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90화(90/218)
“데뷔탕트 연회가 시작하던 날, 암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암살 시도……?”
“범인은 내 궁에 있던 하녀 두 사람이었고.”
칼리온이 덤덤한 말투로 사실을 읊었다.
세상에.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기 위해 얼굴에 힘을 주었다.
“그런 건 알려지지 않았는데…….”
본래 황족의 암살 시도는 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 칼리온에게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왜 아무도 몰랐지.
“일부러 알리지 않았습니다. 누가 보냈는지도 알고 있을뿐더러 알려져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내 의문을 풀어 주듯 들려온 칼리온의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얘기였다.
지금 상황에 칼리온에게 암살자를 보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황후겠지.’
칼리온과 대립하고 있는 장본인은 일 황자인 테시스 루인 엘베르였으나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알았다.
테시스를 지지함을 빙자해 진정으로 칼리온을 죽이고자 드는 것은 황후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암살자들은 흑마법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네?”
뒤이어 나온 칼리온의 말에 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암살자가 흑마법을 사용했다고?
“암살자들이 사용했던 독침에서 흑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었거든요.”
“제가 확인한 사실입니다. 아가씨도 아시겠지만 사물에 깃든 흑마법을 알아내는 건 힘들긴 하지만 가능하니까요.”
페른이 칼리온의 말을 긍정했다. 그리고 나 역시 페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페른이 확인했다면 사실이겠지.
아버지가 말한, 황후가 흑마법을 다룬다고 짐작한 또 다른 이유가 이거구나.
“……그럼 제게 요청할 도움이라는 건 흑마법에 관련된 거겠군요.”
잠시 띵한 머리를 달랜 나는 칼리온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내가 흑마법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칼리온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내게 걸린 저주에 대해 알아봐 주었으면 합니다.”
“……전하께 걸린 저주라니요.”
“삼 년 전 갑자기 원인 모를 두통이 찾아왔습니다.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그 두통은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끔찍한 고통이더군요.”
그 말을 하는 칼리온의 눈가는 미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원인 모를 두통.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핏기가 가신 손으로 주먹을 쥘 때 칼리온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며칠 전 암살자들이 찾아왔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진 감각이 두통과 흡사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독침에서는 흑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저주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같은 감각인지라.
나는 칼리온이 덧붙인 말에 그만 표정 관리를 못 하고 말았다.
‘……분명히 황후다.’
왜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흑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생명의 수를 알기에 무심코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나.
칼리온은 놀란 내가 진정하기를 기다려 주는 듯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야 아버지가 내게 요청한 도움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전하께서 정말로 흑마법에 노출되신 건지. ……그리고 그 흑마법을 파훼할 수 있는지.”
“…….”
“제가 도와야 하는 일은 그것이군요.”
흘러나온 목소리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칼리온은 소리를 내어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힘없이 웃는 얼굴이 그렇다 답하고 있었다.
“아…….”
나는 아득해진 눈앞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흑마법은 이름처럼 교묘하고 악독한 사술이었다.
다른 이의 생명을 대가로 한 저주 흑마법의 가장 무서운 점은 대상자가 죽기 전까지는 흑마법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도 주변인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다.
만약 칼리온처럼 눈치를 챈다고 해도 그것을 파훼하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바친 생명의 수가 많을수록 저주의 흔적은 옅고 그 힘은 강해.’
“……황자 전하.”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예, 대공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칼리온에게는 정말로 희미해 내가 그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몰랐을 희망이 서려 있었다.
나를 곧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던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
테이블을 돌아 칼리온에게로 향하는 나를 아버지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불렀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칼리온에게서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서자 페른의 물음이 들려왔다.
“아가씨, 뭘 하시려는 겁니까.”
“전하께서 정말 흑마법에 당하셨는지 확인할 거예요.”
내가 떠올린 그 저주가 맞는지 또한 확인할 거라는 말은 잠시 삼켜 두기로 했다.
“그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건 들은 적이 없는데.”
나는 지난 팔 년간 흑마법에 대해 서술한 서적과 마법서, 논문을 전부 끌어모았다.
훼손된 것은 복원하고 필요하다면 타국에 가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개중에는 지금은 수면 아래로 잠겨 버린 이야기도 많았다.
그랬기에 지금 칼리온이 겪는 일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 역시.
“있어요, 방법.”
망설임 없이 페른의 물음에 답한 나는 착용하고 있던 장신구를 차례로 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에일런이 주었던 귀걸이와 목걸이, 그리고 아버지가 주셨던 팔찌.
