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Crazy
“사실.. 우영이가 아빠가 없이 자랐거든요.”
갑작스레 가정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와 별개로 이 말에 그리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충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유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다.
집의 구조가 거실과 방 하나로 이루어진 것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연상되는 물건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우영이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고.
아까 하려던 질문을 내가 괜히 삼킨 게 아니었다.
‘하필이면 이런 거까지 겹치는군.’
겹쳐서 하나 좋을 거 없는 것까지 겹친다는 사실에 씁쓸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굳이 따지면 나는 어머니도 안 계신다는 사실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유은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영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상을 떠났죠.”
“.. 그랬군요. 우영이도 어머님도 많이 힘드셨겠네요.”
“저보다도 우영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유난히 아빠를 좋아하고 따랐거든요.”
말은 이렇게 해도 그녀 역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늘 함께하던 남편이 사라지고, 아들을 혼자 키워야 했을 테니까.
감정이 올라온 건지 그녀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우영이는 달라졌어요.”
유은숙은 남편이 죽은 후의 변화에 대해 내게 얘기해줬다.
초등학생 때의 우영이는 지금과 달리 매우 활발한 아이였다는 모양이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장난기도 엄청 많았던 꼬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었다는 거 같았다.
좋아하던 것들을 전부 놓아버리고 무기력해졌다고.
물론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걸로 사람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몸소 경험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알게 됐다.
당연하게 언제까지고 옆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상실감을 가져다주는지를.
실제로 나는 그로 인해 모든 것을 놓아버렸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 궁금한 게 떠올랐다.
“우영이.. 미술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어떻게 미술을 하게 된 건지 궁금했다.
마침 꺼내려 한 얘기였다는 듯, 유은숙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때부터였어요.”
“네?”
“사실 우영이는 초등학교 때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거든요. 아빠가 죽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쉽사리 이해가 가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좋아하는 모든 걸 놓아버렸을 정도인데, 뜬금없이 미술을 시작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으니까.
주위에서 누군가 미술을 권한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역시나 이어지는 유은숙의 말에서 의문이 풀렸다.
“할머니가 미술을 하는 분이셨거든요. 힘들어하는 우영이한테 그림을 권하셨죠.”
할머니라면 돌아가신 우영이 아버지의 어머니라는 뜻인데.
어찌 보면 그 상황에 가장 괴로워했을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손주를 향해 손길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지.’
외할머니의 성격과 별개로 그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유일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그 손을 잡지 않았을 뿐이지.
다행히 우영이는 나와 달리 할머니의 손을 잡은 거 같았다.
‘이건 다르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술을 그만뒀다.
반대로 우영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술을 시작했다.
이게 일치하지 않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조금 안도한 나는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좋은 분이시네요. 우영이 할머니 되시는 분.”
“네. 그런데……”
뭐지? 뒷말을 늘이는 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확실한 건 좋은 얘기를 꺼내려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윽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우영이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세요.”
이후에 들려오는 얘기는 나를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말은 아프다고 했지만 감기 같은 사소한 게 아니었다.
돌리지 않고 말하면 ‘시한부’라는 거 같았다.
‘길어야 2년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게 작년이라면..’
결국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껏 들은 이야기로 미루어볼 때 할머니는 우영이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일 터였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게 해 준 사람이니까.
‘또 잃어야 한다는 건가.’
녀석은 한 번 더 그 상실감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야 유은숙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어린이대공원에 우영이를 데려간 이유도 그래서예요.”
“…”
“옆에서 보면 우영이는 많이 위태해 보였거든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림만 그리고, 어울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어머니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거 같았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미술을 시작하고, 혼자 두지 않으려 봉사활동에 데려가고.
일부러 아들한테 장난을 거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모양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영이와 내가 친해지는 모습이 유은숙의 눈에 보인 거다.
나를 만나러 카페에 간다거나, 함께 학습지 작화를 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녀의 입장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의 모습을 본 셈이었다.
“염치없지만 부탁하고 싶어요.. 저는 우영이 아빠가 떠났을 때 그렇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거든요.”
“…”
“그러니까 만약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주원 씨가……”
끝까지 듣지 않아도 어떤 말인지 알 거 같았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재주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위로’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기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영이의 입장을 가장 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일지도 몰랐다.
특히나 우영이의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나뿐일 확률이 높았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정말 고마워요.”
그 말을 끝으로 유은숙은 부엌으로 돌아갔다.
문득 나는 내려놓은 그림을 바라봤다.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60대 여성.
아까와는 확실히 다르게 보이는 그림이었다.
***
얼마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우영이와 연두가 함께 들어왔다.
“감자 사써요, 아빠..!”
