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같이 가실래요?
“연두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예림이였다.
친구들이랑 자주 편의점에 들르는 터라 예림이와도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활발한 주연이랑 달리.’
내가 아는 예림이는 차분하고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애였다.
그런데 오늘은 첫마디부터 평소와 달랐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텐션의 목소리였으니까.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연두를 보니 조절이 안 되는 모양이다.
물론 나머지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손에 정체 모를 커다란 봉투를 든 범재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이게 얼마만이야, 연두야!”
말과는 달리 가장 최근에 연두를 본 범재였다.
역시나 곧바로 천적인 동건이에게 제재를 당했다.
“뭔 얼마만이야. 너는 연두 만난 지 얼마 안 됐잖어, 범재쿤.”
“역겨우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라.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연두 본 지 오래됐거든?”
“알겠고, 양심 있으면 순서 양보하자, 범재쿤.”
또 새로운 범재 약 올리기 방법을 개발한 모양이었다.
특유의 느와르 말투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느낌의 말투였다.
스윽.
이후 동건이는 범재를 밀어내고 연두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황당한 표정의 범재를 뒤로하고 동건이는 내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행님!”
“그런 거치고는 이틀 전에도 보지 않았나?”
“에이, 행님과 제 사이를 생각하면 이틀도 엄청 긴 시간이죠.”
아니, 너랑 내 사이가 뭔데. 누가 보면 의형제라도 맺은 사이인 줄 알겠네.
하여간 언제 봐도 능청스러운 녀석이었다.
동건이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연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오빠 기억하니, 연두야?”
“네, 기억해여…”
이제야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연두였다.
왜인지 옆에서 예림이가 입을 틀어막고 연두를 바라봤다.
그냥 대답한 것뿐인데 마치 대단한 장면이라도 본 듯한 반응이다.
그 사이 연두는 동건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동거니 오빠..!”
“와.. 혹시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했는데..”
“연두는 동거니 오빠 안 잊어버려요..!”
감동한 건 알겠는데 왜 콧구멍이 벌렁거리는지 모르겠다.
연두는 뿌듯한 표정으로 생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레 시선은 범재를 향했다.
“.. 범재 오빠!”
호명되는 이름에 범재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비교적 가장 최근에 연두와 만난 범재였으니까.
다음은 옆에 있는 주연이에게로 연두의 시선이 옮겨갔다.
“주여니 언니..”
“흐아.. 감동이야, 연두야…”
오랜만에 봐서인지 한 명씩 이름을 부르는 연두였다. 이제 마지막 차례였다.
조마조마한 표정의 예림이와 달리 나는 편안한 마음이었다.
그야, 연두가 예림이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걸 아니까.
예상대로 연두는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예리미 언니…”
화악.
예림이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문득 처음 예림이를 봤을 때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엄청 하얗다고 생각했지.’
연두가 워낙 하얀 탓에 웬만큼 하얀 사람을 봐도 별생각이 안 드는 나였다.
그런 내가 봐도 하얗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정말 새하얀 거다.
그래서인지 연두와 마찬가지로 얼굴색에서 확연하게 느껴졌다.
지금 예림이가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진짜 보고 싶었어, 연두야…”
“연두도 보고 시퍼써여, 예리미 언니…”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자매가 상봉이라도 하는 느낌의 대화였다. 심지어 이 둘은 처음 보는 사이인데.
워낙 둘 다 하얘서 그런지, 진짜 친자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의외로 케미가 있는 둘이었다.
***
재회가 끝나고 녀석들은 테이블에 빙 둘러앉았다.
자리 선정에 있어서 다소 치열한 경쟁이 있긴 했지만.
‘결국 연두 옆자리는 그대로 동건이가 차지했고.’
연두와 마주 보는 앞자리는 예림이가 차지했다.
범재는 슬쩍 예림이의 자리를 뺏으려 하다가 날카로운 눈빛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결국 범재는 가장 끄트머리 자리에 착석했다.
의외로 예림이는 가끔 무서운 구석이 있었다.
‘전에도 그랬지.’
