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9)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99화(99/218)
“……응? 내 호위 기사?”
내 물음에 테인이 수줍어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 기사라니. 내가 아는 그 호위 기사를 말하는 건가?
“옛날에 에리타 님이 가족들이 저에 대해 알게 되면 그때는 호위 기사 시켜 주신다고 했었는데…….”
“어, 어…….”
“이제는 에리타 님이 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하셨으니까 호위 기사로 들어가도 되나요?”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가는 테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더라.
그의 기대감 어린 눈빛에 애매하게 답한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빠르게 기억을 뒤졌다.
어렴풋하게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거 같기도 한데…….
‘……아. 내가 북부로 갈 때.’
그때 내 머릿속에 지금보다 작던 이 년 전의 테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테인이 말한 옛날은 내가 대공령에서 북부로 가던 이 년 전의 겨울이 틀림없었다.
라그라스 상단은 수도에 자리를 잡았고, 자연히 유르젠과 함께 지내던 테인도 수도와 바델 숲을 오가게 되었다.
‘대공령은 수도랑 그렇게 안 멀어서 테인이 자주 왔다 갔다 했었지.’
하지만 북부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쉬이 오가지 못할 정도로 멀었고, 그 탓에 나와 자주 보지 못하게 된 테인은 한참을 우울해했다.
-저도 에리타 님이랑 같이 북부로 가고 싶어요. 호위 기사로 같이 가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유르젠 님이 에리타 님은 귀족이시니까 호위 기사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는데…….
아직 젖살이 남아 앳된 얼굴로 동글동글한 글씨가 적힌 종이를 내밀던 테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호위 기사로?
글을 읽은 나는 곤란함이 묻은 어조로 되물었다.
그 짧은 단어에서 부정의 뉘앙스를 느낀 건지 테인의 귀가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테인이 내게 의존하는 구석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가족들에게 테인의 존재를 들킬 수 없었고, 그랬기에 어쩔 수 없이 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 테인. 아버지는 감이 좋으셔서 나랑 같이 지내면 테인이 수인이라는 걸 금방 알아채실지도 몰라.
그런 내 거절에 테인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을 했었다.
그 뒤로도 몇 날 며칠을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을 했기에 나와 유르젠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너무 매정하게 거절하신 거 아닙니까. 테인이 아가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면서요. 여기서 북부를 쉽게 오갈 정도의 마법사는 일단 당장 상단에는 없습니다.
오죽하면 유르젠이 내게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축 처진 테인의 상태가 심각했다는 말이다.
-아니, 나도 그건 알지……. 근데 유르젠도 알잖아. 우리 아버지 소드 마스터라서 감이 엄청 좋단 말야. 내 호위 기사로 들어오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고.
-뭐, 그건 그렇지만요.
-그리고 지금까지 호위 기사는 필요 없다고 했던 내가 갑자기 테인을 데려가면 그것도 엄청 수상하잖아. 아버지가 카일 경을 호위로 붙여 준다고 했던 것도 거절했었는데…….
카일은 아버지의 직속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일단 나는 편의상 어둠의 기사단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기척도 없이 휙 나타났다가 눈앞에서 공중으로 휙 사라지는 아버지의 직속 기사단의 단원들이 총 몇 명인지는 아직까지도 몰랐다.
-하여튼 지금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
-……그럼 뇌물이라도 좀 쥐여 주고 달래 주세요. 아가씨가 북부로 가시면 테인이랑 같이 지내는 건 저란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뇌물로 핫초코를 챙겨 들고 테인을 찾아갔다.
-흠흠, 테인.
내 부름에 고개를 들고 힘없이 웃는 테인의 얼굴을 보자 나는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 아버지랑 오라버니한테 비밀을 밝히면 그때는 꼭 테인이 내 호위 기사가 되어 줄래? 만약 그때도 테인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결국 나는 준비해 온 이런저런 말들을 다 치워 두고 테인이 가장 바라는 것을 들어주겠다 약속했었다.
아마 그때는 막연히 테인이 조금 더 자라면 호위 기사에서 관심을 끄리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지금 이렇게 다시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지.
그제야 생각이 난 이 년 전의 일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내가 북부로 갈 때 했던 얘기 말하는 거 맞지?”
내 물음에 테인이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대화를 기억한다는 사실이 못내 좋은 모양이었다.
“음…….”
테인의 그 솔직한 반응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직접 말을 꺼낸 걸 보니 테인은 여전히 내 호위 기사가 되고 싶은 모양인데…….
