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고래
눈앞에는 정말 다양한 선물세트가 나열되어 있었다.
흔히들 구매하는 주스세트부터 과일세트, 그리고 자연스레 눈이 떠나게 만드는 한우세트까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정말 많았다. 내가 괜히 선택에 애를 먹은 게 아니니까.
“저거요..!”
그런데 나와 달리 연두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한 곳을 가리켰다.
연두가 가리킨 선물세트를 본 내 입가에 피식 웃음이 번졌다.
-천하대왕 소시지 선물세트
딱 보기에도 엄청 커다란 소시지들이 들어 있는 선물세트였다.
완전 끄트머리에 있어서 나는 보지도 못한 녀석이었다.
이제야 손으로 가리키는 연두의 표정이 왜 그렇게 설렜던 건지 이해가 갔다.
‘먹고 싶은 거구나.’
지금 소시지를 먹고 싶은 연두의 심정이 선택에 반영된 듯했다.
평소에 소시지 사랑이 각별한 연두였기에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나는 확인차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연두, 지금 소시지 먹고 싶구나?”
정곡을 찌르는 내 말에 연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속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한 걸까?
이윽고 연두는 나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먹고 시퍼요..”
역시나. 연두의 입에서는 예상대로의 대답이 나왔다.
사실 저걸 윤수아에게 줄 선물로 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는 선물세트는 아니니까.
‘소시지를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고.’
기왕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선물세트를 사 가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연두에게 사 주기도 곤란했다. 저건 조리용 소시지니까.
문제는 연두가 그걸 모른다는 사실이지만.
아마 큼지막해서 더 대단한 소시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결국 나는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연두야. 저건 바로 먹을 수 없는 소시지야.”
“.. 왜여?”
“구워서 먹도록 나온 제품이거든.”
“구어서.. 아! 계란푸라이처럼요..?”
“응, 계란프라이처럼. 저건 아빠가 다음에 사서 맛있게 구워줄게. 그 대신에……”
다행히 조금 떨어진 곳에 훌륭한 대체제가 있었다.
함께 출근했던 첫날 연두가 먹었던 소시지와 동일한 모델.
“짜잔!”
익숙한 디자인의 소시지에 연두의 눈이 동그랗게 부풀었다.
그리고는 설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쏘시지다…”
“하하, 이제는 또시지가 아니라 쏘시지야?”
연두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에서 처음으로 소시지를 먹었을 때의 발음과는 차이가 있었다.
분명히 그때는 또시지였는데, 이제는 쏘시지로 바뀌었다.
‘이걸 나아졌다고 해야 할지.’
굳이 따지면 나아졌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같은 시옷 계열의 발음으로 바뀐 셈이니까.
나는 미소를 띠며 연두의 손에 소시지 세 개를 쥐여줬다.
“지금은 이거 먹는 거로 하자, 연두야.”
“세 개…”
“응?”
“연두가 세 개 다 머거요..?”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이해는 갔다.
평소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하나씩 줄 때가 많았으니까.
‘그래도 저 천하대장 소시지를 이기려면.’
세 개 정도는 쥐여줘야 할 거 같았다.
하루쯤은 세 개를 한 번에 먹어도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 테고.
특히나 요즘은 여러모로 잘 챙겨 먹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세 개 다 먹어도 돼.”
“아빠눈요..?”
“아빠는 괜찮아.”
저렇게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서 뺏는 건 무리다.
애초에 소시지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
마트에서 나와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거의 풀잎컴퍼니에 도착한 상태였다.
짭짭짭.
옆에서는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소시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진짜 맛있게 먹네.’
이미 연두의 왼손에는 빈 소시지 껍질 두 개가 들려있었다.
오른손에는 얼마 남지 않은 소시지가 남아있고.
이제 곧 명을 다할 소시지 덩어리였다.
‘세 개 안 사줬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전부터 소시지를 먹는 속도만큼은 유독 빠른 연두였다.
먹는 시간보다 껍질을 까 주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정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상쾌한 연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다 머거따!”
“하하, 맛있게 먹었어?”
“네! 진짜 마시써요…”
만족스러운 표정만 보는데도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게 신기하다.
조만간 근사한 소시지 요리를 도전해 봐야겠다.
기왕이면 아까 본 천하대장 소시지를 이용해서.
연두라면 분명히 좋아할 거 같았다.
‘도착했네.’
얘기하며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풀잎컴퍼니가 위치한 건물 앞이었다.
상당히 큰 건물인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건물 통째로 풀잎컴퍼니가 쓰는 게 아니니까.
