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감사
작화의 마무리도 성공적으로 마쳤겠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작화도구를 챙기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작화를 끝내느라 이미 방 안을 오래 차지하고 있었다.
가능한 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우영이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혹시 일찍 가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일정이라든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럼 식사라도 하고 천천히 가세요! 사실 들어온 것도 그거 얘기하려고 온 거거든요.”
이걸 어쩐다. 조금 난처한 상황이었다.
방을 빌린 데다가 과일까지 얻어먹었는데.
식사까지 대접받는 건 너무 민폐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뭐하고.’
일정이 없다고 말해놓고 딱 잘라 거절하는 건 성의를 무시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적당한 선에 걸친 대답을 꺼냈다.
“주말인데 저희 때문에 고생하실까 해서요.”
“호호, 아니에요! 사실 이미 음식을 준비 중이었거든요. 일정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유은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설마 준비 중이셨을 줄이야. 이렇게 말하면 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한 끼 신세를 지고 갈 수밖에 없을 듯했다.
옆에서 선우영이 툭 말을 꺼냈다.
“그냥 먹고 가요, 형. 엄마가 다른 건 몰라도 요리는 잘하거든요.”
그 말에 아들을 바라보는 유은숙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갔다.
물론 레이저의 방향은 얄미운 아들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포인트에서 발끈하신 건지 알 거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수식어는 요리 말고 다른 건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여튼 말을 밉게 하는 녀석이다. 칭찬할 거면 요리 잘한다고만 하면 되지.
심지어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고 있는 걸 보니 자각도 없는 거 같다.
‘가만 보면.’
이 녀석은 그나마 나를 대할 때 제일 착해지는 느낌이다.
잘난 척을 많이 하긴 해도, 까불거리지는 않으니까.
또 모자간에 불이 붙기 전에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감사히 먹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잘 생각하셨어요.”
다행히 유은숙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연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연두야.”
“네에!”
이렇게 우영이네 집에서의 한 끼 식사가 결정됐다.
***
식사가 결정된 후, 우리는 거실로 이동했다.
가만히 있긴 뭐해서 조심스레 부엌에 다가갔다.
“제가 뭔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소파에 앉아서 편하게 기다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돌아가는 게 도와주는 거였다.
나는 거실로 돌아가며 슬쩍 도마 위를 바라봤다.
손질된 재료들을 보니 아직 완성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데친 닭이 양념장에 가득 담겨 있는 걸 보니 닭 요리인 건 확실했다.
양념장의 색깔로 봐서는 간장 베이스의 소스인 거 같은데.
준비해 놓은 것만 봐도 군침이 돌았다.
‘우영이 말이 맞는 거 같네.’
정갈하게 손질된 채소만 봐도 어머님의 요리 숙련도가 보였다.
하긴, 지금껏 우영이가 누군가를 인정하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예의상이라도 빈말은 할 줄 모르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런 녀석이 요리를 잘한다고 칭찬했으니 의심의 여지는 없겠지.
털썩.
거실로 돌아간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연두와 우영이가 자연스레 내 양옆을 차지했다.
기다리기 조금 심심해진 나는 입을 열었다.
“우영아.”
“네, 형.”
“뭐 재밌는 거 없어?”
잠시 생각하던 선우영은 대답했다.
“아! 최근에 공모전에서 수상한 그림 보여줄까요?”
“하하…”
정말이지 이 녀석한테는 뭘 물어도 그림에 대한 답이 나올 거 같다.
결국 나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와중, 부엌 쪽에서 난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왜 없지..?”
그 말에 나는 곧바로 일어섰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어머님?”
“아, 심각한 일은 아닌데요. 있는 줄 알았던 재료가 안 보여서요.”
“재료라면 어떤……”
“감자가 안 보이네요. 분명히 있었던 거 같은데..”
조금 더 찾아보던 유은숙이 아들을 불렀다.
“우영아!”
“왜.”
“앞에 있는 마트에서 감자 좀 사다 줄래?”
바로 부탁을 들어줄 녀석이 아니었다.
우영이는 귀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대충 먹자, 엄마. 감자 없이.”
“안 돼. 감자는 메인 재료란 말이야.”
