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무려 네 명이나 되는 지원군이 도착했다.
우리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두도 김장룩 차림으로 일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지원군 중 한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어머!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쁘네!”
“눈 초롱초롱한 거 봐..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지? 꼭 천사 같네, 천사 같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연두에게 관심이 쏠렸다.
그런 와중에 조금 신경 쓰이는 바가 있었다.
‘사진?’
어디에서 연두의 사진을 봤다는 거지.
유투브나 원스타그램에서 봐서 알고 있던 건가?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시골은 옛날같지 않고.’
당장 할머니만 봐도 스마트폰을 쓰고 계시니 말이다.
허나 이어지는 말에서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괜히 할머니가 사진 보여주면서 손주랑 손주 딸 자랑을 한 게 아니네. 손주도 인물 훤한 거 봐.”
“내 말이. 보여주면서도 억울하셨겠는데? 실물은 사진이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빛나는데.”
유투브나 원스타그램을 통해 아는 게 아닌 거 같았다.
할머니가 사진을 보여줬다는 얘기가 오갔으니까.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할머니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제 자랑을 했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할머니의 호통에도 아주머니들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호호, 왜 그러실까. 저번에 모여있을 때 핸드폰으로 보여주셨으면서.”
“제가 이런 손주랑 손주 딸 있었으면 동네를 넘어서 전국에 자랑했어요, 할머니.”
“정득수 할아버지는 손주 덧셈 뺄셈도 자랑하는데요, 뭐.”
이렇게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난데없이 할머니한테 메시지가 온 날이 있었지.
-너랑 쥐방울이랑 같이 찍은 사진 보내!
이런 다소 협박투의 문자메시지였다.
나는 당시로서는 몇 개 안 되던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줬고.
그게 이웃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구나.
“그거야 보여달라고 여기저기 쌩난리를 치니까 그러지!”
쌩난리든 뭐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할머니가 손수 나와 연두의 사진을 이웃들에게 보여줬다는 것.
뭔가 그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게 제가 말했잖아요, 언니. 할머니 손주 키도 훤칠한 게 완전 모델같다고.”
“참, 그러고 보니 진아가 먼저 얘기를 꺼냈었지?”
“네. 진짜 처음 봤을 때는 할머니 손주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니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를 실제로 봤어야만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이 얘기를 한 사람은 비교적 가장 젊어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얼굴을 보는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주쳤던 아주머니구나.’
연두랑 같이 약수를 뜨러 갈 때 마주친 사람이 두 명 있었다.
길을 걷다 마주친 한 아주머니와 선동이.
그 아주머니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나저나 모델같다니.’
이런 칭찬을 듣기에는 키가 180이 채 안 되는 나였다.
역시 시골분들은 칭찬이 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두를 향해서는 어떤 칭찬을 해도 납득이 가겠지만.
뭐, 이 중에서는 많이 큰 축에 속하니 좋게 받아들이기로 하자.
‘비교대상이 할머니랑 아주머니들, 연두랑 감자소년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이어서 나는 아주머니들과 한 분 한 분 인사를 나눴다.
연두도 마찬가지로 아주머니들께 인사했다.
“안녕하세여..!”
“아유, 그래. 목소리도 너무 예쁘네..”
그러던 와중 김진아가 입을 열었다.
내게 모델같다는 칭찬을 건넸던 아주머니였다.
말을 거는 대상은 옆에 있는 감자소년 오선동이었다.
“선동이 너는 인사 안 하고 가만히 서서 뭐 해?”
나도 느끼고 있던 사실이었다.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멀뚱히 서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선동이가 반응이 없자 김진아가 말을 이었다.
“괜찮다는데도 도와주러 가겠다고 오늘따라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얘가 왜 이래?”
그제야 선동이는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내가 언제! 엄마가 갈 거냐고 했잖아!”
“어쭈? 처음에는 안 갈 거라고 하더니 할머니 손주 온다니까 바로 화장실 들어가서 씻더니.”
“아악! 그건 왜 말하는데!”
“요게 어딜 엄마한테 소리를 질러!”
꽁.
결국 꿀밤을 한 대 쥐어박히는 선동이.
그나저나 이건 또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두 사람이 모자였다니.’
방금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다.
그와 별개로 얘기를 들으니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았다.
안 갈 거라고 했다가 할머니 손주가 온다는 얘기에 태세를 전환했다라.
‘이 녀석.. 앙큼하구만.’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연두가 올 거라 생각하고 태도를 바꾼 게 틀림없었다.
그래, 결정했다. 이 녀석은 오늘 경계대상 1호다.
그래도 오래간만의 재회 정도는 도와주기로 할까.
“연두야.”
“네에.”
“오빠 기억하지?”
“네! 선동이오빠.. 연두한테 마싰는 감자 준 오빠…”
역시 연두도 나와 비슷하게 선동이를 기억하는 모양이다.
