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대결
“나 연두 친아빠 아니야.”
내 말과 동시에 두 녀석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이 물음표로 보일 정도니 얼마나 당황한 건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
‘하긴.’
이렇다 할 맥락도 없이 바로 본론을 던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전에 친구들에게 ‘나 딸 생겼다.’라 말했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녀석들은 내 말을 안 믿고 어린이집까지 따라왔었는데.
다행히 얘네는 내가 한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거 같았다.
‘당연한 거긴 하지만.’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장난이라도 딸에 관해 이런 말을 하는 건 이상하니까.
자기 딸을 친딸이 아니라고 장난을 치는 아빠가 어디 있겠는가.
얼마간의 침묵 끝에 동건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행님..?”
침묵이 끊기자 범재도 뒤따라 입을 열었다.
“.. 형이 친아빠가 아니라고요? 그럼 연두는요?”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얼마나 혼란스러워하고 있는지.
아무래도 빨리 이야기해주는 게 좋을 듯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얘기해 줄게.”
그렇게 나는 연두와의 인연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외삼촌의 장례식장에 간 날부터,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부를.
연두의 모습과 친척들이 취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걸 얘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연두를 데려온 이유를 납득시킬 수 없을 테니까.
‘.. 아프네.’
몇 번을 떠올려도 마음이 아픈 기억이었다.
그 날의 연두를 떠올리면, 필연적으로 생각이 이어졌으니까.
얼마나 연두가 아팠을지, 힘들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다.
“…… 그렇게 된 거야.”
하지만 나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설명을 마쳤다.
아무리 힘든 기억이라도 그 날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싶지는 않았다.
연두는 그 날이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 말했으니까.
나도 연두와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그 날을 추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설명을 들은 이 녀석들이었다.
훌쩍.
설명을 끝내기 무섭게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바라보니 당황스러운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그야, 범재랑 동건이가 나란히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으니까.
특히 동건이는 눈가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큰일이네.’
사우나 안에는 우리 셋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장면만 놓고 보자면 내가 이 녀석들을 울린 모양새였다.
아, 내가 울린 거 맞긴 하구나.
어쨌든 주위 시선이 쏠리기 전에 빨리 멈추게 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야, 너네 왜 그래. 울지 마. 탕 안에서 눈물 떨구면 안 되지.”
어쩌다 보니 우스운 위로가 나가버렸다.
녀석들보다는 탕의 수질을 걱정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말을 잇기도 전에 동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연두는.. 크흑, 형 만나기 전에 학대를 받았다는 거네요.”
내 말에 가까스로 울음을 참는 느낌이었다.
사실 예상한 장면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치 못했으니까.
물론 주연이랑 예림이의 반응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분명히 이 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격하게 울었겠지.
‘.. 오열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이 둘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줄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사우나에서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줬어야 할 이야기였다.
이제 와서 후회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녀석들이 연두를 아끼는지도 느껴지고.’
친동생이 아닌데도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사연을 말하기로 결심하기 전에, 녀석들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연두는 이렇게 좋은 오빠 두 명을 둔 거구나.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동건이의 말에 대답했다.
“학대..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상태가 말이 아니었으니까.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려 했는데, 말로 다 표현하기가 힘드네.”
다른 건 몰라도 연두의 모습은 말로 잘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건 내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으니까.
옆에서 범재도 끅끅거리며 중얼거렸다.
“..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응?”
“연두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이 두 가지 있거든요. 하나는 어떻게 애기가 이렇게 예쁠까였고…”
“.. 다른 하나는?”
“왜 이렇게 말랐을까 하는 의문이었어요. 원래 그 나이에는 좀 통통한 경우가 많은데 연두는 너무 마른 거 같아서..”
범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연두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으니까.
“.. 개자식.”
응? 그러던 와중 동건이 쪽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격한 단어에 순간적으로 당황감이 일었다.
놀란 나를 향해 범재는 악에 받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거 완전 개자식 아닙니까? 어떻게 연두를 학대할 수 있죠?”