‘그 정도면 MCN이 아니라 대형기획사지.’
아마 풀잎컴퍼니는 5층 중에서도 일부를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건물 내부로 향했다.
틱.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옆을 바라봤다.
층마다 위치한 회사가 표시된 게시판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5층에는 풀잎컴퍼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뭐, 딱히 다른 장소에 관심을 둘 이유는 없었다.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달했다.
“타자, 연두야.”
“네에!”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마침내 5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스르륵.
자연스레 연두의 손을 잡고 내리려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남자였다.
‘기분 탓인가?’
묘하게 낯이 익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한 번 본 거 같다고 해야 하나.
왜인지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와 연두를 번갈아 바라봤다.
결국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기.. 혹시 엘리베이터 타실 건가요?”
왜인지 그는 횡설수설하며 대답했다.
“예.. 예?”
“저희는 여기서 내릴 거라서요.”
“아, 죄송합니다!”
이제야 자기가 가로막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가 재빨리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연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얼핏 보기에도 5층 복도는 상당히 길었다.
‘어디로 가야 나오려나.’
좌우를 둘러보는데 뒤에서 방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초록 님.”
“네. 어..?”
대답하고 나서 나는 두 가지 사실에 깜짝 놀랐다.
초록 님이라 부르는 거에 너무 태연하게 대답했다는 사실에 한 번.
그리고 나를 초록 님이라 부른 사람이 방금의 남자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뒤를 돌아보니 그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역시 맞으시군요, 초록 님!“
“.. 네?”
“수아 누나가 미남이라 그러더니 진짜였네요!”
나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낯이 익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일면식도 없는 남자였으니까.
그는 다짜고짜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방금은 가로막아서 죄송합니다. 오실 건 알고 있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칠 줄은 몰랐거든요. 순간 당황해서 벙쪄 버렸습니다, 크하하.”
웃음소리가 독특한 남자였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경계심을 감출 수는 없었다.
아직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근데.. 제가 올 걸 아셨다고요?”
생각해 보면 앞서 그의 입에서 ‘수아 누나’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아는 풀잎컴퍼니 대표의 이름은 윤수아이고.
아무래도 우연히 일치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역시나 남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풀잎컴퍼니 소속 크리에이터 고래입니다.”
“고래.. 님이요? 아!”
그제야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쳤다.
분명히 얼마 전, 윤수아와 연락을 나눴을 때였다.
‘연두튜브를 풀잎컴퍼니 홈페이지의 소속 크리에이터로 추가하겠다고 했지.’
어떻게 올라갔을지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그때 화면에서 ‘고래’라는 크리에이터를 본 기억이 있었다.
이제 보니 얼굴도 홈페이지에서 봤던 얼굴이고.
알아보는 내 반응을 눈치챈 건지,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혹시 초록 님.. 저를 아시나요?”
신원을 알았으니 이제 경계할 이유는 없었다.
“네. 며칠 전에 회사 홈페이지에서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알고 있다는 내 말에 고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름을 몰라서 이렇게 말하니까 꼭 동물 얘기하는 거 같네.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럼 혹시.. 제가 뭐 하는지도 아시나요?”
이걸 어쩐다. 전혀 모르는데.
되게 기대하는 표정이라 대답하기가 미안하다.
그래도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잘……”
“아…”
실망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났다.
다행히 그는 금세 스스로 웃음기를 되찾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더 노력해야죠! 크하하!”
아까도 느낀 건데, 웃음소리가 상당히 중독성 있는 느낌이다.
달리 말하면 듣기만 해도 엄청 즐거워지는 웃음이고.
그래서인지 연두가 옆에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헤헤, 엄청 우낀 오빠…”
지나치게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이윽고 그는 연두를 빤히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와, 진짜.. 풀잎컴퍼니 들어오길 잘했다…”
나로서는 영문을 쉽사리 알기 힘든 말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너무한 거 아니야?”
***
정황은 이러했다.
우선 고래는 연두의 엄청난 팬이라는 모양이었다.
같은 회사라서 알게 된 게 아닌, 그 훨씬 전부터 알았던 팬.
‘그래서 연두를 보게 된 게 기뻐서.’
풀잎컴퍼니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말을 한 거고.
그리고 뒤에서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윤수아였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모여있는 우리를 본 모양이었다.
윤수아가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정말 실망이다, 동한아.”
“엥? 뭐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한 번도 내 앞에서는 그런 말 안 하더니.”
“에이, 꼭 그걸 말로 해야 아나.”
