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연두를 위해서라면
“연두야.”
“네에.”
“부르고 싶은 노래 있어? 뭐든지 말만 해.”
내 말에 연두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민에 빠졌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그렇게나 많은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연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우산..!”
연두의 선곡을 들은 내 입가에 빙긋 웃음이 번졌다.
뜬금없이 웬 우산인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이게 노래 제목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노래는 잘 알고 있었다.
아까 연두가 흥얼거리던 노래와 마찬가지로 주연이의 채널에서 들은 노래였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학창 시절 때 나온 노래라 멜로디를 들어본 기억이 있었고.
‘다른 곡들에 비해 연두가 유독 좋아해서.’
자주 주연이의 채널에 들어가서 들려주는 노래였다.
우스갯소리로 해당 영상의 조회수 중 일부는 우리가 지분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유세를 떠는 건 불가능하다.
주연이가 연두튜브 영상을 본 횟수에는 훨씬 못 미칠 테니까.
아무튼 연두와 나는 ‘우산’을 항상 원곡이 아닌 주연이 버전으로 들었다.
‘내가 듣기에도 좋은 노래였지.’
음알못인지라 멜로디에 대해서는 좋다는 얘기 외에 할 말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마음에 든 부분은 바로 ‘우산’의 가사였다.
가사에 집중해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왜인지 연두가 떠오르곤 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연두에게 물었다.
“연두는 왜 우산이 부르고 싶어?”
잠깐 생각하던 연두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뻐서여..”
“응?”
“노래가 엄청 예뻐서……”
듣는 즉시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운 말이었다.
노래가 예쁘다는 말은 듣기에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었으니까.
문득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국어 시간에 배운 표현기법이 떠올랐다.
‘청각의 시각화였나.’
맞네. 귀로 듣는 노래를 시작적으로 예쁘다고 표현했으니 청각의 시각화 맞다.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물론 연두가 이런 표현기법을 알고 얘기했을 리는 만무했다.
까놓고 말하면 연두는 청각이 뭔지도 모를 텐데.
‘그럼 말 그대로의 의미겠지.’
어렵게 말한 게 아니니 쉽게 받아들이면 편했다.
연두는 순수하게 이 노래 자체를 예쁘다고 느끼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연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구리고.. 연두랑 아빠 우산 이써야 해요!”
“응?”
“지금 비 오니까…”
“하하, 그러네.”
뜬금없는 얘기지만 팩트였다.
비가 오는 지금 나가려면 우산이 필요할 테니까.
그건 그렇고 선곡을 완료했으니 시작을 미룰 이유는 없었다.
틱. 틱.
리모컨을 들어 우산을 검색했다.
반주를 틀기에 앞서 적당한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처음으로 노래방을 즐기는 연두의 모습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이후 반주를 재생하고, 노래방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화면에 글자가 나올 거야. 글자에 맞춰서 따라 부르면 돼. 알겠지?”
“네에!”
“자, 여기 마이크!”
“으응..?”
딴. 따단.
어느새 ‘우산’의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두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손에 쥐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거 모르는구나!’
확실히 노래방 마이크는 주연이가 쓰는 마이크와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나는 횡설수설하며 속사포를 하듯 설명을 시작했다.
랩을 신청한 것도 아닌데 랩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건 마이크야, 연두야. 목소리가 크게 나오게 해주는 거. 거기에 입을 대고 노래를 부르면 돼!’
“아! 네에!”
내가 서두르는 게 느껴져서인지 연두도 덩달아 급해졌다.
연두가 내 말을 듣고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여, 연두야! 그렇게 바짝 대면 안 돼, 지지!”
입을 대고 부르면 된다는 말에 연두가 진짜 입을 대 버린 것이다.
지지라는 말에 연두가 화들짝 놀라 입을 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근차근 트는 건데, 시작부터 다사다난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반주가 상당히 긴 노래라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윽고 나는 시작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연두에게 눈짓했다.
노래를 시작하라는 뜻을 담은 신호였다.