봄 감자의 임팩트가 크긴 했지.
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빠한테 인사할까? 오랜만에 봤으니까.”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쩔 줄 몰라하는 선동이.
시선처리부터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모든 게 어색하다.
‘.. 귀엽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귀여울 따름이었다.
결국 선동이의 앞에 선 연두는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오빠!”
우스운 게 앞서 아주머니들에게 한 인사보다 더 공손한 느낌이다.
‘배꼽인사라니.’
저번 만남 때 선동이가 뱉은 말 때문일까. 분명히 반말하지 말라는 대사였지.
다른 또래 오빠들을 대하는 연두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 대사였다.
과연 선동이는 연두의 인사에 어떻게 대답할까.
“오, 오냐.”
“푸흡.”
전혀 예상치 못한 인사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연두와 감자소년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
인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됐다.
시작에 앞서 연두의 모습을 담는 앵글로 카메라를 설치해 뒀다.
그 오른쪽에 내가 앉았고.
‘김장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까.’
시골 체험 느낌의 영상으로 가능하다면 연두튜브에 업로드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느낌의 모습이기도 하고.
지원군이 도착한 후로 김장은 무척 수월하게 진행됐다.
‘추가된 건 네 명인데.’
작업속도는 과장 안 하고 몇 배가 빨라진 거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게으르게 일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숙련도에서 차이가 느껴지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 들수록 나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날로 먹을 수는 없으니까.’
최소한 내 몫만큼은 일하고 싶었다.
연두도 느리지만 배운 대로 착실히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배추를 씻어서 꺼내는 작업이었다.
“안 무거워, 연두야?”
“네, 갠차나요!”
한 포기라면 분명히 들기도 버거웠을 텐데.
네등분해 둔 거라 연두도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무게였다.
물론 일하는 와중 신경쓰이는 게 없지는 않았다.
“배추 그렇게 씻는 거 아닌데.”
다름아닌 이 꼬맹이 녀석이었다.
눈치도 못 챌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두의 왼쪽 자리를 차지한 선동이.
그리고선 나와 연두의 작업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이 말투에 노이로제가 생길 정도였다.
이번에는 연두의 배추 씻기를 지적하는 녀석이었다.
“그럼 어떠케 하는 거에요..?”
“나한테 줘 봐.”
“읏!”
연두는 힘껏 배추를 들어서는 선동이의 손에 건넸다.
그 와중에 서로 스치듯 맞닿는 손.
“크흠..”
자연스레 불편함을 머금은 헛기침이 나왔다.
내가 중앙에 앉았어야 했는데 자리선정이 미스였나.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 동안 선동이가 시범을 보였다.
첨벙.
배추를 거침없이 물에 빠트리고,
휘리릭.
몇 번 휘저은 다음 바로 꺼내서 대야에 올리는 녀석.
그리고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빡빡 문지를 필요 없어. 이러면 돼.”
자세히 보니까 아주머니들도 전부 그렇게 대충 하고 있었다.
아니, 대충이 아니라 이게 맞는 방식인 거겠지.
여섯 살 꼬맹이라고는 해도 이런 일은 나보다 훨씬 능숙했다.
‘역시 시골 아이네.’
얄미워도 어쩔 수 없지. 배워야 할 건 배우는 수밖에.
나는 선동이의 말대로 ‘대충 씻기’ 기술을 사용했다.
자연히 작업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후우..”
시간이 흘러 배추를 씻는 작업이 끝났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었다.
“후아…”
연두도 긴 호흡을 내뱉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춥지는 않아, 연두야?”
“네! 할머니가 준 신발 엄청 따뜨태요..!”
“다행이네.”
할머니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느껴졌다.
그 표정 속에 미세하게 보이는 흐뭇함이.
“그럼 잠깐만 쉬었다 갈까요?”
잠깐의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연두와 나란히 앉은 채로 휴식을 취했다.
그때 선동이가 불쑥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저씨.”
“나?”
“네. 아저씨 이거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어떤 봉투를 내밀었다.
또 감자인가 하고 보니 아니었다.
‘이건…’
생김새로 보면 내가 아는 과일인 거 같았다.
어떤 과일이냐고? 바로 곶감이었다.
연두가 좋아하는 동화책 ‘호랑이와 곶감’의 곶감을 여기서 영접할 줄이야.
선동이녀석은 봉투를 내 손에 건네며 말했다.
“나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 아저씨 먹어요. 혼자 먹기 많으면.. 애기도 줘도 되고요.”
이 말에서 웃음포인트는 두 개였다.
연두한테 직접적으로 주기는 부끄러우니까 내게 건넨 거라는 것.
그리고 겨우 한 살 많으면서 연두를 애기라 부르는 것.
‘애초에.’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이걸 다 먹으면 내일 아침까지는 든든할 정도의 양이니까.
요 앙큼한 녀석. 호락호락 의도대로 당해주면 나 이주원이 아니었다.
