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Nice
나는 연두를 데리고 곧장 누렁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누렁이를 바로 집에 데려가려는 건 아니었다.
동물병원에 먼저 데려가서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밟을 예정이었다.
인터넷에서 그렇게 조언해 주기도 했고.
‘그래서 연두한테는 얘기 안 했지만.’
며칠 전에 누렁이를 넣을 고양이 이동장을 구매해 둔 상태였다.
안아서 데려갔다가 불쑥 품에서 뛰쳐나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까.
어쩌면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따라서 아기에게 유모차를 태우듯 이동장에 넣어서 데려가는 편이 안전했다.
그런고로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건 이동장과 늘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가 전부였다.
“거의 다 왔다, 연두야.”
“네에..”
곧 누렁이랑 진짜 가족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서일까.
벌써부터 연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이었다. 누렁이에게 향하는 이 미로같은 길도.
툭.
나는 손에 든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눌렀다.
구독자들이 누렁이를 좋아하는 만큼, 데려가는 장면도 담고 싶었으니까.
스슥. 슥.
언제나처럼 수풀을 헤치고 누렁이의 집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시은이와 왔던 때와 달리 끝까지 가기도 전에 미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냐아!”
혹시 이번에도 자리를 떴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집을 잘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연두도 누렁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폴짝폴짝 뛰며 반응했다.
“아빠! 누렁이 이써요..!”
“하하,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야 해.”
“네!”
그렇게 우리는 누렁이의 집 앞에 도착했다.
나와 연두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누렁이가 다가왔다.
“냐아..”
그리고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발목에 얼굴을 부볐다.
이게 어떤 행위인지는 찾아봐서 잘 알고 있었다.
친근하게 느끼는 대상에게 자신의 체취를 묻히는 애정표현.
고양이 특유의 표현방식이라는 문장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
내가 아닌 연두에게 먼저 다가가 얼굴을 비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온 거라면 엄청 서운했을 텐데, 연두라서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서운했다. 나랑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
부비. 부비.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누렁이가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내가 싫지는 않다는 거구나?”
“냐아..!”
꼭 울음소리가 그렇다고 대답을 건네는 거 같다.
옆에서 연두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누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의 미소같다고 해야 할까.
‘아, 언니 맞지.’
이제 집으로 데려가면 진짜 언니가 될 테니 말이다.
시은이와 있을 때면 꼭 여동생처럼 보이는 연두인데.
동생이 생기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연두야.”
“네, 아빠..”
“연두가 누렁이한테 얘기해 줄래?”
그렇게 말하며 눈을 찡긋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내 말과 눈짓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들은 거 같았다.
이윽고 연두는 쪼그려 앉은 채로 누렁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렁아..”
“냐아.”
“연두는 가치 살고 시퍼, 아빠랑 누렁이랑.. 언니랑 가치 가 줄래..?”
어느새 누렁이 앞에서 자신을 언니라 칭하는 연두였다.
이런 연두의 모습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보통은 다 연두랑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았으니까.’
그래서인지 나름 색다르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연두의 언니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누렁이가 전혀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지 못한 눈치라는 점이었다.
심지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연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누렁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
인간의 말로 치면 마치 의문사처럼 들리는 울음소리였다.
순진무구한 누렁이의 표정과 어우러지니 묘하게 재미있는 느낌이었다.
웃는 나를 바라보며 연두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빠아.. 누렁이가 머라고 해요..?”
당연한 얘기지만 나도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허나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입을 열었다.
“흠. 연두한테 물어보는 거 같은데?”
“으응..?”
“같이 살면 어떻게 대해 줄 거냐고 물어보는 거 같아. 연두가 하는 얘기 듣고 생각해 보겠다는데? 같이 갈지 안 갈지.”
“…”
순진무구한 표정을 하고 있는 누렁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짓궂게 얘기했을 때의 연두의 반응을 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내 생각 이상으로 연두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이윽고 연두의 입에서 다급한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어, 언니가 잘해 줄께!!”
“푸흡.”
간신히 소리를 죽여 웃음을 터트렸다.
연두의 입에서 저런 대사를 듣게 될 줄이야.
그 말로 그치지 않고 연두는 말을 이었다.
