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속담
끼익.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유미경이 미소를 띠며 찾아온 학부모를 맞이했다.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학부모 참관수업.
그에 따라 속속들이 학부모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이번에 도착한 건 부부였다.
“엄마! 아빠!”
“현우야!”
다섯 살 남자아이 현우가 부모님에게 안겨들었다.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연두.
벌써 연두의 눈에 몇 번째나 반복되는 장면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연스레 시선이 돌아갔다.
이번에는 아빠가 온 게 아닐까 하고.
그러나 아직까지 아빠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았다.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연두는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아빠가 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엄마, 얘가 연두야!”
그렇게 하염없이 문만 바라보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아닌 친구 현우의 목소리였다. 옆에는 현우의 부모님이 서 있었다.
현우엄마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머..!”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보, 여기 애기 좀 봐! 현우가 맨날 얘기하던 연두.”
“…”
서형철이 아들과 대화할 때마다 귀가 닳도록 듣던 얘기가 있었다.
언젠가 어린이집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온 날이 기점이었다.
세상에서 제일로 예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며 방방 뛰던 아들녀석.
그 이후로 현우는 틈만 나면 연두라는 아이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처음에는 예쁘다고 좋아하더니.’
나중에는 성격도 천사같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지.
심지어 어린이집에서 그렸다는 그림에는 아들과 한 여자아이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니 연두랑 결혼하는 걸 그렸단다.
그쯤 되니 서형철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현우가 좋아하는 연두라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하고.
지금까지는 기회가 없어 보지 못했는데 오늘 드디어 보게 된 그였다.
‘.. 단번에 알겠네.’
실제로 연두라는 아이를 보니 단번에 알 거 같았다.
아들 현우가 왜 그렇게 연두연두 하며 노래를 불렀는지.
세상에서 제일로 예쁜 여자아이라 한 아들의 말이 과장이 아닐 줄이야.
말없이 연두를 바라보던 서형철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연두구나. 만나서 반가워.”
“네에.”
연두는 친구 엄마아빠를 향해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상큼한 인사에 현우엄마 유혜영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어쩜 목소리도 이렇게 예쁘지..?”
서형철이 웃으며 말했다.
“예쁜 인사 고마워, 연두야. 현우가 네 얘기를 엄청 한단다.”
“혀누가요..?”
“응. 연두 네가 엄청 착하고 예쁘다고.”
직접적인 칭찬에 수줍은 표정을 짓는 연두.
막상 현우는 옆에서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연두는 서형철을 향해 대답했다.
“저도 아빠한테 혀누 얘기 해요!”
“오호라, 그래?”
“네에..”
듣는 현우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설렐 만한 얘기였지만 큰 의미가 담긴 말은 아니었다.
평소에 아빠한테 친구들 얘기를 많이 하는 연두였으니까.
한 번이라도 얘기하지 않은 친구가 없을 정도로.
서형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모님은 오셨니?”
“아니여..”
연두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표정을 눈치챈 서형철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오늘 못 오시니?”
“아니여!”
방금과 같은 대답이었지만 텐션이 180도 달랐다.
연두는 눈에 꾹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아빠 오기로 해써요!”
“허허, 그래?”
“네에. 연두랑 칭구들 예쁘고 머찐 모습 보러 꼭 오기로 해써요..!”
“그렇구나. 다행이네.”
말도 정말 예쁘게 하는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얘기하는 걸 잠깐 본 건데도 느껴지는 게 있었다.
‘아빠를 엄청 좋아하나 보네.’
별말이 아닌데도 아빠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같은 아빠로서 흐뭇해지는 장면이었다.
부모로서 자식한테 사랑받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
사실 연두를 보고 놀란 건 이 부부뿐만이 아니었다.
뒤에 서 있는 부모들도 연두에게 시선이 쏠려 있었으니까.
“아유, 귀여워라.”
“아, 동훈엄마는 처음 봐, 연두?”
“동훈이한테 얘기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에요. 언니는 본 적 있어요?”
“나는 오다가다 몇 번 마주쳐서 인사도 했어. 연두아빠랑 연두랑 같이. 근데 아빠가 엄청 젊고 훤칠하다?”
“아, 정말요?”
“응, 처음 봤을 때는 아빠 아닌 줄 알았다니까?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길래.”
“저보다도요?”
“어머? 자기 나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이렇게 선 긋기야?”
“장난이에요, 언니.”
동훈이 엄마는 쿡쿡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두 아빠는 아직 안 오셨나 보네요. 우리 동훈이가 연두 얘기를 얼마나 하는지 몰라요.”