나는 장난스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고맙다. 나 곶감 엄청 좋아하거든. 혼자 다 먹을게.”
띠용.
녀석의 눈에 태평양처럼 부풀었다.
“.. 그걸 아저씨 혼자요?”
“왜? 혼자 먹기 많으면 연두 주라며. 근데 안 많은데?”
벙찐 표정의 녀석은 결국 한 마디를 내뱉었다.
“많아요!”
“안 많은데?”
“그거 다 먹으면 아저씨 돼지예요!”
이 말에는 연두가 발끈했다.
“연두 아빠 돼지 아니야!”
“바, 반말하지 마!”
“돼지 아니에요!”
바로 존댓말로 바꾸면서도 할 말은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역시 연두는 내 편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이 이상 선동이를 놀리는 건 그만둬야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무기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건 바로 눈물이었다.
선동이는 쉽게 울 거 같지는 않지만, 그런 만큼 진짜 울면 곤란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야. 당연히 나눠먹어야지. 연두도 곶감은 처음 보지?”
“네에.. 이게 고깜이에요..?”
“응. 호랑이와 곶감에 나오는 곶감.”
“우아.. 아빠가 고깜 리얼 꿀마시라고 해써요..!”
“하하, 그랬었지?”
동화책과 별개로 감탄이 나올 비주얼이긴 했다.
크기도 큼지막하고 색깔도 영롱한 게 제대로 된 곶감 같았으니까.
장난은 끝났으니 나는 선동이를 향해 말했다.
“고맙다. 연두가 되게 먹어보고 싶어했는데.”
연두도 뒤이어 인사를 건넸다.
“고마씁니다, 오빠..”
선동이는 멋쩍은지 다시 먼 산만 바라봤다.
시식을 미룰 이유는 없었다.
나는 바로 곶감 하나를 꺼내 손에 들었다.
“자, 연두야. 한 입 크게 베어물어 봐.”
일반적으로 내가 아는 작은 곶감과는 달랐다.
뭔가 식감도 다를 거 같은 느낌이고.
시중 판매용이 아닌 직접 따서 만든 거 같은 곶감이었다.
아암.
내 말대로 연두는 곶감을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츄릅.
이거 봐라. 일반적인 곶감을 먹을 때는 나지 않을 소리다.
선동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연두를 바라봤다.
이윽고 몇 차례 오물거리던 연두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진짜.. 진짜…”
“.. 진짜?”
“진짜 리얼 꿀마시에요! 고깜..!”
역시 비주얼만큼 맛도 훌륭한 모양.
막상 곶감을 준 선동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리얼 꿀마시가 뭐야?”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연두가 설명해줄래? 리얼 꿀마시가 뭔지.”
“하늘만큼 땅만큼 마싰는 거!”
상당히 정확한 ‘리얼 꿀마시’의 정의였다.
선동이의 입꼬리가 잠깐 올라갔다가 내려앉았다.
어느새 곶감을 손에 든 연두는 내 입에 내밀었다.
“아빠도 고깜..!”
“하하, 그래.”
나도 곶감을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역시 먹어봤던 시중 판매용 곶감의 맛이 아니었다.
‘겉은 쫀득한데, 속은 홍시같은 느낌이야.’
식감을 따질 것도 없이 맛부터 엄청 달콤했다.
얼려먹으면 마치 ‘샤베트’같은 느낌이 날 거 같았다.
쉽게 말하면 홍시 아이스크림.
“진짜 맛있네.”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더니 연두는 아차 하고 홍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선동이에게도 내밀었다.
“오빠도..!”
“어, 어?”
“오빠도 고깜 머거요..!”
“나는 별로 안 좋아하긴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녀석의 입은 이미 곶감을 향하고 있었다.
하여튼 말과 행동이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었다.
‘이건 가져가서 얼려봐야겠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뜻밖의 선물 덕분에 휴식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감자부터 시작해서 선물이 상당히 센스있는 선동이였다.
‘연두튜브도 모를 텐데 곶감이라니.’
얄미운 구석이 있긴 해도 귀여운 녀석이라니까.
괜히 대견해진 나는 웃으며 선동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깜짝 놀란 선동이가 반응했다.
“뭐, 뭐예요!”
“뭐긴. 머리 쓰다듬는 거지.”
“나 애기 아니에요!”
“하하, 그래.”
녀석의 말에 나는 손을 뗐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연두도.. 머리…”
“크크.”
내가 웃은 이유는 단순했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는데.
어느새 모자를 벗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연두였다.
폭.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애정을 가득 담아.
쓰다듬는 걸 멈춘 건 할머니의 말이 들려온 후였다.
“염병.. 빨리 와! 이제 시작할 거니까!
“갑니다, 가요. 가자, 연두야.”
“헤헤, 네..!
한껏 만족한 표정으로 연두는 내 손을 잡았다.
이렇게 꿀같은 휴식시간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