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원하는 대로 해
시골에서 보는 별은 무척 예뻤다.
바라보는 사람의 기분을 신비롭게 만들 정도로.
물론 선동이의 비밀장소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니 다음에 다시 올 때도 꼭 이 장소를 들를 생각이었다.
‘기대되네.’
그때는 별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무척 기대됐다.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산을 내려갔다.
헤어지기 전에 선동이는 물었다.
“내일 갈 거죠, 아저씨?”
“응.”
“안녕히 가세요..”
“하하, 그래. 너도 건강하게 잘 있어라. 엄마 말 잘 듣고.”
녀석답지 않게 공손한 인사였다. 조금 어색한 느낌이긴 했지만.
나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풀렸으려나.
이어서 녀석은 연두에게도 말했다.
“너, 너도 잘 가라.”
“네에..”
선동이는 헤어지기 아쉬운지 말을 더 붙였다.
“여름에 오면 별만큼 예쁜 것도 있어.”
“별만큼 예쁜 거..?”
“응.”
“그게 머에요..?”
“흥, 안 알려줄 거다.”
“…?”
대단한 것마냥 얘기를 꺼내놓고 안 알려준다니.
가장 사람을 열이 받게 만드는 화법을 구사하는 녀석이었다.
연두는 다소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왜 안 알려조요..?”
“.. 여름에 오면 알려줄게.”
궁금해서라도 오게 만드는 전략인 모양.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얘기 안 해도 또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 감자소년.”
녀석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답했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엄청 티 나는구먼.”
“아니라고요! 그리고 감자소년은 뭐예요!”
“저번에 왔을 때 감자 줬잖아. 봄 감자가 맛있다면서.”
녀석은 괜히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어쨌든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럼? 곶감소년? 아니면 별소년?”
“아악! 그냥 이름으로 부르라고요!”
이 녀석도 은근히 놀리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연두도 재미있는지 쿡쿡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선동이와는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는 도중 연두가 말했다.
“아빠아..”
“응, 연두야.”
“연두는 물고기자리라고 해짜나요..”
“그치.”
“그럼 아빠는 머에요..?”
내 별자리는 뭔지 물어보는 거 같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궁금했어?”
“네에.”
“그럼 맞춰봐. 아빠가 그 동물을 흉내 내 볼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매애~”
이 정도면 되게 잘 흉내 낸 거 같은데.
사실 이걸 못 흉내 내기가 힘들 거 같긴 하지만.
“매애..?”
아리송한 표정으로 울음소리를 따라 하는 연두.
그러다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염소! 염소다..!”
“하하, 맞아. 아빠는 염소자리야.”
“염소.. 히히, 염소…”
연두는 몇 번이고 내 별자리의 동물을 되뇌었다.
아무래도 연두가 좋아하는 동물이 하나 늘어날 거 같았다.
***
끼익.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다소 늦은 귀가였다.
깨어있는 할머니를 보고 말을 건넸다.
“아직 안 주무시네요?”
“그래, 안 주무신다.”
“늦지 않게 주무셔야죠. 오늘 고생하셨는데.”
“완전히 할미를 노인네 취급하는구먼, 쯧.”
보다시피 훈훈한 안부 인사가 오갔다.
할머니는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알아서 잘 테니까 들어가서 자든가 말든가 해.”
“네, 할머니.”
한 번 연두와 수면을 취했던 방이었다.
그때 나보다 먼저 깬 연두가 문틈을 보며 할머니를 경계하는 게 엄청 웃겼지.
할머니가 나를 때리지 못하게 막겠다며.
‘당시 연두의 머릿속에 할머니는 위험인물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오해가 풀린 상황이었다.
연두도 할머니의 말투에 적응한 상태이고.
그러니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터였다.
나란히 누워서 나는 입을 열었다.
“피곤하지, 연두야.”
사실 안 피곤하기가 힘든 일정이었다.
긴 시간에 걸친 김장부터 산행까지 했으니까.
당장 스르륵 잠이 든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왜인지 나는 별로 안 피곤하지만.’
감길 듯한 눈으로 나를 보며 연두는 대답했다.
“조금 피곤해요..”
“흠. 조금이 아닌 거 같은데?”
“조, 조금 마니…”
“크크.”
나는 연두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졸리면 언제든지 자도 돼, 연두야.”
“네에..”
“참. 아빠랑 이거 보다가 잘래?”
그렇게 말하며 나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내가 들어간 건 다름 아닌 원스타그램이었다.
