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학부모 참관수업
연두티콘의 제작에 관한 쪽지.
제안 자체만으로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제작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니까.’
그들이 원하는 제작자는 다름아닌 나였다.
내가 연두티콘을 제작하길 원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제작에 필요한 것들은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는 얘기와 함께.
‘이모티콘이라..’
사용한 적은 없지만 어떤 건지는 잘 알고 있었다.
소속된 단톡방 중 두 곳에서 엄청나게 많이 봤으니까.
고딩녀석들과의 단톡방과 최근 들어간 영상편집 학원 단톡방.
‘특히 주연이랑 예림이가 엄청 많이 사용하고.’
학원 단톡방에서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쓰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모티콘이 대중화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단지 내가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친구녀석들도 마찬가지고.’
엽기 짤이나 보낼 줄 알지 이모티콘은 쳐다도 안 보는 녀석들이니 말이다.
만약 연두티콘이 출시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모티콘은 감정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나 화났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걸 이모티콘을 사용해 돌려 말하는 것이다.
뭐, 모양은 표정을 찡그리는 이모티콘이겠지.
연두티콘으로 생각해 보자면 ‘화난 연두’일 테고.
‘나름 효과도 있지.’
직접적으로 화났다고 하면 상대가 기분이 상할 수 있었다.
허나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자신의 강점을 심각하지 않게, 귀엽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냥 상황에 맞는 이모티콘을 클릭만 하면 되니 사용법도 간단하고.
아마 그런 장점들이 이모티콘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거 아닐까.
‘그럼.’
이제 생각해야 할 건 연두티콘의 모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작이 완료됐을 때의 연두티콘의 모습.
어떤 모습일까. 제작자가 나라고 생각하니 더 상상하기 수월했다.
머릿속에 그려보는 내 입가에 빙긋 웃음이 번졌다.
‘이해가 가네.’
상상해 보니 이해가 갔다.
왜 연두티콘을 제작하고 싶다는 쪽지를 보내온 건지.
쪽지의 내용대로 연두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은 이모티콘으로 만들기에 최적이었다.
마우스를 쥐고 있는 손이 근질거릴 정도니까.
‘연두와 얘기해 봐야겠지만.’
제작이 결정되면 그걸 타인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연두튜브의 영상편집과 같은 논리였다.
연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빠인 나였으니까.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들을 이모티콘으로 제작한다면.’
가장 잘 녹여낼 수 있는 것 또한 나였다.
내게 제작을 맡아달라 제의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숙련된 이모티콘 제작자는 무척 많을 텐데.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런 거라면 나도 믿음에 부합하는 최고의 연두티콘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누구든 부담 없이 기분 좋게 쓸 수 있는 이모티콘을 말이다.
심지어 연두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자세한 얘기는 직접 찾아뵙고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답 쪽지를 주셔도 되고 번호를 남겨둘 테니 바로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쪽지의 내용이 끝이 났다.
아무래도 학습지 작화에 이어 업무가 하나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마침 잘 됐네.’
학원을 다녀도 비는 시간이 꽤 존재했다.
그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나는 쪽지에 적힌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하고 유투브 창을 닫았다.
***
“아빠.. 머 해요..?”
“아, 연두야.”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핸드폰을 보여줬다.
“카톡하고 있었어.”
“카톡..?”
“응, 카톡. 이게 아빠 학원 같이 다니는 사람들 있는 단체 카톡방이거든. 선생님도 있고.”
“아! 그럼 아빠도 이써요..?”
“하하, 당연히 있지. 아빠도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니까.”
아직 카카오톡의 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연두였다.
그런데도 연두는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내 핸드폰 화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무언가를 보고는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아빠, 여기…!
연두가 가리킨 건 다름아닌 우는 표정 이모티콘이었다.
이모티콘을 쓴 건 메이크업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열여덟 살 유아름이었고.
그걸 보며 연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곰돌이 우러요, 아빠…”
“걱정하지 마. 진짜 우는 게 아니니까.”
“그럼요..?”
“이건 이모티콘이라는 거야. 배우는 게 어려워서 힘들다고 올리는 거지.”
실제로 이 이모티콘은 거의 유아름의 시그니처 이모티콘이었다.
단톡방이 생긴 뒤 유아름은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이는 배운 걸 습득하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수업 중에도 엄청 간단한 걸 못 따라해서 힘들어하곤 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솔직히 잠깐 생각했다.
