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88화(88/218)
그의 말을 들은 내 시선이 잘게 흔들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다시금 물었다.
“……앰버 길드요?”
“대공녀님께 소개하기에는 부끄러우나 그렇습니다.”
내게 폭탄을 선사한 케이든이 온화하게 웃었다.
나는 그제야 왜 그저 상냥하게만 보이는 그에게서 쎄한 느낌이 풍기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나는 마른 입술을 차로 적셨다.
앰버 길드.
방금 케이든의 입에서 약소하다 칭해진 앰버 길드는 제국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정보 길드였다.
우스갯소리로 앰버 길드에 의뢰하면 누가 오늘 무슨 색의 속옷을 입었는지까지도 전부 알 수 있다고들 했다.
물론 최고의 정보 길드답게 정보의 질이 좋은 만큼 그 가격도 비쌌지만.
‘옛날에 테인을 구하러 격투장에 갈 때 그곳에 대한 정보를 산 데도 앰버 길드였지.’
그런 정보 길드의 수장이 우리 편이라니. 그 사실만 놓고 보자면 정말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라그라스 상단 산하의 정보 길드 때문에 앰버 길드의 손해가 꽤 크다는 것만 아니었으면.’
-저희 상단의 정보 길드가 유명세를 타면서 가장 큰 손해를 본 건 앰버 길드입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지금껏 정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흐음, 역시 그렇구나. 그쪽이랑 마찰이 있고 그런 건 아니지?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신경을 쓰는 것 같긴 하지만요.
-그럼 됐어. 이 각박한 세상에 좀 나눠 먹으면서 살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갑자기 몇 달 전 유르젠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나는 오늘 내가 라그라스 상단의 상단주라는 것도 알리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굳이 마지막 패랍시고 도움이 될 전력을 끝까지 숨기는 멍청한 짓을 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런데 케이든이 앰버 길드의 수장이라니.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라그라스 상단 때문에 앰버 길드가 손해를 본 건 사실이니까.’
나는 흘끗 케이든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온미남의 향기를 폴폴 날리며 웃고 있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똑같이 온화한 얼굴로 하하 웃었다.
‘아, 모르겠다. 이제 같은 편 먹을 거니까 싫어도 별소리 안 하겠지. 우리가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합리화를 하기로 했다.
“앰버 길드라는 말에 조금 놀라서 말을 잊었네요, 아하하.”
나는 케이든에게 예의상 말을 건넸다.
역시 포기하니 마음이 편했다.
“흐음, 분위기를 보니 제 소개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서로 소개는 이쯤 하면 되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군요.”
어색한 공기 속에서 페른이 깐족거리며 입을 열었다가 아버지에게 단칼에 잘려 나갔다.
정확히는 무시당했다는 말이 맞겠다.
“……주군께서는 제게만 매정하십니다.”
나는 아버지의 무시에 상처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페른을 바라보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대공녀에게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라도 설명하는 게 우선이겠군요.”
더 불쌍한 건 칼리온마저도 그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본론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
조금 전 칼리온이 간단하고 명료하게 얘기해 준 사실은 상당히 놀라웠다.
중립파 귀족 중 반절 이상이 칼리온의 편에 서 있다니.
거기에는 헤센 공작가나 재클린 후작가, 발레리아 후작가, 사비에르 후작가 등 굵직한 가문이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칼리온의 세력이 많네.’
지금 중립을 표방하는 가문들의 반 이상이 그의 편에 섰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칼리온은 사 년 동안 전장에만 있었다.
그런 칼리온의 세력이 생각보다 그 크기가 훨씬 크다는 건 내가 놀라기에 충분한 사실이었다.
‘거기다 우리 가문도 칼리온을 지지하니까.’
이것저것 전부 따져 보았을 때 어느 정도 밀리긴 하지만 일 황자파와 아주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잠시 생각을 하던 내 귀로 칼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이 나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내 세력 중에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재클린, 발레리아 그리고 사비에르 후작가 정도가 전부고.”
“……그렇군요.”
칼리온이 말한 가문들은 전부 그의 최측근이었다.
재클린의 차남은 칼리온의 보좌관이며 발레리아의 수장은 칼리온의 외조부였다.
사비에르 후작가는…….
‘어쩐지 오라버니가 제롬 사비에르와 같이 있더라니.’
내가 에일런을 힐끗 바라보자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 맞는다는 뜻이었다.
재클린 후작가야 이전부터 칼리온을 지지했으니 다른 이들도 전부 안다지만.
‘발레리아 후작은 아실라 황비가 죽은 후에 영지로 내려가 칩거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나뿐인 손자에게는 관심도 없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닌 모양이었다.
현재 드러나 있는 칼리온의 세력은 실제 그의 세력에 비하면 삼분지 일도 되지 않았다.
‘……일부러 숨긴 거구나.’