“근데 솔직히 네 심정이 이해는 가. 실제로 보니까 연두 진짜……”
“크하하! 나랑 같은 생각 하고 있는 거 맞지, 누나?”
“응, 진짜 너무너무 예쁘다…”
서로 얘기하면서도 둘의 시선은 연두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하긴, 고래는 그렇다 치고 윤수아는 연두를 엄청 보고 싶어 했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보기에는 꽤나 신기한 장면이었다.
‘꼭 남매 같네.’
MCN 대표와 소속 크리에이터의 대화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 궁금증을 눈치라도 챈 듯, 윤수아가 말했다.
“저희가 너무 말 편하게 주고받아서 놀라셨죠, 초록 님.”
“아, 네. 조금요.”
“사실 동한이랑 저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거든요. 그러다 같이 일하게 됐고요. 거의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예요.”
윤수아의 말에 옆에서 고래가 태클을 걸었다.
“크흠.. 친남매까지는 좀……”
“와.. 이러기야?”
“농담~ 크하하!”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걸 보니 영락없는 친남매 같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되게 보기 좋네요.”
그렇게 말하며 사 온 선물을 윤수아에게 건넸다.
고민 끝에 정한 가장 무난하게 느껴졌던 주스세트였다.
나름 주스세트 중에서는 가장 비싼 걸로 골랐지.
“감사합니다! 이런 거 안 사 오셔도 되는데……”
윤수아가 두 손으로 주스를 건네받았다.
그녀가 밝게 웃으며 손짓으로 복도를 가리켰다.
“그럼 회사로 가실까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연두도 언니 잘 따라와?”
연두가 신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후에는 윤수아의 안내에 따라 회사 구경이 이어졌다.
크리에이터 고래 씨가 동행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 내부는 의외로 상당히 넓고 쾌적했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대표가 젊어서인지 트렌디하게 느껴지는 회사 구조였다.
화이트 베이스로 깔끔하게 꾸며진 게 멋스러웠다. 그래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연두도 입을 헤 벌리고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직원도 꽤 있네.’
편집자나 채널 관리자, 콘텐츠를 연구하는 직원 등이 있는 거 같았다.
나름 몸담은 회사의 직원이니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물론 인사하면 연두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연두가 찡긋 눈웃음을 지으며 배꼽인사를 건넸다.
직원들도 전부 연두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연두의 깜찍한 인사에 직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와, 진짜 연두 너무 예쁘다..”
“진짜 신기해. 동영상 뚫고 나온 거 같아.. 흐아…”
“실제로 보니까 연두 초록 님 많이 닮은 거 같은데?”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언제나 곤혹스러웠다.
사랑하면 닮는다는데. 내가 연두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가?
그냥 해 본 말이고, 웃어넘기는 게 최선이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윤수아가 말했다.
“.. 죄송해요. 생각보다 별로 볼 게 없죠?”
“아뇨. 회사가 되게 예쁜데요?”
“그런가요?”
“네.”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글솜씨만큼이나, 회사 내부도 깔끔했으니까.
윤수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직 안 보신 곳이 하나 있는데요..”
그녀가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서 팬미팅에 관한 얘기를 나눌까 하는데, 어떠신가요?”
“저야 좋죠.”
남은 곳은 어떤 공간일지 기대가 됐다.
그때 옆에서 고래가 입을 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껴도 될까요?”
윤수아가 대답했다.
“너는 왜? 연두 봤으니까 이제 집에 가.”
“아, 그러지 말고.. 알잖아, 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 잘 내는 거.”
“그래서?”
“연두튜브 애청자로서 도움이 될 거라니까? 팬미팅에서 팬들이 어떤 걸 좋아할지도 팬인 내가 제일 잘 알지.”
의외로 하는 말은 전부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윤수아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나와 연두를 바라봤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떠신가요? 초록 님이랑 연두가 괜찮다면……”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연두가 대답했다.
“연두는 갠차나요!”
“그러니?”
“네! 연두 고래 조아해요…!”
아무래도 연두는 이 고래라는 크리에이터가 마음에 든 거 같았다.
괜찮다는 말에 더해 좋다는 말까지 덧붙인 걸 보면.
그래서인지 고래가 벅차오르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나도 연두랑 생각은 같으니까.’
자진해서 팬미팅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를 내준다는데.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니, 마다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저도 좋습니다.”
내 말에 고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역시 연두랑 초록 님, 믿고 있었습니다! 크하하!”
이번 웃음소리는 왜인지 더 유쾌하게 느껴졌다.
이로써 고래가 조력자 포지션으로 자리 잡았다.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그의 입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나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