‘그만두는 거 아닐까 하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게 무색할 정도였다.
아름이는 힘들어하긴 해도 한차례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단톡방에도 틈만 나면 모르는 걸 질문했고.
그 말은 집에서도 계속 배운 걸 복습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게 보이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비교적 나는 수업에 잘 따라가는 편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배운 건 대부분 대답하는 게 가능했다.
따라서 내가 단톡방에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화 대상은 대부분 아름이이고.’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스운 상황이었다.
나머지 두 개의 단톡방에서는 거의 눈팅만 하는 나인데.
아무튼 대답해주는 건 내게도 꽤 도움이 됐다.
대답하면서 다시금 배운 걸 상기할 수 있으니까.
지금도 아름이의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이주원 : 울지 말고 다시 차근차근 해 봐, 아름아.
유아름 : 네.. 죄송해요, 오빠… ㅠㅠ
이주원 : 아냐. 자, Project 패널에서 파일을 ‘New Item’ 아이콘으로 드래그하는 거야. 소스 파일이랑 같은 시퀀스를 만드는 거지. 여기까지는 따라했어?
유아름 : 아, 분명히 배웠는데… ‘New Item’ 아이콘이 뭐였죠?(우는 이모티콘)
“…”
설마 이것도 잊어먹었을 줄이야.
하지만 나는 연두로 인해 반복질문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웬만해서는 질문이 반복돼도 지치지 않았다.
이주원 : 왼쪽 네모칸 있지. 거기서 오른쪽 가장 아래에 있는 아이콘.
유아름 : 아, 맞다!! 대박!!!(웃는 이모티콘)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날아갈 듯 기뻐한다.
알려주는 입장에서도 뿌듯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나는 씩 웃으며 연두에게 말했다.
“이거 봐, 연두야. 언니 이번에는 웃는데?”
웃는 이모티콘을 본 연두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마침 이모티콘이 등장한 김에 나는 말했다.
“연두야.”
“네에.”
“이 이모티콘은 곰돌이잖아.”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를 향해 말을 이었다.
“연두가 이모티콘으로 만들어지면 어떨 거 같아?”
“으응..?”
확실히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긴 했다.
나는 다시 알기 쉽게 얘기해 줬다.
“그러니까 이런 거지. 이게 곰돌이가 아니라 연두가 되는 거야. 연두가 웃는 표정, 연두가 우는 표정, 연두가 깜짝 놀란 표정. 전에 티셔츠에 그렸던 연두 포즈들 기억하지?”
“네, 기억해요..!”
연두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역시 예를 들으니 이해가 빠르구나.
나는 이야기의 요점으로 말을 끝맺었다.
“그런 연두의 포즈들을 이렇게 작게 그리는 거지. 이 곰돌이처럼.”
“아빠가여..?”
나는 장난스레 대꾸했다.
“왜? 다른 사람이 그렸으면 좋겠어?”
연두는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시러요! 아빠가 그려쓰면 조케써요..!”
“흠, 그럼 연두가 또 도와줄 건가?
“어떠케요..?”
“모델. 아빠는 모델이 없으면 그림 잘 못 그리거든.”
그러자 연두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도아줄 꺼에요! 연두는 모델 잘할 수 이써요..!”
“하하, 고마워.”
아무래도 거의 확정된 거 같았다.
카카오톡 ‘연두티콘’의 제작이.
***
다음날 단비어린이집.
“오늘도 재밌게 놀아, 연두야. 저녁에 데리러 올게.”
“네에, 아빠…”
쪽.
언젠가부터 헤어지기 전 인사가 볼 뽀뽀가 된 부녀였다.
그렇게 언제나 속상한 아빠와의 헤어짐이 끝나고,
끼익.
선생님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간 연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친구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연두는 그 친구를 향해 달려갔다.
“시으나..!”
와다다 달려가 시은이의 품에 폭 안기는 연두.
시은이도 양팔을 가득 벌려 연두를 껴안았다.
입가에는 어느새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연두야..”
“시으나..”
제삼자가 보면 오랜만에 자매가 재회한 줄로 착각할 만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애틋한 인사를 나누고 둘은 자리에 앉았다.
시은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시골은 잘 갔다 왔어, 연두야?”
“으응! 엄청 재미써써..”
연두는 시골에서의 일을 차근차근 얘기해줬다.
어느새 옆에는 민우가 앉아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빠랑 할머니랑 김장도 하고.. 안 매운 하얀 김치랑 수육도 머거써!”