만약 크로바하츠가 칼리온의 옆에 섰다는 게 알려지면 황후와 일 황자 측에서 즉각 조치에 들어갈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칼리온마저 죽이려 들지도 모르지.
황후는 이미 흑마법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관여한 적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칼리온이 제 세력을 오롯이 드러내지 않고 몸을 낮추고 있는 것에는 그 이유도 있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 간단히 전해 들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이렇게 됐으니 비밀은 없는 게 좋겠죠.”
“……?”
내 아리송한 말에 맞은편에 앉은 칼리온이 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이니.”
아버지와 에일런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다섯 쌍의 시선을 마주하니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분명 지금 내 얼굴에 서린 미소는 자신만만한 모습일 것이다.
“앞으로는 라그라스 상단도 이 황자 전하를 돕겠습니다.”
“그게 무슨…….”
갑자기 거론된 라그라스의 이름에 칼리온이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붉은 루비 두 쌍에도 놀란 기색이 다분했다.
‘이건 아버지랑 오라버니도 몰랐었나 보네.’
흑마법에 대해 조사하는 걸 알고 있길래 상단에 관한 것도 이미 들킨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놀란 이유를 모르는 나는 그렇게 넘겨짚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아버지가 전하를 도우시는 만큼 라그라스도 전하를 도울 거예요.”
당당한 어조로 말을 마친 나는 눈꼬리를 휘며 씩 웃었다.
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상단의 조력은 칼리온에게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내가 아는 그 라그라스 상단 말입니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칼리온이 내게 물었다.
“음, 이게 유르젠 케이시의 뜻이기도 하다고 하면 더 확실할까요?”
“허…….”
세간에 상단주로 알려진 유르젠의 이름을 꺼내자 누군가의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건 내가 유르젠과 함께 라그라스 상단을 세울 때부터 양해를 구해 두었던 것이다.
나중에 언젠가 내가 상단의 힘으로 누군가를 도와야 할지도 모르니, 그때 내 결정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라그라스 상단의 숨겨진 주인이 대공녀님이셨군요.”
칼리온의 옆에 앉아 있던 케이든이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한마디를 보탰다.
“음, 일단은 상단주와 동업자 정도로 해 둘까요.”
숨겨진 주인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했다.
‘그리고 좀 오글거려…….’
사실 그 이유가 조금 더 크긴 했지만, 어쨌든.
“……하하! 어쩐지 아무리 캐내도 여성분이라는 것 말고는 알아낼 수가 없더라니.”
“아하하.”
“제 아이들이 알아내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케이든의 말투에서는 어쩐지 즐거워하는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상냥하고 좋은 사람 같은 케이든의 성격은 영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속을 알 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뭐, 커다란 길드를 이끄는 사람들의 성격이 평범한 경우는 드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이 남았어요.”
이것도 내가 밝힐 것의 일부이긴 했으나 본론은 따로 있었다.
아버지가 칼리온을 부른 이유를 설명할 차례였다.
나는 손을 뻗어 아공간을 열었다.
아까 아버지와 에일런에게 보여 주었던 책과 아티팩트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이곳에는 내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뿐이니 상관없겠지.
“허……. 아공간 마법을 저렇게 쉽게 쓰시다니.”
페른의 민망한 중얼거림은 애써 못 들은 척했다.
탁- 스윽-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시계 모양의 아티팩트와 책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중앙으로 밀었다.
“이건…… 아티팩트군요.”
시계를 유심히 살피던 칼리온의 시선이 중간에 박혀 있는 보석에 닿았다.
“잠, 잠시 저도 보겠습니다.”
잽싸게 끼어든 페른이 아티팩트를 제 앞으로 가져갔다.
“허어, 이게……, 아니.”
페른이 아티팩트를 얼굴에 바짝 가져다 대고 혼자 무어라 중얼거렸다.
‘음, 페른은 알아본 모양이네.’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더라도 보석에 새긴 마법이 얼마나 악랄한 난이도의 것인지 알아본 게 틀림없었다.
평소에 보여 주는 유들유들하고 가벼운 모습과는 다르게 페른은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마법사였으니까.
“아까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는 설명해 드렸는데…….”
잠시 말을 멈춘 나는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그건 내가 처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보고는 유레카를 외쳤던 페이지였다.
“보시다시피 이 책에는 흑마법사를 구분해 내는 아티팩트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어요.”
그 말에 아버지와 에일런을 제외한 세 남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렁였다.
아직도 보석에 마법진을 새길 때 했던 개고생을 떠올리면 이가 벅벅 갈렸다.
초반에 실패하는 바람에 날렸던 보석과 내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피눈물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연히 저 책을 발견하고 또 아티팩트를 성공적으로 만들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럼 이게…….”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 있던 페른이 시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나와 있는 방법대로 만든 아티팩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