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파도풀
맛있는 음식으로 배도 채웠겠다.
이제 오선월드의 꽃, 하이라이트인 파도풀을 즐기러 갈 차례였다.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 조금 걱정되는 점이 있긴 했다.
‘체하는 거 아니겠지?’
나야 그렇게 폭식을 한 건 아니었기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걱정되는 건 다름 아닌 연두였다.
‘가 본 적이 없으니 잘은 모르지만.’
파도풀이 어떤 공간인지는 주연이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실제 바다처럼 파도가 밀려오도록 해서 재미를 주는 풀이라고 했지.
그 파도가 엄청나게 세다고 들었고.
과장한 게 없지 않아 있겠지만, 오선월드에서 가장 역동적인 풀임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식후에 바로 놀았다가 체하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됐다.
“헤헤.. 파도풀…”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연두의 표정은 이미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 이동하는 도중에 공공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과 잠깐 멈춰 선 나는 연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기, 연두야.”
“네, 아빠..!”
“혹시 배 안 아파? 또 놀아야 하는데 배 아프면 안 되니까.”
“연두 배 하나도 안 아파여! 화장실 안 가도 대요..!”
“하하, 그래?”
연두가 씩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속이 안 좋아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된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럼 배는 얼마나 불러?”
정신없이 츄러스와 소시지를 비롯한 음식을 흡입하던 연두였다.
그에 더해 후식으로 구슬아이스크림까지 한 컵을 싹싹 비웠고.
물론 음식의 양이 엄청 많았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연두는 작으니까.’
체구가 작으니 그만큼 적은 음식에 배가 차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혹시 배가 많이 부른 상황이라면 바로 파도풀에 들어가는 건 좋지 않았다.
역동적인 파도에 탈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걱정하는 나를 향해 연두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얼마나…?”
아무래도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금껏 이런 식으로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배가 부른지 안 부른지 물어본 적은 있어도.
나는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다시 질문했다.
“궁금해서. 연두 배가 많이 부른지. 아니면 조금 부른지. 아니면 안 부른지.”
됐다. 선택지를 세 개나 줬으니 이제 대답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연두는 골똘히 고민에 빠졌다.
“끙..”
아직도 대답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연두야.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봐.”
“.. 동그라미요?”
“응. 연두가 지금 배부른 만큼 동그라미를 그리면 되는 거야. 엄청 배부르면 완전 큰 동그라미를, 하나도 안 배부르면 조그마한 동그라미를.”
연두가 평소에 자주 하는 표현법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그러자 연두는 눈이 동그래져서 외마디 음성을 내뱉었다.
“아!”
이번에는 틀림없었다.
저건 완벽히 내 말을 이해했을 때만 나오는 반응이었으니까.
곧바로 연두는 말갛게 웃으며 동그라미를 그려냈다.
“이만큼 배불러여..!”
말로는 그렇게 어려워하던 걸 이렇게 고민 없이 해낸다.
나 역시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니 바로 감이 왔다.
연두가 그린 동그라미는 아주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동그라미였다.
‘비유하자면 축구공 수준이겠네.’
그리고 이건 정확히 내가 원하던 대답이기도 했다.
적당하게 배가 찬 수준이라면 탈이 날 우려가 적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차를 타더라도 너무 배가 고프거나 배가 부를 때 타면 멀미가 심하게 나곤 한다.
그거랑 비슷한 원리일 거라 생각해서 적당히 배부르다는 답을 원한 거고.
나는 미소를 띠며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구나. 얘기해 줘서 고마워, 연두야.”
“네에. 연두도 고마어요, 아빠…”
“크크.”
난데없이 유턴해 온 감사인사에 웃음이 나왔다.
뭐가 고맙냐고 물어보려는데 옆에서 동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님.”
“어, 동건아.”
“잠깐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미간을 찡그리는 게 무언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근데 무슨 일인데?”
“후딱 큰 거 좀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큰 거?”
“네.”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동건이의 등 뒤로 보이는 공중화장실을 보고서야 느낌이 왔다.
옆에서 주연이가 질색하며 말했다.
“야! 그걸 굳이 이야기하고 가냐? 그냥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면 되잖아!”
