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98화(98/218)
“흐음, 테인이 내가 먹고 싶은 거 고르라고 했으니까 오늘은 매운 꼬치구이를 먹어 볼까.”
흠칫-
걸음을 옮기며 신이 난 어투로 중얼거리자 얌전히 나를 따라오던 테인의 몸이 티 나게 움찔거렸다.
“엄청 매워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간판이 붙어 있었지, 아마? 다음에는 유르젠도 데리고 와야겠다.”
이어진 내 말에 테인의 걸음이 작게 헛돌았다.
물론 장난치려는 의도가 있긴 했지만 실제로 간판에 저렇게 적혀 있는 건 사실이었다.
테인 스스로는 부정하지만, 확실히 테인은 매운 걸 못 먹었다.
유르젠은 의외로 매운 음식을 좋아했고.
그런 이유 탓에 우리 셋이서 밥을 먹을 때면 테인 혼자 다른 메뉴를 먹는 일이 빈번했다.
항상 자기도 먹을 수 있다고 매운 음식에 도전했다가 금세 얼굴을 죄 빨갛게 물들이고 눈물을 퐁퐁 흘리며 나가떨어지는 테인의 모습은 덤이었다.
‘……음, 너무 놀렸나.’
어쩐지 보지 않아도 애처롭게 굳어 있을 얼굴이 그려져 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당황하고 말았다.
“……테인?”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던 테인은 내 생각과 정반대로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과장 조금 보태어 훈련할 때만큼이나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에리타 님, 저 오늘은 진짜 먹을 수 있어요. 아니, 꼭 먹을 거예요.”
……아니, 뭐라고?
“으, 으응? 아니, 나 장난친 건데……. 테인 매운 거 못 먹잖아. 다른 거 먹으면…….”
“아니에요. 저 꼭 먹고 싶어요. 엄.청. 매워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꼬치구이 먹어요, 에리타 님.”
어쩐지 엄청이라는 말에서 강세가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순식간에 땀을 뻘뻘 흘리는 건 내가 되었다.
“테인, 내가 미안해. 장난이 좀 심했지? 여기 다른 맛있는 것도 엄청 많은데 뭐 먹을까?”
그제야 내가 테인의 알 수 없는 승부욕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말을 돌려 보려 애를 썼지만 테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스테이크 어때? 나 진짜 맛있는 집 알아!”
“으응, 아녜요. 에리타 님이 말하신 꼬치 먹으러 가요.”
테인이 좋아하는 스테이크로 회유를 해 보아도 그는 꿋꿋이 매운 꼬치구이만을 주장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갑자기 저 요상한 승부욕이 발동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고집스러운 테인의 모습에 나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어휴, 그러게 순진한 애한테 장난은 왜 쳐서…….’
내가 아주 몹쓸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정말 매운 꼬치구이를 먹는다면 오늘도 테인의 입술과 눈이 부어오를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그냥 예정된 순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테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쓰읍, 아, 흐…….”
그 결과는 테인의 눈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로 돌아왔다.
고기가 여섯 개 꿰여 있는 꼬치에서 테인이 먹은 건 고작 하나 반이었다.
예민한 수인의 혀에는 그것도 충분히 자극적이었겠지만.
“그러게 다른 거 먹자니까……. 그만 먹어.”
“괜찮……, 흐, 괜찮아요.”
내 만류에도 테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고기 반 개를 또 입에 넣었다.
“아니, 테인…… 누가 보면 내가 너 괴롭히는 줄 알겠어…….”
죽을상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매운 꼬치를 먹는 테인과 멀쩡한 얼굴로 그 옆에 있는 나.
그다지 정겨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머리색 바꾸고 나와서 다행이다.’
크로바하츠 대공녀, 길거리에서 평민을 괴롭히다?! 이따위 제목으로 가십지에 나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닌가.
전생에서나 여기서나 남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사람들이 존재함은 똑같았다.
뭐, 물론 진짜 저런 기사가 나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으실 테지만.
“더 먹으면 오늘도 잠 못 잘걸. 자, 오렌지주스.”
벌써 부어오르기 시작한 테인의 입술에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내밀었다.
얼음까지 동동 띄워진 주스를 보는 테인의 시선이 흔들렸다.
헥헥대며 남은 꼬치와 오렌지주스를 번갈아 바라보던 테인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꼬치를 외면했다.
다행스럽게 대쪽 같던 고집도 꼬치를 직접 입에 넣어 보니 흐물흐물해진 모양이었다.
“쭉 마셔, 쭉.”
테인이 생과일을 짜서 만든 주스라 제국에서 제일 맛있다는 홍보 문구의 오렌지주스를 쭉쭉 들이켰다.
“에리타 님은 이런 걸 어떻게 드세요…….”
여전히 매운 기가 남아 있는지 테인이 숨을 들이켜며 울상이 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음, 맛있으니까?”
