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마무리
우영이네 집은 생각한 것보다 좁았다. 거실에 부엌, 그리고 지금 있는 방이 전부인 구조로 보였다.
내가 아빠랑 둘이 살았을 때 이 정도 평수의 집에 살았던 거 같은데.
그와 별개로 집안 내부의 벽지나 가구 같은 것도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몇 번 갔던 시은이네 집과는 확실히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굳이 따지면 세연 씨네가 모녀 단둘이 사는 집치고는 너무 넓었던 거지만.
집 안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도 전부 고급스러웠고.
‘물론.’
그 집과 비교하며 우영이 집이 별로라고 폄하하는 건 아니다.
좁디좁은 원룸에서 연두와 단둘이 사는 나인데, 누군가의 집을 폄하할 리가 없잖은가.
애초에 아빠랑 살 때도 이런 집에 살았던 나인데.
단지 조금 의외라 생각했을 뿐이다. 우영이는 유복한 집안의 자제일 거라 생각했으니까.
‘일단 되게 깨끗한 이미지고.’
하얀 피부에 좋은 의미로 곱상하게 생긴 얼굴.
외모만 보면 우영이는 귀공자 느낌을 물씬 풍기는 녀석이었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만한 외모였다.
말하는 걸 들으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리고 이건 조금 편견일지 모르지만, 미술을 하는 친구들은 유복한 집안인 경우가 많았다.
아주 잘 살지는 않더라도 대게 중산층 이상이라고 해야 하나.
학창 시절 때 미술을 하던 주위 친구들만 생각해도 그랬다.
그중에 가장 가난했던 게 나였으니까.
‘.. 이런 것도 비슷한 건가.’
아직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재미있었다.
미술적인 부분에서는 몇 번이고 느낀 사실이었으니까.
나와 우영이가 비슷한 부면이 많다는 건.
‘커피를 안 마시는 이유도 같았고.’
그러고 보니 자연스레 생기는 의문이 있었다. 주말인데 우영이 아버지는 어디 가신 건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려다가 예전 일이 떠올라서 그만뒀다.
세연 씨에게 ‘결혼을 일찍 하셨나 봐요?’라고 물었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던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이었다. 가정사에 대한 질문은 웬만하면 꺼내지 않는 게 좋다는 교훈.
“아, 참.”
그것보다는 다른 꺼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다름 아닌 작화 장면의 촬영 문제였다.
“우영아.”
“네, 형.”
“우리 그림 그리는 거 카메라로 촬영해도 될까?”
길게 설명하기 귀찮아 본론부터 던져 버렸다.
학습지가 출간되면 연두튜브에 소개영상을 올리게 될지도 몰랐다.
쇼핑몰 ‘이든’을 구독자들에게 소개할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금껏 내가 작화하는 장면은 전부 찍어둔 상태였다.
첫 페이지의 ‘기역은 구렁이’를 그릴 때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작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소개영상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으니까.
‘만약 영상을 올리게 된다면.’
작화를 마무리하는 부분도 들어가는 게 깔끔할 터였다.
다만, 지금은 혼자 그리는 게 아니었기에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설치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우영이는 이미 연두튜브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길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 그래서 카메라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그러니까, 나중에 소개 영상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마무리하는 영상을 남겨두고 싶단 거죠?”
안 그래도 짧았던 내 설명을 우영이는 요약해서 되물었다.
역시나 이해력이 빠른 녀석이었다.
“맞아. 근데 올리더라도 네가 나오는 부분은 편집으로 없앨 수 있어.”
내 말에 우영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응?”
“저는 나와도 상관없어요. 아니, 오히려 나오는 게 좋은데요?”
뜻밖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이 녀석이라도 조금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단박에 괜찮다고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아니, 괜찮다 수준이 아니지.’
오히려 우영이는 나오는 게 좋다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었다.
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편집을 하게 된다면 수고를 덜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확인차 한 번쯤은 더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만약 올리게 되면 널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려 50만이 넘는 구독자였다.
그중에 우영이를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예상 못 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서 좋은 건데요?”
아, 이제야 알았다. 이 녀석 그냥 관심받는 게 좋은 거구나.
특히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니 꺼릴 것도 없을 테고.