“쯧쯧, 역시 뭘 모르네. 그러고 가면 행님이랑 누님이 이유도 모르고 오래 기다리셔야 하잖아. 그걸 위한 배려인 건데.”
“어휴.. 진짜 더러워서……”
“뭐? 생리현상인데 더럽다니!”
“그만 말하고 빨리 갔다 오기나 해!”
금세 또 못 참고 투닥거리는 두 녀석이었다.
그러다 동건이는 급한지 쏜살같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연두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응, 연두야.”
“큰 거가 모예요..?”
세연 씨 모녀와 애들의 시선이 고정됐다.
또 한 번 날아든 연두의 대답해주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
여차저차해서 적당히 대답해주는 데 성공했다.
몇몇 일행이 동건이를 따라서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다.
가장 늦은 사람은 물론 큰 거를 해결하고 오겠다는 동건이였지만.
동건이가 돌아오고 우리는 곧장 파도풀로 향했다.
‘파도풀 바로 옆에는.’
다이나믹한 수중놀이기구들이 포진되어 있는 ‘익스트림 존’이 있었다.
의도적으로 이런 식으로 배치해 둔 거 같았다.
역동성이 강조된 파도풀과 익스트림 존을 가까이에 둔 건.
물론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계획대로 파도풀이었다.
“여기지, 주연아?”
“네, 맞아요!”
유수풀과 마찬가지로 파도풀도 쉬는시간과 운행시간이 존재했다.
수면이 잔잔한 걸 보니 지금은 쉬는시간인 모양이고.
파도풀을 보던 예림이가 재촉하며 입을 열었다.
“빨리 가야 해요, 오빠! 잘못하면 이번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요!”
“.. 못 들어간다고?”
“네. 사람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어서 인원을 제한하거든요. 파도가 세서 서로 부딪칠 수 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눈앞에 직원들이 사람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이미 파도풀 내에는 꽤 많은 인원이 찬 상태였다.
잘못하면 예림이의 말대로 다음 타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가자, 연두야!“
“네에.”
나는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세연 씨도 탈 거죠?”
“네, 시은이가 타고 싶어 해서요.”
“하하, 그래야죠. 여기까지 왔는데.”
내 말에 신세연이 미소를 띠며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전 인원 파도풀 입성에 성공했다.
동건이의 큰 거 해결이 조금만 늦었으면 오래 기다릴 뻔했다.
“흐하하, 연두야. 재밌겠다, 그치.”
배를 비워서인지 동건이는 평소보다 더 신이 난 상태였다.
연두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네에. 마니 재미쓸 거 가타요..!”
“파도 세도 놀라지 말고. 오빠가 지켜줄 테니까.”
그 말에 옆에 있는 범재가 트집을 잡았다.
“주원이 형이 있는데 니가?”
“나는 2차 방어선인 거지. 혹시 주원이 형이 뚫렸을 때 연두를 지키기 위한.”
“크크, 말은 잘하네.”
범재는 그렇게 비웃더니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형. 진짜 조심하긴 해야 해요. 파도풀 처음이라 하셨죠?”
“응.”
“생각보다 파도가 엄청 세요. 처음이면 놀랄 수도 있어요. 아, 수모도 바짝 당겨서 써야 해요! 저 처음 왔을 때 파도에 수모 날아가서 못 찾았거든요.”
“아, 그래?”
“네.”
아까 주연이의 말도 그렇고, 파도가 세다는 말을 벌써 몇 차례나 들었다.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더 격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조언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연두야. 잠깐 머리 좀 대 볼래?”
“네에.”
스윽.
범재의 조언에 따라 수모를 바짝 당겨서 씌워줬다.
이 정도면 손으로 벗기려 해도 벗기기 쉽지 않을 듯했다.
파도에 벗겨지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나 역시 수모를 더 당겨서 썼다. 파도풀은 위치마다 수심이 달랐다.
최고 수심은 2.4m에 달할 정도로 내 키를 훌쩍 넘는 깊이였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도 결코 낮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고.
일행을 슬쩍 둘러본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재밌네.’
하나같이 공통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주연이와 예림이, 세연 씨와 시은이가 손을 꼭 잡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와 연두를 제외하고는 전부 파도풀 경험이 존재했다.
세연 씨랑 시은이도 오선월드는 아니지만 다른 워터파크에서 파도풀에 가 봤다고 했고.