이제는 아버지와 에일런에게도 테인과 수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거였기 때문에 테인의 말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테인이 바델 숲에 다녀온 이유도 수인들의 수뇌부에게 내 요청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걸리는 건 테인의 사회적 위치였다.
내가 아무리 테인과 가까운 사이라고는 해도 따지자면 테인은 수인들의 차기 후계자였다.
그런 테인이 내 호위 기사를 자처하는 건 어째 좀 그랬다.
“테인 너는 아직도 내 호위 기사가 하고 싶은 거야?”
“……네, 하고 싶어요.”
잠시 내 눈치를 보던 테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수인들을 이끌 후계자인데도?”
“그런 건 상관없는데……, 저한테 에리타 님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그, 물론 에리타 님이 싫지 않으시면요.
단호하게 답한 테인이 자그맣게 뒷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런 테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싫을 리가 없잖아.”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테인이 좋다는데, 뭐.
***
“오셨습니까, 아가씨.”
테인과 헤어진 후 저택으로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테르반이었다.
찾아온 봄을 맞아 직접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중이었는지 밖에 나와 있던 탓이었다.
“테르반! 아버지는 집무실에 계세요?”
“예, 주인님은 집무실에 계십니다. 조금 전에 도련님께서도 집무실로 가셨는데…….”
“잘됐다! 고마워요, 테르반!”
급한 내 물음에 테르반의 빠른 답이 돌아왔다.
나는 테르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저택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마침 일정을 끝내고 온 에일런도 집무실에 있다고 했으니 타이밍이 딱 적당했다.
순간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은 후에 얘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굳이 방으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빨리 해치우는 게 낫다는 게 내 신조였다.
‘뭐, 어차피 수인들 관련해서도 말씀드려야 했으니까 잘됐지.’
집무실로 향하는 내 품에는 테인의 아버지, 그러니까 수인들의 수장이 보낸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간략하게 말해서 수인들은 나, 에리타 크로바하츠의 뜻에 동참할 거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일단 수인들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한 다음 테인을 내 호위로 들이겠다고 얘기를 해야겠네.
나는 간단하게 말할 순서를 정리했다.
“……왠지 아버지랑 오라버니가 반대할 것 같긴 한데.”
아버지와 에일런의 과도한 보호를 알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뭐, 내 호위 기사니까 내가 정하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하시겠어?”
아버지의 집무실로 가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의 두 남자의 과보호가 예상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몇 분 후였다.
“……에리타.”
아버지의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 내게 향했다.
“네?”
“그러니까 이 편지가 몇백 년 전 자취를 감췄던 수인들의 뜻이라는 말이냐?”
그렇게 묻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선명한 놀람이 담겨 있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에일런도 아버지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런 셈이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아버지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아버지의 말투에는 미약한 어이없음과 다량의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멋쩍게 하하 웃으며 손가락 끝을 꾹꾹 눌렀다.
라그라스 상단에 흑마법, 최상급 마법사라는 소식을 전한 게 고작 며칠 전이니 아버지와 에일런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저번에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때는 아직 전달이 덜 끝났을 때라…….”
“아가 네가 죄송할 건 없지.”
“그래. 그냥 예상 못 했던 일이라서 좀 놀란 것뿐이야. 좋은 일이기도 하고.”
에일런이 짧은 아버지의 말을 보완했다.
다행히 이전에 한번 대형 비밀을 펑펑 터뜨린 적이 있기에 두 사람은 이번 일도 수월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테인에 대해서도 얘기해야겠네.’
나는 아버지와 에일런의 얼굴을 한 번씩 살펴보았다.
두 사람 모두 기분이 양호한 상태였다.
“음, 그리고 저 한 가지 더 할 얘기가 있는데요…….”
나는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편하게 말하려무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스스로도 내가 조금 뻔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버지가 붙여 주신다고 했을 때는 거절했던 호위를 내 입으로 들이겠다고 하려니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거기다 내 앞의 두 사람은 내 근처에 나와 다른 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다가오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사람들이었다.
심성이 여리고 순한 테인이 저 두 쌍의 살벌한 시선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저 호위를 한 명 들이려구요.”
하지만 테인이 직접 내 호위가 되길 원한다고 했으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말을 들어줄 셈이었다.
“……호위를 말이냐?”
“네. 제 호위 기사요.”
“음,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가문의 기사들 중에 실력이 괜찮은 이들을 추려 보마. 아니면 카일을 붙여 주랴?”
호위를 들일 거라는 내 말에 아버지는 당연히 내가 가문의 기사단 중에 고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살짝 보다가 일부러 살살 웃으며 말했다.
“누구를 들일지는 제가 이미 정해 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