“아오..”
심부름을 사이에 두고 모자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우영이가 대답했다.
“알겠어. 가면 되잖아.”
그런데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뜻밖의 말을 던졌다.
“형. 땅콩 데려가도 돼요?”
“연두를?”
“네, 혼자 갔다 오기 심심해서요.”
뭐, 코앞에 있는 마트를 다녀오는 거니 상관은 없었다.
우영이가 함께 가면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까.
다만 연두의 의사를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어때, 연두야? 우영이 오빠랑 같이 다녀올래?”
“감자 사러여..?”
“응.”
우습지만 이것도 나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와 마트에 다녀오는 것도.
연두는 잠깐 주저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연두 가따올께요, 아빠..!”
되게 큰 결심을 한 표정을 짓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연두와 우영이가 심부름을 나섰다.
***
마트까지는 10분이 조금 안 되는 거리였다.
걸어가는 선우영을 연두가 쫄래쫄래 따라갔다.
문득 우영은 연두를 보며 생각했다.
‘엄청 조그맣네.’
짧은 보폭으로 열심히도 따라온다.
우영은 의도적으로 천천히 걸어 보폭을 맞춰줬다.
그나저나 신기했다. 걷는 것만 보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성인의 걸음걸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서일까.
‘애들은 다 이런 건가.’
선우영의 주변에는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없었다.
별로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따라서 이렇게 가까이서 아이와 나란히 걷는 건 처음이었다.
심심할까 봐 데려왔는데,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콩.”
선우영이 늘 부르던 것처럼 연두를 불렀다.
연두가 휙 고개를 돌려 우영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 안 대여?”
“응?”
“연두라고 불러주면 안 대여..?”
우영이 오빠에게는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린 적 없는 연두였다.
그렇기에 꺼낸 간절한 부탁이었다.
안타깝게도 바로 들어줄 우영이 아니었다.
우영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싫은데?”
하지만 이번에는 연두도 물러서지 않았다.
연두가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걸어가는 선우영의 손을 붙잡았다.
다짜고짜 손을 잡혀 깜짝 놀란 선우영이 입을 열었다.
“깜짝야. 뭐야?”
“이거 줄께요..!”
“응?”
“연두라고 부루면 이거 우영이 오빠 줄께요!”
연두가 건넨 건 다름 아닌 소시지였다.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줄 만큼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게 뭐야?”
“쏘시지에요! 리얼 꿀마시..!”
“리얼 꿀마시?”
“네!”
그러고 보니 연두튜브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홍수찬 선생님이 핸드폰을 뺏어가서 영상을 볼 때 나왔던 단어니까.
이 꼬맹이가 엄청 맛있는 걸 가리킬 때 쓰는 단어였지, 아마.
우영은 소시지를 도로 연두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미안한데 나는 소시지 싫어해.”
그 말에 연두가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마치 ‘소시지를 싫어하는 게 가능해여..?’라고 표정으로 묻는 느낌이었다.
선우영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나 맛있게 먹어.”
“네에..”
“그래도 이름은 불러줄게.”
그 말에 연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선우영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막상 부르려니 입이 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영의 입이 벌어졌다.
“연두야.”
마침내 땅콩이 아닌 이름이 우영의 입에서 나왔다.
단지 이름을 불렸을 뿐인데, 연두는 행복한 듯 배시시 웃음 지었다.
“헤헤…”
괜히 멋쩍어진 선우영은 화제를 돌렸다.
호칭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근데 땅콩.”
“네에!”
“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냐?”
사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고 하는 질문이었다.
화제를 돌리기에는 안성맞춤인 질문이었으니까.
역시나 예상대로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빠!”
“그렇구나.”
“네! 연두는 아빠가 제일 조아여..!”
평소에 이 꼬마가 아빠를 대하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답이었다.
이거 말고 다른 재미있는 질문은 없으려나.
잠깐 생각하던 선우영은 물었다.
“그럼 나는?”
“으응..?”
“나는 좋아, 아니면 싫어?”
이 물음에 대한 대답도 선우영은 맞출 자신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 꼬맹이는 엄청 착한 아이였다.