“어느새 빗무리 내 마음에 고이고~ ♪”
첫 소절을 들은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심 아예 음을 못 맞추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연두는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들어갔다. 워낙 많이 들어서 학습된 건가.
다음 소절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얼추 타이밍이 맞았다.
“차맜던 눈무리 내 눈가에 고이고~ ♪”
서지혜와의 글자 공부 효과인지 발음도 꽤나 또박또박했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쥐고 노래를 부르는 연두.
들으면 들을수록 내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완전 다른 느낌이네.’
당연한 얘기지만 주연이의 노래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주연이 버전은 되게 감성적이면서 조금은 애절한 느낌이었는데.
이 노래를 이렇게 상큼하게 부르는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음도 계속 틀리고 박자도 엇나가는데 신기하게 듣기 좋았다.
스윽.
얼마간 노래를 부르던 연두가 살짝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왜인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자각하니 쑥스러워진 모양이었다.
챙. 챙.
부끄럽게 만들어 노래를 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탬버린을 치며 연두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잘한다, 우리 연두!”
다행히 연두는 생긋 웃으며 다시 노래에 집중했다.
나도 흐뭇한 표정으로 연두의 노래를 감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는 이다음에 발생했다.
‘뭔데, 이거.’
***
“맘속에 스며드는 Memory! 그 속에 비틀거리며 난 아프니까!”
노래방 안에 난데없는 랩이 울려 퍼졌다. 못 믿겠지만 이건 내가 뱉는 가사였다.
사실 나도 랩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그야, 나랑 랩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잊고 있었어.’
‘우산’은 솔로곡이 아닌 듀엣곡이었다.
여자가수의 노래 파트와 남자가수의 랩 파트가 섞인.
노래를 부르는 연두에 집중하느라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멜로디에서 랩 비트로의 전환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뚠. 뚜둔.
그리고 내가 랩을 하게 된 계기는 이러했다.
랩 파트가 시작되자마자 난데없이 연두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더니 불쑥 마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아빠아..!”
그렇게 얼떨결에 마이크를 건네받은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랩을 시작해야 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을 통틀어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랩을.
게다가 멈출 수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연두가 너무 즐거워했으니까.
챙그랑! 챙! 챙!
“머시써요, 아빠! 히히!”
연두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탬버린을 흔들었다.
나로서는 조금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높은 텐션이었다.
방금 노래를 부를 때는 엄청 수줍어하더니.
내가 랩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즐거워할 줄이야.
딸이 이렇게 즐거워하는데 뺄 수는 없었다. 이 한 몸 희생하는 수밖에.
“텅 빈 방 안에 시계 소리! 지면과 입 맞추는 비의 소리!”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수록 더 텐션을 높여서 래핑을 했다.
물론 랩만 놓고 보면 엄청나게 못 했다. 나는 치명적인 박치였으니까.
괜히 내가 노래방에 가면 구경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네.’
왜인지 지금은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내가 연두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로 망가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이지 나도 가만 보면 괴짜 같은 구석이 있는 거 같다.
신나게 랩을 하던 나는 또 다른 마이크 전원을 켜서 연두에게 건넸다.
“같이 하자, 연두야!”
“가, 가치요..?”
“응! 빨리!”
“.. 네에!”
연두는 재빨리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우리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너 없는 난 한쪽 다리가 짤븐 의자! 두리서 쓰긴 작았던 우산!”
“……”
아마 이 랩에 화음을 넣는 건 나와 연두가 처음이 아닐까.
정말이지 헬파티 그 자체였다.
정신은 하나도 없는데 엄청 즐거운 헬파티.
‘그래, 이래야지.’
노래방에 왔으면 이렇게 신나게 놀아야 하는 법이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노래방의 즐거움을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노래 파트도 나와 연두는 입을 맞춰 불렀다.
“그대는 내 머리 위의 우산~ 어깨 위에 차가운 비 내리는 날~ ♪”
차가운 비를 막아주는 우산에 빗대어 상대의 소중함을 표현하는 노랫말.
