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7)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97화(97/218)
그 뒤로 조금 더 앰버 길드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나는 테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테인 너는 바델 숲에 잘 다녀왔어?”
유르젠이 상단의 일로 자리를 비운 동안 테인도 바델산맥에 다녀왔었다.
하지만 유르젠과 달리 테인이 자리를 비웠던 이유는 상단에 관련된 일 때문이 아니었다.
황도에서 꼬박 사나흘 동안 말을 달려야 나오는 거리에 위치한 바델산맥.
그곳에는 포악한 마물들이 대거 출몰하며 산세가 험준한 탓에 인간의 접근을 허용치 않았다.
그렇기에 수백 년 전 수인들이 인간들을 피해 거처를 찾을 때 선택한 장소이기도 했다.
수인들이 바델산맥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고 말이다.
‘뭐, 나는 원작을 봐서 알고 있었지만.’
격투장에서 테인을 데려온 지 일 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테인을 데리고 바델산맥으로 향했었다.
원작을 읽었던 나는 그때까지도 테인의 아버지가 애타게 테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마법을 쓸 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그 험한 산을 마법 없이 올랐다면 어떤 꼴이 됐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무사히 테인을 가족들에게 데려다주는 것에 성공했고, 그 덕에 수인들에게 은인과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더 일찍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지 않았던 건 아직도 미안하게 생각해.’
내가 하고자 했다면 격투장에서 테인을 찾아온 직후에 충분히 가족들에게 보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가족들에게 보내 줬다면 테인이 내 편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격투장에서 데려온 직후 테인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테인과의 유대감을 쌓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유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그렇게 할 정도로 내게는 테인이 필요했다.
“에리타 님?”
잠시 옛날 생각을 하고 있던 내 귀에 내 이름이 들려왔다.
나를 부른 건 테인이었다.
“으응?”
“갑자기 말이 없어지셔서…….”
“아,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한다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냈다.
시작과 이유가 어찌 되었든 테인은 내게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 본 건데 너무 짧게 다녀와서 아쉬웠겠다.”
“아니에요. 충분히 봐서 괜찮아요.”
테인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가족을 좋아하는 테인이니 아쉬웠음이 분명할 텐데도 괜찮다고 하는 마음이 고우면서도 괜히 미안했다.
“다음에 시간 나면 나랑 같이 한번 다녀오자.”
“……정말요?”
“응, 정말. 이럴 때 마법 안 쓰면 또 언제 쓰겠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묻는 테인의 말에 나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에 온 뒤로는 시간이 잘 나지 않아 가 보지 못했지만 그 전까지는 두어 달에 한 번씩은 바델 숲에 다녀왔었다.
따로 말을 한 건 아니지만 테인은 나와 함께 바델 숲에 가는 걸 좋아했다.
그때만 되면 얼굴이 환해지는 탓에 모를 수가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안 그래도 아버지가 에리타 님께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다음에 꼭 찾아와 주셨으면 한다고…….”
“응? 나한테?”
테인 아버지가 나한테 감사하다고 할 일이 뭐가 있지.
별다른 이유를 생각해 내지 못한 나는 의아해하는 얼굴을 했다.
“제 목소리를 들으시고 우셨거든요. 평생 듣지 못할 줄 아셨다고……. 그래서 꼭 와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수줍게 그 말을 전한 테인이 제 목을 한 번 매만졌다.
하얀 목에 남아 있는 흉은 최상급 포션과 고위 사제의 치료로도 전부 지울 수 없었다.
그나마 옅게 흐려진 것이 전부였지만 테인은 그것만으로도 환하게 웃으며 분에 넘칠 정도로 족하다 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뭘. 나는 테인 네가 좋아해 준 걸로 충분해.”
나는 막혀 오는 목에 웅얼거리듯 대꾸하며 괜스레 몸을 돌려 테인을 한 번 꼭 안았다.
“……에리타 님?”
당황한 듯한 테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커다란 몸을 욕심껏 꼭 안아 준 후에야 팔을 풀었다.
붙였던 몸을 떼어 내자 갑작스러운 접촉에 많이 놀란 건지 붉게 달아오른 테인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셔츠 위로 드러난 목덜미도 불긋했다.
“미안, 당황했지. 그냥 오랜만에 안아 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순진한 얼굴을 보자 어쩐지 미안해져 나는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아, 아니에요. 에리타 님이 안아 주시는 건 언제든지 좋아요…….”
착한 테인은 귀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이고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배시시 웃었다.
“어휴, 테인, 이렇게 착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조금 서늘한 손등을 테인의 볼에 가져다 대자 따끈한 온기가 느껴졌다.
손등에 얼굴을 기대 오는 테인의 몸짓은 자연스러웠다.
패도적이고 사나운 것으로 유명한 늑대 수인의 소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밖에서 누가 막 끌어안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닌데…….”
내 장난스러운 걱정의 말에 테인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웅얼거렸다.
“나 참. 도대체가 여우인지 늑대인지…….”
그런 우리를 보며 유르젠이 혼자 무어라 중얼거렸다.
“뭐라고?”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이에요.”
