 오면 말해 줘야겠네.’
갑작스레 칼리온과 대면하게 만들었으니 이 정도 심술은 부려도 되지 않겠어?
“예, 지금 당장 오십시오. 그리고 전하께서 조사를 맡기셨던 청년도 함께 오는 게 좋겠습니다. 새로이 얻은 정보가 있으니.”
마침 아버지가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새로이 얻었다는 저 정보는 내 아티팩트에 관련된 거겠지.
‘나 참. 저렇게 급한 아버지 모습은 처음 보네.’
내가 연관된 일에는 감정을 쉬이 드러내시곤 하지만 아버지는 본래 무뚝뚝하고 남에게 관심이 없는 성격이었다.
‘오죽하면 테르반이랑 에반도 아버지 성격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하겠어.’
갑자기 에일런이 아버지를 너무 쏙 빼닮아서 아쉽다던 에반의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그런 아버지가 칼리온에게는 부드러운…… 음, 친근한…… 하여튼 그렇게 대하는 것을 보니 굉장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황자라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는 무려 황제의 부름에도 귀찮다는 기색을 가감 없이 내보였던 사람이란 말이다.
‘그리고 단순히 동맹 관계라기에는 아버지 말투가 되게 편해 보인단 말이야.’
말투만 존댓말이지, 사실 내용은 다짜고짜 알려 줄 사실이 있으니 이리로 오라는 것이 아닌가.
“에리타, 괜찮아?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황자 전하가 오시는 것 때문에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에일런이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어 왔다.
“네? 하하, 아니에요.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있을 일이니까 제가 적응해야죠. 다음에 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일정이 정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를 악물고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물론 입꼬리만 웃는 모양새지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황당함이 샘솟았다.
아버지와 에일런이야 평소에도 칼리온과 이런 식으로 만났겠지만, 나는?
‘칼리온이랑 한편이었다는 사실도 어제 알았는데.’
게다가 오늘 집으로 오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러운 걸로 봐서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면 늘 보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지요.”
아버지의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어졌다.
***
통신을 종료한 아슬란이 에리타의 뾰족한 눈길에 쩔쩔매고 있을 무렵.
“……바론, 준비해. 스승님께 잠시 가 봐야겠다.”
아직 잔잔히 남은 두통의 여파에 미간을 찌푸린 칼리온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아슬란과 통신을 할 때 수정구 위에 비쳤던 멀끔한 표정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전하, 얼굴이 창백하십니다. 다음으로 미루시는 편이…….”
그런 칼리온을 보며 바론이 걱정이 그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아슬란에게 연락이 오기 바로 전까지 꼬박 한 시간을 두통에 시달린 제 주군이 아니던가.
“됐다. 지금은 괜찮아졌어.”
“상태가 좋지 않다 말씀드리면 대공께서도 이해해 주실 텐데요.”
그 서늘한 적안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등줄기가 쭈뼛 서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바론이 보기에 아슬란은 칼리온에게는 꽤 다정한 스승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안 되겠다고 말을 하면 분명 알겠다 하실 터인데.
“스승님은 웬만해서는 급하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황후궁이 신경 쓸 일이 많은 지금이 움직이기 더 편하기도 하고.”
제 부관의 걱정 어린 말에 칼리온은 고개를 내젓고는 검은 후드를 뒤집어썼다.
게다가 곧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청한 이가 있질 않은가.
어젯밤 오랜만에 마주했던 에리타의 얼굴이 순간 떠오르자 칼리온은 풀어지려는 안면 근육을 다잡았다.
“저쪽은 오늘도 연회에 참석한다던가?”
“……예. 심어 둔 이의 말로는 이번 연회부터 본격적으로 귀족들을 회유하기 시작할 모양인 듯싶습니다.”
바론의 대답에 옷매무새를 다듬은 칼리온이 픽 웃었다.
“어지간히도 애가 달았나 보군.”
“그야…… 저희야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고 해도 저쪽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테니까요.”
바론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안심과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론은 칼리온의 최측근이었다.
전쟁터에서 칼리온이 세운 공적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로서는 저들이 내세우는 일 황자의 자질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언가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제국의 정세를 생각하면 후계자들의 자질이 크게 돋보일 일이 없었다.
끽해야 누구의 식견이 뛰어나네, 어느 황자의 외교술이 뛰어나네, 정도였다.
‘하지만 주군께서는 전쟁 영웅이시지.’
사 년 동안 전쟁터를 전전한 칼리온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승전보를 울렸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나 결과만 놓고 따지자면 제국 전역에서 테시스보다 칼리온의 이름값이 더 높았다.
칼리온을 죽이기 위해 사선으로 내몰았던 황후의 흉계가 지금은 칼리온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는 셈이었다.
‘문무를 통틀어서 우리 전하의 자질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바론이었다.
“바론, 케이든에게는 연락을 넣었나?”
“……오늘 같은 날에는 좀 쉬셔도 되지 않습니까? 어째 전장에서 돌아왔는데도 하루에 다섯 시간을 못 주무시는지.”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선 칼리온에 바론이 불만이 그득그득 담긴 어조로 꿍얼거렸다.
대공의 부름이니 그가 당장 가겠다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정녕 제 주군은 쉬는 법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란 말인가.
“바론.”
“물론 연락은 조금 전에 했습니다. 바로 그쪽으로 가라고 전해 두었으니 전하께서도 바로 가시면 됩니다.”
칼리온의 낮은 부름에 바론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은 쉬라고 했지마는 그의 주군이 절대 곱게 누워 쉴 사람이 아니라는 건 바론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그가 모시는 주군은 배에 칼이 박히고도 바로 다음 날 말에 올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가 아니었던가.
바론이 속으로 불만을 중얼거리며 칼리온이 나간 뒤를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다녀올 테니 저번처럼 뒤를 잘 부탁하지.”
“예…….”
짧은 말을 마친 칼리온이 금세 창을 넘어 사라지고.
“하……. 이거 걸리면 진짜 사형감인데.”
집무실 안에 남은 건 머리색과 얼굴을 바꾸는 아티팩트를 착용한 바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