“아유, 우리 유나도 그래.”
“유나도요?”
“말해 뭐해. 너무 예쁘고 착하다고 얼마나 얘기하는지.”
“호호, 인기가 엄청나네요.”
맞벌이로 인해 부부 중 한 명만 참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친분이 있는 학부모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몇몇 학부모는 연두튜브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
끼익.
그러던 와중 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연두의 눈은 다시 현관문을 향했다.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어주는 선생님.
스윽.
그 사이로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연두의 눈이 부풀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긴 했지만 분명히 아빠였다.
“아, 아빠..!”
와다다.
연두가 힘껏 달려가서 아빠의 품에 안겼다.
방금 부모님께 달려가 안기던 친구들처럼.
“하하, 기다렸어, 연두야?”
“네에..”
“미안. 조금 늦었지.”
그렇게 말하며 이주원은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품에 안겨서 배시시 웃음짓는 연두.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빠였다.
***
연두와 애틋한 인사를 나누고 일어섰다.
시간에 맞춰 왔는데도 이미 많은 학부모가 참석해 있었다.
한 부부가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여기 현우 아빠예요.”
“아, 네. 저는 연두 아빠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나니 뭔가 우스웠다.
자기소개를 서로의 이름이 아닌 아이의 이름으로 한다는 게.
이게 학부모의 인사법인 건가.
“예쁜 따님을 두셔서 좋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드님도 잘생기셨는데요.”
“허허, 감사합니다.”
덕담을 주고받은 뒤 그가 말했다.
“연두가 아빠를 엄청 보고 싶어 하더라구요.”
“아, 그랬나요?”
손을 잡고 있는 연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네? 연두가 그렇게 기다릴 줄 알았으면.”
“헤헤.. 갠차나요!”
“정말?”
“네! 아빠 와쓰니까…”
현우 부모님과 인사를 주고받고 난 후 다른 학부모들도 인사를 건네왔다.
조금 난감하네. 내가 먼저 인사할 생각이었는데.
“처음 뵙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동훈이 엄마예요. 근데 애아빠 맞아요? 너무 젊으신데..?”
“내가 말했잖아, 엄청 젊으시다고.”
그렇게 맞장구친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 기억하시죠? 유나엄마.”
“아, 네. 기억합니다. 몇 번 인사 나눴었죠.”
확실히 유나라는 아이와 함께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렇듯 구면인 사람과 초면인 사람이 혼재했다.
그러던 와중 조금 높은 텐션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아유, 연두 아부지 되세요?”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된 느낌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너무 잘생기셨네.. 연두가 왜 이렇게 예쁜지 아빠를 보니 알겠어요.”
낯간지러운 칭찬을 들으니 조금 울렁거렸다.
아직 세연씨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정을 아는 그녀가 들었다면 웃음이 나올 만한 칭찬이었으니까.
한편 아주머니는 말을 이었다.
“한 번 꼭 뵙고 싶었는디.. 정말 반가워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였다.
나는 미소를 띠며 인사를 받았다.
“저도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혹시 어떤 아이 부모님이신지…”
“내 정신 좀 봐! 그걸 먼저 얘기했어야 하는데!
한차례 자책한 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민우 엄마예요.”
상당히 반가운 이름이었다.
“민우 어머니셨군요. 연두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 그랬나요?”
“네.”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우가 못 살게 군다고 얘기 많이 하죠? 워낙 장난기가 심하고 짓궂어서…”
“아뇨,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오히려 되게 좋은 친구라고 얘기하던데요.”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연두는 민우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호랑이를 이긴다고 거짓말했던 역사가 나오긴 하지만.
‘굳이 과거를 들출 필요는 없겠지.’
이런 장소에서는 서로 좋은 얘기만 하는 게 훌륭한 처신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민우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후에도 나는 학부모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다들 친근하게 말을 걸어줘서.’
친화력이 없는 나도 쉽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자식이라는 공통된 존재가 있어서 어색함이 없는 거 같았다.
그러던 와중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부모님들은 뒤에 앉아주세요!”
학부모 참관수업을 시작할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
신세연 : 아주 조금 늦을 거 같아요 ㅠㅠ 시은이한테 잘 전해주세요.
신세연에게 온 따끈따끈한 문자였다.
시간을 뺐다고 들었는데 완벽히 맞춰서 오지는 못하는 모양.
나는 곧바로 시은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시은아.”
“.. 아저씨.”
표정에 미묘한 속상함이 엿보였다.