“아닌 것 같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유르젠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말하기 싫으면 말고.”
굳이 캐묻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나는 관심을 돌렸다.
“그럼 우리 얘기도 끝났겠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내가 살게.”
“저는 좋아요.”
내 물음에 얌전히 옆에 앉아 있던 테인이 빠르게 답했다.
“하하, 뭐야. 테인, 너무 고민도 없이 답한 거 아니야?”
“수도에서 에리타 님이랑 나가는 건 처음이잖아요.”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처음이구나.”
테인의 말대로 수도에서 두 사람과 나가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데뷔탕트 무도회를 준비하느라 이래저래 바쁘기도 했고, 유르젠과 테인 둘 역시 시간이 맞지 않았던 탓이었다.
“유르젠은? 시간 괜찮아?”
“……저는 무리일 듯싶습니다. 오늘까지 끝내야 할 일이 많아서요.”
유르젠을 바라보며 묻자 그는 곤란해하는 얼굴을 하며 느릿하게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책상으로 고개를 돌리자, 흡사 아버지의 집무실 책상과 비견될 법한 서류 더미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퐁퐁 솟았다.
“……나도 좀 도울까?”
“저는 괜찮으니 테인과 같이 가십시오. 다음에 차나 같이 마시러 와 주시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소심하게 묻는 내 말에 유르젠이 특유의 예민한 얼굴로 나른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피곤하긴 해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확실히 유르젠은 일을 좋아했다.
쌓여진 서류에서 나는 종이 냄새를 좋아했고, 일하면서 마시는 커피를 좋아했다.
“그리고 에리타 님이 남아 계시면 실망할 늑대도 저기 한 마리 있군요. 그럼 제가 여러모로 신경이 쓰입니다.”
유르젠이 테인을 눈짓했다.
옆을 돌아보자 조금 아쉬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던 테인이 급하게 표정 관리를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나와 처음 나가 보는 거라며 신이 나 쫑긋 서 있던 귀가 어느새 풀이 죽어 축 처져 있었다.
표정은 어떻게 평소와 같이 꾸몄지만 표정보다 더 솔직한 귀와 꼬리는 감추지 못했다.
“……그럼 오늘은 테인이랑 둘이 데이트해야겠다. 유르젠은 다음에 내가 대공가 주방장 특제 디저트 들고 찾아올게!”
내 말에 테인의 표정이 확 밝아졌고, 유르젠이 그러시라며 픽 웃었다.
***
상단 안에 있을 때와 달리 바깥으로 나온 테인은 수인의 특징인 귀와 꼬리를 숨긴 채였다.
불법이 아닌 이상 제국에서 수인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도 벌써 몇백 년이 지났다.
“테인, 불편하지는 않아?”
“네? 뭐가요?”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테인의 얼굴에는 한 점의 불편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음, 이제는 괜찮아졌나?’
본래 테인은 밝은 곳에서 제 외모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놓고 싫다고 얘기한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같이 알고 지내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몸을 구속하는 것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도.
밝은 곳에서는 무조건 후드를 써 외모를 가린다는 것도.
전부 곁에 있었기에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아마 격투장에서 있었던 과거 때문이겠지.’
끔찍했던 곳에서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영향은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에리타 님?”
“……으응, 아무것도 아냐.”
의아해하는 얼굴로 나를 부르는 테인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괜찮아 보이는데 굳이 그 말을 꺼내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쫑긋거리는 삼각형 늑대 귀가 사라진 부들부들한 잿빛 머리카락을 흘낏 바라보았다.
‘……솔직히 마법도 마법이지만 수인들이 귀랑 꼬리를 숨기는 것도 만만치 않게 신기하단 말이야.’
감정 조절이 어려울 때가 아닌 이상 수인들은 귀와 꼬리를 마음대로 꺼냈다 넣었다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있는 소수의 수인들이 들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거겠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나는 가볍게 테인의 팔을 잡았다.
“일단 뭐부터 먹고 돌아다니는 게 좋겠다.”
한 시가 조금 넘은 지금은 점심시간이 애매하게 지난 시간이었다.
굳이 레스토랑에 가지 않아도 배를 채울 방법은 많으니.
보통 귀족들은 길거리 음식을 하찮게 생각하는 면이 있지만 전생을 생생히 기억하는 내게 길거리 음식은 익숙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길거리 음식만큼 자극적인 게 잘 없지.’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매운 음식은 귀족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에일런만 봐도 매운 건 딱히 좋아하지 않으니.
“테인,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 줄게.”
나는 팔짱을 낀 채로 테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에리타 님이 원하시는 걸로 먹어요.”
내 물음에 테인이 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내가 먹고 싶은 거면 다 좋아?”
“네, 다 좋아요.”
다 좋다고 말하는 테인의 얼굴을 보자 어쩐지 페른에게 당해 오며 고이고이 길러 왔던 장난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흐음, 테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 볼게!”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팔짱 낀 테인을 살살 이끌었다.
내가 저를 놀려 주려고 뭘 고를지도 모르면서 테인은 그저 밝은 얼굴로 내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