내가 허허 웃으며 답하자 테인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저는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저 오늘은 진짜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매운 걸 먹으려고 해. 수인들이 맛에 예민한 거 다 아는데.”
“……에리타 님이 좋아하시는 거잖아요. 이런 거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
테인이 풀이 죽은 얼굴로 작게 소곤거렸다.
목덜미가 발긋한 걸 보니 조금 부끄러워하는 모양새였다.
“……어휴, 정말. 이렇게 착해서 어떡해.”
어쩐지 나까지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나는 부러 더 활기차게 말하며 테인을 이끌었다.
“저희 어디 가요?”
“테인이 내가 좋아하는 매운 꼬치 같이 먹어 줬으니까 이번에는 테인이 좋아하는 초코아이스크림 먹으러. 어때?”
“……좋아요.”
아마 꼬리가 나와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붕붕 흔들렸으리라.
***
내가 테인을 데리고 온 곳은 카페 Clair Ciel이었다.
편하게 부르면 끌레르 씨엘.
수도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에일런이 나를 데리고 왔던 곳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리안이었던 칼리온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고.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웃는 얼굴의 점원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네, 두 명요.”
“창가 자리와 안쪽 자리가 남았는데 어디가 좋으시겠어요?”
“음, 잠시만요. 테인, 안쪽으로 가는 게 좋겠지?”
내 물음에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어색하게 가게 안을 살피던 테인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창가를 선호했지만 테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는 안쪽이 더 좋을 듯싶었다.
“안쪽으로 부탁드릴게요.”
“네에, 그럼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와 주세요.”
활기찬 점원을 따라 도착한 자리는 운 좋게도 가장 안쪽 자리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에 테인이 앉을 수 있도록 나는 먼저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메뉴를 정하시면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을 울려 주세요!”
메뉴판을 놓아 준 점원이 등을 돌려 자리를 비우자 그제야 테인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어졌다.
나는 그런 기색을 알았지만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았다.
“자, 여기서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봐. 전부 다 사 줄게.”
그 대신 메뉴판을 펼쳐 주며 씩 웃었다.
몇 분 후 테인은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간단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골랐고, 나는 테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더 추가해 다섯 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에리타 님은 번화가에 자주 나와 보셨어요?”
커다란 손에 맞지 않게 앙증맞은 숟가락을 든 테인이 물었다.
“응?”
“여기저기 아는 곳이 많으시길래…….”
되짚어 보자면 오늘 이리저리 행선지를 정한 건 나였다.
잡화점에 들러 테인에게 이것저것 골라 준 것도 나였고, 지금 카페로 테인을 데려온 것도 나였다.
내가 수도에 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으니 테인이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음, 들켰네. 가끔 심심할 때마다 변장하고 나왔었어.”
“……또 몰래 나오셨던 거예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내게 테인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물었다.
“그렇게 몰래 나오시면 위험해요. 여긴 대공령도 아닌데…….”
그 뒤로 테인은 수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에 대해 줄줄 늘어놓았다.
대부분이 몹쓸 강도 놈이 얼마나 많은지, 껄렁거리는 양아치가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 그런 것들이었다.
대공령 다음으로 치안이 좋은 수도가 위험한 지역 취급을 당하게 되는 데에는 고작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음, 테인, 물론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법사잖아.”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이래 봬도 최상급 마법산데.
“에리타 님이 마법사라도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예요. 에리타 님도 제가 의뢰받고 나갈 때 맨날 걱정하시면서…….”
테인이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타박했다.
지적할 게 하나도 없는 사실로만 이루어진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순간 아버지랑 오라버니 보는 줄 알았네.’
내가 그런 시정잡배들에게 당할 만큼 약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하는 게 딱 두 사람과 같은 모양새였다.
“아니, 그거랑 이건 좀 다른 거 같은데…….”
“같은 거예요.”
내게는 말랑말랑한 순두부처럼 구는 테인이 답지 않게 단호하게 답했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늑대 수인 중에서도 순수한 혈통을 타고난 테인을 걱정하는 나도 과보호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유르젠이 나보고 테인 부모님처럼 굴지 말라고 하겠어.
‘근데 아무리 컸어도 테인은 연약하게만 느껴진단 말이야.’
내게 남은 작았던 테인의 기억이 너무 큰 탓이다.
“……알았어. 앞으로는 더 조심해서 다닐게.”
하지만 그런 테인의 걱정이 싫은 건 아니었기에 나는 결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그제야 안심한 듯 굳어 있던 테인의 얼굴이 순하게 풀어졌다.
그저 순둥하게만 보이는 테인에게도 의외로 집요한 구석이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네.
“……아.”
그때 테인이 무언가를 생각해 낸 듯 작은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어쩐지 밝아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 이제 에리타 님 호위 기사 할 수 있는 건가요?”
튀어나온 질문은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