친구들과 달리 엄마가 오지 않아 속상해하는 거겠지.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쓰담. 쓰담.
자연스레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고 나서야 스스로 당황했다.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은이.
피하지 않는 걸 보니 다행히 싫지는 않나 보다.
나는 안도하며 신세연이 보낸 문자 내용을 전달해줬다.
“엄마한테 문자가 왔거든, 시은아?”
“엄마한테요?”
“응,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래. 그러니까 속상해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시은이는 괜히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속상해하지 않아요!”
“하하, 그럼 다행이고. 엄마가 오기 전까지는 아저씨가 뒤에서 열심히 응원해 줄게.”
“.. 아저씨가요?”
“응, 아저씨가. 혹시 싫니?”
우려와는 달리 시은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싫지는 않아요..”
좋다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안심할 만한 대답이다.
나는 옆에서 웃고 있는 연두를 향해서도 말했다.
“연두도 파이팅! 아빠가 응원할게!”
“파, 파이팅..!”
나를 따라 주먹을 불끈 쥐는 연두.
그렇게 나는 단짝을 두고 뒤로 돌아가 앉았다.
***
본격적인 학부모 참관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이라는 단어답게 첫 콘텐츠는 공부의 일종이었다.
앞에 칠판이 있고 아이들이 손을 들고 발표하는 방식.
교사 유미경이 방식을 설명했다.
“자, 앞에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거예요. 그 그림을 설명하는 속담이 하나 등장할 거고요. 속담 여기저기에 뽕뽕 빈칸이 뚫려있는데 정답을 아는 친구들은 손을 들어서 그 빈칸을 채워주면 돼요. 알겠죠?”
“네, 선생님!”
“저 손 들어써요!”
“크크, 뽕뽕! 방귀대장 뽕뽕이!”
열띤 반응을 보이는 단비어린이집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아직 문제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손을 드는 아이도 있다.
‘그나저나.’
뭔가 민우라는 아이가 누군지 알 거 같은 건 착각인가?
인사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눈에 보였다.
저기 ‘뽕뽕이’ 어쩌고 하는 녀석이 민우일 거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아이들의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세연씨가 빨리 와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업이 시작됐다.
모니터 화면에 큼지막하게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그림을 보는 즉시 유명한 속담이 하나 떠올랐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실제로 까마귀가 날고 있고 배가 떨어지는 그림이었다.
뒤이어 한 문장이 옆에 떠올랐다.
-○ ○ ○ 날자 ○ 떨어진다.
어떤 방식인지 알 거 같았다.
이 빈칸에 적힌 단어를 적도록 하는 거구나.
확실히 그냥 한글공부를 하는 것보다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림이랑 퀴즈를 병합한 거니까.’
시각적 요소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내가 제작하는 학습지와도 유사했다.
빈칸 채우기도 학습지에 나오는 방식이었고.
그걸 고려하면 연두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거 같은데.
슉. 슉. 슉.
여기저기서 물 밀듯이 손이 올라갔다.
부모님이 와서인지 열정이 가득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 틈에서 연두도 힘차게 손을 들고 있었다.
시은이가 가만히 있는 게 마음에 조금 걸리긴 하지만.
“현우가 발표해 볼까?”
“네!”
처음 발표권을 받은 아이는 현우였다.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내리는 나머지 아이들.
현우는 씩 웃으며 씩씩하게 걸어나가 분필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까마기’ 날자 ‘배’ 떨어진다.
툭.
어깨를 으쓱하며 분필을 내려놓는 현우.
얼핏 보면 맞는 거 같아 보이지만 한 글자 틀린 게 있었다.
‘까마기가 아니라 까마귀지.’
사실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제 다섯살인 아이였으니까.
늦으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한글을 못 떼는 경우도 존재했다.
학부모들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호호, 귀여워라.”
“요 녀석아. 까마귀라고 써야지.”
서형철은 껄껄 웃으며 아들을 나무랐다.
전체적으로 유쾌하게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꺼내 아이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스윽.
나도 뒤늦게 카메라를 꺼내 연두의 뒷모습을 담았다.
연두튜브에 올리는 것과 별개로 좋은 추억으로 남을 만한 장면이었으니까.
한편 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유미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했어요, 현우. 그런데 딱 한 글자 아쉽게 틀린 게 있네요? 혹시 고쳐볼 사람 있나요?”
이번에는 유나의 이름이 호명됐다.
유나는 앞으로 나가서 ‘기’를 지우고 ‘귀’로 고쳐썼다.
