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3)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93화(93/218)
창가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는 노크 소리와 비슷했다.
“뭐지?”
나는 몸을 일으켜 어깨 위의 숄을 여미며 발코니로 걸어갔다.
커튼을 살짝 걷고 유리문 너머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어둠이 내려앉은 저택 주변 광경뿐.
“……뭐야.”
순간 소름이 훅 끼친 내가 몸을 살짝 떨었을 때였다.
톡톡-
무언가 단단한 것으로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내 눈높이보다 조금 더 아래에서…….
응?
“……새?”
시선 끝에 걸린 것은 과장 조금 보태어 내 몸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커다란 새였다.
“갑자기 무슨 새가…….”
톡톡-
아직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 혼자 중얼거리고 있자 커다란 새가 다시금 문을 콕콕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는 요 새가 부리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아, 일단 너부터 들여보내줘야겠다.”
나는 그제야 서둘러 커튼을 옆으로 걷어 두고 발코니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새까만 새가 열린 문 사이로 쫑쫑 걸어 들어왔다.
낯선 사람 방에 들어오면서도 당당한 걸음걸이가 말도 못 하게 깜찍했다.
“……뭐야, 귀여워.”
새까맣고 커다란 새가 무서울 법도 했으나 내게는 그저 귀엽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털의 상태도 깔끔하고 표정도 유순한 걸 보니 누군가 기르는 아이인 듯싶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문을 닫고 다시 커튼을 쳤다.
그리고 뒤로 돌자 소파 옆에 얌전히 선 커다란 새가 푸른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그 푸른 눈동자를 보자 어쩐지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새 앞에서 몸을 굽혔다.
“혹시 전하께서 보내셨니?”
새에게 말을 거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원래 나는 가끔 동물에게 말을 걸곤 했다.
오래된 습관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 탓이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말을 걸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물들이 너무 사랑스럽기도 했고.
그때, 새가 빙글 돌아 내게 제 등을 내보였다.
“……가방?”
내 눈앞에 보인 건 조그만 가방이었다.
뀨욱- 꾹-
새는 가방을 열어 보라는 듯 등을 보인 채로 날개를 살짝 파닥거렸다.
처음에는 가방이 몸을 조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새의 얼굴에서는 불편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락하신다던 게 이런 방법일 줄이야.”
나는 황당함과 웃음이 공존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새가 메고 있는 가방을 열었다.
“그럼 잠시만 실례할게.”
공간 마법을 새긴 가방인 듯 특유의 부유감이 느껴진 것도 잠시, 내 손에 네모난 무언가가 잡혔다.
편지 정도가 들어 있겠거니 했던 내 예상과 달리 내 손에 잡혀 가방에서 나오게 된 건 일기장 크기의 노트였다.
“……이게 뭐지.”
고급스러운 가죽 표지의 노트에서는 미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아티팩트?”
뀩- 꾸국-
내 의문이 끝나자 새가 마치 내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울며 다시 몸을 척 돌렸다.
아까와 같은 푸른 눈동자가 어쩐지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혹시 마물인가?’
아까부터 묘하게 내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지던데.
만약 이 새가 마물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갔다.
보통 마물이라고 하면 전부 포악하고 사람을 해치는 흉악한 놈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마물들도 있었다.
‘북부에 있던 애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내가 아버지와 함께 북부에 살 때 가끔 성 뒤편에 있는 정원에 찾아왔던 눈토끼 마물과 꼬리가 세 개 달린 여우 마물들이 그랬다.
정식으로 마물 도감에도 등록된 그 아이들은 가끔 나를 찾아와 간식을 받아먹고는 했었다.
‘엄청 귀여웠는데.’
그래도 평범한 동물은 아닌지라 이빨과 발톱이 날카롭긴 했지만 그 아이들이 나를 다치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여튼 그런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은 마물일 확률이 높았다.
나는 마물에 큰 관심이 없어 종류는 잘 몰랐다.
‘뭐, 정확한 건 칼리온에게 물어보면 되겠지만.’
읏차-
흥미로워하는 눈으로 까만 깃털을 가진 새를 보던 나는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내가 책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그런 내 뒤를 새가 졸졸 따라왔다.
예상하건대 내가 노트를 열어 보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커다란 새의 시선이 나와 내 손에 들린 노트를 오가고 있었으니까.
‘내가 노트를 열어 보는 것까지 확인하고 오라고 한 모양이네.’
똑똑해 보이는 이 아이는 내가 노트를 열어 보나 안 열어 보나 확인을 해야 돌아갈 게 틀림없었다.
“잠시만. 너한테 뭐 하나만 주고 금방 열어 볼게.”
이번에도 내 말을 알아들은 모양인지 바쁘게 움직이던 새의 눈동자가 딱 멈췄다.
그러고는 책상 서랍을 여는 내 손을 눈으로 좇기 시작했다.
뭘 준다는 것도 기가 막히게 이해한 듯했다.
“……너 진짜 귀엽다.”
나는 그런 새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어둠 속에서 커다란 덩치의 새를 보았을 때 느꼈던 놀람은 사라지고 어느새 푸른 눈동자의 새를 귀여워하는 감정만 남아 있었다.
“아, 여기 있다.”
내가 서랍에서 꺼내 든 건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커다란 크기의 상자였다.
정확히는 내용물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보존 마법을 걸어 둔 간식용 상자라고 해야 할까.
“이거 따로 양념은 안 한 거라서 너도 먹을 수 있을 거야.”
상자 안에서 내가 꺼내 든 것은 육포였다.
이래 봬도 에반이 직접 만든 수제 동물용 육포란 말이지.