이제야 거친 말의 대상이 누군지 알 거 같았다.
옆에서 범재가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건.. 형이랑 그 사람이랑 친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 와중에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걸 깔아두는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의외로 이런 면에서는 옳고 그름이 확실한 범재였다.
한편 범재의 말에 동건이가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행님. 너무 화가 나서……”
“아냐.”
“네?”
“동건이 네 말이 맞아.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틀렸구나.”
“…?”
“개보다 못한 쓰레기새X지. 죽어서도 구제가 안 되는 인간. 만약 살아있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정신없이 이야기하다 아차 하고 말을 멈췄다.
애들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와서 흥분해버린 모양이다.
‘원래 뒤에서 누군가를 흉보는 건 질색하는 타입이지만.’
그 대상이 진짜 나쁜 새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나 외삼촌은 면전에 대고 욕을 뱉을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고인이 된 쓰레기에 대한 예를 갖추는 수밖에.
어른다운 발언은 아니었지만, 속은 시원한 느낌이었다.
“와, 행님..”
“미안하다. 내가 순간적으로……”
“아뇨. 형 욕하는 거 처음 보는데.. 진짜 간지 폭발이네요. 어떻게 그렇게 욕을 멋있게 하십니까?”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네.
태어나서 욕 잘한다고 칭찬받는 건 처음이다.
동건이에 이어 범재도 눈을 반짝이며 말을 덧붙였다.
“인정. 안 그럴 거 같은 사람이 정색하고 욕하니까 개멋있어. 그나저나 괜찮아요, 형?”
“뭐가?”
“그래도 외삼촌인데..”
“괜찮아. 친분도 없고, 만약 있었어도 똑같이 말했을 거야.”
아니, 친분이 있었다면 더 격하게 욕했을 거다.
내가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안다면 더 화가 났을 테니.
그러자 범재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럼 마음껏 해도 되는 거예요?”
“뭐를?”
“형 외삼촌 욕이요.”
“그거야 뭐. 하고 싶으면 해.“
“그럼 사양 않고 하겠습니다. 주원이형 외삼촌……”
순간적으로 내 눈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차마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이고 신박한 욕들이 귀에 들어왔으니까.
뒤늦게 참여한 동건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게 요즘 고등학생의 욕인 건가.
듣고 나니 방금 내가 한 건 욕의 축에도 끼지 못했다.
더 격해지기 전에 나는 손을 휙휙 저으며 말했다.
“그만. 그 정도면 충분해.”
같은 탕에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누군가 처음부터 지켜봤다면 미친 사람들로 볼 게 분명했다.
상황만 놓고 보면 얘기중에 울다가 난데없이 욕을 퍼붓고 있는 거니까.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나는 말했다.
“어쨌든 너희한테 말해주고 싶었던 건 여기까지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숨기는 느낌이 들었거든.”
“아닙니다, 행님! 진짜 얘기해주셔서 감동입니다!”
“고마워요, 형.”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뭐든지 말씀하십쇼.”
“연두는 지금처럼 대해줘. 안쓰럽다는 이유로 태도를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희는 지금이 연두한테 최고로 좋은 오빠니까.”
범재가 내 말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걱정 마세요.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요.”
“하하, 고맙다.”
첨벙.
포옥.
그러던 와중, 물이 튀기며 무언가가 안겨들었다.
평소에 연두가 달려와서 안길 때와는 다른 육중한 느낌.
깜짝 놀라 누군가 보니 동건이였다.
“행님! 연두 데려와주셔서 진짜 고맙습니다! 행님은 진짜 천사입니다!”
“아, 알았어! 이건 좀 놓고..”
“사랑합니다, 행님!”
“어억!”
사우나에서 남자와 진하게 포옹하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느낌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이후에도 나는 한참이나 동건이의 애정표현을 겪어야 했다.
***
한편 반대쪽 여탕에서도 이야기꽃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 명뿐인 남탕과 달리, 무려 다섯명이 온탕에 몸을 담그는 중이었다.