아까 수육을 먹기 전에 올린 사진의 반응을 확인할 생각으로.
‘이제야 확인하네.’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업로드한 것도 잊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청나게 많은 댓글과 좋아요가 달린 상태였다.
내가 올린 사진은 총 두 개였다.
김장하기 전에 찍은 연두의 김장룩, 그리고 연두와 선동이의 투샷.
-연두는 저렇게 입혀놔도 예쁘네 ㅋㅋ 실화냐 진짜.
┖ㄹㅇ 대디손 고무장갑에 낡은 앞치마를 이렇게 소화하네 ㅋㅋ
┖이 정도면 대디손한테 홍보비 받아야 됨. 인정? 어, 인정.
┖우리 연두 김장해쪄? 아유, 힘들었겠다..
┖김치가 참 맛있어 보이는데요. 이 시골 어디인가요?
┖그냥 연두가 보고 싶다고 말해 ㅋㅋㅋ 김치는 보이지도 않는데.
┖님 말이 맞는데 김치 보이긴 함. 두 번째 사진 상 위에 ㅋㅋㅋㅋ
연두의 김장룩을 향한 댓글이 쭉 이어졌다.
허나 두 번째 사진의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의외의 인물에게 팔로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으니까.
-둘 다 뽀짝해서 너무 귀엽당.. ♡ 그나저나 시골 소년이라.. 조금 위험한데?
┖어이, 소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나?
┖여기서 문제! 초록님이 공식 선언한 연두의 사위 후보는?
┖정답! 없고, 없습니다.(엄격, 근엄, 진지)
┖연두의 사위 ‘후보’의 조건은 10737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그냥 안 된다는 소리잖아 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선동이를 향한 팔로워들의 경계였다.
특히 저번에 스트리밍을 한 이후로 이런 댓글이 많아진 상태였다.
그때 관련된 문제를 언급해서 그런지.
댓글을 가리키며 연두에게 말을 걸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새근. 새근.
이미 연두는 내 품에 웅크린 채로 잠들어 있었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깨어있었는데.
두 번째 사진의 댓글을 보기 전에 잠이 든 모양이다.
‘선동이 입장에서는 다행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연두를 팔로 감쌌다.
겨울이지만 따뜻한 기분이었다.
***
그대로 조금 누워있던 나는 연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일어섰다.
잠이 오면 자려 했는데 정신이 말짱했으니까.
‘물이나 마실까.’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는데 아직 할머니가 깨어있었다.
“아직 안 주무시네요.”
“그래. 잠이나 자지 뭐 하러 나왔어?”
“목말라서요.”
꿀꺽.
부엌으로 가 물 한 잔을 원샷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스윽.
발걸음을 돌려 할머니의 앞에 마주 앉았다.
자연스레 할머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뭐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까는 연두랑 선동이 어머니가 있어서 얘기 못 했거든요.”
“뭔데. 얘기해.”
한 번은 꺼내야 한다고 생각한 문제였다.
그렇다면 더 미뤄서 좋을 건 없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걸 이야기했다.
‘친척들이 연두를 알게 되었을 때의 문제.’
정확히 말하면 장례식장에서 본 얼굴도 모르는 꾀죄죄한 아이가 연두라는 걸 알았을 때.
그때 친척들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한 얘기였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잖아요. 할머니도 연두튜브를 봐서 아시겠지만 저는 얼굴 공개를 안 하고 있고요.”
구독자들에 의해 신비주의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그리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는 그림이었다.
딸의 얼굴은 공개하면서 내 얼굴은 베일에 감추는 게.
‘언제 타의로 드러날지도 모를 일이고.’
연두튜브는 너무 성장했다. 구독자가 백만을 넘긴지도 꽤 됐지.
이제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찍어서 올려서 퍼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것 역시 바람직한 그림은 아니었다.
‘가장 바람직한 건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거지.’
그 방법은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간단했다.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나를 드러내면 되는 일이었다.
허나 그 간단한 걸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었다.
‘친척들.’
친척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어떻게 나올지가 예상이 갔다.
그렇기에 더더욱 공개하는 게 어려웠다.
‘물론.’
연두는 법적으로 외할머니의 딸이었다. 따라서 모든 권리도 할머니에게 있었고.
허나 그렇다고 친척들이 가만히 있으리란 법은 없었다.
시끄럽게 만들려면 언제든 시끄럽게 만들 수 있는 문제니까.