“언니가 마싰는 음식도 마니 주고.. 동화책도 일거 주고.. 마니 놀아주고.. 그리고 더 마니 예뻐해 줄께… 그러니까 언니랑 같이 가자, 누렁아…”
내 말을 듣고 누렁이가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일까.
이제는 제안이 아니라 마치 애원같이 들리는 연두의 말이었다.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지금은 조금 짠해 보이기까지 했다.
‘표정도 세상 간절하고.’
하기야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첫만남부터 누렁이에 대한 연두의 애정은 각별했으니까.
한글공부를 할 때도 ‘니은은 누렁이’라 말해 서지혜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스케치북에도 틈만 나면 누렁이의 그림을 그릴 정도였지.
유치한 나는 언제쯤인가 못 참고 물은 적이 있다.
‘연두야.’
‘네에.’
‘누렁이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 물음에 연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었지.
‘아빠! 아빠가 조아여..!’
그 대답을 듣고 실없이 웃었던 기억이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연두의 누렁이에 대한 마음이 얕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지금의 속상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 타이밍 좋게 누렁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
역시 센스가 좋은 녀석이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조마조마한 표정의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야.”
“네에..”
“누렁이가 같이 가자는데?”
내 말에 연두의 눈이 동그랗게 부풀었다.
“.. 진짜여?”
“응. 사실 장난이었대. 자기도 처음부터 언니랑 같이 살고 싶었다고 그러네?”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약간 찔리긴 했다.
누렁이가 하지 않은 얘기를 말하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누렁이가 연두의 말을 이해했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내게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어쩌면 지금도 그 마음은 누렁이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동물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한편 내 말을 들은 연두의 입가에 해사한 미소가 번졌다.
“고마어, 누렁아…”
“냐아…!”
포옥.
연두는 못 참겠다는 듯 조심스레 누렁이를 꼭 껴안았다.
평소라면 말렸겠지만 지금만큼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이로써 누렁이는 우리 가족의 진짜 일원이 되었다.
***
사실 조금 걱정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누렁이가 이동장에 잘 들어갈까 하는 점이었다.
‘인터넷에서 어려울 거라 했으니까.’
경계심이 많아 이동장에 넣는 게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다.
넣기만 하면 끝인데, 그 넣는 과정이 무척 어려울 수 있다고.
그래서 누렁이도 안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웬걸?
사뿐. 사뿐.
넣으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누렁이는 제 발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하마터면 가만히 보고 있을 뻔했다.
허나 금방 정신을 차린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자크를 잠갔다.
“.. 냐아?”
그제야 누렁이는 갇혔다고 생각했는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냐아! 냐아아..!”
듣기만 해도 당황감이 잔뜩 느껴지는 울음소리였다.
안쓰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연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아빠..누렁이 갠차나요..?”
“응. 조금 놀라서 그런 거야. 걱정하지 마.”
“네에..“
연두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놀라지 마, 누렁아! 언니가 계속 가치 이쓸께…”
“냐아……”
어느새 누렁이에게 말할 때면 항상 ‘언니’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는 연두였다.
그나저나 누렁이는 왜 스스로 이동장에 들어간 거지?
넣고 나서 생각하니 예상되는 이유가 있었다.
‘집인 줄 알았던 거 아닐까.’
누렁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큰 사이즈의 이동장을 구매했다.
들어가서 쭉 몸을 뻗고 누워도 여유로운 크기.
따라서 누렁이가 보기에는 새로운 집이라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이동장에 들어가기는커녕 본 적도 없었을 테고.
‘더군다나.’
오랜 시간에 걸쳐 나와 누렁이는 신뢰감을 형성한 상태였다.
나를 향한 경계가 없으니, 내가 가져온 물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애당초 지금껏 누렁이가 살던 집도 내가 만들어준 거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고비 없이 누렁이를 이동장 안에 넣을 수 있었다.
‘.. 이건 버려야겠지.’
그 대상은 지금껏 누렁이를 더위와 추위로부터 지켜준 집이었다.
나와 연두가 원룸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였다.
정이 든 공간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떠나보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집과 간식통, 그리고 밥그릇과 물그릇을 챙겼다.
“가자, 연두야.”
“네에.”
그렇게 나는 연두와 누렁이를 데리고 수풀을 벗어났다.
