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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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새로운 시작
“…… 누렁이가 사라졌어요.”
뭐랄까. 세상을 다 잃은 목소리가 이런 목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알다시피 누렁이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건 나와 서지혜뿐이었다.
연두와 시은이는 나이가 어리니 예외로 치고.
‘지혜씨는 평소처럼 먹이를 주러 간 거겠지.’
그랬다가 누렁이가 사라진 걸 보고 놀라서 전화한 게 틀림없었다.
말해주지 않았으니 내가 데려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고.
즉,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오랫동안 지혜씨가 누렁이를 챙겨준 걸 알았으니 바로 얘기해줬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서지혜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그, 그냥 사라진 것도 아니에요…”
“잠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누렁이만 사라진 거라면 일시적이라 생각하고 전화하지도 않았을 테니.
그러나 해명할 틈도 없이 서지혜의 말이 주르륵 이어졌다.
어쩌면 지금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너무 놀란 건지 말을 주체도 못 하는 거 같고.
“.. 물그릇이랑 밥그릇, 그리고 오빠가 만들어준 집까지 전부 사라졌어요… 대체 누구죠? 설마…… 누가 치워버린 건 확실한데.”
“저기, 지혜씨.”
“혹시 치운 다음 누렁이한테 해코지라도 한 건 아니겠죠? 처음에도 그랬……”
횡설수설하며 이야기하는 서지혜.
결국 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 한 마디를 뱉었다.
“저예요!”
벙찐 서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저예요. 누렁이 집 치운 사람.”
“오빠라구요..?”
“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직 무슨 말인지 정확히 감이 안 오는 거 같았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이야기했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요. 사실 누렁이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요.”
“.. 오빠 집으로요?”
“네.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지혜씨가 빨리 갈 줄은 몰랐어요. 많이 놀랐죠?”
사실 뻥이 조금 섞인 말이었다. 지혜씨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얘기하려고 생각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제오늘은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분명히 화를 낼 거란 말이지.
‘가끔은 필요해.’
가끔은 서로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었다.
마침 대상도 지혜씨니까 이 정도 삶의 지혜는 이해해 주겠지.
아니, 지금 내가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고개를 휙휙 젓고 나니 서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진짜……”
“.. 많이 놀랐죠?”
“아니에요. 저는 누렁이가 어떻게 된 줄 알았는데.. 진짜 다행이에요.”
나도 다행이었다. 화를 낼 기색은 없는 거 같아서.
하기야 애초에 서지혜는 화가 많은 유형이 아니었다.
그나마 나한테 화를 낸 건 저번에 연두랑 누렁이 앞에서가 유일했고.
‘사실 그것도 화라 하기에는 애매한 수준이었지.’
굳이 따지면 뭔가 나한테 서운해서 심통이 난 느낌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서운함보다는 안도감이 훨씬 큰 듯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게 느껴졌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런데 오빠..”
“네.”
“너무 좁지 않으세요? 누렁이랑 같이 살기에는……”
말하는 걸 보니 아직 내가 사는 곳이 원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이것도 말을 안 해 줬으니 알 턱이 없지.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에 지혜씨 왔을 때 얘기했죠? 곧 이사할 생각이라고.”
“네, 기억나요! 혹시……”
“어제 ‘플로리아’로 이사했어요. 누렁이는 더 추워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데려오고 싶어서 바로 데려왔고요.”
“아!”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듯한 반응이었다.
뭐, 이렇게 말하면 이해 못할 사람이 없을 거 같긴 하지만.
***
대충 나는 어제 누렁이를 데리러 간 후의 이야기를 해 줬다.
동물병원에 간 것부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누렁이랑 연두가 같이 낮잠에 빠져든 것까지.
어느새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온 서지혜가 말했다.
“와, 진짜 귀여웠겠다.. 나도 봤어야 하는데……”
“연두튜브에 업로드할 생각이니까 올라가면 봐요.”
“크크, 그럴게요. 그나저나 진짜 다행이네요.”
“뭐가요?”
“누렁이 건강한 거요. 혹시 어디 아프지는 않을까 했는데.”
“뭐, 지혜씨가 챙겨준 덕이죠.”
“에이, 아니에요. 오빠가 집 만들어줬잖아요. 없었으면 여름도 겨울도 못 버텼을지도 몰라요.”
틀린 말은 아니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인정하기도 뭐하니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지혜씨. 아까 울면서 한 말 있잖아요.”
왜인지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 울었어요..!”
이건 딱히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울었다는 사실 자체가 쑥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정정했다.