동건이가 편의점에 들러 우연히 연두를 보고 갔을 때였다.
단톡방에서 약 올리며 자랑하는 동건이를 향해 예림이가 친 채팅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의 채팅이었다.
-동건아. 네가 좋아하는 영화 프렌드의 장동근처럼 만들어줄까? ㅎㅎ
물론 장난삼아 보낸 채팅이라는 건 알았다.
평소의 예림이를 생각하니 조금 섬뜩하게 느껴진 것뿐이지.
그때 주연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응?”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아니?”
“헐.. 들어보지도 않고 너무해…”
서지혜와 마찬가지로 놀리는 재미가 있는 주연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야. 뭐든지 물어봐.”
“대단한 건 아니구요. 아저씨한테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 해서요.”
예상치 못한 물음에 조금 당황한 나는 대답했다.
“응? 갑자기 왜?”
“아니.. 외모만 보면 오빤데 연두 있어서 아저씨라 부른 거거든요. 근데 아저씨만 괜찮다면 오빠라고 부르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안 될까요..?”
“나는 상관없으니까 편한 대로 불러.”
“확인! 그럼 이제부터 오빠라 부를게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라 불리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뭐, 어떻게 불리는지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야’라고만 안 하면 되지.
주연이 옆에 앉은 예림이도 숟가락을 얹었다.
“그럼 저도 오빠라 불러도 돼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예림이한테는 장난하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이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옆에서 동건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행님이라 불러도 됩니까, 행님?”
“.. 지금 그렇게 부르고 있잖아.”
“그렇긴 한데 뭔가 다들 허락 맡는 분위기라서요.”
얘는 갈수록 괴짜가 되는 거 같단 말이지.
동건이의 뜬금포가 웃겼는지 예림이와 주연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범재는 웃긴데 필사적으로 안 웃으려는 표정이다.
동건이 말에 웃어주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건가.
‘특이하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심리였다.
어쨌거나 동건이의 시답잖은 개그 연타로 분위기가 즐거워졌다.
타이밍 좋게 코스요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예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진짜 오빠가 다 사는 거예요?”
막상 아저씨에서 오빠로 호칭이 바뀌니 차이가 느껴지긴 한다.
뭔가 내가 갑자기 어려진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러니까 맛있게 먹어.”
그렇게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
첫 메뉴부터 런치 코스와는 달랐다. 현미 리조또라는 생소한 음식인데 맛은 뛰어났다.
양이 적어서 감칠맛이 난다는 걸 제외하면 흠잡을 부분은 없었다.
예림이가 내가 하려는 대사를 선점했다.
“맛이 어때, 연두야?”
연두가 입에 음식을 머금고 대답했다.
“마시써여..”
“어머.. 마시떠요..?”
예림이가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걸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연두를 앞에 두고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우쭈쭈하게 되는 모양이다.
아까부터 열심히 먹으면서도 눈은 연두를 향하고 있는 예림이였다.
이어서 맛있는 음식이 등장할수록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동건이의 입에서 연두튜브 얘기가 나왔다.
“진짜 대박인 거 같습니다, 행님. 벌써 구독자 거의 70만 아닙니까?”
“응, 그렇지.”
“연두튜브 덕분에 하주연 채널도 떡상했잖아요. 범재네 쇼핑몰도 그렇고.”
나는 스프를 한 입 먹으며 말했다.
“뭐, 영향이 없었다고는 못하지만 주연이는 언젠가 떡상할 채널이었지. 워낙 노래를 잘하니까. 범재네 쇼핑몰도 옷은 엄청 예뻤고.”
빈말이 아니라 생각한 그대로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주연이는 먹는 것까지 멈추고 말했다.
“와, 감동이에요…”
“사실 유투브가 잘 된 것도 주연이 네 공이 커. 주연이 네가 이것저것 안 알려줬으면 이렇게 빨리 성장 못 했을 거야. 고맙다.”
“감사해야 하는 건 저죠! 아, 제가 아직 안 말한 게 있는데요..”
“뭔데?”