‘그런 잡음 자체를 원하지 않고.’
한 마디로 더러운 싸움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연두를 절대 그 중심에 세우고 싶지 않다고 해야겠지.
그런 생각들을 전부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닐 터였다.
‘이 문제의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이 할머니니까.’
달리 말하면 자식들과 손주 사이에 위치한 사람이 할머니였다.
이런 상황이 결코 유쾌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조금의 동요 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내가 이 얘기를 꺼낼 걸 예상했다는 듯이.
그리고선 짧은 한마디를 뱉었다.
“원하는 대로 해.”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한 마디였다.
자연스레 되묻는 한 마디가 나갔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게 얼굴을 공개하는 거든 뭐든.”
그게 어려워서 꺼낸 이야기인데.
당황한 나를 향해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할미가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하마. 네가 뭘 하든 간에 그 녀석들이 너랑 쥐방울의 일상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다. 절대로. 그러니 넌 신경 쓰지 말고 눈치도 보지 마. 그냥 하고 싶은 걸 해.”
“…”
하고 싶은 걸 해라. 사실 잘 모르겠다.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따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는 건지.
정말 우리의 일상이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는지.
어느 하나도 조금도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나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을 듯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할머니는 나와 연두의 편이라는 거.
그래서인지 더 캐묻고 싶지 않았다.
‘충분하다고 해야 하나.’
오늘의 대화는 이걸로 충분하다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얘기를 나눌 기회는 앞으로도 많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할머니와의 대화가 끝이 났다.
***
다음날 나와 연두는 떠날 채비를 했다.
할머니는 내게 엄청나게 많은 양의 김치를 챙겨줬다.
연두랑 내가 둘이 먹기 벅찬 양이었다.
“너무 과한데요, 할머니?”
“많으면 주위에 주든가.”
“그래도 돼요?”
“내가 알 게 뭐야. 내 손 떠난 김치인데.”
정말이지 할머니다운 대답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감사해요, 할머니.”
김치는 직접 들고 집까지 가는 게 아니었다.
양이 상당해서 배송시키는 게 합리적이었다.
자동차가 있다면 그냥 트렁크에 넣고 갔겠지만.
“크흠..”
갑자기 뚜벅이라는 사실이 서러워지는 기분이었다.
헤어지기 직전에 나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받으세요, 할머니.”
“이게 뭐야?”
나는 능청스레 대꾸했다.
“손주가 드리는 첫 용돈이라고 해야 할까요?”
할머니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집어넣어! 할미가 거지인 줄 알아!”
이것도 귀에 익은 할머니의 단골 대사 중 하나였다.
정확히는 몰라도 할머니가 가난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이건 그런 의도로 건네는 게 아니었다.
‘연두튜브가 아닌 학습지 작화로 번 돈이고.’
이 돈을 번 데에는 할머니의 공도 결코 배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할머니에게는 고마운 점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즉, 금액보다도 감사의 의미를 담은 봉투였다.
나는 미소를 띤 채로 재차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그냥 받아주세요. 김칫값이라고 생각하고. 맨날 비싼 거 비싼 거 하시면서 왜 손주가 주는 용돈은 안 받으려고 그러세요.”
“말이나 못 하면 몰라, 이놈의 조대새끼..”
결국 실랑이 끝에 나는 봉투를 건네는 데에 성공했다.
그 순간 나는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
짧은 순간 할머니의 표정에 번지는 뿌듯함을.
그 표정에 나도 절로 뿌듯함이 일었다.
“그럼 가 볼게요, 할머니.”
“빨리 가. 오래 보니까 질린다, 질려.”
또 없는 소리를 하는 할머니였다.
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도 할머니한테 인사할까?”
“네! 안녕히 게세요, 할머니..!”
연두는 인사한 후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빠랑 연두 집 놀러오세여, 할머니!”
“뭐?”
“연두 방 엄청 예뻐요..!”
“알어, 이년아.”
아시겠지. 연두튜브를 통해 보셨을 테니.
아무튼 연두의 말에 의해 할머니의 서울행이 예정됐다.
하긴 집들이 때 유일하게 오지 않은 손님이니까 한 번은 초대해야지.
“그럼 정말 가 볼게요, 할머니.”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나와 연두는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갈수록 점점 할머니의 모습이 작아졌다.
끝까지 들어가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는 할머니였다.
‘즐거웠네.’
처음 왔을 때만큼이나 즐거웠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명히 연두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이렇게 두 번째 시골에서의 시간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