이렇게 말한다면야 더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스윽.
나는 적당한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러자 연두가 생긋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히히, 안녕..!”
“크크.”
그 모습에 난데없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카메라에 담기는 게 완전히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이렇게 팬서비스까지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심지어 연두는 우영이에게까지 인사를 권했다.
“우영이 오빠!”
“뭐.”
“오빠도 연두랑 가치 인사해요..!”
“… 유치하게 무슨. 너나 많이 해라.”
그렇게 말하는 선우영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어색한 표정은 물론이고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갑자기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어색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생각했다.
‘이런 타입이구나.’
카메라 촬영은 당당하게 좋다고 그러더니.
막상 인사하라고 판을 깔아주니 쑥스러워하는 녀석이었다.
한편 그걸 모르는 연두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 의도치 않게 공격 많이 하네. 우리 연두.
“그럼 카메라도 설치했으니, 시작하자.”
우영이를 위해서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을 듯했다.
나는 연두를 향해서도 말했다.
“연두도 옆에서 예쁜 그림 그리는 거다?”
“네! 다 그리구 아빠 보여줄 꺼에요..!”
“하하, 그래.”
어느새 선우영도 손에 작화 도구를 쥐었다.
그렇게 우리의 작화 마무리 작업이 시작됐다.
***
“형. 여기는 이걸로 그리면 되죠?”
“어, 그 색이랑 같은 계열이면 뭘 써도 상관없어.”
“오케이.”
“이제 진짜 마무리니까 좀만 더 힘내자.”
“네, 형도요.”
확실히 함께 작업하니까 훨씬 소통이 원활했다.
물론 떨어져 있어도 연락을 주고받는 건 가능했다.
전체적인 작화의 틀은 내가 정해뒀으니 그대로만 하면 됐고.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교류가 훨씬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같은 페이지를 보며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의견을 맞추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나저나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이 녀석 진짜 독하다.
‘한 번을 안 먹네.’
작업하는 도중 먹으라며 우영이의 어머니가 챙겨주신 과일이 놓여있었다.
먹기 좋게 썰어주신 오렌지와 씨 없는 포도였다.
나도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뭘 집어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굳이 챙겨 먹지는 않지만, 앞에 있으면 가끔은 손이 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정말이지 한 번도 과일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연두가 어미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스윽.
포크로 과일을 콕 찍어서 살그머니 입안에 넣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만 먹여주더니, 그림만 그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우영이에게도 손이 가기 시작했다.
말로 하니까 이렇지 사실 엄청 우스운 상황이었다.
다섯 살배기 아이가 고등학생이랑 25살을 상대로 어미새 역할을 하고 있다니.
물론 나도 받아 먹는 입장이기에 할 말은 없지만.
“고맙다, 땅콩.”
입에 넣어주면 거절하지는 않았다.
잘 먹는 게 뿌듯한지 연두는 배시시 웃음 짓는다.
이런 걸 보면 진짜 영락없는 어미새 같다.
한편 과일을 우물거리면서도 우영이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작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자연히 나도 자극이 됐다.
사각. 사각.
그렇게 우리의 손은 한동안 멈출 줄은 몰랐다.
툭.
시간이 지나 거의 동시에 우리가 펜을 내려놨다.
나는 앉은 채로 팔을 쭉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끝났다..”
드디어 모든 작화 작업이 끝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엄청 길었던 여정이었다.
이걸 완성하려고 새벽에 코피를 쏟았던 적도 있으니까.
뭔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해방감이 일었다.
“수고했다, 우영아.”
짧은 인사이긴 해도 진심이 담겨있었다.
완성하기까지의 여정 동안 선우영은 최고의 조력자였으니까.
우영이가 씩 웃으며 인사를 돌려줬다.
“형도 수고했어요. 근데 형.”
“응.”
“완성하고 나니 드는 생각인데요. 작화 좀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당황한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 어떤 문제?”
우영이가 작화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완성하고 나서 말하는 건 더더욱 예상 밖이었고.
불안함 속에 녀석이 말을 이었다.
“아니, 너무 고퀄 아닌가 해서요. 기껏해야 애들 한글 학습지에.”