몇 년 전부터 에반은 동물들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주기적으로 동물용 간식을 만들어주었다.
에반이 만들어준 간식 덕분에 조금 까칠하던 동물들도 유순하게 변했었지.
그러니 만약 이 새가 진짜 동물이어도 괜찮을 테고 만약 마물이라면 더더욱 먹어도 괜찮을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새에게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그 크기가 조금 작긴 하지만.
꾸륵- 쀼-
요 귀여운 새도 그것을 알아봤는지 엉덩이를 살랑살랑 씰룩이며 날개를 흔들었다.
웬만한 다섯 살 아이보다 커다란 덩치의 새가 신나 하는 걸 보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나는 손에 조그만 육포 조각 세 개를 올린 다음 새에게 내밀었다.
날카로운 부리는 내 손을 쉬이 찢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이 유순한 새는 내 손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지 않고 육포만 날름 집어 갔다.
뀩-!
이내 육포를 삼킨 새가 뀨뀨 울며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어머, 그렇게 맛있었어?”
내 다리에 머리를 살짝 비비는 걸 보니 육포가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나는 그 귀여움에 속절없이 함락되어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나머지 육포도 꺼내 주고 말았다.
하지만 상자 안에 들어 있었던 육포는 전부 해서 조그만 조각 열 개 정도였던지라 두어 번을 더 먹으니 육포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으음, 어쩌지. 이제 더 없는데…….”
내가 미안해하며 머리를 슥슥 쓰다듬자 새의 모습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누군가를 쏙 빼닮은 푸른 눈망울이 시무룩해지는 것을 보자 나까지 안타까워졌다.
다음에 또 만나자 어르기 위해 새를 부르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모르네.”
일단 눈 색을 따서 파랑이라고 부르지, 뭐.
“……파랑아, 다음에 만나면 또 줄게. 너무 아쉬워하지 마, 응?”
다행히 귀여운 새는 나를 곧게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이 뀨뀨 울었다.
만약 또 만날 일이 없다면 칼리온에게 슬쩍 육포를 건네줄 생각이었다.
앞으로 요 새는 몰라도 칼리온은 만날 일이 꽤 많을 테니까.
뀨욱- 뀨-
새의 그 울음소리가 마치 알았어, 약속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보자- 그럼 이제 전하께서 보내신 노트가 뭔지 봐야겠네.”
내 손에 얼굴을 부비는 새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준 나는 의자에 앉았다.
커다란 새는 그런 내 옆에서 책상 위에 얼굴을 얹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으음, 이거 아티팩트인 것 같은데.”
여전히 느껴지는 미미한 마력에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천천히 노트를 펼쳤다.
[에리타 양에게. 이 노트를 받으셨다면 그대의 마력을 각인시켜 주세요. 그러면 그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노트에 적힌 내용을 보지 못할 겁니다.]“……헐.”
첫 페이지에 적힌 글귀를 본 내 눈이 크게 뜨였다.
마력을 각인시키면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내용을 볼 수 없는 노트형 아티팩트.
아티팩트에 관심이 많은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거였다.
이건 바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와 손쉽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따지자면 전생에서 사용했던 메신저 같은 아티팩트였다.
[그대라면 이 노트를 받음과 동시에 아티팩트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알고 계실 수도 있겠군요.]그의 말대로였다.
나는 우선 노트에 내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노트에서 흰 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거 엄청 만들기 힘든 건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상에 놓여 있던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
에리타가 한창 까맣고 유순한 새를 귀여워하고 있을 무렵.
커다란 새의 주인은 잠잠한 창밖과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올 때가 지났는데.’
칼리온이 레브라 이름 붙인 그의 새는 삼 년 전 그가 전쟁터에서 구해 낸 마물이었다.
푸른 눈동자를 가진 레브는 본래는 포악하기로 소문이 난 비행형 마물이었다.
하지만 레브는 아직 어렸고, 다른 마물들에게 공격당해 상처 입은 새끼 마물을 열여섯의 칼리온은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게 구해 온 새는 삼 년이 지나자 왜소했던 새끼 시절이 언제였냐는 듯 건강하고 똑똑한 그의 새로 자랐다.
“레브가 길을 잃은 건가.”
그의 똑똑한 새가 길을 잃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칼리온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열 시 반.
칼리온이 레브를 에리타에게 날려 보낸 게 열 시였으니 벌써 삼십 분이 지난 후였다.
평소 레브의 속도를 생각해 보면 황궁에서 대공저까지 다녀오기에 충분한 시간.
“……아직 답도 없는데.”
만약 에리타가 잠이 들었다면 레브가 진작 돌아왔을 시간이고, 레브가 노트를 전달했다면 답장이 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펼쳐 놓은 노트에는 그의 글씨만 남아 있었고, 레브는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 참. 언제부터 인내심이 이렇게 약했는지.”
평소의 그는 절대 급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지만 꼭 한 사람이 관련되기만 하면 다른 사람처럼 변하곤 했다.
그때였다.
펼쳐 놓았던 노트 한켠에 까만 글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음, 전하. 혹시 지금 보고 계신가요? ……이렇게 쓰는 거 맞나.]동글동글한 글씨는 그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페이지를 채워 갔다.
단정하게 만들어진 문장을 바라보던 칼리온의 얼굴에 그 자신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 동그란 글씨를 바라보던 칼리온이 옆에 놓여 있던 펜을 들었다.
-예,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쓰시면 제게 보입니다.
사각사각-
만년필의 촉이 종이 위를 지날 때마다 까만 잉크가 흔적을 남기듯 문장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