***
묘한 기분을 느끼며 누렁이가 살던 집과 그릇들을 처분했다.
이후 미리 알아본 집 근처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바로 집으로 데려가서 키우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의 정확한 상태가 어떤지 모를뿐더러, 눈치채지 못한 병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에 더해 누렁이에게 필요한 것들이 뭔지도 알 수 있을 테고.
[소망동물병원]끼익.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장면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컹!
“왈! 왈!”
자연스레 입 밖으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갔다.
“어억!”
“꺄아..!”
“냐아!!”
어쩌다 보니 셋 다 비명을 질러버렸다.
나를 포함한 연두와 누렁이가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들어가자마자 나랑 덩치가 거의 비슷한 대형견이 달려들었으니까.
숯덩이처럼 검은색이라 순간적으로 늑대라 착각할 정도였다.
철컹!
다행히 들어간 후에도 이중으로 철문으로 막혀있어 접촉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의 비명을 들은 건지 카운터에서 여자가 걸어나오며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인데, 입은 옷을 보니 의사인 거 같았다.
아직 당황감이 가시지 않은 나는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얘는……”
“답답해해서 잠깐 풀어뒀거든요. 근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절대 안 물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보통 견주가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 하면 100% 신용하는 건 금물인데.
동물병원 의사가 그 말을 하니 묘하게 신용이 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철문 밖으로 팔을 뻗었다.
문질. 문질.
진짜 물려는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조금 격하게 얼굴을 비비기는 해도.
누렁이가 비비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육중함이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의사는 연두를 보며 입을 가리고 있었다.
“어머.. 혹시 따님이세요?”
“네, 맞습니다.”
“너무 예쁘네요…”
보통이라면 감사하다고 인사했을 연두인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시선을 포함해 온 신경이 눈앞의 대형견에 쏠려있는 느낌이었다.
하긴, 이렇게 큰 개를 보는 건 처음일 테니까.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꺄아!”
갑작스레 문을 여니 연두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의사의 말대로 개는 공격성이 전혀 없었다.
덩치때문에 애교가 공격처럼 느껴진다는 게 함정이지만.
“흐앗! 으읏! 으응..?”
연두의 표현이 세 단계에 거쳐 변화했다.
두려움에서 놀람, 그리고 놀람에서 의문으로.
안전하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연두가 아니었다.
“냐아…”
누렁이가 겁을 먹은 반응이었으니까.
그러자 의사는 개를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돌아왔다.
“군밤이라는 애인데 무서워하니까 넣어두는 게 좋겠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뭘요. 고양이는 이름이 뭔가요?”
그 질문에는 연두가 대신 대답했다.
“누렁이요!”
“호호, 누렁이요? 고양이 이름이 누렁이인 건 처음 보는데. 군밤이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이네요.”
“하하..”
이름을 지어준 입장에서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지혜씨한테도 작명 센스 때문에 한 소리 들었었지.
의사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오신 거예요?”
나는 곧바로 상세히 설명을 시작했다.
“누렁이는 길고양이예요. 제가 챙겨준지 한참 됐는데 여건이 돼서 집으로 데려갈 생각이고요. 그래서 그전에 동물병원에 왔어요.”
“아하, 그렇군요! 데려오는 데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네, 저랑 연두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어서요.”
그녀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되게 잘 챙겨주셨나 보네요.”
“네, 아끼는 녀석이라서요.”
그렇게 잠깐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언제부터 챙겨주기 시작했는지, 사는 환경이 어땠는지.
이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역시 길에서 살았던 만큼 전반적인 검사가 필요하다는 모양이었다.
건강상태를 포함해서 감염병의 유무 역시 확인해야 한다고.
털썩.
그런 이유로 나와 연두는 의자에 앉아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연두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누렁이 아파여..?”
“괜찮을 거야.”
이렇게 대답하긴 해도 걱정이 됐다.
보통 길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눈에 띄지 않는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으니까.
누렁이도 그렇지는 않을지 걱정이 일었다.
연두에게 불안한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그리고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진료실 문이 열렸다.
끼익.
의사가 나오는데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왜인지 누렁이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설마..’
증폭된 불안감 속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불안한 감정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한 마디였다.
“축하드려요. 전부 괜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