확실히 잘 썼다고 느껴지는 훌륭한 가사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아직 아니었다.
“내 곁에 그대가 습관이 돼 버린 날~ 이제 그대 없이는 안 돼요~ ♪”
바로 이 파트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이걸 부를 때 연두와 내 눈이 맞닿았다.
사실 ‘우산’의 가사는 사랑하는 이성을 향한 노랫말이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소중함을 비유적인 가사를 통해 표현하는 노래.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꼭 이성 간의 사랑에 국한되리란 법은 없으니까.
내게 이 노랫말의 대상은 눈앞에 있는 연두였다.
언젠가부터 연두와 함께하는 시간이 습관이 됐고, 이제는 연두가 없는 하루는 상상도 할 수 없게 됐다.
그게 내가 ‘우산’에서 이 가사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어떤 느낌으로 쓴 건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가사였으니까.
‘오글거리긴 하지만.’
노래의 제목처럼 나는 연두의 우산이 되어주고 싶었다.
아무리 거센 비가 와도, 아니 우박이 내려도 대신 맞아주는 우산이.
툭.
마지막 소절을 끝으로 음악이 멎었다.
그와 동시에 노래방 화면이 파란빛으로 반짝였다.
‘뭐지?’
연두와 내 시선도 자연스레 화면을 향했다.
이윽고 화면에 터무니없는 문구와 숫자가 떠올랐다.
[환상적인 노래 실력이네요! 아~주 칭찬해!]SCORE : 100
화면에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스코어였다.
그나저나 방금 부른 노래가 100점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까놓고 말해서 나 진짜 더럽게 못 불렀는데.
‘심지어 한 곡 서비스됐네.’
백 점이라고 서비스가 한 곡이 추가되기까지 했다.
역시 노래방 기계는 믿을 게 못 되는구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두야.”
“네에.”
“저기 숫자 보여? 우리 잘 불렀다고 백 점 줬다?”
“우아.. 백 쩜이요..?”
“응. 그리고 한 곡 더 부르고 가라고 서비스도 줬어.”
잘은 몰라도 좋은 거라는 건 알아들은 거 같았다.
연두가 제자리에서 총총 뛰며 좋아했다.
지금의 흥을 이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럼 다음은 뭐 부를까, 연두야?”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포로로요..!”
“좋지, 포로로.”
첫 곡과 달리 이번에는 다섯 살 아이다운 선곡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리모컨으로 포로로를 검색했다.
맨 위의 노래를 클릭하는 동시에 포로로의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뚠. 뚜둔.
익숙한 멜로디에 연두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나도 연두와 함께 포로로를 자주 시청했기에 낯설지 않았다.
옆에서 나는 카운트다운을 해서 타이밍을 맞춰줬다.
“하나, 두울, 셋!”
“이야.. 포로로다!!”
연두가 상큼한 목소리로 도입부의 대사를 외쳤다.
이후에는 다시 헬파티의 시작이었다.
“노눈 게 제일 조아~ 칭구들 모여라~ ♪”
잔뜩 흥이 오른 연두는 율동까지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징그럽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그 말처럼 지금의 나는 노래방의 즐거움에 흠뻑 취해있었다.
정확히는 연두와 함께하는 노래방의 즐거움에 취했다고 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스물다섯 살 먹은 나는 포로로 주제곡을 연두와 함께 열창했다.
“포로로를 불러바요~ 포롱포롱~ 포롱포롱~……”
짧은 음악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그와 동시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 뭐한 거지?’
다른 곡도 아니고 포로로 주제곡을 이렇게 열창하다니.
아마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없는 쥐구멍을 파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이렇게나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때였다. 연두가 다짜고짜 내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재미써…”
“.. 응?”
“노래방 진짜 재미써요, 아빠..!”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음 짓는 연두의 모습.
왜인지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미소가 번졌다.
‘그래.’
사실 이건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다고 부끄러워하는 아빠가 이상하지.
그러니 당당해질 생각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또 뭐 부를까, 연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