그렇다면 싫어도 싫다고는 절대 안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착하다는 건 거짓말도 못 한다는 뜻이었다.
우영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 연두라는 애한테 상냥한 오빠는 아니라는 건.
굳이 따지자면 얄미운 축에 속하겠지.
따라서 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우영이 생각하는 답은 ‘명확히 대답 못 하고 망설인다.’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조아요!”
거짓말이라 하기에는 너무 답이 빨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을 하는 표정으로는 절대 안 보이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우영은 되물었다.
“.. 뭐라고?”
“연두는 우영이 오빠 조아요..!”
“아니, 왜? 내가 맨날 땅콩이라고 하는데도?”
연두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연두는 땅콩 아니지만.. 우영이 오빠는 차카니까…”
“내가 착해?”
“네! 연두가 저나했을 때 도아주겠다고 말해써요! 구리고…”
“그리고?”
“아빠가 조아하는 사람은 연두도 조아요..”
이렇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갈 줄이야.
선우영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 알 거 같네.’
잠깐 얘기한 거로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주원이 형이 왜 그렇게 딸을 예뻐하는지.
어느새 거의 마트에 도착한 상태였다.
선우영은 연두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약속은 기억하고 있지, 땅콩?”
한 번 이 꼬맹이를 그리기로 한 약속이었다.
연두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연두 모델할 수 이써요..!”
“하하, 그래.”
그렇게 둘은 감자를 사러 마트에 들어갔다.
***
우영이와 연두가 나간 후의 거실. 나는 홀로 소파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혼자여서 그런지 아까보다 심심함이 더욱 증폭됐다.
자연스레 시선이 거실 이곳저곳을 향했다.
그러던 와중, 책꽂이 구석에 꽂혀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같은데?’
얼핏 보기에는 그림으로 보였다.
혹시 저게 아까 우영이가 말한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인가?
호기심이 동한 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손에 들어 바라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림 자체만 놓고 보면 잘 그렸는데.’
외관상으로는 60대 정도 되는 여성을 그린 거 같았다.
문제는 눈과 코에 칠해져 있는 눈물과 콧물이었다.
전체적인 그림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뭔가 그림을 망치기 위해 악의적으로 색칠해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때 유은숙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우영이가 버린다고 했는데 아직 안 버렸나 보네요.”
“아, 혹시 이 그림이 뭔지 아시나요?”
“네. 사실 그 그림 때문에 우영이가 전에 학교에서 싸웠거든요.”
“.. 싸웠다고요?”
다소 놀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성격이 모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디 가서 싸울 거 같지는 않았으니까.
“한 친구가 우영이가 그리던 그림을 이유 없이 망쳤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영이가 붓으로 머리를 마구 때렸다고……”
때리는 것도 붓으로 때렸다는 말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어지는 얘기를 들으니 때리고 나서 엄청 얻어맞았다는 모양이지만.
그나저나 누군진 몰라도 정말 괘씸한 녀석이었다.
남이 열심히 그린 그림을 망치다니.
실제로 망친 부분만 빼고 보자면, 엄청 공들인 티가 나는 그림이었다.
‘칠만 했네.’
싸움을 싫어하는 나라도 주먹이 나갔을 거 같았다.
내가 공들여 그린 그림을 누군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망쳐놨다면.
그때 유은숙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정말 감사해요, 주원 씨.”
영문을 알기 힘든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였다.
당황한 나는 그림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여러모로 감사해서요. 우영이가 의지하는 형이 돼 주셔서.”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오히려 제가 큰 도움을 받았는데요.”
빈말이 아니었다. 나는 딱히 우영이에게 뭘 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
반대로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그런데 유은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한 번도 없었거든요. 우영이가 이렇게 누군가랑 친하게 지낸 적. 그런데 동물원 때 이후로 연락을 주고받고, 주원 씨랑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워하고. 옆에서 보면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요.”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역시 티격태격해도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이런 감사인사를 할 리가 없으니까.
‘솔직히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딱히 녀석을 챙겨준 것도 없는 입장에서 인사를 받으니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를 봐서라도 앞으로 많이 챙겨줘야겠네. 우영이 녀석.
그러는 사이 유은숙은 그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실……”
“…?”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서서히 내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려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