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유케아
투둑.
기대감 속에 봉투 속 내용물이 들어왔다.
그런데 바로 무엇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봉투에 이어 분홍색 포장지로 꽁꽁 싸매져 있었으니까.
문득 사장님이 선물을 건네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와이프랑 상의 끝에 고른 선물이니 분명 좋아할 걸세. 집에 가서 딸아이랑 같이 열어보게.’
사장님의 아내분이 선물을 고르는 데에 도움을 주셨다고 했지.
아마 이 포장지도 사장님 아내분의 취향이 반영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뿌다..”
“하하, 그래?”
“네. 부농색 예뻐여…”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장지만 보고 좋아하면 곤란한데.
아깝긴 하지만 이제 포장지를 뜯을 차례였다.
그게 포장지로 만들어진 이 녀석의 숙명이니까.
찌익. 찍.
어차피 뜯어야 하니 자비는 없었다.
다소 과격한 모션에 연두가 조금 충격받은 표정을 짓긴 했지만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포장지가 뜯어지고 진짜 내용물이 드러났다.
‘.. 응?’
그런데 이게 뭐지? 척 보기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연두도 마찬가지인지 아리송한 눈빛으로 선물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이게 모지..?”
귀여운 혼잣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와 별개로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겉보기에는 마치 물감처럼 보이는 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또 진짜 물감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래는 서랍식으로 되어 있는데.’
뭐가 들어있을지는 열어 봐야 알 거 같았다.
다행히 빈 공간에 들어있는 설명서가 눈에 들어왔다.
설명서의 맨 위에 적힌 글자를 보고서야 나는 이 물건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키즈 네일아트 시크릿박스]중간에 있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네일아트. 해 본 적은 없지만 뭔지는 대강 알고 있었으니까.
‘키즈’라는 단어가 붙은 걸 보아하니 어린이용 네일아트 세트인 거 같았다.
‘전혀 생각 못했어.’
사장님이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 못했다.
우습긴 하지만 혹시 ‘대왕 소시지 세트’ 같은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니까.
연두의 소시지 사랑을 아는 사장님이기에 그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역시 사모님과 의논한 끝에 고른 선물이라 그런지.’
상당히 소녀소녀한 물건을 선물하신 사장님이었다.
이제 보니 저 물감같이 생긴 것들은 네일아트를 하는 도구겠구나.
한편 포장지보다 더 반짝거리는 선물에 눈이 동그랗게 부푼 연두.
그런 연두를 향해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뭔지 잘 모르겠지, 연두야.”
“네에..”
“이건 네일아트를 하는 도구야.”
“네이라트..?”
“응.”
곧바로 나는 단어에 관해 설명해줬다.
“네일아트는 손톱에 색깔을 칠하는 거야.”
“아!”
“오, 알고 있어?”
“네에! 지해언니도 손톱에 색칠해써요..!”
“그래? 무슨 색으로 했는데?”
“노랑색..!”
“그렇구나. 연두도 그렇게 바르고 싶지 않았어?”
연두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바르고 시퍼써요…”
확실히 다섯 살 여자아이 중에 손톱을 칠하는 걸 싫어할 아이는 없을 듯했다.
심지어 남자아이들도 발라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너무 생소한 분야인 탓에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연두야.”
“네에.”
생각보다도 연두는 더 설레하는 표정이었다.
손톱을 예쁘게 만들어 줄 네일아트 세트를 보며.
나는 씩 웃으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아빠가 최고로 예쁘게 만들어줄게, 연두 손톱.”
이렇게 또 나는 새로운 곳에 채색을 하게 되었다.
팬미팅 때의 티셔츠 위에 이어서 연두의 자그마한 손톱에.
***
먼저 나는 카메라를 적당한 곳에 뒀다.
연두의 첫 네일아트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봐서 연두튜브에 올릴 생각이고.’
카메라를 설치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설명서를 정독했다.
우선 어린이제품 시험에 통과한 안전한 제품이라는 걸 확인했다.
이후에는 네일아트 방법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그나마 주의해야 할 건 하나밖에 없을 듯했다.
원리 자체는 그림의 채색과 거의 차이가 없었으니까.