“안 매운 김치? 아, 백김치?”
“마자! 백김치..!”
듣고 있는 민우는 입이 근질근질했다.
‘연두 너는 매운 거 못 먹는구나?’라고 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으니까.
원래라면 아무 고민없이 이야기했을 텐데.
언젠가부터 말하기 전에 한 번은 생각하게 된 민우였다.
연두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밤에 산도 올라가써!”
“산?”
“으응.”
“밤에 올라가면 캄캄할 텐데…”
“손전등 이러케 하니까 하나도 안 깜까매!”
“아, 그랬구나.”
의문이 든 시은이는 질문했다.
“근데 연두야. 밤에 산은 왜 올라갔어? 무섭잖아.”
“엄청 예쁜 게 이써서..”
“엄청 예쁜 거?”
“응. 선동이오빠 비밀장소에 엄청 예쁜 게 이써서…”
이 말에는 민우가 참지 못하고 불쑥 끼어들었다.
“선동이오빠?”
말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하는 것도 까먹은 민우였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한편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선동이오빠..”
“그 사라미 누군데?”
“연두 할머니 사눈 시골에 사는 오빠…”
“.. 며쌀인데?”
“여서쌀…”
난데없이 선동이 조사를 하는 민우였다.
민우는 괜히 심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선동이 힘 쎄?”
연두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서, 선동이오빠 반말하면 화나는데…”
“갠차나! 화 나도 내가 더 힘세니까! 선동이가 화나면 싸울 거야.”
잔뜩 심각해진 표정으로 연두는 중얼거렸다.
“싸우면 안 대는데…”
옆에서 듣던 시은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선 민우를 제지하려는 순간.
“연두야. 너는 누가 더 좋아?”
“으응..?”
“선동이오빠랑 나 중에.”
끝내 유치하게 한 마디를 더 하는 민우였다.
연두로서는 무척 난처한 질문.
결국 시은이가 끼어들어 톡 쏘아붙였다.
“그런 거 물어보지 마, 바보야!”
민우에게 있어 시은이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논리적인 데다가 표정도 무서웠으니까.
한 마디에 쭈그러든 민우는 소심하게 항변했다.
“.. 왜 무러보면 안 대는데!”
“연두가 대답하기 어려워하잖아!”
그렇게 말하고선 시은이는 다시 주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연두야. 그 오빠 비밀장소에 있던 엄청 예쁜 게 뭐야?”
“… 별.”
“별?”
뜻밖의 대답에 깜짝 놀란 시은이가 되물었다.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하늘에 토끼모양 별 있는데 진짜 예뻐써…”
“나도 보고 싶다…”
“그럼 다음에 가치 가자!”
“같이? 시골에?”
“응, 선동이오빠 비밀장소 보러..”
“그래도 될까?”
“될 꺼야! 연두가 아빠한테 말할께..!”
시은이의 표정이 기대감에 부풀었다.
쭈그러져 있던 민우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나, 나도 가고 시퍼.. 우리 삼총사자나..”
전에 선우영에게 전화할 때 세 아이가 결성했던 삼총사였다.
민우의 말에 연두가 대답했다.
“알게써! 미누도 아빠한테 말할께!”
민우의 눈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정말?”
“응. 근데 선동이오빠랑 싸우면 안 대!”
“안 싸울 꺼야!”
같이 갈 수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반말도 하면 안 대!”
흔히 볼 수 없는 단호한 연두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선동이와 민우가 싸우는 게 싫다는 뜻이었다.
한편 민우의 콧구멍이 조금 꿈틀댔다.
‘한 살 차이인데…’
어린이집에서는 한 살 차이면 다 반말하는데 존댓말을 해야 한다니.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허나 생각과 달리 대답이 자동으로 나가고 있었다.
“반말 안 해!”
자존심보다 크기가 훨씬 더 컸다. 함께 시골에 가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연두ㆍ시은ㆍ민우 삼총사의 시골행이 예정됐다.
성사될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두런. 두런.
그렇게 한참 이야기하던 와중.
“다들 모이세요!”
모이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따라 아이들이 대화를 멈추고 한자리에 모였다.
물론 삼총사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선생님이 할 얘기가 있어요.”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선생님을 향했다.
유미경이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다음주에 학부모 참관수업을 할 거예요!”
어린이집이든 학교든 한 해에 한 번은 꼭 진행하는 이벤트.
바로 ‘학부모 참관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