“유투브 커지고 나서 저 메일로 계약제의 왔어요.”
“무슨 계약 제의?”
“소속사요. 저 소속사 들어갈지도 몰라요! 오빠랑 연두 덕분에.”
그렇게 말하며 주연이는 밝게 웃음 지었다.
잘된 일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축하해. 근데 무턱대고 계약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당연하죠.”
“계약할 거면 꼭 부모님이랑 상의해서 하고.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라도 물어봐.”
아끼는 동생인 만큼, 걱정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연예계는 부당계약이나 사기가 굉장히 많은 시장이라 들었으니까.
‘나야 그런 건 전혀 모르지만.’
변호사 라이센스가 있는 윤수아에게 부탁해서라도 도와줄 생각이었다.
오지랖일지 몰라도 주연이가 상처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주연이를 향해 동건이가 말했다.
“행님 말씀 잘 새겨들어, 하주연.”
주연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니가 그렇게 안 말해도 새겨듣거든?”
“잘 들어. 일단 하주연 너한테 계약제의 메일을 보냈다는 것부터 조금은 의심해봐야 해. 왜냐고? 얼굴을 안 본다는 소리거든. 그 말은……”
또 시작이었다. 동건이는 또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주연이의 속을 긁었다.
쭉 이어지는 말에 주연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평소대로라면 주연이가 빽 소리를 지를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연두가 입을 열었다.
“주여니 언니 엄청 예뿐데……”
예상치 못한 연두의 칭찬에 주연이의 얼굴이 방금과는 다른 이유로 달아올랐다.
벙찐 표정의 동건이를 향해 예림이가 말했다.
“동건이 너. 솔직히 말해봐.”
“.. 뭐를?”
되묻는 동건이의 표정이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예림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주연이가 엄청 뜨면 사이 멀어질까 봐 신경 쓰여서 괜히 그러는 거지.”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그런 걸로 왜 신경을 써! 허, 나 참…!”
과하게 흥분하는 걸 보니 잘 알겠다. 예림이가 완전히 정곡을 찌른 거 같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연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치, 유치하긴. 누나가 유명해져도 가끔은 놀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동건아.”
“와… 진짜 적당히 하자. 주먹이 울고 있다.”
“풉. 때리지도 못하면서 센 척은. 큐트하다, 큐트해.”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동건이였다.
그래도 주연이가 얘기하는 걸 보면 동건이가 폭력을 쓰지는 않는 모양이다.
하긴, 내 기억상에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장난기가 많긴 하지만 착한 녀석이니까.’
유독 주연이한테 장난을 많이 치는 이유도 대충 짐작은 갔다.
물론 동건이의 멘탈을 지켜주기 위해 이야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까지 얘기했다가는 진짜 멘탈이 탈곡될지도 모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대화 화제는 전환됐다.
예림이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오빠.”
“응.”
“여름에 어디 놀러 갔다 오셨어요?”
우연찮게도 아까 연두와 나눴던 휴가 얘기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마침 9월 되기 전에 가기로 했어.”
“아, 정말요? 어디 가기로 하셨는데요?”
예림이의 물음에 나는 연두를 보며 말했다.
“우리 어디 가기로 했지, 연두야?”
예림이를 포함한 애들의 시선이 연두를 향했다.
연두는 설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영장이여..!”
“하하, 그렇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수영장 가기로 했어.”
그런데 뭔가 애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윽고 주연이가 예림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대박..!”
영문 모를 반응에 당황한 나는 물었다.
“왜 그래?”
“깜짝 놀랐어요. 사실은 저희도 이번에 수영장 놀러 갈 생각이었거든요.”
“너희 넷이?”
“네.”
아무래도 가려는 곳이 겹쳐서 놀란 모양이었다.
뭐, 시기가 시기인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왜인지 예림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혹시 어디 가실 생각이세요?”
“수영장?”
“네.”
“그건 아직 안 정했어. 일단 수영장에 갈 계획만 세워둔 거라.”
“그렇구나. 저희는 오선월드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응.”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가실래요?”
뜻밖의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