우선 나는 설명서에 적힌 대로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 연두야. 손 한 번 대 볼래?”
“네에.”
매니큐어를 바르기에 앞서 손톱 모양을 예쁘게 하는 도구였다.
이런 것까지 있는 걸 보면 생각보다 구성이 알차다.
뻗은 연두의 손에 나는 도구를 가져다 댔다.
그르르륵. 그르륵.
손톱이 갈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처음 느끼는 기분에 깜짝 놀랐는지 연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손톱 끝을 동그랗게 만들어주는 거야, 연두야. 색을 발랐을 때 예뻐 보이게.”
“동그라면 예뻐여, 아빠..?”
“응.”
그렇게 나는 열 개의 손톱을 모두 정리했다.
‘이다음에는.’
다시 첫 번째 서랍을 열어서 꺼내야 할 도구가 있었다.
바로 손가락 다섯개를 끼우는, 매니큐어를 칠하기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였다.
“여기에 손 끼워볼래, 연두야?”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는 손을 뻗었다. 다섯 개의 구멍에 손가락이 쏙 들어갔다.
엄지손가락부터 검지, 중지, 약지, 그리고 새끼손가락까지.
이제 하이라이트인 매니큐어를 칠할 차례였다.
“여기서 바르고 싶은 색 있어, 연두야?”
다양한 색을 보며 연두는 짧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하나의 색을 가리켰다.
“연두는 이거 바르고 시퍼요..!”
“하하, 주황색이네?”
“네에.”
굳이 따지면 연주황색에 가까운 색감으로 보였다.
정확히 색이 어떤지는 발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겉보기에는 상당히 매력있게 느껴지는 색이었다.
‘특히.’
상큼한 연두에게는 무척 잘 어울릴 거 같았다.
나는 망설임없이 주황색 매니큐어의 뚜껑을 열었다.
‘이 뚜껑이 손잡이였네.’
손잡이와 이어진 끝은 마치 붓 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주황색 매니큐어가 잔뜩 묻어있었고.
바로 이걸 바르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하나 존재했다.
‘고르게 발라야 한다는 거.’
물감을 칠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고르게 칠하지 않으면 채도의 차이가 생겨 울퉁불퉁한 느낌을 주니까.
그냥 즐기는 거라고는 해도 최대한 예쁘게 칠해주고 싶었다.
나는 마치 붓을 쥐듯 매니큐어를 손에 쥐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집중하니 꼭 네일아트 전문가가 된 느낌이다.
실상은 매니큐어 자체도 처음 만져보는 초심자인데.
뭐, 기왕 하는 거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해 볼까.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예쁘게 해 드릴까요, 공주님?”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던진 상황극이었다.
그런데도 연두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하눌만큼 땅만큼 예뿌게 해 주세요, 아빠..”
“네, 공주님.”
나는 본격적인 매니큐어 칠하기에 돌입했다.
손톱의 선을 따라 엇나가지 않게 칠하는, 정교함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사삭. 삭.
그나저나 매니큐어를 칠하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 되게 예쁘네.’
연두가 예쁘다는 건 이제는 말해야 입만 아픈 문제였다.
내가 새삼 보고 느낀 건 바로 연두의 손이었다.
매일같이 잡는 손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느다랗고 엄청 길쭉해.’
게다가 새하얘서 훨씬 매니큐어의 색과 대비효과가 컸다.
그래서인지 칠해주는 나도 신이 났다.
‘단색으로만 칠하기는 심심하지.’
다음으로 내가 손에 든 건 연두색 매니큐어였다.
그냥 생각하기엔 안 어울릴 거 같지만, 주황색과 연두색은 의외로 괜찮은 색 조화였다.
무엇보다도 연두에게 있어서 연두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색이기도 하고.
스슥. 슥.
역시 바르고 나니 조화롭게 어울렸다.
탄력을 받은 나는 빠른 속도로 열 개의 손톱을 전부 칠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네일아트용 스티커까지 붙여줬다.
앙증맞은 하트 모양의 스티커였다.
“우아…”
“마음에 들어, 연두야?”
“네, 진짜 예뻐여…”
그렇게 말하며 손톱을 만지려는 연두.