“알겠어요. 어쨌든 아까 지혜씨가 한 말이 떠올라서 그런데.”
“네.”
“누가 누렁이한테 해코지한 거 아니냐고 한 다음에, 처음에도 어쩌고 하지 않았어요? 무슨 얘기 하려고 한 거예요?”
사실 그냥 궁금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 건넨 질문이었으니까.
그런데 헛다리였던 모양이다.
“.. 제가 그랬어요?”
사실 나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다.
워낙 서지혜가 횡설수설하기도 했고, 나도 당황했던 터라.
아무래도 그냥 착각인 모양이었다.
‘처음 나온 단어는 아닌 거 같긴 한데.’
저번에도 뭔가 비슷한 뉘앙스의 대화가 오간 거 같긴 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어땠다든지 하는 대화였나.
역시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착각이라 판단한 나는 대충 화제를 전환했다.
“누렁이는 저랑 연두가 잘 키울게요. 그치, 연두야?”
옆에서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에!”
“냐아!!”
신기하게도 연두가 대답하자마자 냉장고 위의 누렁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방금 들었어요, 지혜씨?”
그녀가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네, 들었어요. 의심할 여지없이 누렁이 울음소리네요.”
“그 말은 조금은 의심했다는 건가? 흠.. 실망이네요.”
“아, 아니에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하하, 장난이에요.”
누렁이의 안부도 전했으니 슬슬 전화를 끊을 차례였다.
그런데 서지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근데 오빠. 집들이는 안 하세요?”
생각 못한 질문에 나는 조금 고민하다 대답했다.
“글쎄요. 아직 집이 휑하기도 하고, 딱히 부를 사람도 없어서.”
“.. 저 있잖아요.”
“뭐, 만약 한다면 지혜씨는 당연히 초대해야죠.”
그렇게 말하자 기분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응, 제가 생각해도 부를 사람은 많은데요? 그 고등학생 친구들이랑 오빠랑 작화 같이 하는 우영이도 있고요. 오빠 친구들도 있을 테고……”
이렇게 들으니 생각보다 많긴 하네.
사실 손님이 너무 적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많으면 더 골치 아픈 게 집들이였다.
결국 나는 미소를 띠며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통화가 종료됐다.
***
“냐아! 냐아!!”
철컥.
우는 누렁이를 화장실에 내려놓고 나가지 못하게 문을 닫았다.
연두는 옆에서 입술을 앙 물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준비됐어, 연두야?”
“네에..!”
나와 연두는 지금 꽤 고난도 계획을 실행하려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누렁이의 첫 목욕이었다.
‘워낙 적응이 빠른 탓에.’
이제 목욕을 시켜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더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선 내일이 되면 평일이라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더러운 몸으로 이곳저곳을 계속 돌아다니게 둘 수도 없었다.
“냐아아..!”
울음을 그치지 않는 걸 보면 처해진 운명을 짐작한 듯했다.
본디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언제가 되든 한 번은 씻겨야 하니까.
‘그게 오늘이고.’
나는 누렁이의 목덜미를 잡고 한 손으로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
이건 너무 센데. 나는 수도꼭지를 돌려 수압을 적절히 조절했다.
뒷목을 잡는 건 의사에게 배운 것이었다.
가장 안전하게 고양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으니까.
“끄응..”
역시 뒷목을 잡힌 누렁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물소리에 잔뜩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여, 연두가 자블께요, 아빠..!”
“.. 그럴래?”
“네!”
“여기를 손으로 이렇게 잡으면 돼. 너무 살살 잡으면 도망갈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그리고선 조심스럽게 누렁이의 뒷목을 손으로 잡았다.
스윽.
다행히 손을 놓아도 누렁이는 미동을 보이지 않았다.
연두가 잘 잡았다는 반증이었다.
“조, 조금만 차마, 누렁아..”
연두도 가끔 ‘아빠, 오늘은 안 씨스면 안 대요..?’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렁이의 심정을 잘 이해하는 거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샤워기 물에 손을 댔다.
‘적당하네.’
수온과 수압 모두 적당한 수준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샤워기를 누렁이의 몸에 가져다 댔다.
솨아아.
누렁이는 흠칫 몸을 떨더니 그대로 축 처져버렸다.
무서워서인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저항하지 않으니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빨리 하자, 연두야.”
“네에!”
혹시 누렁이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빠르게 목욕을 끝낼 예정이었다.
빠르게 샤워기로 온 몸을 적신 후,
쭈욱.
연두의 자그마한 손에 고양이용 샴푸를 짜 줬다.
샴푸라고는 해도 사람과 달리 온몸에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쭉.