짝. 짝. 짝.
학부모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물론 나도 박수에 동참했다.
그렇게 첫 문제가 끝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짠!”
모니터에 두 번째 그림이 떠올랐다.
밝은 낮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새, 어두운 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쥐.
이번 그림도 떠오르는 속담이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속담이 빈칸이 뚫려 등장했다.
-낮말은 ○가 듣고 밤말은 ○가 듣는다.
이번에도 연두는 힘껏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 보였다. 연두를 향하는 유미경의 시선이.
“이번에는 연두가 나와서 채워 볼까요?”
“네, 선생님!”
앞으로 나가기 전에 연두는 살며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선 나를 보며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하하.”
자연스레 입 밖으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옆에 있는 학부모들은 연두의 미소에 하나같이 심쿵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빈칸을 채우러 앞으로 나간 연두.
망설임없이 분필을 잡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몸에 가려서 아직은 정답이 보이지 않았다.
스윽.
분필을 내려놓은 연두는 말했다.
“다 써써요, 선생님!”
“잘했어요, 연두. 자리로 돌아가도 좋아요.”
“네..!”
자연스레 빈칸에 채워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답을 확인하는 동시에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솔직히 내심 ‘쥐’를 ‘지’라고 쓰지는 않을까 했는데.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정확한 답이었다.
유미경도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답이에요, 연두! 잘했어요!”
자리로 돌아간 연두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찡긋.
뿌듯한 표정을 잔뜩 머금고 나를 바라보는 연두.
내 앞에서 정답을 맞혀서인지 세상 기분좋은 표정이다.
나 역시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척!
연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시은이는 아직까지도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세연씨가 오지 않아서인가.’
시은이는 무척 똑똑한 아이였다.
웬만한 문제에는 전부 빈칸을 채울 수 있을 텐데.
몰라서 참여하지 않는 건 아닐 터였다.
잠깐의 생각 끝에 나는 뒤에서 입을 열었다.
“똑똑한 시은이 파이팅!”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괜찮았다.
아까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갑작스러운 내 응원에 시은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런 시은이를 향해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자, 마지막 문제예요. 짠! 참고로 이번 문제는 무척 어려워요.”
교사의 말대로 지금까지 문제 중에서 가장 어려운 느낌이었다.
직관적이었던 이전 그림과 달리, 그림부터 상당히 추상적이었으니까.
배에 꽉 찬 사람들이 산에서 노를 젓고 있는 그림이었다.
역시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속담이 떠올랐다.
-○ ○이 많으면 ○가 ○으로 간다.
사실 이건 속담 자체를 알고 있어야 답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앞의 빈칸도 다섯 살 아이가 알기에는 다소 어려운 단어였고.
솔직히 이걸 풀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와 달리 정적이 맴돌았다.
‘아는 아이가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스윽.
카메라 앵글 속에 천천히 올라가는 팔이 보였다.
다름아닌 연두의 옆에 앉은 시은이의 팔이었다.
유미경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오, 시은이! 나와서 채워 볼까요?”
시은이는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분필을 들고 글씨를 적기 시작하는 시은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완벽한 정답이었다.
솔직히 나도 놀라웠다. 시은이라도 이걸 알 줄은 몰랐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박수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사공이라는 글자를 아네..”
“되게 똑똑하네요, 저 시은이라는 아이.”
“속담을 알고 있었나 봐요.”
연두도 세상 신난 표정으로 박수에 동참했다.
걱정이네. 저렇게 치면 손바닥 아플 거 같은데.
한편 시은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얼굴을 붉히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던 와중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척!
나는 씩 웃으며 시은이를 향해서도 엄지를 뻗었다.
충분히 내 엄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나는 볼 수 있었다.
스륵.
곡선으로 말려 올라가는 시은이의 입꼬리를.
시은이의 얼굴에서 저런 웃음을 보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역시 응원하길 잘했단 말이지.
‘카메라에도 잘 담겼을 테고.’
세연씨에게도 보여줘야 할 거 같았다. 딸이 멋지게 고난도 문제를 풀어내는 장면을.
연두의 뿌듯한 웃음부터, 시은이의 처음 보는 미소까지.
벌써 얻은 게 많은 학부모 참관수업이었다.
“그럼 다음 수업으로 넘어가 볼까요?”
“네, 선생님!!”
“다음 수업은….”
유미경은 뜸을 들인 후에 이야기했다.
“부모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져 볼 거에요!”
“…?”
생각지도 못하게 특기분야인 수업이 등장해버렸다.