칼리온은 그런 나를 잘게 일렁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에게 위험이 미치는 방법이라면 원치 않습니다.”
나직한 그의 말은 나를 향한 걱정과 배려를 담고 있었다.
“아뇨, 위험하지 않아요.”
나는 옅게 웃으며 작게 답했다.
내가 방금 장신구를 전부 빼낸 건 마력이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쉽진 않지만 큰 위험을 동반하는 것도 아니었다.
흑마법을 파훼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확인하는 거니까.
“아, 맞다.”
준비를 마친 나는 조금 멋쩍은 얼굴로 칼리온에게 물었다.
“제가 잠시 전하와 이마를 맞대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
내 물음에 제일 빠르게 반응한 건 아버지와 에일런이었다.
나를 향하고 있던 두 쌍의 붉은 시선이 칼리온에게로 가 틀어박혔다.
“이마를……, 말입니까.”
그런 두 사람을 힐끗 본 칼리온이 조금 당황한 듯한 얼굴로 물었다.
“아, 그게, 이 방법을 쓰려면 신체의 몇 군데 이상이 직접적으로 닿아 있어야 해서요. 또 두통이라 하셨으니까 이렇게 하는 게 그나마 나은 방법이거든요…….”
조곤조곤 설명한 나는 끝말을 조금 흐렸다.
이런 말을 하기가 민망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나는 애써 차분한 얼굴을 그려 냈다.
“……예, 괜찮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차분한 내 설명에 칼리온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의자를 뒤로 밀어 일어나려 했다.
준비를 마친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다른 분들은 잠시 자리를 비워 주시겠어요? 제가 집중하려면 적어도 백 걸음 이상 떨어져 계셔야 해요.”
백 걸음 이상이라는 건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걸리는데?”
“으음, 그건 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아마 삼십 분은 안 걸릴 거예요.”
내 대답을 들은 아버지와 에일런의 미간이 또 좁아 들었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내가 칼리온과 둘이 남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얼른요.”
유리온실은 넓으니 다른 곳에 있는 테이블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기다리면 되겠지.
그렇게 아버지와 에일런, 그리고 페른과 케이든이 마지못해 자리를 떠난 후.
칼리온이 몸을 일으켜 테이블에 기대듯 앉았다.
“아무래도 의자보다는 이쪽이 더 편할 것 같아서요.”
눈매를 살짝 늘어뜨린 칼리온이 옅게 웃었다.
흑마법에 당했는가를 확인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치고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는 무섭지 않으세요?”
“지금 이 상황이 말입니까.”
“그냥 전부 다요. 흑마법에 당하셨을 수도 있고, ……제가 해결 방법을 알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음…….”
내 물음에 칼리온은 잠시 목을 울리며 고민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리 되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옅은 장난이 배어 있었다.
그게 나를 배려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기왕이면 솔직한 게 좋겠네요.”
그래서 나 역시 작은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솔직히 이 상황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흑마법은 금지되어 알려진 게 많지 않을뿐더러 당한 사람이 무사히 생을 마쳤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죠.”
남은 건 유실되지 않은 기록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과거의 흔적들은 하나같이 흑마법이 얼마나 악랄한가를 서술하고 있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으면서도 여전히 덤덤할 수가 없어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는 건 전쟁터에 있을 때를 의미하는 거겠지.
그의 말이 끝나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에리타 양.”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던 칼리온이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네, 전하.”
“이런 일로 그대에게 부담을 주게 되어 미안합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다른 이가 나를 믿는다는 건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이니까요. 적어도 내게 다른 이의 믿음은 그리 다가오더군요.”
칼리온은 그 말을 하며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어쩐지 그의 속마음 중 일부분을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저 내가 그에게 가진 호감 때문일까.
잠시 침묵하는 나를 대신해 칼리온이 느릿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다정한 그대라면 나를 동정하고 마음을 쓸 것 같아 더 미안합니다. 어렸던 나를 외면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도 그리하니까요.”
“…….”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런 그대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는 게 그저 기껍습니다.”
칼리온의 말은 무거웠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시린 벽안을 마주했다.
“황자 전하…….”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느낀 걸까.
“……그러니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내게 미안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칼리온이 말을 마무리했다.
“그럼 잠시 손을 내어 주실까요.”
부러 아무렇지 않게 말한 칼리온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편할 수 있도록 손바닥을 보인 채였다.
나는 어색한 손길로 생각보다 흉이 많고 커다란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눈을 감아 주세요.”
내 말이 끝나자 다정한 푸른 눈동자가 스르르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