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노랗고 동그란
“할머니, 연두 좀 입양해 주세요.”
“.. 뭐?”
외할머니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는 게 느껴졌다.
표정만 봐서는 내게 욕을 퍼부을 거 같았다.
“나보고 이 핏덩이를 입양하라고?”
“어려운 부탁인 거 알아요. 이런 부탁을 할 만큼 할머니가 저를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요. 그래도.. 부탁드릴게요.”
나는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입양 가능 조건에 외할머니가 부합한다는 것.
연두를 계속 이 상태로 키울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입양 절차를 밟음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외할머니는 의외로 내 말을 끊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더 얘기해야 해.’
여기서 어중간하게 이야기를 끝내서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
끝내 거절당하더라도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전부 이야기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쑥 그때의 이야기가 나갔다.
“할머니가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명도 없었어요.”
“…”
“외삼촌의 장례식에 갔을 때 연두를 배려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물론 친척들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이해 못 해요.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는지, 라는 말을 하려다가 나는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을 마구 퍼붓다 보니 그들이 외할머니의 친자식들이라는 걸 잠깐 잊었다.
부모가 자식들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상당히 속상한 일이겠지.
설령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게다가.’
의도치 않게 연두에게도 그 날을 떠올리게 해 버렸다.
내가 고쳐야 할 점이었다. 가끔 이렇게 충동적이 되는 것은.
지금 내가 말해야 하는 건 이런 것들보다 더 본질적인 내용이었다.
“저는 능력이 닿는 한 연두를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크게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해요.”
물론 내가 할머니께 바라는 건 금전적인 지원이 아니었다.
입양 절차를 밟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벌린 일이야.’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장례식에서 연두를 데려온 건 내 선택이었으니까.
내 선택으로 일어난 일은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이 바로 부모의 자격이었다.
“아빠아..”
할머니가 내게 대답하려는 순간, 연두가 입을 열었다.
연두는 불안한 표정을 띠며 말을 이었다.
“입양이 뭐예요..?”
“아, 그러니까 입양이라는 건 법적으로 부모가 되는 건데..”
그러자 연두가 갑자기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빠 연두랑 가치 살 거라고 했자나요.. 연두는 할모니랑 살기 시러요..”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 거 같았다.
하긴, 연두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말이었기에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연두야! 할머니가 연두를 입양하면 연두랑 아빠가 계속 같이 살 수 있어. 그래서 아빠가 지금······”
응? 내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 ‘할머니가 너를 입양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이 못 산다’라고 말하는 거 같잖아.
당황해서 말실수를 한 거 같다.
설사 할머니가 입양하지 않더라도 연두와 떨어질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는데.
“쯧.”
할머니는 횡설수설하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빨리 해명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연두야, 그러니까 방금은······”
그때 연두가 울먹거리며 할머니에게 걸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할머니를 껴안았다.
‘응?’
그렇게 경계하고 무서워하던 할머니를 갑자기 껴안는다고?
설마 방금 말실수 때문에 나한테 실망한 건가?
그래서 할머니랑 살고 싶어진 건가?
잠깐만. 이번에는 내가 울 거 같다.
“뭐, 뭐여?”
할머니는 나보다도 더 놀란 거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눈치를 설설 보던 아기가 다가와서 안겼으니.
연두는 할머니를 껴안은 채 히끅히끅 울며 말했다.
“할모니..”
“뭐.”
“연두 좀 입양해 주세요..”
내 예상이 맞다는 걸 깨닫고 슬퍼지려는 순간, 이어지는 연두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연두 아빠랑 가치 살고 시퍼요.. 그러니까 연두 좀 입양해 주세요..”
“연두야..”
순간 찡하고 감정이 올라왔다.
연두가 싫어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안긴 이유, 그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나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떨어지지 않을 방법이 입양이라는 말에 저런 행동을 취한 거다.
연두에게 나는 그 정도로 큰 존재였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떨어져, 이년아!”
홱.
한편, 할머니는 연두를 밀어서 떼어냈다.
연두의 말에 김이 샌 모양이다.
“할모니…”
그러나 연두는 재차 할머니한테 다가가 달라붙었다.
더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다가가 연두를 데려오려는데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알겠으니까 떨어져.”