순간적으로 빡 하고 혈압이 올랐다.
“야, 너 진짜…”
“크크, 생각보다 엄청 당황하네요, 형.”
“장난 아니고 방금 헤드록 걸 뻔했다.”
“왜 하필 헤드록이에요?”
“학창 시절 내 주특기였거든. 그리고 너한테 주먹을 날릴 수는 없잖아.”
“…”
뒤에는 장난삼아 한 말인데. 우영이가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물론 앞에 한 말은 팩트였다.
헤드록은 가끔 헛소리를 하는 친구 녀석들에게 걸었던 기술이니까.
하마터면 방금 그 기술이 나갈 뻔했고.
분위기가 조금 살벌해진 거 같아 나는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진짜 수고했다.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나온 거 같아.”
“당연하죠. 형이랑 제가 그린 건데 별로일 수가 없죠.”
“하하..”
끝까지 우영이다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때 옆에서 연두가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아빠아..”
“응, 연두야.”
“학습지 그림 다 그려써요..?”
“그래. 연두가 지혜 언니랑 공부하는 학습지야. 한번 볼래?”
“네!”
나는 학습지를 펼쳐서 연두를 보여줬다.
메인이 되는 동물 그림부터 배경을 포함한 채색까지 완벽히 끝난 학습지였다.
솔직히 열이 받은 것과 별개로 우영이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없으니까.’
서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학습지를 둘러봤기에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작화를 보유한 학습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
더 과장해서 말하면 반이라도 따라오는 학습지도 찾지 못했다.
내가 괜히 서지혜에게 ‘기대해도 돼요.’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우아…”
학습지를 손에 든 연두가 눈을 반짝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완전 초창기의 학습지로 공부한 적이 있는 연두였다.
따라서 체감되는 차이가 더 클 터였다.
“어때, 연두야?”
“너무 예뻐여…”
“곧 이걸로 공부할 수 있을 거야, 연두야.”
“.. 진짜여?”
“그럼, 진짜지.”
연두가 학습지를 품에 안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똑. 똑.
문이 열리고 우영이 어머니 유은숙이 살짝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잘되고 계신가 궁금해서요.”
알고 들어오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마침 전부 끝났습니다.”
“아, 정말요?”
“네.”
“축하드려요.”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때 연두가 작은 보폭으로 유은숙에게 다가갔다.
이어서 품에 안은 학습지를 내밀었다.
“아빠랑 우영이 오빠가 가치 그린 거에요..!”
“어머. 아줌마가 봐도 될까?”
“네!”
유은숙이 기쁜 표정으로 학습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괜히 푸념 섞인 한마디를 뱉었다.
“사정사정을 해도 한 번을 안 보여주더라고요. 아들이란 녀석이.”
“하하, 그랬나요?”
“네. 얼마나 서운하던지……”
우영이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대꾸했다.
“보면 또 참견할 거 아니까 그러지. 이 색이 낫지 않냐, 여긴 왜 이렇게 했냐. 하여간 어설프게 아는 게 문제라니까? 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이 궁시렁궁시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엄마는 좀 알아야……”
속사포처럼 말하던 녀석은 싸늘한 시선에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옳은 선택이었다. 계속했다가는 등짝스매시 한 대로 끝날 느낌이 아니었으니까.
역공당한 유은숙은 애써 웃으며 학습지를 들여다봤다.
그녀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 예뻐라…!”
학습을 떠나 그냥 넘기기만 해도 시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학습지였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로 구상한 작화였으니까.
아이들이 마치 동화책을 읽듯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공부는 싫지만 그림이 좋아서라도 학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정말 수고 많으셨네요. 이렇게 예쁜 학습지를.. 제가 연두만 한 아이가 있었다면 바로 살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완성하는 데 우영이 도움이 정말 컸어요.”
“에이, 뭘요. 잘 이끌어주셔서 그런 거죠.”
그렇게 말하며 유은숙은 우영이를 바라봤다.
“수고했네, 우리 아들.”
역시 티격태격하긴 해도 아들 사랑이 느껴지는 어머니였다.
어쨌거나 마침내 이렇게 학습지가 완성됐다.
‘쑥쑥 한글완성 1단계!’의 최종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