연두가 두 손으로 감자가 든 봉투를 흔들었다.
우스운 건 우영이는 빈손이라는 점이었다.
설마 이러려고 데려간 건가, 이 녀석.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은숙이 우영이를 향해 말했다.
“우영이 너! 연두가 감자를 들게 하면 어떡해?”
선우영이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땅콩이 들겠다고 고집부려서 들게 한 거거든?”
“오빠 말이 맞니, 연두야..?”
“네에. 연두가 든다고 해써요!”
바로 이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 우영이 말이 맞는 거 같았다.
하긴, 연두는 나랑 있을 때도 내 손에만 무언가가 들려있는 걸 참지 못했다.
꼭 ‘연두도 들고 시퍼요..!’라며 하나라도 손에 가져가곤 했으니까.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아주머니한테 가져다줄까, 연두야?”
“네!”
연두가 신발을 벗고선 감자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고마워, 연두야!”
“네에…”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연두는 감자 서빙을 완료하고도 부엌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기척을 느낀 건지, 유은숙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러니, 연두야?”
“손..”
“응? 손?”
“손 아푸면 안 대여…”
소파에 앉아서 바라보던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막상 사 온 감자를 건네고 나니 아주머니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내가 감자를 썰다가 피를 본 기억이 있었으니까.
한편 그런 사정을 모르는 유은숙은 잔뜩 감동한 거 같았다.
“어쩜 착해라.. 아줌마 손도 걱정해 주고…”
조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연두는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선 언제나처럼 내 품에 꼭 안겼다.
근데 착각인가? 왜인지 표정이 엄청 밝아 보인다.
엄청 기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헤헤, 아빠..”
“응?”
“연두보고 연두라고 해써요…”
왜인지 옆에 앉은 우영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와 별개로 연두의 말은 바로 해석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연두를 향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영이 오빠가 연두라고 해써요.. 땅콩 아니고!”
“아하.”
심부름 도중에 우영이가 연두를 이름으로 불러준 모양이었다.
그거 하나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건가.
물론 가만히 듣고만 있을 선우영이 아니었다.
“땅콩이 아니라고는 안 했는데.”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연두라고는 했다는 거네?”
“뭐, 그렇죠.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요.”
“안 어려우면 자주 좀 해라. 연두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저도 신기했어요. 이름 불렸다고 이렇게 좋아하는 애는 처음 봤거든요.”
그러거나 말거나 연두는 한없이 맑게 웃음 짓고 있었다.
한참 잡담을 하고 있으니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은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성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식사 시간이었다.
***
식사를 마치고 나는 연두와 함께 집에 돌아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맛있었어, 연두야?”
“네! 진짜 마시써써요…”
재료를 보고 예상한 대로 메인 메뉴는 안동찜닭이었다.
한 입을 먹는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드는 맛이었다.
우영이가 한 말이 맞았구나하고.
‘진짜 맛있었지.’
조금 과장하자면 내가 먹어본 찜닭 중에 최고였다.
매운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 연두도 엄청 맛있게 먹었고.
더군다나 찜닭은 난생처음 먹어본 연두였다.
그래서인지 먹는 내내 신세계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연두가 감자 사 와서 진짜 맛있게 먹었다, 그치?”
“네! 감자 엄청 조아여..! 구리고..”
“그리고?”
“하양색 면…”
듣는 동시에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찜닭에 들어간 당면을 말하는 게 확실했다.
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그건 당면이라고 하는 거야, 연두야.”
“당며니요..?”
“응, 당면.”
“연두는 당며니 진짜 조아여..!”
“하하, 그래.”
뭔가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새로운 음식들을 알아가는 연두를 보니.
***
완성한 학습지를 나는 곧바로 지혜 씨에게 전달했다.
우영이와 최종 검토까지 끝냈으니 더 이상 미룰 필요는 없었으니까.
‘언제 받으려나.’
슬슬 그녀에게 도착할 타이밍이 된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개인적으로 작화를 보고 난 후의 그녀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기대해도 좋다고 얘기했는데.’
작화를 마무리하기 직전, 전화를 통해 그렇게 이야기한 기억이 있었다.
충동적인 말이긴 했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었다.
기대치를 올려도 되겠다는 판단 정도는 하고 꺼낸 말이었으니까.
그 말로 인해 분명히 어느 정도는 기대치가 올라갔을 것이다.
‘충족할 수 있으려나.’
이미 작화의 퀄리티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신은 있었다.
그렇기에 걱정이라기보다는 기대감이었다.
의도적으로 올려 둔 기대치마저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
그렇게 나는 서지혜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림 끝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틱.
전화를 받자마자 한 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