“안 돼, 연두야!”
다급한 내 목소리에 연두는 깜짝 놀라 손을 뗐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마르기 전에 만지면 망가지거든.”
“아..!”
그제야 연두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 설명서에 따르면 아직 쓰지 않은 도구가 존재했다.
나는 마지막 서랍을 열어 큼지막한 도구를 꺼냈다.
‘건전지는 들어있고.’
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여기 손 넣어볼래?”
“네에.”
내 말에 연두는 뭔지도 모르는 기계 속에 손을 넣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버튼을 눌렀다.
우우웅.
“꺄아..!”
오늘 여러 번 놀라는 연두였다.
이 기계는 다름아닌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을 말리는 기계였다.
버튼을 누르면 바람이 솔솔 나오는 장치.
‘생각보다 퀄리티가 높다니까.’
아무튼 이렇게 연두의 첫 네일아트가 끝이 났다.
결과물은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헤헤..”
손톱을 바라보는 연두의 표정에서도 그게 느껴졌다.
세상 행복한 웃음을 띠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연두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연두야.”
“고마어요..”
“하하, 천만에.”
그런데 이어지는 연두의 말은 완전히 뜻밖이었다.
“이제 연두가 해 줄께요..!”
조금 불안감을 느낀 나는 대답했다.
“응? 뭐를..?”
“아빠 손톱! 예쁜 네이라트..!”
“…”
그렇게 나도 딸에 의해 인생 첫 네일아트를 경험하게 됐다.
***
다음날, 나는 연두와 외출을 나섰다.
한 시간이 넘는 이동 끝에 도착한 곳은 유케아.
없는 걸 찾기 힘들다는 대형 가구 매장이었다.
‘꼭 필요한 전자기기같은 건 구비해 뒀지만.’
아직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이 없어서 집안이 휑한 상태였다.
유케아는 매장에서 고른 물건을 전부 배송해주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 가능한 한 필요한 것들을 전부 구매할 예정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생각해 두고 왔으니까.’
온라인보다는 직접 보고 고르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함께 의논할 든든한 조력자인 연두가 함께했다.
두 개의 방 중 하나는 연두를 위한 방으로 꾸며줄 생각이고.
“그럼 들어가자, 연두야.”
“네에.”
“오늘 뭐 사러 온 건지는 알지?”
“네! 침대랑 옷장이랑.. 그리고.. 엄청 마니요..!”
“하하, 맞아.”
말 그대로 엄청 많이 사러 여기까지 온 거였다.
한두 개 살 거라면 그냥 인터넷으로 사고 말았을 테니까.
스르륵.
자동문이 열리고 나와 연두는 매장 입구로 들어갔다.
그때 연두가 꼭 잡은 내 손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헤헤, 예뿌다..”
그제야 나는 잠깐이나마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어제 연두가 발라준 매니큐어를 아직 지우지 않았다는 걸.
진한 파란색에 별 모양 스티커까지 붙여준 연두였다.
‘워낙 정성을 들여 칠해주기도 했고.’
이후에도 내 손톱을 보기만 하면 배시시 웃는 터라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지워진 매니큐어를 보고 실망할 연두의 표정이 그려졌으니까.
살다 살다 내가 매니큐어를 바르고 이렇게 돌아다녀 보다니.
‘그만두고 난 후니까 다행이지.’
매니큐어를 바르고 편의점에서 계산하는 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뭐, 그래도 지금은 쑥스럽긴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엉성하긴 해도 연두가 정성을 다해 칠해준 거라 생각하니.
‘사실 이게 나아.’
이렇게 엉성한 게 그나마 나았다.
정교한 네일아트였다면 그거대로 눈치가 보일 거 같으니까.
스윽.
나머지 한 손을 주머니에 끼워넣고 나는 매장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유케아입니다!”
직원의 인사와 함께 매장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유케아 매장에 대해 들었던 말이 납득이 갔다.
‘아무리 검소한 사람이라도 과소비를 하게 된다는.’
그 말을 대변하듯 넓은 공간에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터벅.
나는 홀린 듯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나와 연두의 새 집 꾸미기를 위한 쇼핑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