그 말에 내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할머니, 지금 뭐라고······”
“입양할 테니까 애 떼어놓으라고.”
“진짜예요?”
“나중에 못 키우겠다고 데려오기만 해 봐.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테니까.”
그제야 연두가 웃으며 내게 달려와 안겼다.
방금까지 흐느껴서인지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나는데. 부녀가 쌍으로 엉덩이에 뿔 나게 생겼네.
***
“약수를 떠 오라고요?”
“들었는데 묻긴 또 왜 물어?”
“아니, 할머니 요즘 뉴스 안 보셨어요?”
“갑자기 뭔 뉴스 타령이야?”
“요즘 약수는 약수가 아니라 독약수래요. 막 라돈도 검출되고 수질이…”
“이 조대새끼가. 내가 그 물을 수십 년을 먹었어! 수작 부리기는.”
“아니, 뜨러 가기가 귀찮은 게 아니라 할머니가 걱정돼서.”
“수질 검사한 물이니까 닥치고 갔다 와! 확, 쥐어박아 버릴까 보다.”
“알겠어요. 갔다 올게요.”
수질검사까지 했다면야 어쩔 수 없지.
솔직히 가기 귀찮긴 했지만, 입양까지 허락해준 마당에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울 아빠 쥐어박지 마세요!”
“어쭈. 그럼 네가 쥐어박힐래?”
“할모니 나빠요! 나뿐 사람이야!”
“이 쥐방울만 한 년이 엄마 될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아주.”
“할모니 연두 엄마 아니에요!”
“그래? 그럼 나 너 입양 안 해.”
와, 다섯 살짜리 연두랑 저렇게 다투기도 쉽지 않은데.
그런 의미에서 정말 대단한 분이다.
한편, 연두는 금세 기가 죽어서 말했다.
“잘모태써요, 할모니..”
“앞으로 한 번만 더 까불어 봐.”
“네에..”
“주원이 너는 후딱 갔다 와!”
“네, 네.”
끼익.
나는 방문을 닫고 약수를 뜨러 나갔다.
아침 먹고 약수를 뜨러 나가니 뭔가 진짜 시골 사람이 된 거 같았다.
탁탁탁.
그런데 연두도 나를 따라나섰다.
“힘들 텐데 집에 있지?”
“연두 안 힘드러요! 할모니 무서어…”
“하하, 그래. 같이 가자.”
하기야 할머니랑 단둘이 집에 있는 건 나라도 무서울 거 같았다.
나는 할머니가 알려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연두와 보폭을 맞춰서.
‘생각보다 괜찮네.’
시골 향취를 느끼며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연두도 기분이 좋은지 폴짝폴짝 뛰었다.
길을 가다 마주친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이구, 아기 예쁜 거 봐. 친척 동생인가?”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해 뒀다.
“딸입니다.”
앞으로는 연두 앞에서 아빠로서 당당해질 필요가 있었다.
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머어머. 엄청 젊은 아빠구나.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민홍임 할머니 손주라서요. 할머니 뵈러 왔습니다.”
“호호, 수십 년을 이웃으로 지냈는데 모를 리가 있나. 민 할머니한테 이렇게 잘생긴 손주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약수터는 이쪽으로 쭉 가면 되나요?”
혹시 몰라 확인차 한 질문에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길을 알려줬다.
연두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유, 너무 예쁘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데 집 방향이 반대라서.”
“하하, 괜찮습니다.”
그렇게 나는 아주머니와 헤어져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 보니 오른쪽으로 푸른 논밭이 이어졌다.
“연두야.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을래?”
“사진이요..?”
“응. 이런 데에 오면 기념으로 하나 찍어줘야 되거든. 거기 한 번 서봐.”
연두는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없는지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다.
하긴, 지금까지는 내가 도촬하다시피 몰래 찍었으니까.
너무 예뻐서 틈만 나면 그러고 있다.
“연두야. 핸드폰 보고 웃어 볼래?”
“네에.”
연두는 다소곳하게 손을 모은 채 웃으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하나 둘 셋 하면 찍는다. 자, 하나 둘 셋!”
찰칵.
“꺄아아!!”
그런데 사진을 찍는 동시에 연두가 비명을 질렀다.
그 탓에 연두가 놀라는 장면이 실감 나게 찍혔다.
연두는 기겁을 하며 내게 달려왔다.