이어서 내 손에도 샴푸를 짰다.
그리고 나와 연두는 본격적으로 샴푸를 바르기 시작했다.
어디에? 누렁이의 몸에.
문질. 문질.
역시 바깥생활이 길었던 터라 흘러나오는 검은 구정물이 눈에 보였다.
물로 헹굴 때는 몰랐는데 샴푸를 하니 확연하게 느껴졌다.
뭔가 후련한 기분이다. 찌든 떼가 쫙 빠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빠! 누렁이 깨끄태져요..!”
“하하, 그러네.”
연두도 마찬가지인지 신이 난 표정이었다.
손놀림도 거침이 없었다. 구석구석 빠트리지 않고 샴푸를 칠하는 연두.
꼭 정성을 다해 동생을 씻겨주는 언니의 모습으로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샴푸가 끝났다.
“됐어, 연두야. 이제 아빠가 할게.”
“네에..”
“연두는 세숫대야에서 손 깨끗이 씻고.”
“네!”
남은 내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누렁이의 몸에 묻은 샴푸를 깨끗이 헹궈주는 것.
곧바로 나는 역할 수행을 시작했다.
솨아아.
발가락 사이사이부터 팔과 다리, 등과 배. 그리고 민감한 부위들까지 빠짐없이.
이쯤 되니 이 녀석도 즐기는 느낌이다. 반쯤 풀린 눈으로 몸을 부르르 떠는 걸 보면.
어느새 손을 씻은 연두가 옆에 쪼그려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누렁이를 향해 말했다.
“따뜻하지?”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샤워기 물이 이렇게 따뜻했나?
따뜻한 물이긴 한데. 뭔가 갑자기 더 따뜻해진 느낌이다.
아니, 이건 따뜻함을 넘어 약간 뜨끈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어제 이사한 집인데 벌써 이렇게 온도조절이 안 된다고?’
그렇게 샤워기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려는 찰나.
나는 깨달았다. 내 손이 지금 누렁이의 사타구니 쪽에 가 있다는 걸.
뭔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몸을 감쌌다.
그리고 전신에 소름이 돋는 연두의 물음이 이어졌다.
“아빠아.. 왜 물이 노랑색이에여..?
왜 몸을 부르르 떤 건지 알 거 같았다.
한편 연두의 말과 동시에 누렁이는 또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아….”
이렇게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얄밉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
좌충우돌 누렁이 씻기기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내 손에 씻을 수 있는 상처를 남기긴 했지만.
‘씻을 수 있는 상처라 다행이었지.’
그래서 씻었다. 몇 번을 씻었는지는 잘 기억도 안 난다.
태어나서 가장 오래 손을 씻었다는 것 말고는.
끼익.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로부터 5일이 흐른 금요일.
오늘은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시간도 거의 퇴근시간에 다다른 상태이고.
손님이 나가고 뒷정리를 하는 와중,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말을 이었다.
“.. 사장님.”
“허허, 오늘도 잘 끝냈어, 주원씨?”
“네.”
“주원씨가 마지막이라는데 안 올 수가 있어야지.”
사실 사장님이 올 거라는 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도 준비한 거고.
나는 준비한 물건을 사장님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응? 이게 뭐야, 주원씨?”
“간소하지만 선물입니다. 워낙 잘 챙겨주셨으니까요.”
“푸하하.”
내 말에 사장님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선물까지 주다니, 고맙게 잘 받겠네. 그리고 나도 선물을 준비했는데……”
“.. 네?”
“아쉽겠지만 자네 선물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사장님은 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내용물이 뭔지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제 선물이 아니라면..”
“공주님 있잖나. 주원씨 딸아이. 이름이 연두라고 했지?”
“.. 네.”
“와이프한테 상의 끝에 고른 선물이니 분명 좋아할 걸세. 집에 가서 딸아이랑 같이 열어보게.”
내용물은 몰라도 나를 위한 선물보다도 더 마음을 울리는 선물이었다.
몇 번 본 연두를 생각해서 고른 선물이라는 거니까.
툭. 툭.
이어서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주원씨는 앞으로 뭘 해도 성공할 거야. 그런 사람이니까.”
“.. 감사합니다.”
“감사는. 그동안 열심히 일해준 주원씨한테 내가 감사해야지. 그동안 정말 수고했네.”
그렇게 말하고는 괜히 멋쩍은지 호탕하게 웃음짓는 사장님.
가끔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는 분이셨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나와 사장님은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끼익.
편의점을 나서자 시원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뭔가 사장님과의 대화로 인해 더 확실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툭.
그렇게 나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