신세연과 시은이, 주연이와 예림이, 그리고 연두.
그리고 남자 쪽 일행과 달리 아주머니들이 함께였다.
“어머, 진짜 애기들이 어떻게 이렇게 예쁘대?”
“둘 다 아가씨 딸이에요?”
시은이와 연두를 바라보며 아주머니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세연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뇨. 여기 시은이는 제 딸이고, 옆에는 연두인데 아빠랑 같이 와서요. 지금 옆에 있어요.”
“아, 남탕에?”
“네.”
“난 또. 엄마가 너무 하얗고 예뻐서 둘 다 자기 딸인 줄 알았지. 애들도 너무 하야니까.”
각자 몸을 담그는 데에 집중하는 남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서로 다른 일행이 한데 모여, 원래 알던 사이처럼 대화하는 훈훈한 분위기.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연두를 향해 말했다.
“애기. 이름이 연두라고 했지?”
“네! 연두예요..!”
“어쩜 목소리도 예뻐.. 아빠 보고 싶어서 어떡해?”
아주머니의 말에 연두는 축 처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고 시퍼요… 구래도 나가서 볼 거니까…”
“호호,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복 받았네. 잠깐 떨어졌다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이 이러는 거 보면. 안 그래?”
옆의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이래서 아들 낳아봐야 소용없다니까.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은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찾아오기는커녕 전화도 뜸한지.”
“이 언니 보게. 그래도 언니 아들내미는 용돈 꼬박꼬박 보내주잖아.”
“용돈이 문제야, 용돈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제여?”
유쾌한 아주머니들의 대화에 신세연과 애들이 웃음을 지었다.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연두와 시은이는 멀뚱멀뚱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러다 시은이가 무언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불쑥 입을 열었다.
“연두야!”
“으응..?”
“우리 잠수게임 할래?”
“잠수게임…?”
“응. 누가 물속에서 더 오래 잠수하나 대결하는 거야!”
갑작스레 던진 시은이의 제안이었다.
흥미가 동한 연두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구래! 연두 잠수할 줄 알아! 아빠가 알려줘써..!”
이렇게 갑작스레 둘의 대결이 성사됐다.
옆에서 신세연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겠니?”
“괜찮아, 엄마!”
시은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물 온도는 얼굴을 담가도 위험하지 않은 온도였다.
어느새 예림이와 주연이가 각각 연두와 시은이에게 붙어서 말했다.
“그럼 저희가 안전요원 하는 거로!”
“시은아. 숨 참기 힘들어지면 바로 나와야 해? 연두도!”
연두랑 시은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한테 배운 대로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문 후, 코를 막아 준비자세를 취하는 연두.
시은이도 동일한 자세를 취했다.
옆에서 아주머니들이 호호 웃으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자, 그럼.. 하나, 두울, 셋!”
퐁당. 퐁당.
매일같이 사진을 찍는 터라 카운트다운에는 익숙해진 연두였다.
정확히 셋에 맞춰 연두와 시은이는 물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단짝의 잠수대결이 시작됐다.
보글보글.
둘이 들어간 수면에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5초. 7초. 10초. 13초… 생각 외로 치열한 대결이었다.
물속에서는 둘만의 인내력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꼬물. 꼬물.
연두의 발이 물속에서 올챙이처럼 꼬물꼬물 움직였다.
숨을 참느라 자연스레 나오는 발동작이었다.
‘이길 꺼야..!’
연두는 눈을 꾹 감고 숨을 참는 데 집중했다.
평소에 승부욕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이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잠수하는 방법을 알려주던 아빠의 표정이 머릿속에 떠올라서일까.
뽀그르르.
한편 시은이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수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 표정이 지금의 호흡량을 대변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신세연을 포함한 탕 안의 사람들은 숨죽인 채로 둘의 잠수대결에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첨벙!
마침내 승자를 알리는 물소리가 탕 안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