그런데도 긴장한 걸 보니 진짜 평범한 풀은 아닌가 보다.
오직 동건이와 범재만 솔로 플레이였다.
하기야 이 둘이 손을 잡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랑 윤우가 손잡는 거랑 비슷한 거니까.’
미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었다. 이 둘도 마찬가지겠지.
어쨌든 일행이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니 슬슬 긴장이 됐다.
심지어 옆을 보니 안전요원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요원이었다.
최대한 조심하고, 연두의 손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대로 연두에게도 당부했다.
“아빠 손 절대 놓으면 안 돼, 알겠지?”
“네에…”
“무서워, 연두야?”
“네. 이만큼…”
이번에는 자세히 묻지 않았는데도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축구공만 한 동그라미였다.
한마디로 말해 적당히 무섭다는 뜻이었다.
“걱정하지 마. 아빠 손만 안 놓으면 안전하니까. 아빠가 지켜줄게.”
“네에.”
얼마 후,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여자의 음성으로 나오는 안내방송이었다.
[이제 파도풀의 운행을 시작합니다. 모두 구명조끼 버클을 확인해 주세요.]수심이 깊은 만큼 구명조끼가 벗겨지면 위험할 수 있었다.
안전을 고려할 때 꼭 필요한 안내방송이었다.
여자의 음성은 계속 이어졌다.
[노란 선 안으로는 들어오지 마시고, 편하게 수면 위에 눕는 자세를 취해 주세요.]편하게 눕는 자세를 취하라고? 이건 왜인지 모르겠다.
허나 안내방송의 말을 들어 나쁠 건 없었다.
구명조끼가 있으니 눕는 자세를 취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으니까.
“연두야.”
“네, 아빠.”
“아빠 따라서 이렇게 누워 볼래?”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구명조끼에 의지해 물에 동동 뜬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안내한 내용을 전부 숙지하여 주세요. 이제 시작하겠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안내방송이 종료됐다.
멀리 보이는 파도의 시작점에 큰 원형 구멍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저게 파도를 만들어내는 장치인 거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점의 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오..”
첫 번째 파도가 오기 시작했다.
미세해 보이던 수면의 일렁임은 가까이 다가올수록 큰 파도로 변했다.
마침내 우리에게 도달했을 때는 꽤 큰 재미를 선사해 줄 정도였다.
한순간 몸이 붕 뜨는 기분을 느꼈으니까.
‘진짜 파도 같네.’
파동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 해변에서 실제 파도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두는 첫 파도를 바다가 아닌 여기서 경험하는 거구나.
첫 파도를 느낀 연두는 신이 나서 말했다.
“아빠아! 진짜 재미써요..!”
“하하, 그래?”
“네!”
실제로 파도가 올 때마다 수면 위에 몸이 붕 뜨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연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즐거운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그와 별개로 드는 의문이 존재했다.
‘.. 나 속은 건가?’
파도가 강하니 조심해야 한다더니. 수모까지 단단히 쓰라더니.
물론 약한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내게 경고한 주연이와 범재도 전혀 위기감이 없었다.
‘당연한 거지.’
위기를 느낄 만한 파도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세연 씨는 아직도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뭐지? 설마 깊은 물을 무서워하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수영을 잘한다고 한 게 불과 아까 전인데.
그때였다.
[그럼 첫 웨이브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난데없이 끝난 줄 알았던 안내방송이 귀에 들어왔다.
첫 웨이브? 해석하면 첫 파도라는 건데. 지금까지 온 게 첫 파도 아니었나?
이윽고 그런 내 모든 생각을 불식시키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웅. 웅.
방금처럼 시작점의 수면이 일렁였다.
문제는 그 일렁거림이 지금까지의 파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지만.
그렇게 생겨난 파도는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까 말했듯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파동은 거세졌다.
안 그래도 큰 파도가 거세지기까지 하니 공포심이 일었다.
“아, 아빠..”
“연두야..”
나와 연두는 꼼짝없이 누워서 서로를 바라보며 닥쳐올 파도를 맞을 준비를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피할 겨를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 공간의 이름을 바꿔야 할 거 같았다.
파도풀이 아닌 해일풀로.
“어억!”
“꺄아!!”
해일풀 내에 한 부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