개굴. 개굴.
연두를 놀라게 한 정체는 바로 개구리였다.
갑자기 연두의 앞으로 점프를 한 것이다.
하긴, 물이 있는 논가에서 개구리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봄은 개구리가 눈을 뜨는 계절이라고 하니까.
연두는 내 뒤로 숨어서 입을 열었다.
“괴, 괴무리다!”
“크큭. 연두야. 저건 괴물이 아니고 개구리야.”
“괴구리..?”
“괴구리 말고 개구리.”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한 남자아이가 순식간에 개구리를 낚아챘다.
아이는 개구리를 들고 곧장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놀라서 뒷걸음질쳤다.
나도 무섭단 말이다. 개구리가 가까이 오는 건.
“자, 잠깐만, 얘야. 멈춰 봐.”
연두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킥킥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겁쟁이네요.”
갑자기 꽂힌 일침에 내가 당황해서 물었다.
“뭐?”
“개구리 무서워하는 겁쟁이 아저씨는 처음 봐요.”
“하하, 꼬마야. 미안한데 겁을 먹은 게 아니라, 굳이 만지고 싶지 않은 거뿐이야.”
“풉.”
이 자식, 내가 싫어하는 아기의 유형이다.
“야! 우리 아빠 겁쟁이 아니거든?”
“바보. 겁쟁이 아닌데 개구리도 못 만지냐?”
“울 아빠 겁쟁이 아니야! 그리고 연두 바보 아니야!”
그러자 녀석은 개구리를 들고 더 다가온 뒤 연두를 향해 말했다.
“만져 봐, 그럼.”
“.. 응?”
“개구리 만지면 인정할게. 아저씨 겁쟁이 아닌 거. 그리고 너 바보 아닌 거.”
아니, 그게 무슨 논리야.
아무리 애라지만 이 녀석 혼나야겠다.
그런데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연두의 손이 먼저 나갔다.
쓰담.
연두가 개구리를 쓰다듬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남자애가 개구리를 손에서 놓아 버렸다.
“꺄아아! 흐아앙!!”
개구리는 튀어 오른 후 이때다 하고 논가로 뛰어들었다.
“야, 인마! 너 이게 뭐 하는······”
그러는 사이 남자아이는 잽싸게 달려가 사라졌다.
분노가 차오르는 상황이었다.
***
“괜찮아, 연두야?”
“네..”
제기랄. 시골 아이는 다 착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내 딸 연두한테 이런 못된 장난을 하다니.
마주치면 반드시 잡아서 혼을 내 줄 거다.
“연두야.”
“네에.”
“다음에 또 그런 상황 생기면 개구리 안 만져도 돼. 누가 아빠를 겁쟁이라고 한다고 진짜 겁쟁이가 되는 건 아니니까.”
“구래도.. 화난단 말이에요..”
“하하, 알지, 알아.”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히 연두를 놀란 게 가라앉았는지 표정에 웃음을 되찾았다.
“도착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약수터에 도착했다.
‘할머니 말이 맞네.’
약수터는 한눈에 봐도 깨끗해 보였다.
이물질은 보이지 않았고 청정수 느낌이었다.
뭐, 수질검사까지 했다고 하니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물통에 약수를 받기 전, 나는 손으로 약수를 떠서 물을 마셨다.
“캬아!”
장난 아니게 시원했다.
안전한지 확인할 겸 먼저 마셔봤는데, 이 정도면 연두에게 줘도 될 거 같다.
“목마르지, 연두야?”
“네, 아빠!”
“자, 아빠가 손에 담아줄 테니까 마셔 봐.”
나는 양손에 물을 가득 담아 연두에게 내밀었다.
연두는 한껏 물을 들이켜더니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우아.. 차가어요!”
“하하, 이게 약수라는 거야.”
“연두도 아빠 줄래요!”
“오, 연두가?”
“네.”
그렇게 약수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야.”
불청객이 찾아왔다.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너 이 녀석.”
역시 아까의 꼬맹이었다.
따끔하게 혼을 내주려는데 녀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손에는 웬 봉투가 들려 있고, 뛰어온 건지 헥헥거렸다.
녀석은 연두를 향해 걸어가서 말했다.
“미안해.”
그러더니 꼬마는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노랗고 동그란 무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